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찾기가 시급합니다
전직자. 게이트 안에 들어가 괴물을 상대한다고 하면 헌터라고도 부르는 존재들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직관들은 전직하러 온 사람들을 평가했다.
“좋은 재능이군.”
인생 핀 거다.
“나쁘지는 않지.”
말 그대로 나쁘지 않다.
“정말 전직할 건가? 다시 생각해 보지 그래.”
목숨 걸고 전직자가 되고 싶은 거 아니면 딴 길 찾아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고 반년 뒤, 지옥도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치던 때.
나 또한 살고 싶어 발버둥치던 이들 중 하나였다. 평화롭던 내 인생을 망친 괴물들의 목을 베고 싶었고, 어디에 숨을지 오늘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전전긍긍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겨우겨우 숨어 있던 무너진 학교 건물을 빠져나와 전직관을 찾아갔다. 전직관이 가장 가까이에 있던 곳은 병원이었다. 그곳의 치유 계열 전직관은 나를 보며 말했다.
“잘못 온 것 같구나, 아이야.”
다정해서 더 비참한 거절 의사였다. 도서관의 마법 계열 전직관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네 길은 아닌 듯하구나.”
“…그럼 내 길 좀 알려 주세요.”
전직관은 내 말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마지막. 최초로 발견된 전직관이기도 한 신체 계열 전직관이 말했다.
“돌아가.”
시X. 거절하기 기록 단축이 목적이라도 되는 듯한 성의 없는 답변이었다.
“왜요!”
계속된 거부는 날 사납게 만들기 충분했다. 전직관의 옆에 놓여 있던 검을 들어 그의 목 아래에 검을 들이밀었다.
“재능이 부족해요?”
“아니. 재능은 넘치는군.”
“그럼 왜 안 되는데!”
다급한 나와 달리 태연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약 올랐다. 내가 하는 짓거리가 위협도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짓을 하는 건 그만큼 내 인내심이 얼마 안 남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전직을 못 하면 죽는다. 그 생각이 나를 야금야금 좀 먹었다.
그런 내가 나름 불쌍했는지, 아니면 귀찮았는지, 전직 여부를 묻고 재능과 가능성만을 말한다는 전직관이 나에게 충고를 해 줬다.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였지만.
“너는…. 너희 인간들 기준으로 말하면 장르부터 안 맞는단다.”
“…그게 뭔 개소리야!”
결국 나는 억울함에 엉엉 울며 도장을 나왔다. 전직관들이 있는 장소는 안전했지만 애초에 해당 계열로 전직하지 못하면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장소였다.
나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가지런히 놓여 있던 검을 전부 발로 차 쓰러트렸다. 그런 나를 노려보는 전직관의 시선은 무시했다.
그런 사소한 눈빛을 신경 쓸 정도로 내겐 여유가 없었다. 한번 나올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름의 내 안전 구역에서 나왔는데 결과가 이딴 거라니. 하루 종일 돌아다닌 시간이 아까웠다.
온종일 세 전직관에게 다 까인 나의 재능 없음을 원망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재능 있다면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이유라고 내밀던 전직관을 원망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장르부터가 안 맞는다는 게 대체 뭔 소리야. 나만 딴 세상에서 온 것도 아니고.
세상도 다른 사람들도 현판 찍고 있는데 왜 나 혼자만 장르가 다르냐고. 내 인생은 현판도 아니고 로판도 아니고 그냥 판타지도 아니었다. 무(無)장르였다. 그래서 전직을 못 시켜 주겠다고 한다.
국적 찾기도 아니고, 장르부터 찾아야 하는 내 처지에 한탄했다. 대체 장르는 어디 가서 찾아야 하는 걸까.
“…….”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닌데.
나도 남들처럼 전직하고 괴물을 죽이고 부모님을 찾고 싶었다. 아니, 찾지 못해도 좋았다. 하다못해 생사라도 알고 싶었다. 전직자도 아닌 내가 부모님을 찾을 수는 있을지, 찾을 수 있더라도 그때까지 살아 있기는 할지 따위를 생각하다 보니 눈물이 났다.
