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89)

“그러니까 이 세계에 진정한 신선은 없다는 거네요?”

“신선? 신선은 당연히 선산에 있죠. 이런 곳에 왜 있겠어요.”

닭털남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수선자들의 능력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해요. 특히 수련 고수들은 산을 던져 바다로 옮기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면 신선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수련 고수?”

수련 고수라면 집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그때 닭털남이 갑자기 흥분하면서 말했다.

“듣자 하니 옥화파에는 두 분의 태사조가 계신다고 해요. 수련의 깊이가 매우 깊어 백 년 전에 마존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을 때 그중에 한 분이 마존을 물리치셨대요.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백 년 동안 아무도 수선계를 건드리지 못했고요.”

태사조?

시하는 갑자기 그 흉악한 표정의 사부를 떠올렸다.

어떻게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지?

* * *

옥화파가 가까이에 있을 줄 알았건만, 고대 교통 기술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일까. 배의 속도를 높인다 해도 아직 선진 기술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들은 꼬박 한 달에 걸쳐 바다를 항해했다. 뱃멀미도 하지 않았던 그녀지만 목적지도 도착하기 전에 걸을 때마다 다리가 다 후들거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시하는 첫날 생선 요리를 먹었을 때만 해도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이 시대에 생선 요리는 분명 귀한 음식이었을 텐데 그녀는 지금 공짜로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이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제 아무리 공짜라고 해도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 한 가지 음식을 한 달 내내 먹어야 했으니까. 게다가 매일 간을 하지 않은 고기볶음 요리가 나왔다. 이렇게 한 달을 지내니 배춧잎 한 잎만 먹어도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주방장을 찾아 민원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배 구석구석을 뒤져도 주방처럼 생긴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선미에서 매일 식사를 배달하는 소년이 한창 바다 물속에서 고기를 찔러 낚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소년은 생선을 한 마리씩 손에 들고 배를 가르고 그 속에 소금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금방 화로에서 구워 내는 먹음직한 생선들을 보면서 시하는 며칠 더 참아 보자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불만이 많아, 매일 시끄럽게 흰 비단에 파란 문양이 수놓인 옷을 입은 사람을 찾아가 따지곤 했지만 그녀는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선인들에게 맞서다가 괜히 자신마저 그 구운 생선 요리처럼 되어 버릴까 두려웠으니까.

배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한 달 반 남짓 가니 맑고 화창한 봄이 왔다.

별안간 배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와서 보세요, 저기 보이는 것이 뭐죠?”

시하도 참지 못하고 사람들을 따라 뱃머리 쪽으로 걸어갔다. 원래는 넓고 광활하던 바다에 수면이 갑자기 뭐에 싹둑 잘린 것처럼 괴상한 단층이 나타났다. 단층 아래는 칠흑같이 깜깜하여 바닥이 보이지 않았고 공중에는 하얀 안개가 자욱했다. 귓가에 윙윙 바람 소리가 들려 자세히 살펴보니 흰 안개 속에서 풍인(風刃. 바람을 날카롭게 만들어 칼날처럼 만든 것)들이 빽빽하게 춤을 추듯 복잡하게 뒤엉켜 움직이고 있었다.

시하는 몸이 덜덜 떨렸다. 전에 그 흑살이 날린 풍인도 이것만큼 크지는 않았다. 만약 풍인이 아래로 떨어지면 부스러기 하나 남지 않을 듯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

“조용, 그만 떠들어요!”

그녀를 배로 안내했던 그 제자가 걸어 나오더니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다 도착했는데 떠들긴 왜 떠들어요? 호들갑 떨기는.”

그는 옥패를 하나 꺼내 들더니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다. 옥패는 점점 밝게 빛나더니 하늘로 떠올라 축구공 모양의 큰 광채 덩어리가 되어 배 주변을 비추었다. 뱃머리가 잠깐 흔들리더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다 위를 항해하던 배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흰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하늘에 어지럽게 떠다니던 풍인이 저절로 물러서며 길 하나를 만들어 배가 지나가도록 비켜섰다.

배가 그 풍인 구역을 지나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레이저 같은 광선이 빼곡하게 비치는 가운데 공중에는 작고 큰 산봉우리들이 떠다녔고 봉우리 위에는 누각이 구름처럼 있었다. 두루미 소리도 들리고 가끔 어떤 사람이 검을 부려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시하는 갑자기 선협 오락 게임 속에 있는 듯한 혹은 고급 주택가에 있는 착각이 들었다.

배는 제일 큰 봉우리 아래 멈췄다. 고개를 들어 보니 멀리 웅장한 궁전도 희미하게 보였다. 흰 비단에 파란 문양이 수놓인 옷을 입은 제자들 몇 명이 사람들을 배 아래로 안내하며 산 아래 통로로 들어갔다.

거기에 똑같은 모양의 옷을 입은 제자가 두 명 서 있었다.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였다.

“백 선배, 모 선배.”

그녀를 배 위로 안내하던 소년이 몇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두 사람에게 예를 갖췄다.

“이림, 오느라 수고 많았어.”

성이 백 씨인 사형이 웃으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뒤에 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이 오늘 들어온 제자들이야?”

소년은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네. 모두 250명이에요.”

“신선계와 인연이 닿은 제자들이 참 많네.”

“오늘이 첫날이니, 그럴 수밖에요.”

그 옆에 모씨 성의 여자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아직 이틀 남았네요? 내일도 이렇게 많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듣고 보니 그러네.”

