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89)

자옥빙삼. 후지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바로 고개를 돌려 시하를 보며 말했다.

“네가 먹었느냐?”

“네. 저는 그게 무인 줄 알았어요. 에취, 후지 선생님. 이틀째 굶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먹은 거라고요. 그리고 사람을 잘못 잡아 오셨어요. 이 기회를 빌려 설명을…….”

“몇 개?”

후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바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시하는 그의 엄숙한 표정에 놀라 두 손을 모두 꺼내 보이며 말했다.

“대략 다섯 개요.”

이 숫자랑 그녀의 형량에 상관이 있는 걸까?

“처음 먹어본 건가?”

“네.”

“불편한 데는 없고?”

“응?”

무슨 뜻이지?

그는 미간을 더 깊이 찌푸리고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자옥빙삼은 경맥을 씻어주는 건데, 너…….”

꼬르륵.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시하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더니 리듬이라도 타는 듯 계속 이어졌다. 갑자기 배가 무거워지더니 온몸이 말할 수 없는 절박감에 휩싸여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배를 부여잡고 허리를 구부렸다. 순간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 이제 왜 후지가 그렇게 물었는지 알 듯했다.

시하는 배가 너무 아파 제대로 설 수도 없어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바로 붙잡았다.

“제일 가까운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

젠장, 노인이 심은 건 자옥빙삼도 무도 아니야. 파두(巴豆, 변비를 해소하는 효능을 갖고 있는 한약재)를 심은 건가?

노인은 고소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차갑게 한마디를 했다.

“우리 수릉봉 제자들이 곡기를 끊은 지가 언젠데, 그렇게 더러운 화장실이 여기에 왜 있겠어? 전체 옥화파를 통틀어 유일하게 화장실을 둔 곳은 새로 들어온 제자들이 머무는 효관봉에나 가야 있을……. 응? 사부님 어디 가시죠?”

그가 아직 말을 마치기도 전에 후지가 시하를 들고 사라졌다. 바로 그 효관봉이 있는 쪽이었다. 노인은 문득 총애를 잃은 듯한 착각이 들었고, 태사조가 다시 돌아와 자신의 편을 들어주긴 할 건지 걱정되었다.

그날 효관봉의 모든 집사 제자들은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평소에 하도 마주치기 어려워 전설 속에만 있는 줄 알았던 태사조 어른이 갑자기 효관봉 후원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측간에서 몇 걸음 안 되는 곳에 마치 송백나무처럼 엄숙하게 서 있었다. 그렇게 발을 붙이고 다섯 시진이나 서 있다가 해가 서산으로 질 때쯤 자리를 떴다.

이 소식은 전체 옥화파로 퍼져 나갔다. 많은 제자들이 잇달아 태사조의 이번 행동을 추측하기 시작했다. 태사조는 한 번도 쉽게 수릉봉을 나온 일이 없었다. 지난번에 나왔던 건 마존을 쫓는 일 때문이었으므로 이번에 나온 것도 분명 뭔가 깊은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라면 태사조가 이렇게 홀로 효관봉에 오 시진이나 머물러 있지 않았을 테니까.

측간 밖 그 땅은 분명 다른 곳과는 달리 아주 특별해서 태사조가 오랫동안 그곳에 서서 하늘의 뜻을 깨우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하여 일파만파 소문을 듣고 많은 제자들이 모여 태사조의 발자취를 따라 그곳에 가서 서 있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효관봉 측간 밖 그 땅은 옥화파의 수행지로 격상되어 하늘의 뜻을 깨우치는 절대 성지가 되어 버렸다. 점점 제자들이 더 끊임없이 밀려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제자들도 태사조처럼 그곳의 특별한 기를 한 번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다섯 시간이나 설사를 하고 완전히 탈진한 상태에 이른 시하는 생각했다. 나 설사하는 거 그만 구경하면 안 될까?