너무 크게 울어서일까. 아니면 내게 ‘너의 장르는 생존물!’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던 괴물의 배려일까.
내 안전 구역이자, 숨어 살던 학교까지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괴물을 만나고야 말았다. 늘 없다, 없다, 입에 달고 살게 된 운은 이참에 도망가자 마음먹었는지 그나마 가끔 보이던 전직자들조차 보이지를 않았다.
괴물의 빨간 눈이 도르륵 굴러가는 커다란 구슬처럼 내게로 향했다. 그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새까만 외피에 빨간 눈. 거기에 내뱉는 숨결은 보랏빛인 괴물과 눈이 마주치자 내가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내 장르를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몸보다 커다란 발톱이 허공을 갈랐다. 가까이, 더 가까이. 내 몸을 가르려고 더 가까이 오는 발톱은 나를 베는 게 아니라 아예 뭉개 버릴 기세였다.
그러나 사람은 살면서 한 번 이상의 기적 같은 일을 겪는다. 나에게 있어 첫 번째 기적은 사람답게 사는 것조차 힘들지만, 일단 지옥도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두 번째 기적은 내가 그 발톱을 피했다는 것이다.
마치 귀 바로 옆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스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귀가 얼얼했다.
“헉, 윽…. 헉….”
숨넘어가는 소리가 내 목에서 꾸역꾸역 올라왔다. 손바닥이 따가웠다. 무릎이 아팠다.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시야 한가득 들어오는 괴물 너머, 하늘이라고 부를 수 없는 까만 것이 너무 까맸다. 아득한 어둠이었다.
땅에 박힌 제 발톱을 빼려 몸부림치는 괴물에게서 도망쳤다. 뛰는 동안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얼마큼 뛰었지? 제대로 뛰고 있는 것 맞나? 내 바로 뒤에 있는 거 아냐? 내가 도망치고 있긴 한 건가?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동시에 뒤돌고 싶지 않았다. 공포와 호기심과 걱정과 분노, 억울함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무너진 건물은 어딜 보든 똑같이 회색빛이었고, 무너진 하늘 위 태양이라 생각했던 불덩이는 인간의 편이 아니었다. 어둡지만 밝고, 밝지만 어두운 믿을 수 없는 세상이었다. 나는 그냥 달렸다.
입 안에서 단내가 나고 기침 때문에 숨을 못 쉴 때까지 달렸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런 건 별로 상관없는 문제였다. 어차피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이 세상 자체가 내겐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운이 이렇게까지 없을 수가 있을까. 드문드문 보이던 전직자들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찾을수록 속에서 끓어오른 생각은 더 짙어졌다.
전직만 했어도.
남들처럼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쓰고 내 몸 하나 치료할 능력만 있었어도.
눈물이 났다. 억울하고 무서웠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현실은 너무 잔인했다. 내가 울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화나게 했다. 우는 것밖에 못 한다는 현실의 비참함에 목이 메는 것 같았다.
뛰고 뛰다 넘어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기어서라도 그 괴물에게서 멀어지고자 했다. 무릎에는 피멍이 들었고 손톱 끝이 깨졌다. 피 맺힌 부은 손가락의 끝이 아릿한 아픔을 주었다. 입에서는 흐느낌이 끝없이 나왔다.
내 뒤에 괴물이 있었다면 진작에 죽었을 무력한 움직임이었다. 괴물이 내 뒤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미 없는 행위를 관둘 수가 없었다.
더 기어 다닐 힘조차 없을 때. 차라리 편하게 죽는 것을 바랄 때쯤.
그걸 발견했다.
하늘 조각. 무너진 하늘의 새파란 조각. 저 기묘한 어둠과 우리의 사이를 지키던 결계.
나는 뭐에 홀린 것처럼 하늘 조각에 가까이 다가갔다. 비교적 친절했던 전직자에게서 하늘 조각에서 괴물이 나오는 걸 봤다는 말을 들은 게 이틀 전임에도 그렇게 행동했다.
