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89)

원조는 난처한 마음에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아, 오늘 날씨 참 좋네.’라는 소리만 중얼거리며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그 와중에 시하는 꼬마 아가씨라고 한 번만 더 불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원조가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됐소. 두 분 이제 그만 싸우시오. 누구를 사부로 모시든 아가씨는 우리 옥화파 문하의 사람이오. 우선 아가씨의 영근을 시험한 다음 아가씨 스스로 파를 선택하게 하면 어떨까 하오만?”

시끄럽게 싸우던 두 사람은 그제야 조용해지더니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둘 다 그 결정에 동의하는 듯했다.

원조가 그제야 숨을 돌리고 시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꼬마 아가씨.”

“네!”

원조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손을 펴서 흔들었다. 그러자 순간 손안에서 수정 모양의 공이 나타나더니 시하 앞으로 다가와 떴다.

시하는 손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공 아래 쪽으로 휘휘 손을 저어 보았다. 공은 정말 공중에 떠 있는 듯했다. 위에 달아 놓은 실이나, 아랫부분에 유리 받침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걸 세트로 사려면 얼마나 하지?

“꼬마 아가씨, 손을 공 위로 올려 보시오. 공 위에 나타나는 색이 바로 당신의 영근 속성입니다.”

원조는 친절하게 가르쳐주었지만 그녀가 그래도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다시 한번 설명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할 테니까.”

시하는 소매를 걷고 공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원계와 원하는 물론 그 장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수십 쌍의 눈을 반짝이며 공을 지켜보았다. 일분일초라도 놓칠세라 숨죽여 공에 변화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천 년에 나올까 말까 한 이 인재가 도대체 어떤 영근을 가졌으려나.

그런데 십 초가 지나고, 삼십 초가 지나고, 일각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수정구는 색깔은커녕 깨끗하고 투명하기만 하여 먼지 한 점 보이지 않았다.

궁전 안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해서 누군가 희미하게 말해도 소리가 다 들렸다.

“영, 영근이 없네.”

원계가 앞으로 몇 걸음 다가서서 그 공을 살펴보더니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원조가 휙 시하 앞으로 다가서더니 예의를 차릴 겨를도 없이 그녀의 손이 마치 도장이라도 되는 양 가져다가 그 수정구 위에 여러 번 반복해서 올려놓았다.

여전히 수정구 내부는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다른 공으로 바꿔 시도해 보았지만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원조는 그녀의 손을 놓더니 벼락 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시하를 바라보았다. 곧 울기라도 할 듯했다.

“어, 어떻게 영근이 없는 거지?”

왜 이러는 거지? 시하는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돌리고는 궁전 안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전부 죽상을 하고 있기에 그녀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그러세요? 영근이 없으면 심각한 거예요?”

심각할 뿐이겠는가! 원조는 울고 싶었다. 영근이 없으면 기를 끌어 체내에 들일 수 없고 기를 체내에 들일 수 없으면 수련도 할 수 없다. 수련을 할 수 없으면 그녀의 소질, 심성이 좋다고 해도 쓸모가 없었다. 이건 마치 어떤 사람이 재산을 다 털어 아름다운 측실을 하나 지었는데 짓고 나서 생각해봤더니 본인은 소변을 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것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순간 모든 사람들이 시하를 향해 위로의 눈빛을 보냈다. 제일 처음 문심계를 통과한 천재가 영근이 없어 수련을 할 수 없는 재목이란 걸 누가 알았을까. 이건 정말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보통 수선계로 들어오거나 선문을 찾으려면 반드시 선연(仙緣, 도를 닦고 신선이 될 인연)이 있어야 하고, 영근은 바로 그 선연 중에 하나다. 일반적으로 옥화파에 도착한 사람들 중에 영근이 없는 사람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때문에 제일 처음으로 산에 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녀에게 영근이 없으리라고는 아무도 의심할 수 없었다.

일등으로 입문했는데 영근이 없는 일은 수선계 역사상 한 번도 없던 일 아닌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가 역사상 유일한 사람이었다.

원조는 한바탕 하늘의 장난에 놀아난 기분이 들어 다시 한 번 시하를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아깝고, 보면 볼수록 불쌍했다.

어휴,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제치고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소질, 심성, 품격 모든 면에서 다른 이들을 능가했는데, 결국 운명을 이기지 못했구나. 이제 수선계 길에 가로막혀 죽게 되다니 불쌍해서 어떡하누!

주위의 분위기가 갈수록 이상하자 그녀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기,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원조는 깊이 한숨을 쉬며 잠깐 머뭇거리더니 그제야 적당한 말을 찾아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아, 꼬마 아가씨, 이건 하늘의 뜻이오. 당신 몸에 영근이 없으니 아마도 수선을 할 수 없을 듯하오.”

시하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원조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화가 나지 않소?”

“안 나는데요?”

기껏해야 입시 시험에 불합격하여 떨어진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차피 수선계에 올 생각도 없었으므로 그녀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얼마나 착한 아이인가, 이렇게 큰 충격을 받고도 마음에 원한도 없다니, 심성은 이렇게 좋은데 왜 영근이 없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울고 싶은데 어떡하지?

