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189)

“입 닥쳐! 나도 내 방법대로 네 신분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마수는 예로부터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 데 능하다고 했어. 네가 태사조님이나 장문 사형을 어떻게 속였는지는 몰라도, 어렵게 마수를 놓아준 만큼 이 기회를 그냥 놓쳐 버릴 순 없지!”

젠장! 봉인이 파괴된 게 아니라 풀어준 거였어? 그렇게까지 해야 돼? 나를 죽이려고 자기 문파를 위험에 빠뜨리다니!

그는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낭떠러지 아래를 보더니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 여기는 절마애(絶魔崖)라는 곳이야, 듣자 하니 여기에 오래된 멸영진(滅靈陳)이 있어 아무리 수행이 높은 고수라도 떨어지면 뼈가 부서져 가루가 된다더라고. 오늘은 당신이 맛볼 차례야.”

“이봐요, 이봐요. 소년, 말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왜? 내가 당신에게 복수하는 것이 잘못이라도 된다는 건가?”

“마존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였다고 했죠? 그래서 저를 죽여서 복수하려고 한 거고요. 근데 저는 무슨 잘못이에요? 만약 저를 죽이면 소년이랑 마존이 다를 게 뭔데요?”

“남매지간에 서로의 잘못을 책임져주고, 보상해주는 것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도리이지.”

“도리 같은 소리 하네!”

시하도 화가 나서 소리치더니 그동안 차원 이동을 하면서 당해 왔던 모든 설움을 쏟아 냈다.

“뭐가 남매지간의 책임이고 보상인데! 까놓고 말해서 모두 용기가 없어서 핑계를 대는 거잖아요. 마존을 찾기도 어렵고, 또 그를 이길 능력도 없으니까. 그래서 이 수행 능력도 하나 없는 나를 갖고 그러는 거잖아요. 죽음이 두려워서! 그래 놓고선 도리니 뭐니 그럴싸한 변명이나 늘어놓다니. 도리가 울다가 웃겠네! 국민을 위해 위험인물을 제거한다? 모두 당신이 지어 낸 말도 안 되는 명분들이잖아요. 제가 무슨 잘못이에요?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람에게 해를 입힌 적도 없어요. 마존을 복수한다는 명분하에 무고한 사람을 잡아 놓고 죽인다고요? 내가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죽어서도 화가 나겠어!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이렇게 비겁한 행동을 하다니 창피하지도 않아?”

원오는 속마음을 들킨 듯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화를 냈다.

“입 닥쳐! 죽을 때가 가까워지니 궤변을 늘어놓는구나.”

그는 바로 손을 높이 들어 올리더니 마치 뜨거운 감자를 던지기라도 하듯 시하를 놓아 버렸다.

“이 나쁜 자식!”

시하의 몸이 점점 더 빨리 아래로 떨어졌다. 원오의 그 음침하고 흉악하고, 켕긴 듯 불안한 표정도 점점 멀어지더니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귓가에 윙윙 바람 소리가 들렸고 하늘이 점점 더 멀어졌다.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거지? 이렇게 죽는 거야? 이제 고작 이 세계의 문자를 배웠는데! 써먹을 기회는 줘야 하잖아. 차원 이동을 하면 낭떠러지 같은 데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착한 사람은 일생이 평안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녀는 한 번도 남에게 해를 입힌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길을 지나가는 노인들을 만나면 항상 부축해주었다. 게다가 자연재해 구제라든지 헌혈, 자선 등 이 모든 활동에 언제나 앞장서서 도왔다. 고양이 아가리에 먹힐 뻔한 그 소녀도 구했었지. 이게 모두 생전의 공적이었거늘! 잠깐만, 왜 생전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지? 난 죽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이제 백 가지도 넘는 일들을 되뇐 듯한데, 왜 아직도 바닥에 닿지 않는 거야? 낭떠러지가 그렇게 깊은 건가. 설마 몸이 가루가 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라도 주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너무 길잖아.

하지만 귓가에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는 여전했다. 그 무시무시한 소리가 아직 들리는 걸 보면 내려가고 있는 중인 것이 분명했다. 이러다가 갑자기 퍽! 하고 바닥에 떨어져 부서질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앞으로 다가올 통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 분이 지나자 손을 폈다.

십 분이 지나자 몸의 긴장을 풀었다.

두 시간이 지났을 땐, 잠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긴장감은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차원 이동을 하면서 떨어지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 이것도 적응된 모양이었다.

얼마나 잤는지 일어나 보니 주위가 칠흑같이 어둡고 귓가에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가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공중을 보니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는 걸 보니 날씨가 무척 좋아 보였다.

시하는 이제 위기감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서 몸에 달려 있던 식량 주머니에서 무 하나를 꺼내어 한입 베어 물었다. 주머니는 호구 오라버니가 특별히 만들어준 것이었다. 영기가 없어도 식량 주머니는 사용할 수 있었는데, 주머니는 공간이 매우 넓었다. 예전에 굶었던 그 후유증 때문인지 그녀는 틈만 나면 주머니에 먹을 것을 집어넣었다.

무를 먹으면서 그녀는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이 상황은 대체 언제쯤 종료되는 거지? 통쾌하게 이제 그만 끝낼 순 없는 건가?

주변이 모두 깜깜하고 하늘만 파란색이어서인지 유난히 아름답게 보였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노래 한 소절이 들려왔다.