시하는 사부에게 들려서 다시 돌아왔지만, 지난번 고양이처럼 들려왔을 때하고는 달리 이번에는 감동해버렸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방금 몸이 탈진하도록 설사한 사람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측간에서부터 들고 왔으니까. 물론 그녀가 이미 바지를 입고 난 후였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시하는 후지라는 이 사람이 그 노인과는 달리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시비는 걸지 않으니까. 그러나 아깝게도 그 감동은 잠시였다.

그녀는 바로 물가에 던져졌다.

차가운 물을 몇 모금이나 마시니 방금까지만 해도 정점에 다다랐던 감동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사람 살려!”

그녀는 당황하여 끊임없이 손을 흔들며 허우적거렸지만 물가 옆에 서 있던 그 원흉은 이미 몸을 돌리고는 소매를 휘날리며 유유히 사라졌다.

그녀는 손발을 흔들며 스스로 살아남고자 전력을 다해 힘차게 발을 뻗었다. 그리고 일어섰다.

“어?”

알고 보니 물의 깊이는 그녀의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그녀는 방금 전에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들이 후회스러웠다. 게다가 측간에 오랫동안 있던 탓인지 코로 이상한 냄새가 들어오자 망설이지 않고 재빠르게 옷을 벗어 옆으로 던졌다.

씻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연못이었다. 직경은 오륙 미터 정도였고, 옆에는 작은 폭포가 있었다. 폭포 위에서 작은 물줄기가 내려왔지만 물보라도 별로 일지 않아 주위는 아주 조용했다.

물은 맑았지만 해가 곧 질 때라 연못의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물은 확실히 차가웠고,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씻으면 씻을수록 더 추워졌다. 그녀는 몇 번 씻고는 너무 추워 몸을 덜덜 떨었다. 연못 위에는 안개가 떠다니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빠르게 연못 밖으로 나가려고 한 그 순간 발이 미끄러지며 뭔가가 밟히더니 삐걱하고 소리가 났다. 발을 삐끗한 듯했다.

“와.”

물에서도 삐끗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네. 잠깐만, 근데 왜 아프지 않지?

“하하하.”

갑자기 그녀의 등 뒤에서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 봉인을 풀어줘서 정말 고마워.”

시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고개를 돌려 보았다. 물속에서 대략 18~19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온몸에 검은색 장포를 걸친 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은 등 뒤에 흩어져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무슨 모양인지 알아볼 수 없는 검은색 도장이 흉물스럽게 가득 찍혀 있었다.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부릅뜨니 순간 살기가 가득 느껴졌다.

“이왕 나를 풀어주었으니, 너의 그 생기도 나에게 주어라!”

“악!”

시하는 전력을 다해 크게 외치며 돌 하나를 주워 앞을 향해 던졌다. 남자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고작 돌 하나로 나를 대적…….”

콩! 돌멩이는 힘차게 남자의 머리에 부딪히더니 바로 빨간 핏자국을 남겼다.

시하는 돌을 몇 개 더 주워 연속으로 상대를 향해 던졌다. 이 남자는 물속에 숨어 여자가 목욕하는 거나 훔쳐보는 변태가 분명했다.

남자는 그제야 놀라 정신을 차리더니 가볍게 물 밖으로 뛰쳐나와 공격을 피했다. 그러고는 머리 위에 난 핏자국을 만지더니 안색을 굳혔다.

“감히 본존을 건드려? 내가 배로 갚아주마!”

방금 전에는 방심하고 있다가 피하지 못하고 돌멩이에 얻어맞은 거였다고!

그는 가늘게 뜬 눈을 한 번 깜빡하더니 어느덧 연못가 옆에 있는 시하에게로 다가와서는 십여 개의 풍인을 망설임 없이 그녀의 가슴으로 날렸다. 그리고 뻔뻔스럽게 그녀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자, 시하는 순간 화가 치밀어 바로 그의 뺨을 때렸다.

“나쁜 놈, 감히 가슴을 만지려 해?”

남자는 방금까지만 해도 가득했던 영기(靈氣)가 갑자기 전부 사라지는 듯해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 여자는 분명 수행 능력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였는데?

그가 다시 공격하려 하자 시하는 바로 쳐 내더니 주먹으로 그의 몸을 힘껏 후려쳤다.