“…예쁘다.”
내 입에서 상황과 맞지 않는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정말, 가까이에서 본 하늘 조각은 너무 예뻤다.
하늘 조각. 그 이름의 의미처럼 조각은 하늘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색. 하얀 뭉게구름.
하지만 내가 발견한 조각은 조금 달랐다. 내 키만 한 조각은 조각난 하늘 조각 중 큰 편은 아니었다. 다만, 그 안에 담긴 구름의 색깔이 오색 빛깔이었다.
평화로운 솜사탕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색. 이 지옥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색.
나는 조각에 손을 가져다 댔다. 딱딱하거나 아예 만져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달리 손이 조각을 통과했다. 아니, 이걸 통과했다고 말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각 안에 구름이 만져졌다.
“괴물이… 조각에서 나왔다고 했지…….”
나왔다는 건,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거 아닐까?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안에 구름에서 기묘한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평화로운 구름 너머로 고개를 들면 색감 하나 없는 회색빛 도시가 나를 맞이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지쳤고, 전직도 못 한 상태로 살아남을 자신도 없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똑같았다.
남은 힘을 쥐어짜 조각 안에 몸을 던졌다. 차라리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물안개로 둘러싸인 호수였다. 물가의 커다란 수양버들. 무성한 잎 아래 앉아 있는 검은 도포의 사내.
고상한 수묵화에 색을 입히고 생명을 불어넣어 재탄생한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그 풍경 속에서 유일하게 색을 입다 만 존재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복사꽃의 즙을 머금은 듯 묘하게 발그스름한 눈매가 휘는 걸 보고 깨달았다. 눈이 마주쳤구나. 나는 아직 죽지 않았구나.
남자가 말했다.
“안녕.”
나는 그 인사를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본 것은 웬 가면 쓴 여자였다.
눈구멍 네 개, 커다란 코. 해죽 웃는 입을 표현한 나무 가면. 눈뜨자마자 보면 심장에 해로운 비주얼이었다. 나는 당연히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뭐야!”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 손이 딱딱한 가면을 뒤로 밀었다. 그런 내 행동에 순순히 뒤로 물러난 여자가 쓴 가면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가면 속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사라졌다.
“…….”
나는 손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지금 뭘 본 걸까.
으앙. 귀신 봤나 봐, 하고 넘기기엔 불안감으로 손이 떨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헛것을 봤다기엔 아직도 손바닥에 나무의 감촉이 선명했다. 귀신을 만졌다는 찝찝함에 덮고 있던 이불에 손을 문질렀다. 심란한 기분이었다.
부드러운 촉감 덕분인지 놀란 속이 천천히 진정되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마치 사극에서나 보던 귀한 댁 아가씨 방 같은 곳이었다. 심지어 내가 덮고 있는 것은 색이 고운 비단 이불이고, 입고 있는 건 누가, 언제 갈아입힌 건지 몰라도 이불처럼 고운 색의 한복이었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경복궁에 놀러 간 이후로 입어 본 적 없었던 복장이었다. 부드러운 한복을 매만지다 이불을 걷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몸이 가벼웠다. 피로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처가….”
혹시나 해서 치마를 걷어 보니 무릎이 멀쩡했다. 이불에 문지른 손바닥도 멀쩡했다. 심지어 언제나 붓고 아렸던 손가락의 끝조차 멀쩡했다.
여기저기 더듬어 봤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상처 자체가 난 적 없다는 듯 흉 하나 없는 몸이 내 몸임에도 낯설게 느껴졌다.
확인을 끝내고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으려니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남자가 생각났다. 검은 도포를 입은 예스러운 남자. 고상하고 단정한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방의 분위기는 그 남자를 닮아 있었다.
한참 방 안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아까 그 귀신이었다. 귀신은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내 앞으로 왔다. 그런 귀신의 손에는 소반이 들려 있었다.
머뭇거리던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 결국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귀신이세요?”
“네.”
아, 그렇구나.