“망망한 하늘 끝은 나의 사랑, 끝없이 펼쳐진 청산 자락에 꽃이 피우…….”

응, 맞아 바로 이 노래야, 내 휴대전화 벨소리도 이건데.

잠깐만,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있잖아!

시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더니 식량 주머니를 열어 반년 전,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전화를 꺼냈다. ‘발신자 미확인 수신’이라는 표시가 떠 있어 순간 긴장이 되었다. 뭔가 중대한 일이 곧 벌어질 듯한 예감이 들어 잠깐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지직 소리가 들리더니 작게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 오지 마, 없어, 절대 오지, 나는.”

“뭐라고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지직 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바로 끊어져 버렸다. 시하는 꺼져 버린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면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자칭 시스템이라고 하는 그 녀석이 해제된 후 그녀는 더 이상 휴대전화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는 시스템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반년이란 세월이 흘러 배터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화 건 사람은 누굴까? 어떻게 여기까지 전화를 걸 수 있었지? 분명 휴대전화에 서비스 불가 지역이라고 뜨는데 통화가 된다고? 그 알 수 없는 말들은 무슨 의미일까? 어디를 가면 안 된다는 거지? 가긴 어딜 간다는 건데?

전화 속 조급한 목소리는 그녀에게 뭔가 알려주려고 하는 듯했다.

시하는 한참 생각하다가 다시 휴대전화 화면을 밝혔다. 그리고 발신자 미확인 수신 번호를 다시 눌러 보았다. 하지만 바로 휴대전화에서 다음과 같은 안내음이 들려왔다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다른 번호를 눌러 보았지만 서비스 불가 지역이라는 안내 문구만 떴다. 역시 통화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분명 휴대전화에 있는 듯했다. 화면을 눌러 자세히 보니 제일 마지막 화면에 뭔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이 있었다. 금수지를 전달할 때처럼 애플리케이션 하나가 화면에 나타나 있었다. 안에 있는 빨간색 글씨가 ‘차원 이동’이 아니라 ‘신선’이라는 것만 달랐다.

시하는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시스템이 해제된 게 아니었어? 이번엔 또 뭐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바로 눌러 보자 ‘신선’ 글자가 밝게 빛나더니 지도 하나가 나타났다. 지도의 우측 끝에 ‘모현선부(暮玄仙府)’라는 말이 쓰여 있었고, 아랫부분에는 ‘미션 진행: 0/1’이 쓰여 있었다. 시하는 화가 나서 전원을 꺼 버렸다.

시하는 차원 이동 8개월 후에야 자신에게 미션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신용을 비추어 보면 또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러나 두 시간 후 시하는 이 모든 것이 기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여기는 아예 나갈 수가 없는 곳이었다. 미션을 받느냐 안 받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도 기어 올라가 볼까 생각해 봤지만 이 낭떠러지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그냥 떨어지기로 했다. 귓가에 바람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런 상황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되다가 두 번째 날 아침에야 조금 변화가 생겼다. 하늘에서 웬 노인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온몸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가슴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곧 숨이 끊어질 듯해 시하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봐요, 이봐요, 괜찮아요?”

그 모습이 너무 처참해 마치 해부실에 놓인 시체 한 구를 보는 듯했다. 시하는 돕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노인이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간신히 머리를 움직이더니 말했다.

“여기서도 목숨이 붙어 있는 사, 생각도 못…….”

“우선 말을 하지 마세요. 상처가 너무 심각해요.”

시하는 우선 지혈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힘껏 자신의 옷에서 천 조각을 찢어 냈다. 하지만 상처를 감싸주려고 보니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있었으니까.

“혹시 영단(靈丹) 묘약 같은 건 없으세요?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릴 수 있죠?”

“필요 없다.”

노인은 또 한 번 피를 토하더니 깊게 숨을 쉬고는 말했다.

“이 노인네는 이미 틀렸어. 당신을 만났으니 그래도, 하늘이 이 천진종(天辰宗)을 버리지는 않았네.”

그는 갑자기 허리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더니 그녀에게 주었다.

“받게나.”

그녀는 바로 손을 내밀어 피가 묻은 옥패를 받았다.

“나는 천진종의 장문 임사라고 하네. 이건 우리 천진종의 최고의 공법, 하늘이 이 노인에게 당신한테 전달해주도록 한 것이네.”

노인의 목소리가 점점 더 약해져서 곧 숨이 끊어질 듯했다.

“나중에 승계하면 그때, 천진종을 위해 꼭 복수해주게.”

“하지만 전 영근이 없어요!”

“뭐?”

노인이 죽기 전에 잠깐 기운이라도 차린 건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피를 토하더니 머리를 떨구고 숨을 멈춰 버렸다.

“이봐요, 이봐요, 죽으면 안 돼요, 정신 차리세요. 사람 놀라게 하지 말고!”

시하는 노인을 흔들었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리고 몸이 점점 희미한 빛으로 변하더니 일 분도 안 되어 눈앞에서 사라졌다. 바닥에 혈흔조차 한 방울 남기지 않았고, 오직 남아 있는 건 그녀의 손에 들린 옥패뿐이었다.

시하는 순간 멍해져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지? 노인도 누군가에 떠밀려 내려온 건가? 천진종은 어디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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