원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하는 갑자기 중요한 일이 떠오른 듯 말했다.

“맞다! 얘기하다 보니 생각났는데요. 아저씨, 한 가지 여쭤 봐도 될까요?”

“어서 말해보시오.”

불쌍한 꼬마 아가씨, 뭐든 물어봐. 다 들어줄 테니까.

“시공을 뚫는 법술이 있어요? 이 세계에서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법술이요.”

원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축지법으로 허공을 넘나드는 기술을 말하는 거요?”

“정말 있어요?”

시하는 드디어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됐다.

“하지만 이 기술에 대해 나도 듣기만 하고 한 번도 보지는 못했소. 아마도 화신기(化神期) 이상의 수사(修士)가 되어야만 가능할 거요.”

원조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자 시하가 물었다.

“그러면 누가 이 법술을 사용할 수 있죠?”

“아, 나도 모르오.”

“아…….”

원조의 대답에 시하가 순간 실망하더니, 바로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여러분께 폐를 끼쳤네요. 안녕히 계세요!”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미련도 없이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돌아서서 문 입구로 걸어갔다. 그녀의 자질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인지 원조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가 참지 못하고 다시 시하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꼬마 아가씨, 수선은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선문에 남지 못하는 건 아니오. 대신 문밖에만 있어야 하긴 하지만 옥화파가 영기가 넉넉하니 당신에게 나누어줄 수 있소.”

이미 문 입구까지 다다른 시하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저는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보아하니 선문은 아주 친절한 곳이구나.

원조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싶다면 그럼 가시오. 우리 제자가 데려다줄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맞다. 꼬마 아가씨, 이름이 뭡니까?”

“저는 시하라고 해요.”

“어, 당신은…….”

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름이 뭐라고 했소?”

“시하요.”

궁전 안은 다시 쥐죽은 듯 조용해졌고 수십 쌍의 눈들이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원래는 조금 음침하던 대궁전이 일순간에 다시 뜨거운 열기로 끓어올랐다.

시하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어 가슴이 덜덜 떨렸다. 착각일까? 궁전 안에 갑자기 살기가 느껴졌다.

“시하다, 저 여자를 잡아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친절하던 원조가 갑자기 돌변하더니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무슨 중요한 모임이라도 시작한 듯 자리에 있던 수십 명이 일제히 일어서더니 동시에 결인(結印, 손가락을 구부리거나 펴서 인印을 맺는 행위)하기 시작했다. 딸랑딸랑 소리가 들리더니 궁전 내에 수십 개의 광선이 비쳤다. 순식간에 공중에 각양각색의 셀 수 없는 모양의 법기와 법보들이 나타났고 각각 무서운 빛을 내고 있었다. 빨간색, 흰색, 녹색, 노란색. 없는 색이 없을 정도였다.

정신없는 와중에 이제 곧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시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눈앞에는 각종 병기들이 그녀를 겨누고 있었으므로.

뭐 때문이지?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 누가 설명 좀 해줘!

“절대 도망가게 해서는 안 돼.”

원조가 다시 한 번 소리치며 손을 흔들어 명령을 내리니 공중에 빼곡한 무기들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이건 무슨 상황인 거야?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바뀌지?

아쉽게도 그녀는 항의할 여유조차 없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하늘을 채운 살기 가득한 병기가 날아오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 병기들에 얻어맞으면 고슴도치가 되어 있겠지.

눈앞에 무기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하얀 섬광이 문 입구로부터 들어오더니, 온 궁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날아오던 수많은 병기들이 마치 정지 버튼을 누른 듯 그녀로부터 불과 몇 미터 앞에 일제히 멈춰 섰다.

그 병기들에서 여전히 섬뜩한 살의가 느껴졌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시하는 연이어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깊이 심호흡을 하였다.

원조가 놀라서 외쳤다.

“태사조(太師祖) 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시하는 그제야 그녀 앞에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온몸에 흰옷을 입고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그 모습이 어딘가 많이 익숙했다. 흰옷을 입은 사람은 원조의 말에는 답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시하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그 수림에서 고양이를 구해준 그 허세 가득한 태사조가 아닌가? 그가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원조는 급히 앞으로 몇 걸음 나서며 말했다.

“태사조님, 이 사람은 반드시 제거해야만 합니다.”

그 흰옷의 사람은 여전히 답 없이 눈도 한 번 깜박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시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하는 점점 한기를 느꼈고 주위에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했다. 차가운 공기는 그 사람의 몸에서부터 나오는 듯했고, 눈빛은 보면 볼수록 더 무서웠다.

이 사람도 나를 죽이려는 걸까? 지금 도망가도 늦지 않았을까?

시하가 가슴이 두근거려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태사조가 몸을 돌리더니 시하를 번쩍 들었다.

“이자는 내가 데려가겠다.”

그렇게 말 한 마디만 남겨 놓고 태사조는 시하와 함께 사라졌다.

궁전 안에는 법술이 풀려 쿵쾅쿵쾅 땅으로 떨어진 법기(法器)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있던 사람들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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