백씨 성의 남자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이림을 향해 말했다.

“너는 이제 인원을 모두 정했어?”

“어제 이미 결정했어요.”

이림이 대답했다.

백 씨 성의 선배가 손을 흔들었다.

“그럼 어서 발표해.”

“네!”

이림은 소매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더니 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7, 9, 15, 17, 18…….”

그가 한참 숫자를 읽다가 멈추더니 다시 사람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상. 이 번호를 가진 사람들은 이만 돌아가세요.”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현장이 떠들썩해졌다. 이림이 말한 번호패를 든 사람들이 거의 절반에 달했으니 어떤 사람들은 굴복하지 못하고 따졌다.

“무슨 근거로?”

“맞아요, 우린 어렵게 여기까지 왔어요. 무슨 이유로 우리는 들어가지 못하는 거죠?”

“그러게요. 모두 같이 왔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남고 우리는 돌아가야 하죠?”

“선인님들, 무슨 착오가 있는 건 아닌가요?”

사람들은 점점 더 흥분해서 반드시 따지고야 말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러다가 곧 큰 싸움이 터질 것만 같아 시하는 조용히 한 걸음 물러섰다.

“시끄러워 죽겠네!”

이림이 미간을 찌푸리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손을 들어 결 하나를 만드니 그들이 서 있는 초원에 갑자기 거대한 원형의 법진이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쉬지 않고 떠들던 사람들은 흰 섬광이 반짝함과 동시에 바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현장은 순간 조용해지고 광선은 뒤로 물러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제 절반의 사람들만 남아 있었다.

시하는 전에 본 적이 있어서 법진이 눈에 많이 익었다. 보아하니 이것 또한 하나의 전송 수단인 듯한데 그것보다 훨씬 고급스러웠다. 이번에는 집단으로 한꺼번에 보내 버리기까지 했으니.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집중해야 해요.”

그 모 씨 성의 사부가 앞으로 한 걸음 나오면서 말했다. 이림에 비하면 그녀는 한결 온화하고 다정했다.

“충분한 인내심이 없이 매사에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면 멀리 갈 수 없어요. 우리 옥화파의 제자들은 엄격한 평가를 통해 선출하고 있죠. 여러분이 여기 남아 있지만 이제 제일 첫 관문을 통과한 것뿐이에요.”

제1관문. 시하는 멍해졌다. 그럼 그 배 위에서의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저 입학 시험에 불과했던 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방금 전에 사라진 사람들은 배 위에 있을 때, 배를 지키는 제자들과 자주 싸웠거나 혹은 자주 불만을 표출했었다. 어쩐지 분명히 전송기라는 편리한 수단이 있는데 고생스럽게 배를 타고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가 있었다. 알고 보니 이 모든 과정이 심사에 포함되어 있었다니. 다행히도 그녀는 탈락을 면하게 되었다.

모 씨 성의 사부가 말을 마치자 백 씨 성의 사부가 나와서 한바탕 설교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이 옥화파의 발전사에 관한 것 혹은 기타 공식적인 발언들이었다. 듣다가 조금 졸리던 찰나 그가 드디어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본파의 문심계(問心階)라고 합니다.”

그는 몸을 돌려 뒤에 있는 긴 돌계단을 가리켰다.

“제일 마지막 입문 심사를 걸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죠. 여러분이 이 계단만 올라가면 옥화파에 입문하게 되어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조용하던 사람들이 그제야 활기를 찾고, 의욕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심계에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들이 워낙 많아서, 여러분이 정상까지 오르기에는 매우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손에 든 목패를 쪼개면 제자들이 나타나 여러분을 위험에서 구해줄 겁니다.”

모 씨 성의 사부가 말을 마치자 그제야 사람들이 서로 몇 마디씩 주고받기 시작했다.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족히 백 명이 넘어 보였다. 그들이 벌떼같이 그 돌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시하는 고개를 들어 돌계단을 한 번 쳐다보았다. 저 멀리 거대한 아치형의 돌문도 보였다. 위에는 옥화문이라는 금색의 큰 글씨가 보였는데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녀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아하니 건물이 기껏해야 10층 정도인데 뭐가 위험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쉽게 미끄러지는 걸까?

시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무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에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한 번에 10층까지 오르기에는 확실히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제한 시간이 있지는 않아서 시하는 서두르지 않고 봄나들이를 나온 듯 풍경도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막 10층까지 올라오니 몇몇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계단 위에서 땀을 흠뻑 흘리며 헉헉거리고 있었다. 시하는 사람들 몸에 있는 근육을 보면서 조용히 머리를 흔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이란! 체력이 이렇게 부실해서야. 그 근육들은 어떻게 만든 거야?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계단 위에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심지어 한 계단에 여덟 명이나 서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옆에 있는 숲길로 돌아서 걸어갔다. 원래는 그녀가 제일 늦게 출발했는데 어쩌다 보니 제일 앞에서 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닭털남 육인을 만났다. 그는 숨이 차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눈빛도 흐릿했다. 마치 3일 내내 밤을 새워서 게임을 한 모습 같았다.

“제가 좀 도와줄까요?”

자기도 모르게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육인이 이를 악물며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자신을 깔보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괜히 마음 썼네.

시하는 흥미를 잃고 돌아서서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흥, 남자들의 쓸데없는 자존심이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자존심이 강한들 몸이 그렇게 허약하니 닭털만큼도 소용없건만! 아, 맞다. 그 사람이 닭털남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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