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갑자기 엄청 불쌍해 보이네. 이 옷이 새 깃털로 만든 거였어? 어쩐지 빨리 마른다 했다. 근데 옷을 돌려주면 다시 알몸이 되어야 하는데? 알몸 달리기 같은 것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시하는 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저기, 당신이 들고 있는 그 옷 저 좀 빌려줄 수 있을까요?”
후지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바닥에 있는 예붕을 주시하며 시하에게 말했다.
“우의를 돌려주려고?”
깃털이 없는 새는 너무 불쌍하잖아?
시하는 의아하다는 듯 물어보았다.
“어, 안 되나요?”
아니야, 누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줄 수 있어. 그가 손을 펴서 한 번 휘두르니 그의 손에 있던 옷이 자동으로 날아와서는 흰색 옷이 자동으로 시하의 몸에 입혀지고, 입고 있던 검은색 옷은 어느새 땅 위에 놓였다.
와, 전자동이잖아.
시하는 옷을 주워 예붕에게 건네주었다.
“자, 돌려줄게!”
“바닥에 그냥 둬. 내가 가져갈 테니.”
예붕은 여전히 무서워하며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쳇! 뭐가 문제야? 시하는 옷을 다시 바닥에 던져 놓았다.
그녀가 멀어지자 그제야 예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반짝 움직이더니 인영처럼 나타나 바닥에 있는 옷을 주워 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시하를 향해 소리쳤다.
“널 죽여 버릴 테다!”
시하의 눈앞에 거대한 검은 인영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온몸이 칠흑같이 검은 거대한 새는 날카로운 발을 펴더니 그녀를 콱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크게 울부짖으며 바로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미 귓가에는 윙윙 바람 소리가 났고, 이미 지면으로부터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날지 못하고 전방에 나타난 거대한 법진에 걸려 튕겨 나갔다. 흰색의 인영이 앞을 가로막자 예붕은 분노하며 날개를 푸드득거렸다.
“후지, 내 우의에 이미 생기가 충족하게 채워져서 더는 나를 가둘 수 없어.”
후지는 눈빛 하나 바꾸지 않고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분노가 폭발하고 있었다.
“누가 너를 가둔다고 했지?”
“뭐라고?”
감히 내 누이를 건드려? 백 년을 기다려 왔거늘 어디 더러운 새 따위가 발을 들이민단 말이냐! 나도 아직 누이의 옷깃밖에 잡지 못했는데!
푸른 불길이 하늘로부터 일더니 예붕의 온몸을 뒤덮었다. 그의 몸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이미 재가 되었다. 예붕이 당황하며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살려줘! 나, 나는 서수(瑞獸, 상서로운 짐승)라고. 나를 죽이면 안 되는…….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사람의 생기를 흡입하지 않을게. 제발 나를 죽이지 말……!”
예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 푸른 불길은 보기에 엄청 거세 보였지만 무엇 때문인지 불길은 시하를 피해 갔다. 그녀는 그저 옷을 돌려준 것뿐이기에 조금 놀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고 생각했다.
후지는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시하를 안고는 차갑게 물었다.
“괜찮아?”
그 더러운 새가 너에게 무슨 짓이라도 했나? 상한 곳은 없고? 얘기해봐, 내가 시체를 찾아서라도 혼내 줄 테니까.
“괜, 괜찮아요!”
숨을 돌리는 시하를 보던 후지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을 있더니 말했다.
“예붕의 우의는 그가 사람의 생기를 흡입하여 만든 것이다. 네가 입고 있었으니 많든 적든 너의 생기도 있었겠지. 그는 봉인된 지 오래되어 생기가 있어 봤자 겨우 모양이나 낼 정도의 힘밖에 없었을 거다.”
예붕은 원래 서수로 성정이 온화하여 사람들에게 상서로움을 주는 영수였다. 때문에 수사들은 그런 영수를 건드렸다가 괜히 화를 당할까 두려워 함부로 해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이미 마수의 길에 들어선 영수였다. 시하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 말은 마수가 고의적으로 내게 옷을 주었다는 건가요?”
“그래.”
역시 돌아가서 시체라도 찾아 혼내 주어야겠군.
보기에는 냉정하고 무서워 보이는데 이렇게 보니 괜찮은 사람이네. 시하는 조금 무서워하다가 감격했다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마워요. 저를 구해주셨네요.”
그녀가 내 어깨를 만졌어. 후지는 시하의 손길에 멍해져서 대꾸하지 않았고, 앞으로 옷을 갈아입지 않기로 했다. 그때 시하가 갑자기 중요한 일 하나를 떠올렸다.
“맞다, 제가 중요한 걸 하나 잊고 있었네요! 당신들 사람 잘못 봤어요. 전 그냥 동명이인일 뿐이지 정말 마존의 누이가 아니에요. 믿으셔야 돼요!”
후지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그녀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마존의 귀여운 누이가 맞는데 뭐가 아니라는 거지?
“내가 믿든 안 믿든 그건 이미 중요하지 않아.”
“무슨 뜻이에요?”
“우선 옥화문을 제일 먼저 통과했고, 네 입으로 스스로 시하라고 밝혔기 때문이지. 이 모든 것이 너의 신분을 증명해주고 있다. 때문에 네가 마존의 누이라는 사실은 이미 기정사실로 인정되어 번복할 수 없게 되었어.”
“제가 다시 설명할게요.”
“이제 마존의 누이에 대한 소문은 이미 온 수선계에 퍼졌을 것이다. 천하 모든 수선자들이 너를 잡으려고 달려들 텐데, 누굴 찾아 해명하려고?”
