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89)

시하는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처럼 태사조에게 들려서 어떤 방의 침대 위에 던져졌다.

돌로 만든 침대였다. 시하는 엉덩이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엉덩이를 만질 수 없었다. 눈앞에 아직도 화가 난 그 사람이 차가운 기운을 뿜으며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와 인류 화합, 그리고 우애만이 모두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사회의 중요 요소임을 나누고, 그를 아름다운 사회 실현의 길로 인도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상대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 쉽게 입을 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의 두 눈을 보고 있자니 아주 날카로운 칼날 같은 것이 눈에 꽂히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뒤로 후광 같은 것이 흐릿하게 보이더니, 그게 점점 커지고 커지고 커져서 시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표정을 짓고 있지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눈 깜박하지 않고 계속 노려볼 수 있을까!

그녀마저도 이제 자신이 무슨 극악무도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믿을 수 있을 듯했다.

한참 그가 눈빛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건 아닐지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마침내 움직임을 보였다. 물론 아주 작게 앞으로 발을 내디딘 것이긴 하지만.

일찌감치 가슴이 두근거리던 시하는 일 초 만에 자신을 내려놓았다. 바로 돌침대에 무릎을 꿇고 몸이 땅에 닿도록 엎드리고는 그에게 절하며 필사적으로 소리 높여 외쳤다.

“사부님, 제가 잘못 했어요!”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잘못부터 빌고 보자!

상대는 멈칫하더니 오히려 어리둥절해하며 눈살을 찌푸리고는 안색을 어둡게 했다.

시하의 마음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설마 용서를 비는 태도에 성의가 부족하여 이 보스를 감동시키지 못한 걸까? 다시 한 번 빌어볼까?

하지만 상대는 그녀에게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를 노려보던 그의 몸에서 불빛이 반짝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

이렇게 가 버린 건가?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지? 설마 잡아다 놓고 사람을 위협하는 연습만 한 건가? 이 사람, 미친 거 아니야?

시하는 며칠 동안 그 괴상한 태사조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감금되어 잉여 인간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은 의심할 데가 없었다. 그녀는 탈옥과 같은 일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으므로 그저 언제 누군가 나타나 심판해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설명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자신이 도대체 어떤 일로 인간과 신을 공분하게 하였기에 이렇게 방금까지도 친절했던 사람들이 또 일 초 만에 그녀를 죽이려고 달려드는지 알 수 없었다.

시하는 이제껏 행동이 떳떳하면 남의 시선이 두렵지 않고, 세상에 설명하지 못할 일이 없으며, 풀지 못할 오해가 없는 데다가, 뚫지 못할 벽이 없다고 여겼다.

대체 뭐가 잘못됐는데?

그 태사조가 조금 무섭기는 했어도 그렇게 무자비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 그녀는 그저 안심하고 때를 기다리면 언젠가 이해하게 될 기회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계획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틀 후, 그녀는 그 방을 기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배가 고파 죽을 듯했다. 감방에 콩밥이 없을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악독하기 그지없는 낡아 빠진 사회 같으니라고! 여긴 인권도 없냐!

잠시 후, 그녀는 이 방의 문은 애초에 잠겨 있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살짝 밀어 보니 바로 문이 열렸다. 순간 시하는 죄수로서의 존엄마저도 짓밟힌 듯했다.

시하는 화를 가라앉혔다. 수선직업기술학원에 대한 평가는 최저점에 달했다. 차분하게 간수를 찾아가 인권을 논하고 싶었지만, 방 밖에는 넓은 초원 외에는 반나절을 돌아다녀도 사람 인영 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배만 더 고파졌다. 여기서 이렇게 굶어 죽는 건 아닌지 생각하고 있을 때, 앞에 무성하게 자란 채소밭이 보였다. 채소밭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채들이 싱싱하게 자라 있었는데, 침을 삼키며 들어가 보니 무도 있었다.

시하가 크게 몇 번이나 주인을 불러 보았지만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배가 고파 주인의 허락은 묻지도 않은 채 잡히는 대로 무 몇 개를 뽑아 먹기 시작했다. 무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두께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무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연이어 무 다섯 개를 먹고 나니 배에서 더는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았다.

손안에 남은 무 두 개는 버리기 아까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누군가와 마주치기를 고대하며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반나절을 걷고 나서야 눈앞에 희미하게 흰 인영이 보였다. 그녀는 너무 기뻐 바로 그쪽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순간 깜짝 놀랐다.

“당신이었어요?”

“원오!”

이 사람은 지난번 옥패를 건네주었던 그 소년 아냐?

“당신이었어요? 여기서 만나리라고 생각도 못 했…….”

원오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두 손을 휘저으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더니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발을 헛디디고 넘어지더니 허둥지둥 일어나 바로 검을 부려 날아가 버렸다.

“왜 도망가는 거지?”

시하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얼굴을 어루만졌다. 내가 그렇게 무섭나.

“그를 탓할 것도 없지.”

뒤에서 노련함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와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등 뒤에 노인 한 명이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막 결단(結丹)했으니 원자배 제자 중에 제일 어린 제자일 게야. 그러니 당연히 감히 수릉봉에 오래 머무를 수 없지.”