너무 당당하게 말해 할 말이 없었다. 본인이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 할 수 있을까. 괴물도 있는데 귀신도 있을 수 있지, 뭐.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고민하다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쉽게 생각해야 내가 편했다.
원래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 귀신이 나를 보면서 또 귀신처럼 웃었다. 싫다 정말.
“죽을 준비해 왔답니다. 식기 전에 드셔요.”
귀신이 내 앞으로 소반을 내려놓았다. 윤기 나는 작은 나무 식탁 위에는 새하얀 백자 그릇이 올려져 있었다. 그릇 안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뜻한 죽이 담겨 있었다. 낯설지는 않으나 너무 오랜만에 느껴 보는 따듯함이었다.
나는 귀신이 손에 수저를 쥐여 주자마자 허겁지겁 죽을 먹었다. 후후 불어서 먹을 여유는 없었다. 너무 급하게 먹느라 뜨거운 죽에 데었는지 혀가 아려 왔다.
전직자가 나타났다고 살기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없을 때보다 낫긴 하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괴물은 많았다.
음식이 먹고 싶으면 가진 자에게서 빼앗아야 했다. 더 안전한 곳에서 머물고 싶으면 그 자리의 주인을 죽여야 했다. 가끔가다 성격 꼬인 전직자를 만나면 괴물과 마주친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몇 달 만에 먹는 따뜻한 죽은 하늘이 무너지기 전, 아플 때 엄마가 만들어 주던 죽과 비슷했다. 간 하나 없는 밍밍한 흰쌀죽이었는데도 너무 맛있었다.
정신없이 죽을 먹다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따뜻한 죽이 들어간 속이 편해졌을 때쯤, 나는 기이한 사실을 눈치챘다. 두 그릇 정도의 양을 먹었음에도 그릇 안의 죽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이게 왜 안 줄지. 그냥 음식이 아니었나. 먹으면 원래 세계로 못 돌아가는 그런 음식인가.
겁먹고 이제라도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하나 고민되었다. 숟가락질이 점점 느려지자 귀신이 다시 귀신 웃음소리를 냈다. 칠판 긁는 것 같은 거북한 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런 나를 보며 귀신이 말했다.
“왕을 만나러 가시겠나요? 그분이 당신을 만나길 원합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정신을 잃기 전에 봤던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물안개가 낀 어스름한 호수 옆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 앉은 남자. 그의 앞으로 안내된 나는 멍하니 호수 너머를 바라보는 남자 앞에 얌전히 앉았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무성한 버들잎이 소음을 냈다. 스스스스 하는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울음소리 같았다. 나오기 전에 귀신이 머리를 땋아 줬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자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일어나면 무릎까지 닿을 것 같은 기다랗고 새까만 머리카락. 왼쪽 눈 아래의 눈물점. 고상하면서도 한 떨기 복사꽃처럼 보는 사람의 기분을 묘하게 만드는 얼굴. 선비의 옷을 입은 한량 같기도 하고, 한량인 척하는 선비님 같기도 했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기다란 머리카락 사이로 햇살을 반사하는 금귀고리가 보였다. 자세히 보고자 했지만, 그것은 금세 까만 머리 사이로 몸을 감추었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남자는 저가 불렀음에도 내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먼저 말을 걸까 했지만 밥을 줬다고 경계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뻘쭘한 일이었다.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화려한 노리개의 끝자락을 쭉쭉 잡아당겼다. 이것도 귀신이 달아 준 거였다. 꾸며 줄 때 참 신나 보이더라.
버드나무 울게 만드는 커다란 바람이 세 번은 불고, 슬슬 긴장보다 지겨움의 감정이 더 커질 때쯤 돼서야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하얗고 커다란 손이 내게 내밀어졌다. 남자의 손안에는 약과가 들려 있었다.
“먹겠니, 아이야.”
한참 만에 한 말이 ‘약과 먹을래?’라니.
어이없음에 멈칫했던 나는 결국 남자가 주는 약과를 받았다. 입에 무니 달달함과 약과 특유의 식감이 느껴졌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 보는 달콤함이었다. 약과가 이빨에 끈끈하게 달라붙었다.