“감히 내가 목욕하는 걸 훔쳐봐? 오늘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남자는 욱신욱신 통증이 느껴지는 듯해 얼른 머리를 감쌌다.

“잠깐만! 당신 도대체 누구야?”

“내가 누구냐고?”

시하는 주먹을 후후 불더니 더 큰 힘을 실어 날렸다.

“네 엄마다! 오늘 인간이 되게 해주마. 어린놈이 좋은 걸 배워야지, 남 목욕하는 거나 훔쳐보고! 퉤! 비열한 놈, 뻔뻔한 놈, 저질!”

“누가 당신 목욕하는 걸 훔쳐봤다고 그래?”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구먼!

“아직도 오리발을 내밀어? 훔쳐본 게 아니면 물속에 숨어서 물고기라도 양식했냐?”

“누가 숨어? 나는 갇힌……, 아야!”

“미쳤다고 거짓말하면 죄가 없어질 줄 알고? 내가 오늘 너 진짜로 미치게 해주마.”

“내 말은 봉인됐었다고. 아니, 아야! 그만해. 그만 때려!”

“누가 목욕하는 걸 훔쳐보래? 누가 가슴으로 손을 들이밀래? 누가 나쁜 짓을 배우래?”

“난 정말 그런 적 없……, 아야, 잠깐만! 뭐 하려고? 그 돌 내려, 사람 살려!!”

후지는 시하가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연못가로 왔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마존의 여리여리한 누이가 남자 한 명을 땅에 눕혀 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마존은 누이가 이렇게 폭력적이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폭력적인 모습도 너무 귀엽잖아?

“제발 다시 나를 봉인해줘! 이 여자 미쳤어! 내 법술도 안 먹힌다고.”

남자는 갑자기 그를 붙잡더니 돼지머리같이 부은 얼굴로 슬프게 울었다.

“엉엉엉, 너무 무서워. 손이 요괴보다 더 매워. 하마터면 맞아 죽을 뻔했다고. 저 여자가 내 옷도 벗겼어!”

“네놈 옷을 벗기지 않으면 나는 맨몸으로 나오게?”

시하가 눈을 흘기자 남자가 후지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그녀가 입은 변태 녀석의 옷은 자동으로 마르는 특수 기능이 있어 연못을 나오자마자 이미 보송보송해 있었다. 저놈의 것을 빼앗지 않으면 누구의 옷을 빼앗아 입어?

후지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발로 남자를 걷어차면서 말했다.

“꺼져!”

누이를 지켜보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

그런데 그 순간,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이미 사람 꼴이 아닌 남자를 다시 보곤 말했다.

“너는 영수(靈獣) 예붕?”

“맞아.”

“무슨 일로 여기 있는 거냐?”

우리 누이에게 뭐 하려고 했던 거지?

예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이 몸을 당신이 봉인했잖아! 오백 년 전부터 줄곧 여기에 갇혀 있었다고. 설마 잊은 건 아니지?”

후지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잊고 있었다.”

예붕은 가슴에 화살을 맞은 듯했다. 이렇게 모욕적인 말이 있을까? 주인님 말이 맞았다. 수선 중에 좋은 사람이 없다는 말은 틀리지 않구나.

“네 몸에 마수(魔修)의 기를 갖고 있는 걸 보니 네 주인은 분명 마수겠구나. 지금 어디 있지?”

“당신이 죽였잖아!”

당신, 확인 사살이라도 하러 온 거냐?

“아, 잊고 있었다.”

후지는 당황스러웠지만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다시 그 영수를 봉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영수는 뭔가 아쉬운 듯 고개를 돌려 시하를 한 번 바라보았다.

“잠깐만! 나를 가두는 건 좋은데, 우선 내 우의(羽衣, 선녀나 도사가 입는다는 옷으로 새의 깃으로 만든 옷)를 돌려줘.”

시하는 순간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우의? 비옷?”

예붕이 그녀가 입고 있는 검은색 옷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네가 뺏어간 내 옷! 그 옷은 내 깃털로 만든 옷이라구. 네가 돌려주지 않으면 나는 내 깃털을 벗어 놓고 가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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