시하는 노인의 옆으로 건너가 노인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노인이 웃는 모습은 마치 KFC 앞의 인자한 할아버지 같았다.

“예전엔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지.”

무슨 뜻이지? 그녀가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자 노인이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꼬마 아가씨, 혹시 마존(魔尊)이라고 들어봤나?”

“마존? 그게 뭐예요? 먹을 수 있는 건가요?”

노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쏘아보더니 말했다.

“당연히 아니지, 마존은 마수의 왕이야. 백 년 전에 마존이 세상에 나와 천하를 어지럽히고 모든 수선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지. 그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짓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거든. 사람들은 그 잔혹함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산을 폐쇄하고 문파의 출입을 봉하였지만 그렇게 하고도 많은 수사들이 그에게 당했어. 만약 그때 나의 사부, 후지 어른신이 산에서 나와 그의 악행을 막지 않았다면 오늘 수선계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을 테지.”

“설마 마존이 바로 이 근처에 있다는 거예요?”

시하가 깜짝 놀라 묻자 노인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허세를 부리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는 거야, 뭐야. 이게 그 흔히 말하던 고대 사람들의 전통적인 특색이라는 건가?

“조급해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봐라.”

시하가 입술을 삐죽이자 노인이 이어서 얘기했다.

“그 마존은 비록 수련이 내 사부님에 미치진 못했지만 음험하고 간교하여 인간성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거든. 그래서 항상 비열한 방법을 사용했지. 내 사부님이 수차례 공격하여 쫒아갔지만 몇 번이나 도망갔어. 하지만 누구나 꼭 한두 가지 약점이 있기 마련인데 제 아무리 마존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지. 그의 약점은 바로…….”

그는 말을 잠깐 멈추더니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는 온 얼굴로 ‘어서 물어봐 줘! 어서!’ 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기꺼이 이해해주기로 했다.

“약점이 뭔데요?”

“전해 듣기로는 마존에게 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누이를 몹시 아껴 어떤 사람도 그녀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는군. 당시 욱명파의 한 제자가 그녀에 대한 농담 몇 마디를 했는데, 그날 마존이 바로 욱명파를 전멸하고 욱명파와 가깝게 지내던 기산파, 연지파까지 공격했어. 제자들 대부분이 죽거나 상처를 입었지. 지산파의 장문이었던 여자도 그에게 잡혀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어.”

“헉.”

보아하니 이 마존은 완전히 동생 바보인 모양이네.

“그 후에는요?”

“그 일이 있고 난 후, 모든 수선계는 마존이 보배처럼 아끼는 동생이 바로 그의 약점이란 걸 알게 됐어. 이걸로 복수를 노리는 수사들도 있었고, 위협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마존이 그 누이를 하도 깊숙이 숨겨서 누구도 마존의 동생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지. 마존이 사라지기 전까지 수선계는 그 누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 그저 그가 매일 입에 달고 살던 누이의 이름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

시하는 이야기를 듣더니 혹시나 싶어 물었다.

“혹시 그 이름이……‘시하’예요?”

“맞아, 바로 그 이름이야.”

어쩐지 궁전에 있던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듣자마자 두말 않고 죽이려 든다 했더니. 나와 마존의 누이와 이름이 같아서 그런 거였잖아?

“마존이 사라지고 백 년이 되어 여러 파들에서는 수선계에 화근이 하나 줄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틀 전 그 시하라고 하는 마녀가 우리 옥화파까지 들어왔다고 하더군.”

노인은 분개하며 말을 이었다.

“다행히 바로 잡혀서 지금은 여기 수릉봉에 갇혀 있지. 그러니 옥화파 제자들이 감히 이 봉에 머무르지 못하는 거야.”

“당신들이 사람을 잘못 잡은 건 아닐까요?”

난 억울하다고요! 확실히 오라버니가 한 명 있기야 했지만 그녀가 차원 이동을 할 당시 그 자식은 야채를 썰다가 손을 다쳐 집에 누워 동정이나 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그를 대신해 고양이 밥을 사 올 일도 없었다.

“그 여자가 자기 입으로 시하라고 인정했는데 어떻게 잘못 잡아.”

“그렇지만 세상에 같은 이름과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과연 시하라는 이름이 하나만 있을까요?”

“그렇지만 마존의 동생 이름이 시하라는 걸 온 세상이 아는데, 아무리 눈이 먼 부모라도 누가 자기 자식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주겠어?”

너무 맞는 말이어서 그녀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노인은 갑자기 말투를 바꾸더니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시 말해 내 사부님이 확인했어. 그 어르신의 수행 실력에 사람을 잘못 볼 리 없다고. 그분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야!”

“그 사부님의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

시하는 울고 싶었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시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부님은 당연히 옥화파의 태사조 후지시지. 그 마녀를 잡아온 분이 바로 그분이야.”

사람을 잡아다 놓고 위협하는 연습을 하던 그 미친 사람?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시하는 그 사람에게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부님은 어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으셔. 나조차도 쉽게 만날 수가 없지.”

하지만 그가 나타난다고 해도, 어떻게 설명을 해도 그녀가 마존의 누이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겠지? 시하는 갑자기 온 세상이 잿빛으로 변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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