“너를 처음 봤을 때.”
낮은 목소리가 사각사각거리는 이파리의 소음을 비집고 내 귀를 스쳤다. 남자가 드디어 대화할 기색이라 먹는 것을 멈췄다. 하지만 남자는 고개를 젓고는 도로 입을 다물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약과를 입에 물었더니 남자는 그게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특유의 흐드러진 얇은 복사꽃 꽃잎 같은 미소를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를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지 무어야. 어린것이 어디서 그리 다쳤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남자의 말에 뒤늦게 그 당시 내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죽다 살아난 꼴이 보기 좋았을 리가 없었다.
입 안에 한가득 베어 문 약과를 삼키고 남자에게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내가 해야 했던 말이었다. 내 말에 남자는 웃었다. 정말 재밌어서 웃는다기보단 어린아이 재롱에 ‘아이, 잘한다’ 하고 웃어 주는 느낌이었다. 자애로운 어르신을 보는 기분이었다.
궁금한 것이 많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걸 물어봐도 되는지부터가 알 수 없었다.
당신은 누군가요. 여긴 어디죠. 하늘 조각 안인가요. 그럼 당신도 괴물이에요?
차마 묻지 못할 말들이 입 안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고민하는 사이 약과는 내 입 속으로 사라졌다.
약간 끈적한 손을 매만지고 있으니 남자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새로운 약과를 쥐여 주는 대신 그는 내 손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쳐다보았다.
“상처는 다 나았구나.”
한참 만에 남자가 말했다. 느긋하고 느릿느릿했다. 그 목소리를 듣는 나까지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손을 뺄까, 말까 고민했다. 가까이 붙은 남자에게선 비 오는 날 숲 같은 냄새가 났다. 풀 냄새? 숲 냄새? 뭐라 표현하기 힘든 청량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눈앞의 이 존재가 사람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생각을 확신하게 된 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때문이었다.
“나는 도⑇#⑆의 ▇. ㅱ#랑이다.”
“네?”
“어차피 다시 말한다 한들 너는 듣지 못하겠지.”
남자는 손에 약과를 다시 쥐여 준 뒤에야 손을 놓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깨지는 음질처럼 제대로 들리지 않은 그의 음성에 당황하고 있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약과보다 노이즈가 낀 목소리가 더 당황스러웠다. 그런 나를 놀리듯 가벼운 어조로 남자는 말했다.
“그러니 너 편한 대로 부르거라.”
내 네이밍 센스를 알지도 못하면서 저런 말을 하다니.
“…그럼 랑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 알아들은 단어 중 하나를 골라 말했다. 도랑도랑으로 하려 했지만, 남자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려무나.”
남자는 눈을 휘며 웃었다.
웃는 얼굴을 멀거니 보고 있으려니 난데없이 바람이 불었다. 좀 전의 바람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한 바람이었다.
호수 위 물안개가 흐트러지고 반짝거리는 호수에서 물결이 일었다. 버들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남자, 아니, 랑과 나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버들잎은 없었다.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랑이 내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약과가 들려 있지도, 내 손을 먼저 잡지도 않았다. 그저 내밀었을 뿐이었다. 마치 내가 그의 손을 잡기 바란다는 듯이.
그는 내 눈을 보며 느릿느릿 말했다.
“내 길을 걷는다면 넌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을 것이야. 겁에 질릴 필요도 바닥을 길 필요도 없이 너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겠지.”
뜬금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깨달음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건 본능일 수도 있고 내 간절함일 수도 있었다. 세 번이나 까인 뒤 갖게 되는 절박함일지도 몰랐다.
한번 죽음까지 각오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질척한 감정.
내가 기어들어 온 이곳은 하늘 조각이었다. 괴물들이 드나들었다는 하늘 조각. 전직관은 괴물과 같은 곳에서 왔을 거라고 떠들던 사람들의 말이 생각났다.
그럼 하늘 조각 안에서 만난 이 남자는 누구일까. 둘 중 하나다. 괴물이거나. 아니면….
