소설리스트

20화 (20/189)

“야옹.”

고양이가 갑자기 자기가 잡고 있던 그 어린아이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놀라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어린아이를 그녀가 있는 쪽으로 툭 하고 밀었다.

“나한테 주는 거야?”

“야옹!”

시하가 어리둥절하며 묻자 고양이가 머리를 끄덕였다.

묘성의 사람들은 참 예의도 바르네, 선물도 다 주고.

시하는 당황하며 아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작은 몸을 움츠리고 벌벌 떨고 있는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 고양이는 그저 놀리기만 하는 거야. 고양이는 사람을 먹지 않아.”

그녀는 눈물과 진흙으로 아이의 얼굴에 뒤엉켜 붙은 머리카락을 떼 주었다. 그러자 어딘가 많이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유유!”

반년 전에 그녀가 구해줬던 그 여자아이었다. 여자아이는 그제야 머리를 들고 말없이 시하를 바라보더니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많이 놀란 듯해 시하는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질문했다.

“유유, 아직 나 기억해? 우리 반년 전에 만났잖아?”

유유는 입을 벌리고 뭔가 얘기하려는 듯했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러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엉엉 소리를 내며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엉엉, 언, 언니, 엉엉엉.”

아이는 서러워서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울더니 딸꾹질까지 했다. 그리고 작은 손으로 그녀를 꽉 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울지 마. 언니가 있잖아.”

시하는 마음이 아파 참지 못하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을 한 번 쏘아봤다.

“여기 네가 한 짓을 봐!”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고양이는 가늘고 부드러운 꼬리를 그녀에게 돌렸다.

묘성인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

시하가 반나절이나 타이르고 나서야 유유는 울음을 멈췄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잡고 있는 손은 놓지 않았다. 시하는 눈물을 닦아주고 아이를 자세히 살펴봤다. 반년 전보다 더 비참한 모습이었다. 온몸이 꾀죄죄한 것이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얼룩들이 아니었다. 옷에는 구멍도 몇 개 나 있었다.

“유유, 왜 혼자 여기에 있어? 오라버니는?”

시하가 기억하길 여자아이에게는 헌림이라는 오라버니가 한 명 있었건만, 또 헤어진 것인지 곁에 보이지 않았다. 유유는 어리둥절해하더니 다시 시하의 품으로 얼굴을 묻어 버렸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웅얼웅얼 대답했다.

“오라버니는 선인을 찾아갔어요. 저한테는 기다리라고 했고요.”

뭐? 이게 다 무슨 소리지?

시하는 여자아이의 등을 두드려주며 진정시킨 다음 그동안의 사연을 들어 보았다.

그날 그녀가 전송진을 탄 후, 헌림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선문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운이 없었는지 계속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렵게 용성 부근에서 선인들이 제자를 받는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까지 왔다가 길에서 또 서로 헤어지게 된 것이다.

시하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놈의 오라버니는 저번에 한 번 잃어버렸으면 이번엔 조심했어야지. 또 동생을 잃어버렸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의 오라버니는 지금 용성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침 시하도 갈 곳이 없었고 옥화파는 이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우선 원오에게 그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어떻게 골탕 먹일지 생각해봐야 했다.

이 일에는 분명히 다른 속사정이 있는 듯했다. 원오가 시하를 죽이면 제일 먼저 의심받을 사람은 원오 당사자였다. 그런데도 손을 쓴 걸 보면 호구 오라버니와 필홍을 속일 뭔가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아니면 그의 뒤에 또 다른 배후가 있는 건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시하는 갑자기 등이 서늘해졌다. 옥화파는 아직 돌아갈 수 없었고 그랬다간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었다. 옥화파로 돌아가는 일은 우선 유유를 용성으로 데려가 오라버니를 만나게 한 다음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근데 용성은 어디에 있지?

“유유, 오라버니가 용성이 어디에 있다고 얘기해줬어?”

유유는 모르겠다며 머리를 흔들었다. 역시 유유에게서 뭔가를 알아내긴 어려운 듯했다. 어딜 가서 찾지? 그런데 갑자기 고양이가 그녀를 바라보며 울었다.

“야옹!”

“네가 알아?”

“야옹!”

고양이가 몸을 돌리더니 그녀 앞에 엎드리고는 길고 부드러운 꼬리로 발목을 감더니 앞으로 끌어당겨 등에 올라타라는 시늉을 했다. 시하는 아직 고양이를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었기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네가 우리를 데려간다고?”

“야옹.”

고양이가 그녀를 보며 큰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낮추어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보더니 위협하듯 한 번 으르렁거렸다. 유유가 놀라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만 데리고 가고 유유는 남겨두겠다는 심산이었다.

시하는 입을 삐쭉거렸다. 고양이는 이 어린 친구를 무척 싫어하는 듯했지만 그녀 혼자 용성에 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시하는 깊게 한숨을 쉬고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었다.

“생선포 한 개 줄게!”

“야옹.”

고양이가 오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생선포 두 개!”

“야옹.”

시하가 개수를 추가했지만 고양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하나를 더 늘려 다시 제안했다.

“세 개, 세 개면 됐지? 더는 안 돼.”

“야옹.”

드디어 고양이가 뒤뚱뒤뚱 그녀 앞으로 걸어와 엎드렸다.

묘성인 체면이 너 때문에 다 떨어지는 거 아냐?

여전히 고양이가 무서운 유유가 섣불리 움직이려 하지 않자, 시하는 절대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설득했다. 그제야 아이는 부들부들 떨면서 고양이 등에 올라탔다.