“그럼 어떡하죠?”
그 말인즉, 시하가 밖을 나서자마자 사람들에게 떡이 되도록 얻어맞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한마디로 시하는 오도 가도 못 하고 갇혀 버린 셈이었다.
“이제 네가 안전하게 기거할 곳은 이 수릉봉뿐이다.”
괜찮아, 마존이 없으면 내가 있지 않느냐.
시하는 순간 울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당신, 그때 저를 구해주려고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였어요?”
사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시하는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묵인하는 걸로 받아들였다.
알고 보니 수감된 게 아니었네. 어쩐지 감옥에 문도 잠가 놓지 않은 게 이상하더라니. 제일 처음 만났을 때 다시는 시하라는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했던 건, 전 국민의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함이었어. 역시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갑자기 작은 감동이 밀려왔다.
“왜 이렇게 저한테 잘해주세요?”
이보다 더 잘해줄 수도 있어. 분명 마존보다 더 잘해줄 수 있을걸?
“마존은 마존이고, 너는 너니까.”
내 말이! 시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고, 동시에 사람들이 참 웃기다고 생각했다. 마존이 한 일을 갖고 왜 그 누이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지? 그녀가 저지른 일도 아니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뜻밖에도 이를 이해해주는 정상적인 사람도 있었다.
후지는 갑자기 손을 내밀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릉봉은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곳이다. 안심하고 여기에 머물러도 된다.”
“잠시 여기에 머무는 건 좋은데,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말해 보아라.”
뭐든 들어줄 테니까.
“감방에 밥 좀 넣어주면 안 될까요? 3일간 고작 무 다섯 뿌리밖에 못 먹었어요.”
그것도 먹은 것보다 설사로 배설한 게 더 많아요!.
“제발 살려주세요. 설마 사람이 이렇게 굶어 죽는 꼴을 보고만 있을 건 아니죠?”
누이가 밥을 먹고 싶다고 하니 그제야 후지는 그녀가 일반인임을 자각했다. 일반인은 밥을 먹어야 하니 큰일이었다. 누가 요리를 할 수 있지? 천 년도 넘게 수행을 하다 보니 일반인이었을 때의 기억은 아주 흐릿하게만 남아 있었다. 그런 기술을 부리긴 했는지조차 이제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제자들이 있으니 문제없었다. 제자 필홍은 자신보다 비교적 늦게 수행 길에 들었으니 분명 기억하고 있으리라. 그리하여 아주 달콤한 잠을 자고 있던 한 제자가 한밤중에 사부의 부름을 받고 차출되었다.
* * *
“사, 사부님!”
필홍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힘껏 눈을 비비더니 손가락으로 얼굴을 꼬집어 보았다.
“여기까지 어쩐 일로 오셨어요?”
그는 급히 몸을 일으켜 침상에서 내려오더니 겉옷을 걸칠 겨를도 없이 바로 사부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예를 갖췄다.
“이렇게 깊은 밤중에 여기까지 오시다니 무슨 분부라도 있으신가요?”
설마 수행 능력을 시험하러 오신 걸까. 결영(結嬰)을 하고 나서부터 스승은 그의 수행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었던 터라 그는 이 방문이 조금은 감격스러웠다.
“너, 요리를 할 수 있겠느냐?”
“네?”
후지가 돌리지 않고 바로 질문하자 이건 무슨 문제인가 싶어 필홍은 잠시 당황했다. 오랫동안 답이 없자 후지가 재촉했다.
“한다는 거냐? 아니면 못 한다는 거냐?”
이 문제 참 어렵네. 만약 대답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오랜만에 질문을 받았는데 잘못 대답했다가 나중에 다시는 물어보지 않으면 어떡하지? 필홍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당연히 할 수 있죠!”
“그럼 됐다.”
후지가 밝은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이자 필홍도 한숨 돌렸다.
“이제부터 누이, 아니 시하의 삼시세끼는 너에게 맡기겠다.”
“네? 시하? 제 삼을 뽑은 그 여자애 말입니까? 사부님, 저더러 그 여자애에게 밥을 해주라고요?”
필홍은 갑자기 머리에 벼락을 맞은 듯해 분명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애와 원한이 아직 풀리지도 않았는데 사부가 자신에게 이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삼시 세끼.”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뭣 때문에? 그 여자애가 삼을 뽑아먹은 건 그렇다 쳐도, 자신은 엄연한 제일 선문으로서 옥화파의 태사조 중 한 명이었다. 세상에 명성이 자자하고 만민이 우러러보고 있는 판에 한낱 계집에게 밥이나 해주게 생겼으니 말도 안 되었다. 그는 맘속 깊이 모욕감을 느꼈다.
“사부님.”
제자에게 이럴 수는 없어요.
“다시 한 번 고려해 보심이…….”
“이미 결정한 일이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 누이 아니, 시하는 일반인이라 우리하고는 다르니 영기가 너무 깊은 식물은 먹이지 말거라.”
“근데 이 수릉봉에 언제부터 일반인이 필요했습니까? 이러다가 내일은 측간도 짓겠네요.”
하필 왜 나일까? 그 녀석은 내 삼도 뽑았는데 걔를 위해 측간까지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니. 밥을 해줘야 하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는데 이제 똥 싸는 것까지 신경 써 줘야 하다니 말이 돼? 이 노인네가 쉽게 굴복할 수는 없지!
“이왕 짓는 김에 주방과 온천, 욕실, 누각, 서재도 다 짓지 그러십니까?”
필홍은 말하다가 갑자기 가슴이 미어졌고 울컥했다.
“사부님,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저를 내치고 싶으신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