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189)

그녀는 수많은 의문을 품고 다음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하늘에서 또 한 명의 노인이 떨어졌다. 이번엔 전보다 더 참혹했다. 두 다리가 아예 보이지도 않아 마치 교통사고 현장을 보는 듯했다. 그 역시 옥패를 건네며 말했다.

“나는 음살문(音殺門)의 임당이라고, 이건 내 평생의 공법이니 부디 당신이…….”

시하는 울고 싶었다. 낭떠러지에 뛰어내리는 것이 임씨 가문의 전통 미덕이라도 되는 걸까? 왜 임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뛰어내리는 걸 좋아하는 거지? 게다가 옥패는 정말 필요도 없는데. 왜냐하면…….

“나는 영근이 없으니까!”

노인 2호도 피를 토하더니 숨을 거두었고 셋째 날, 하늘에서 3호 노인이 떨어졌다.

“나는 옥벽종(玉璧宗)의 장로 오강이다. 이 영롱(玲瓏)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비법으로 하늘이 당신에게 전달…….”

그는 방울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었다.

이번엔 임씨 성이 아니군. 하지만…….

“저는 진짜 영근이 없어요. 혹시 먹을 건 없어요? 어차피 당신도 먹지 못할 거니까 그것도 같이 주세요.”

3호 노인도 숨을 거뒀고, 시하는 그 다음날에도,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계속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노인들과 마주해야 했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반신불수의 사람들이 계속 떨어져 내려왔고, 그들은 각종 비법들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갈수록 점점 더 높은 명성의 비법들이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그녀도 처음에는 비참한 모습을 보고 놀라기를 반복하다가 이제는 익숙해졌다.

유물을 받아주면 되는 거로군. 온라인 마켓에 올려 다 팔아 버려야지.

그렇게 하여, 그녀의 식량 주머니는 빠른 속도로 각양각색의 비법 서책과 이름도 모르는 법기(法器)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열다섯 번째 날, 이번에는 하늘에서 조금 다른 물건이 떨어졌다. 십여 미터나 되는 큰 몸집이었다. 몸에는 금빛이 감도는 비늘이,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머리에는 사슴뿔처럼 생긴 뿔이, 턱에는 긴 수염이 나 있었다. 그리고 몸은 뱀처럼 긴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용이었다. 그것도 거대한 금룡.

“와우.”

계학당 사부는 용, 봉황 이런 것들은 오래전에 멸종되어 이제 볼 수 없다고 했었는데. 교재 내용에 오류가 있던 건가. 그녀는 손이 근질거려 참다못해 그의 긴 수염을 만졌다.

“와, 아직 살아 있잖아?”

“범인(凡人)?”

용이 전등처럼 큰 눈을 굴리고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입은 열지 않았지만 확실히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들려왔다. 몹시 쇠약한 목소리였는데 그도 몸에 깊은 상처들이 나 있었다. 전에 팔이 떨어졌거나 다리가 잘렸던 노인들보다 상처가 훨씬 더 심각했다. 금색의 몸에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뼈가 드러나 있는 깊은 상처도 여러 군데 보였다.

“내가, 명이 여기, 범인, 이건 정말 중요.”

“알겠어요, 알겠어요.”

시하는 손을 내저으며 다 알아들었다는 듯 말했다. 매번 듣는 말들이라 이제 다 외울 정도였다.

“어서 말씀해 보세요. 저한테 주실 게 있죠? 어디 있어요? 제가 도와 드릴까요?”

시하는 이미 그의 수염을 들추며 물건을 찾고 있었다.

요즘 범인들은 다들 이런 건가? 금룡은 피가 더 빨리 흘러나오는 듯해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더니 입을 벌리고 금색 구슬을 하나 뱉어 냈다.

“범인, 이건 우…….”

“여의주!”

시하가 손을 뻗어 잡자 원래는 금색이던 구슬이 천천히 흰색으로 변했다.

“이 구슬은 용족의 전승으로 당신이 꼭 우리 가족에게 전달……. 아들아!”

“응? 이건 용족만 사용할 수 있는 거예요?”

어딜 가야 용을 찾을 수 있지?

“그야 당연하지. 우리 가…….”

“그런 거군요. 알았어요. 이제 그만 돌아가셔도 돼요.”

“잠깐. 나를 구해주지 않을 거요?”

그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고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했다. 시하는 그의 수염을 두드리며 말했다.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예전에 떨어졌던 그 노인들도 다 시도해 봤는데 한 명도 살리지 못했어요. 저는 의사가 아니랍니다.”

금룡은 곧 피를 토하더니 숨을 거두었다.

시하는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무도 이제 거의 다 먹어 가고 있는 상태였고, 이렇게 가다가는 굶어 죽든지 이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 미쳐 죽든지 둘 중에 하나일 듯했다. 그녀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데, 별안간 바닥이 열렸다.

원래는 칠흑 같던 발아래가 갑자기 철컹하더니 네모난 모양으로 문이 열렸다. 그리고 스무 살 남짓한 젊은 남자가 나타나 혼자 뭐라고 원망하듯 중얼거렸다.

“또 어떤 녀석이 떨어져 내려온 거야, 왜 맨날 여기로…….”

남자는 고개를 들더니 갑자기 얼어붙은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살아 있는 사람?”

아직 죽지 않은 건 분명했으니 시하는 남자가 묻는 말에 대답했다.

“어, 네.”

“살아 있는 사람이라니! 잘됐어!”