침을 꼴깍 삼켰다.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뜬 나를 보며 오히려 웃음기를 지웠다.
“내 길을 걷겠느냐?”
장르가 다르다는 신체 계열 전직관의 말이 생각났다. 내게 마치 전직관처럼 물어보는 눈앞의 남자가 망막에 가득 찼다. 다른 전직관과는 다른 복식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갑옷도 아니고 로브도 아니었다. 예스러운 도포와 두루마기였다.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재능 문제가 아니라 장르 문제였나.
정말로 이런 직관적인 의미라고 한다면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누군가가 봤다면 너무 성급한 거 아니냐고 나무랄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왜 랑이 다른 이와 다른지, 왜 바깥이 아닌 하늘 조각 안에 있는지.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한 점이 많은 것을 알면서도 나는 망설일 수 없었다.
망설여서 뭐 하나. 어차피 밖에 다른 전직관들은 전직 안 시켜 준다고 하는데.
어쩌면, 옆에서 누가 말렸다면 더 신중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곳에 그와 나를 제외하고 존재하는 이가 없었다. 성급하게 굴지 않기엔 내 바로 뒤는 절벽이었다.
손이 맞닿고 그가 내 손을 깍지 껴 움켜쥔 순간, 말로만 듣던 시스템 메시지가 내 앞에 나타났다.
[올바른 ⑇직 방시ㄱ이 아닙니다. 전지ㄱ하#습니ㄲㅏ?]
사람 대신 시스템이 나를 말리는 걸까? 누가 봐도 이상하고 수상한 깨진 문구였다. 그러나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네.”
랑이 웃었다.
[전직하셨습니다. 당신의 전직 명은 도⑇#⑆의 ▇.]
[올바른 형태가 아닙니다.]
[시스템 에러.]
[시스템을 재#!? ▇⑇ ⸎ㅱ?⑆!]
[당신의 전직 명은 ‘도⑇#⑆의 ▇’입니다.]
[시스템 에러. 불가능. 재정립에 들어갑니다.]
[에러]
[에러]
[에러]
[⑆ㅱ⸎#?!⸎▇]
[전직 성공]
[당신의 전직 명은―.]
[―‘도깨비 공주’입니다.]
[축하합니다. 최초의 히든 전직. 이제부터 인간들의 막혔던 길이 열립니다. 상위 호환 전직 가능. 히든 전직 가능. 히든 게이트 ‘호랑이의 산’에 갇혀 있던 이호연의 퀘스트가 끝납니다.]
[세계ㄹ 구#ㅅp?!]
내 장르는 동양 현판이었다.
***
전직한 이후 난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맨손으로 건물을 부수는 게 가능했다. 날아다니는 괴물을 짓밟으며 허공을 뛰어다니는 것도 가능했다. 나를 공포 속에서 떨게 했던 괴물들이 세게 쥐면 바스러지는 과자처럼 변했다.
랑이 입혀 준 도포와 어깨에 걸쳐 준 두루마기를 뚫는 괴물은 없었다. 그가 쥐여 준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까만 제등은 인간이 낼 수 없는 힘의 한계 너머를 매일매일 보여 주었다. 쿵쿵, 두들기면 푸른 불이 피어나고 검은 그림자가 세상을 덮었다.
굳이 따지면 나는 마법 계열이었다. 제등은 동양식 마법 지팡이였고. 하지만 나는 등 부분은 매일 떼 놓고 자루 부분을 창처럼 사용했다.
괴물들의 심장을 찔렀다. 편하게 멀리 서서 불을 다루고 그림자를 다루면 됐지만 나는 직접 죽이는 것을 선호했다.
그건 전직하기 전까지 매일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나를 위한 보상이자, 겁에 질려 살아야 했던 내 자존감의 회복을 위한 행위였다.
뚫린 제 심장을 붙잡는 괴물들의 모습을 보며 더는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그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랑이 인정한 뒤 어느 정도 확신이 생긴, 하늘이 무너진 지 1년이 조금 안 될 때였다.