고양이가 바로 날개를 펴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체중 때문인지 그리 높이 날지는 않고 숲 바로 위를 날 뿐이었다. 시하는 그제야 이 숲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숲은 큰 나무들로 우거져 있어 지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숲에서 가끔 여러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희미하게 또 다른 요괴들이 사나운 얼굴을 하고 걸어 다니는 것이 보였다. 고양이 때문인지 숲을 나오는 동안 요괴들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공격은 하지 않았다. 고양이가 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절대로 숲을 빠져 나오지 못할 듯했다.

잠깐.

시하는 조금 전에 유유를 만났던 장소를 떠올렸다. 거기도 깊은 산속이었는데 유유의 몸에 상처가 없었다. 보아하니 고양이가 아이를 놀라게 한 것이 아니라, 오는 길에 아이를 보호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대단한 묘성인이었다. 시하는 고양이의 등을 어루만지며 생선포 한 개를 더 얹어 주어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고양이가 두 시간쯤 날아서야 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고양이는 꼬리로 그녀에게 방향을 가리키더니 생선포를 물고 숲으로 돌아갔다.

시하는 유유의 손을 잡고 고양이가 가리킨 쪽에 있는 작은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조금 올라가니 과연 앞에 희미하게 고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시하는 유유를 업고 옆에 있는 작은 길로 들어섰다.

성은 보기에는 가까워 보였지만, 거의 한 시간쯤 걸어 발에 껍질이 다 벗겨져서야 ‘용성’ 두 글자가 새겨진 문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성 밖에는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 특히 더 붐벼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얼굴에 흥분된 기색을 띠고 있었다.

시하가 유유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유유, 오라버니와 만나자고 약소한 장소가 있어?”

유유는 대답하지 않고 불안한 표정으로 그녀의 옷깃만 더 꽉 잡았다. 반년 전보다 더 말수가 줄어든 듯했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얻어 내지 못하겠네. 용성이 이렇게 큰데 어딜 가서 사람을 찾지?

“괜찮아. 우선 성안으로 들어가 보자.”

유유의 손을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거리 어귀부터 끝까지 사람들로 붐벼 헌림을 찾으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다. 근데 성에 들어서서 얼마 안 되어 유유가 갑자기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는 앞으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오라버니.”

설마 이렇게 빨리 찾은 거야?

급히 따라 가니 유유는 곧바로 포자(包子, 밀가루 따위를 반죽하여 소를 넣어 빚은 음식)를 사고 있는 소년에게 뛰어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앞에 멈춰 서서 더는 다가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헌림.”

시하가 지켜보다 못해 부르자 포자를 사던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역시 그였다!

그런데 헌림은 좌우를 살피더니 유유를 보고는 손을 덜덜 떨었다.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포자도 떨어뜨릴 뻔했다.

“유야, 네가 어떻게.”

그는 얼굴색이 어두워졌다가 그제야 뒤에 있던 시하를 발견하고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당, 당신이었군요.”

“헌림, 오랜만이야.”

시하가 웃으면서 인사하자 헌림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은인님이셨군요. 여기서 당신을 만나게 될 줄 몰랐어요.”

“나도 다시 한 번 너의 누이를 구하게 될 줄 몰랐네.”

시하가 바닥에 서 있는 유유를 안아 그에 품에 안겼다. 그리고 조금은 화가 나서 말했다.

“왜 그렇게 칠칠맞아? 어떻게 또 동생을 잃어버리느냐고, 그것도 두 번씩이나.”

헌림은 급히 유유를 받아 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당황하며 말했다.

“모두 제가 부주의한 탓입니다. 요 며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누이를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해 애가 타던 중이었거든요. 모든 것이 은인님의 덕분입니다. 은인님의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는 유유를 내려놓고 공손하게 무릎을 꿇으려고 했으나 시하가 급히 멈춰 세우며 말했다.

“됐어, 됐어. 나도 지나던 길에 도운 것뿐이야.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

헌림은 바로 머리를 끄덕이더니 그제야 유유를 살폈다.

“유유, 괜찮아? 상처 입은 데는 없고?”

유유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머리를 더 깊숙이 숙였다. 시하는 유유가 숲속에서 고양이에게 쫓겼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마 많이 놀랐을 거야. 그 고양이는 영수인데, 이 애를 놀라게 하려던 것이 아니라 보호해주려고 했던 거야. 그 숲에는 요괴가 너무 많아서 혼자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거든. 유유가 아직 어려서 이번에 많이 놀란 모양이니 네가 잘 타일러줘.”

“알겠습니다.”

헌림은 거듭 반드시 동생을 잘 돌보겠다고 다짐하며 몇 차례 인사하더니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유를 안고 떠났다.

시하도 한시름을 놓았으나 두 사람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헌림은 어딘가 수상했다. 말로는 유유를 걱정하는 듯했지만, 시하에게 먼저 사과를 하고 나서야 유유가 괜찮은지를 살폈다. 이는 반년 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 헌림은 유유를 발견하고 너무 기뻐 시하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전보다 헌림은 많이 야위어 있었고 몸에 걸친 옷도 낡아져 있었다. 전에는 귀공자 같은 모습이었다면 이번에 만난 모습은 많이 평범해 보였다. 얼굴에도 초췌한 기색이 가득했다.

시하는 다시 한 번 그들이 가고 있는 쪽을 바라봤다. 아이를 안고 있지만 헌림은 아주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마치 황급히 어딘가로 도망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성 입구였다.

용성에 수선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나?

생각할수록 뭔가 이상하여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