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하루, 이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고, 플리타는 별관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아니, 오히려 본관에서 지낼 때보다 더 적응을 잘했다고 할 수도 있었다.
본관에서는 침실이 아닌 다른 곳을 거의 다니지 않았지만, 별관에서는 불과 일주일 사이에 건물 내부의 모든 곳에 대하여 속속들이 다 알게 되었을 정도로 매일 바쁘게 이곳저곳 탐험하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주치의의 치료와 로제의 정성 어린 간호가 큰 역할을 했다. 생각보다 아이의 상태가 빠르게 좋아지는 중이었던 것이다.
“휴우…….”
플리타는 헝겊으로 만든 인형들을 침대 위에 늘어놓고 놀다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러고는 그중 강아지 인형을 챙겨 들고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아이가 향한 곳은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창가였다. 물론 키가 작은 터라 까치발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끄응.”
끙차. 플리타가 몇 번 낑낑대다가 창틀에 턱을 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햇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따가웠다. 아이가 눈을 찡그린 채 바깥을 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짹짹.
작은 새 한 마리가 창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나뭇가지에 앉았다. 플리타의 연녹색 눈이 동그래졌다. 새는 사람이 무섭지 않은 듯 나뭇가지에 앉아 제 날개를 펼쳐 몸단장을 했다.
“우와아.”
플리타의 손에 들려 있던 강아지 인형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로제가 만들어준 것이라 아이가 무엇보다 소중히 하던 것인데, 지금만큼은 잠시 아이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짹짹.
얼마 안 되는 거리에서 저를 보는 새까만 눈의 작은 새가 그만큼 신기했다.
“자, 잠깐만! 가면, 콜록! 가면 안 돼!”
플리타는 기침을 참으며 후다닥 침대 쪽으로 달려갔다. 로제가 빨래를 하러 가면서 그사이에 먹으라고 놔둔 간식 트레이가 침대 옆 협탁에 놓여 있었다. 아이는 냉큼 쿠키를 두 손에 쥐고 다시 몸을 돌렸다.
“콜록! 콜록! ……와아, 다행이다. 아직 안 갔구나?”
플리타가 기침을 하다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침실 안쪽을 구경하는 작은 새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호기심 많은 새인지 새까만 눈에서는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거, 콜록, 먹어, 새야. 쿠키야. 맛있어. 이거, 나랑 로제가 같이 구운 거다?”
아이는 제가 가져온 쿠키를 모조리 창틀 위에 쏟았다. 유모와 함께 본관 저택에서 지낼 때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플리타는 로제를 통하여 어린아이다운 삶을 경험했고, 그 삶에 익숙해졌다.
장난을 쳐도 되고 말썽을 부려도 되는.
“커서 못 먹어? 잘게 부숴 줄까?”
플리타가 까치발을 한 채 다시금 낑낑대며 제가 쏟아놓은 쿠키를 집어서 쪼개기 시작했다. 작은 새가 잘 먹을 수 있도록. 창틀이 쿠키 부스러기로 가득할 때까지.
짹짹.
아이의 그런 노력을 알아준 것일까. 새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포로롱 날아와 창틀에 앉았다. 플리타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하지만 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플리타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이내 부리로 쿠키를 콕콕 쪼아 먹기 시작했다.
“우와아…… 와아…….”
그 모습에 아이는 그저 감탄만 연이어 했다. 더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제가 준 쿠키를 먹는 작은 새를 보고 감격한 터라 말문이 막혔다.
“아차! 로제가 같이 봤어야 하는 건데.”
플리타는 아쉬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자 새가 쿠키를 먹다 말고 고개를 들더니 갸웃거렸다. ‘왜 그래?’하고 묻는 것처럼.
그러더니 새가 두 날개를 활짝 펴고는 날갯짓을 두어 번 하더니 침실 안으로 날아들었다.
“어? 어어?”
플리타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그런 와중에도 새는 파닥파닥 날개짓을 하며 침실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더니 열어둔 문밖으로 냉큼 나가버렸다.
“으앙! 안 돼, 새야!”
아이가 당황하여 새를 따라 침실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새는 멀리 가지 않고 복도에 내려앉아 계단을 향해 총총 뛰어가고 있었다.
“새야, 같이, 콜록! 같이 가! 어디 가는 건데!”
아이는 잠시 멈춰 서서 기침을 하고는 새를 따라갔다. 새 역시 플리타만큼이나 별관 탐험에 관심이 있는지 복도를 지나 1층 계단으로 향했다. 플리타가 덩달아 계단을 내려왔다. 그러자 새가 힐끗 플리타를 돌아보더니 다시금 날개짓을 했다.
“어?”
플리타의 시선이 새를 따라 움직이다가 이내 흐려졌다. 새가 날아간 곳이 다름 아닌, 1층 현관 근처였기 때문이다. 주치의가 문을 미처 닫지 않고 간 것인지 현관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가려고? 난 안 돼. 나는 못 나가.”
플리타는 새가 날개를 접고 현관문 앞에 내려와 저를 돌아보자 시무룩해져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런 아이의 말을 알 리 없는 새는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총총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히잉.”