남자가 갑자기 기뻐 날뛰며 흥분하더니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는 힘껏 악수를 했다.

“오랜만에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났어요. 떨어진 걸 축하해요.”

이게 축하할 일인가?

“저는 공양이라고 해요. 저 혼자 이 계곡에서 오랫동안 살았죠. 이제 드디어 저와 함께할 사람이 생겨 너무 기쁘네요! 아, 당신 이름은 뭐예요?”

“시, 아니, 하시요.”

이름 때문에 너무 많은 위협을 받아 왔기에 그녀는 이름을 고쳐 말했다.

“아, 하 사매였군요. 우리 법진을 나가서 얘기해요.”

공양은 흥분해서 그녀를 끌고 내려와 아래쪽 문밖으로 나섰다. 문을 나서니 앞에 또 하나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무넝쿨을 헤치고 나가 보니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눈앞이 확 트이며 녹색 초원이 넓게 펼쳐졌고 땅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칠흑 같던 어둠은 사라지고 거대한 금색의 법진만 남아 있었다. 법진 위에는 빽빽하게 검은색과 흰색의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촘촘한 틈새로 낭떠러지 꼭대기도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이건.”

시하가 어안이 벙벙하여 말을 잇지 못하자 공양이 설명했다.

“저건 멸영진(滅靈陳)이에요. 저기 흰색과 검은색은 혼돈의 바람이고요.”

“혼돈의 바람이요?”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온 거죠?”

공양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그녀를 끌어다가 옆에 앉히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혼돈의 바람은 태초에 하늘과 땅이 열릴 당시에 있었던 건데, 영기가 있는 생물은 모두 삼켜 버려요. 저도 이 바람이 왜 이 계곡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이 바람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천연의 멸영진을 형성할 수 있었죠. 저는 선인이 되기 위해 영기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수행 단계를 높이려 열심히 수련하고 있어요. 이 멸영진은 영기를 없애 주기 때문에 수행 능력이 높고, 체내에 영기가 많은 사람일수록 혼돈의 바람에 심각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답니다.”

“그렇군요.”

어쩐지 그 노인들의 몰골이 하나같이 참혹했었다.

“예전부터 유심히 지켜봤는데 이 진에는 수행이 축기(옥화파의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다섯 단계 중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함) 이상인 사람들만 살아남을 수 있더라고요. 저는 오층(五層) 정도 수련했을 시기에 떨어졌는데 그때도 상처가 엄청 심각해서 몇 년이 지나서야 괜찮아질 수 있었죠. 당신은요?”

“저는 영근이 없어요.”

수행 능력도 없고요.

공양은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어쩐지 몸에 상처가 하나도 없다 했어요.”

“아, 제가 전에 많은 사람들이 떨어지는 걸 봤는데, 시체가 모두 사라졌어요.”

그는 손가락으로 금색의 진법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건 제가 설치한 진법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뭐든 아래로 던지는 걸 좋아해서, 걸핏하면 시체를 아래로 던지더라고요. 이 계곡은 들어올 수는 있지만 나가는 출구가 없어요. 그리고 여기 이렇게 작은 곳에 시체까지 떨어지면 모두 묻을 수도 없잖아요! 바닥에 온통 시체가 묻혀 있으면 얼마나 무서워요? 그래서 제가 이 진을 만든 거예요. 그들이 죽으면 바로 먼지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게 만든 거죠. 참 편리하고 좋죠?”

무슨 바닥의 먼지를 쓸어 버리듯 말하시네.

“어? 근데 당신 손에 있는 그거 여의주 아니에요?”

공양은 그녀의 손에 들고 있는 흰색 구슬을 가리켰다.

“네.”

“어쩐지 소리가 크더라니 용이 떨어진 거였군요. 오랜만에 용이 떨어졌네.”

“용이 자주 떨어져요?”

용이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생물이었나? 예전에 자주 볼 수 없었던 건 여기로 다 떨어져 버려서일까?

“그건 아니에요. 많아 봤자 십여 차례에서 이십 차례 정도밖에 안 됐을 거예요.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죠.”

그게 많지 않은 거라고? 엄청난 자연재해 같은데.

“혼돈의 바람은 자연의 영향도 받지 않고, 때와 시간에도 제한받지 않아요. 때문에 항상 그렇게 이상한 물건들이 떨어져 내려오죠.”

용은 신족 아닌가. 어쩌다가 이상한 물건으로 전락한 거지?

“잠깐. 때와 시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요? 멸영진 안의 시간이 착란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들이 생각하기엔 잠깐이겠지만 사실 낭떠러지로 떨어진 건 지금보다 천 년, 만 년 전인 거예요.”

하루건너 한 명 꼴로 연이어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시공에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용도 사실은 천 년, 만 년 전에 떨어져 내려온 것인가.

그때 공양이 이상하다는 듯 그녀의 손에 있는 구슬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 여의주는 뭔가 이상하네요. 예전에 초록색, 금색, 파란색, 빨간색 여의주는 보았어도 흰색은 처음 봐요.”

“맘에 들어요? 그럼 줄게요!”

“저한테 이렇게 그냥 줘도 되는 거예요?”

“이 계곡은 들어올 수만 있고, 나갈 수는 없다면서요? 저는 영근도 없는데 그걸 어디에 쓰겠어요.”

“동생, 너무 고마워요. 이 공양이 당신의 친구가 되어줄게요.”

공양은 큰 소리로 웃더니 구슬을 받고는 그녀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제가 뭐 좀 보여 드리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