랑을 만날 때 빼고는 들어간 적 없었던 하늘 조각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하늘 조각은 일종의 게이트. 몇몇 히든 전직을 시켜 주는 전직관이 있는 곳으로 이동시켜 주는 하늘 조각이 아닌 다른 조각들 안은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세계와 이어져 있었다.
내가 들어갔던 게이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위험한 괴물을 뱉어 내는 하늘 조각이었다. 들어간 게이트 안에서 나는 그 안의 것들을 모두 죽이고, 불태워 버렸다.
그때 나는 내가 마법 계열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조각 안의 세계가 푸른 불에 뒤덮이는 광경을 본 직후였다.
더 이상 뱉어낼 괴물이 없게 되자 그 조각은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 나는 최초로 하늘 조각의 일부를 다시 하늘로 돌려보낸 거였다. 조각 안으로 들어갔던 나도 예상 못 한 결과물이었다.
당시 한국에 히든 직업으로 전직한 비전투 계열, 그중에서도 정보 전달 쪽으로 특화된 능력을 갖춘 한 전직자가 그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운 좋게 히든 전직한 사람, 상위 호환 전직을 한 사람, 좀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전직자들이 모두 모여 각 나라의 가장 큰 하늘 조각에 들어갔다.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했다.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했고, 결국 모든 나라가 각국의 가장 큰 하늘 조각을 다시 하늘로 돌려보냈다.
지난 1년 동안 하늘을 되돌리기 위해 사람들은 노력했다. 그 결과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흉측한 모습이지만 하늘은 옛 모습과 제법 비슷해졌다.
사람들은 전직자들이 하늘 조각을 돌려보내는 동안 다시 사람답게 살기 위한 준비를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고, 정상적인 삶을 위한 바탕을 만들고, 다시 법을 만들었다. 꼬박 1년이 걸렸지만, 노력은 성공했다.
좋게 말하면 괴물을 상대할 영웅, 망한 세상에선 대항 못 할 무법자인 전직자에 대한 체계가 세워지고 비전직자를 위한 법이 생겼다는 점에서 인류는 성공한 거였다.
물론 그 바탕을 만드는 데는 힘이 필요했다.
운 좋게도 ‘공식’적인 최초 히든 전직자 이호연은 선한 성격이었다. 그는 이런 시스템이 만들어지도록 항상 발 벗고 나섰다. 가끔은 과하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한 나라가 체계를 잡으니 다른 나라에서 따라 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나는 체계화된 시스템을 이용해 2년간 헤어져 있어야 했던 가족을 다시 찾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가족과 재회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늘이 무너지고 난 뒤 2년하고도 반년이 지난 후인 현재.
나는 무너진 대학교가 다시 완공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미뤘던 입학을 했고. 전직자인 것을 숨긴 채 조용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무너진 하늘은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는지 중간중간 조각이 떨어지곤 했다. 그 안엔 괴물이 둥지를 틀고 있었고 어느 시점을 넘도록 방치당하면 괴물을 토해내곤 했다.
하지만 1년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온갖 길드들이 그때마다 알아서 게이트를 공략하고 하늘 조각을 다시 하늘로 돌려보냈다.
물론 전직자인 것을 숨긴 것이지 아예 괴물 사냥 일을 관둔 것은 아니었기에 나도 드문드문 하늘 조각을 돌려보내곤 했다.
거기엔 많은 이유가 있었는데, 일단 스트레스 해소였다. 아무리 그래도 교수님을 팰 수는 없잖아.
두 번째 이유는 돈이었다.
하늘 조각 안, 즉 게이트 안은 다른 세상으로 이어진다. 그 안에 있는 자원은 무너진 세상을 발전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전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세상을 무너트린 것도 발전하게 만든 것도 하늘 조각이라고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자원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전직자, 그중에서도 헌터 일을 하는 일부의 전직자들 뿐이기에 자원이든 완성된 제품이든 당연히 비쌌다. 덕분에 전직자들은 모두 돈 좀 만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 공무원을 제친 장래 희망 1위였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선 고수익 장기 알바였다.