그 광경을 부러운 눈으로 보던 아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계단으로 가려고 발을 옮기려는 순간, 그대로 가버린 줄 알았던 새가 지저귀기 시작했다.
짹짹. 짹.
“어어?”
플리타가 고개를 휙 돌렸다. 현관 바로 밖에서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아직 안 갔어?”
아이가 반색하며 후다닥 현관으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현관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았다.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했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꽃 향기도, 풀 냄새도 좋았다.
짹짹.
새가 같이 놀자는 듯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현관 근처를 맴돌며 노래했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플리타가 두 손을 꼭 쥐었다.
“잠깐만 나가면……. 으응, 아무도 없을 때, 바로 현관 앞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될 거야. 나 요새 기침도 많이 안 하잖아. 주치의 선생님도 나더러 많이 좋아졌다고 했어.”
플리타는 새에게 마치 변명하듯 주절거리더니 그대로 일어서서 현관 밖으로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밖에 나오면 안 된다던 아빠의 당부가 잠시 생각났지만, 별관 안에서 저와 재미있게 놀자던 로제의 말이 떠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따스한 햇살과 같이 놀자며 지저귀는 작은 새를 뿌리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현관 밖으로 나간 플리타는 그 이상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 그것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절제였다.
바로 그때였다.
“꺄악!”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에 플리타가 깜짝 놀라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별관 근처를 지나가던 하녀가 아이를 보고는 비명을 지른 것이다.
“어, 어떡해! 공녀님이 밖으로 나왔어! 전염병이라고 했는데!”
사색이 되어 달아나는 하녀를 본 플리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하녀의 비명 소리에 놀란 듯 새가 파다닥거리며 날아오르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이는 저를 피해 도망친 하녀를 보다가 울먹이더니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두 눈을 질끈 감고 1층 홀을 가로질렀다.
“앗!”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한 채 아이는 급히 도망치듯 뛰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우당탕, 소리가 홀에 퍼져 나갔다.
“이게 무슨 소리……. 공녀님!”
1층 구석에 위치한 세탁실에서 빨래를 하던 로제가 날카로운 비명에 이어 둔탁한 소음까지 들리자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온 건 그 직후였다.
그녀는 아이가 홀 한가운데에 넘어져 있는 걸 보고 황급히 달려갔다. 빨래를 하느라 젖어 있던 손을 앞치마에 닦을 새도 없었다.
“공녀님, 괜찮으세요? 넘어지신 거예요? 상처 생겼는지 잠깐만 볼게요.”
로제가 다급히 아이를 붙잡고 물었다. 하지만 플리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괘, 괜찮아. 나 괜찮, 콜록! 콜록!”
아이의 기침 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심상치 않았다. 빨래를 하느라 자리를 비우기 전까지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플리타의 상태를 살피던 로제의 표정이 굳었다.
“공녀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비명 소리가 들렸는데.”
아이의 비명 소리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 나이 먹은 여자의 것이었다. 하지만 본관에서 일하는 하녀의 비명이 이렇게 크게 들릴 리는 없었다.
‘설마…….’
로제는 그제야 별관의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니 무슨 상황이 벌어졌던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아이가 별관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그랬다가 대공 저의 누군가를 만났을 터였다.
플리타와 맞닥뜨린 그 누군가는 기겁하여 비명을 질렀을 테고…….
저를 본 사람의 날 선 반응에 아이가 많이 놀랐으리란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밖에 나가셨던 거예요?”
로제는 가급적 부드러운 어조로 플리타에게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리타가 흠칫 몸을 떨더니 고개를 숙였다.
“……잘못했어, 로제. 그치만 난 그냥 현관 바로 앞에 잠깐 나갔다가 들어오려고.”
새가 같이 놀자고 해서. 새랑 잠깐만 놀려고 했는데. 아이는 로제에게 나름대로 설명하려는지 말을 잇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앙!”
플리타가 서러운 울음을 토해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아프고 무서울 텐데도 씩씩하게, 오히려 더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아이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로제는 그런 아이를 끌어안고는 등을 토닥였다.
물론 아이가 잘못한 건 맞다. 밖에 나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걸 어기고 나갔으니까. 단 한 발을 내디뎠다고 하더라도 잘못은 잘못이었다.
하지만 로제는 플리타를 나무라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본 누군가가 그렇듯 요란하게 비명을 질러댔으니 대공 저에서 뭔가 연락이 올 터였다. 밖으로 나간 아이의 잘못을 나무라고 주의를 주는.
그것만으로도 플리타가 주눅이 들 텐데, 저라도 아이의 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냥 그랬던 건데…….”
야단을 치는 사람은 여럿 있을 테니, 저만큼은 아이의 서러운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함께 그 서러움을 나누고 싶었다.
“잠깐만 있다가 들어오려 하신 건데, 그사이에 누가 공녀님을 보고 놀란 거군요.”
“으응. 하녀가 오다가 나 보고 깜짝 놀라서, 흑, 소리 막 지르고 도망갔어.”
플리타는 로제의 품에 안긴 채 훌쩍이며 대꾸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로제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나, 나쁜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