오늘도 평소와 같았다. 나는 리포트를 쓰다가 마우스를 던졌다. 거실에 앉아 TV를 보던 부모님에게 편의점에 다녀온다고 한 뒤 집에서 나왔다.
대부분의 하늘 조각을 돌려보낸 덕분에 하늘은 낮과 밤을 가르는 기능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낮에는 내가 아는 낮의 하늘로, 지금 같은 밤에도 내가 아는 밤을 흉내 냈다.
깜깜한 하늘 아래, 눈에 보이는 사람이 없고, 살금살금 움직인 그림자로도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나는 걷던 것을 멈췄다.
귀한 재료와 생산 계열 히든 전직자 수의 부족으로 한 달에 한 개 간신히 생산된다는 아공간 반지를 손에서 빼냈다. 허공으로 휙 던지자 섬세한 작은 마법진이 내 앞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마법진 안에 손을 집어넣어 매끄러운 검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두루마기를 꺼내 어깨에 걸쳤다. 그러자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더니 류가 그림자 속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류는 새카만 몸체에 집 모양 등이 달린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제등의 이름이었다. 비록 내가 등을 떼 놓고 자루만 쓰지만.
한계점을 넘은 무기는 이름을 갖는다고 언젠가 랑이 말해 준 적이 있었다.
물론 자신이 준 무기는 창이나 휘둘러 패는 지팡이가 아닌 제등이라고도 말했다. 매번 그랬듯 나는 대답만 잘했다.
랑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지팡이는 허공에서 흔드는 것보다 던져서 맞힐 때, 혹은 휘둘러서 때릴 때 더 타격감이 좋았다.
마법진 안에서 가면도 꺼내 썼다.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날 위해 랑이 준 가면이었다.
[깨비 가면
: 도깨비 가면이다. 이름이 귀엽다. 다른 효과는 없다.]
아이템 설명이 보인다면 이런 시스템 창이 내 눈에 보였을 것이다. 정체를 숨기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별 효과는 없었다.
이름이 귀여우면 됐지. 나는 가볍게 생각했다.
검정 추리닝에 흑색 비단 두루마기. 등이 빠지긴 했지만 내 키보다 긴 검은 제등. 꼬리뼈까지 닿는 기다란 너울이 한들거리는 뿔 달린 도깨비 반가면.
지나가다 보면 끄앙, 하고 심장 마비가 올 것 같은 블랙 패션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건 그저 일종의 보험 삼아 쓴 가면이었고,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들킨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자신감 넘치게―.
들켰다.
“…….”
“…….”
이호연한테.
하얀 머리카락이 아이덴티티인 이호연은 남들 서양 판타지 찍을 때 혼자 동양 판타지 찍는 것이 아이덴티티인 나를 당연하지만 바로 알아보았다.
“류….”
나는 이호연한테 달려들어 그의 뒷목을 쳤다. 신체 계열 전직자 중 최강인 이호연은 몸으로 해결하는 마법 계열에 당황한 듯 답지 않게 버벅거리다 결국 기절했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그 드물다는 정신 계열 스킬을 가진 마법 계열 전직자는 익숙하게 몸으로 해결했다. 전직시켜 준 전직관도 전직자 본인도 한탄할 짓이었다.
“X됐네….”
힘법사 놀이는 그만할걸.
한참을 고민한 나는 이호연의 손목에 걸린 커넥터를 켜 문자를 쳤다. 상대는 이호연이 속한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 닉네임(리블):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로 댁네 아이를 기절시켰습니다. 여기 c-58 게이트 근처인데요… 데려가 주세요….
그리고 나는 도망쳤다. 커넥터 만세. 비전투 계열 히든 직업 만세.
집까지 후다닥 달려간 나는 두루마기와 기타 등등을 아공간에 집어넣으면서 생각했다. 아. 히든 게이트로 도망가거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마법보다 몸 쓰는 것이 더 익숙한 마법사의 흔한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