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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제게로 질문이 돌아오자 당황한 주치의가 눈을 껌뻑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기는 하지요. 이 상황에서는 감염 위험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으니…….”
“또한 제가 공녀님의 전담 하녀잖아요, 전하. 제가 아니면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공녀님도 제가 함께 가면 그나마 마음이 더 안정되시지 않겠는지요.”
“…….”
헤이번은 로제의 말을 부정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한 말에 틀린 점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플리타가 가장 의지하고 마음을 준 사람이 로제이니, 그녀가 함께 들어간다면 아이 역시 마음의 안정을 찾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로제를 다시 쳐다보았다. 창백한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본래 몸이 약하다고도 했다. 그런 이가 아이와 함께 들어갔다가 전염이라도 되면……. 물론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그 증세가 조금 덜할지는 모르지만.
‘게다가 한쪽 팔도 저 지경인데.’
헤이번은 부목을 댄 로제의 팔을 보다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제 딸이 아픈 와중에 이렇듯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게 미친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일단 아이만 생각하자. 이기적인 아비가 되어야 한다.’
그는 속으로 몇 번이나 반복하여 중얼거린 뒤,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좋다. ……플리타를 별관에 격리시키도록 하지. 별관에 들어갈 사람은 플리타와 여기 있는 로제, 두 사람으로 정하고, 그 외에 주치의만이 진료를 위하여 하루에 한 번 별관에 들어가 아이의 상태를 살피도록 하겠다.”
목이 꽉 잠겨 목소리가 잘 나오려 하지 않았다. 헤이번은 한 번 더 머리를 쓸어 넘긴 뒤, 로제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간절할지언정 결코 두려움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 시선에 헤이번이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이었다.
“기한은…… 아이가 완치될 때까지로 하겠다. 지금 바로 사람을 시켜 별관을 청소하고, 준비가 끝나는 대로 들어가도록.”
“예, 전하. 감사합니다.”
로제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제는 아이를 위하여 더욱 강해져야 할 때였다.
* * *
“완치될 때까지 격리한다니 그게 말이 돼요? 치료도 거의 불가능하다면서요. 나중에 시체만 둘 나오는 거 아닌지 모르……. 흐읍.”
하녀들이 수군대며 대화하다가 로제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커다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로제의 모습에 그들이 소름 끼친다는 듯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로제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보았다. 그러자 그 시선이 불편했는지 혹은 그녀의 존재 자체가 떨떠름한 것인지, 눈짓을 주고받던 하녀들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그 모습에 로제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저를 병균 취급하며 멀리하는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건 듣기 힘들었다.
더구나 아이의 죽음을 말한다는 건…….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 누구도 아이가 회복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유모는 본인더러 별관에 들어가라 할까 봐 겁이 나서 냉큼 휴가부터 냈다. 어차피 자신이 플리타와 함께 들어가기로 했는데도 말이다.
‘……반드시, 아이와 함께 돌아올 거야.’
로제는 단단히 다짐하며 다시금 발걸음을 떼었다. 플리타의 방으로 향하는 내내 그 같은 시선과 수군거림을 접해야 했다.
그런 것에 일일이 화를 내고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데에 시간을 낭비할 바에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제 아이에게 가서 함께 있어 주고 싶었다.
똑똑.
로제는 플리타의 침실에 들어가기 전, 노크를 했다. 그리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자 약 냄새가 먼저 코끝에 진동했다. 본래는 아이 특유의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그녀를 맞이했는데…….
로제가 가슴속이 저릿해져 한숨을 내쉬는데, 방 안에 있던 누군가가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준비는 다 됐나?”
다가온 사람은 로제와 비슷한 모습으로 입과 코를 가린 헤이번이었다. 그는 로제가 가져온 가방을 힐끗 보고는 물었다.
“예, 전하. 다 마쳤습니다.”
갈아입을 옷가지와 필요한 물품들, 그리고 복용해야 할 약을 잊지 않고 챙겼다. 플리타를 돌보다가 제 몸에 먼저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니 말이다.
“……로제.”
그 순간, 침대 위에 앉아 있던 플리타가 울먹거리며 로제를 불렀다. 약을 먹어 증세가 한결 나아진 상태라 일어나 앉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이제 별관으로 가야 하니 일어나기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나, 무서운데.”
플리타가 로제를 보자마자 울먹이기 시작했다. 손수건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쪽에서 아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울음을 참고 있을 게 훤히 보였다.
로제는 가방을 내려놓고는 서둘러 침대로 다가가 아이의 곁에 앉았다. 그러자 아이가 냉큼 로제의 품에 안기려다가 멈칫하더니 이내 제 양손을 뒤로 감추고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안 돼.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마.”
“괜찮아요, 공녀님. 우리 같이 별관에 갈 거잖아요.”
“그, 그래도…… 너무 가까이 있으면 안 된다고 그랬어. 나, 콜록, 나한테서 감기 옮는다고. 그래서 이렇게 얼굴도 가리고 있는 거잖아.”
플리타는 제 병이 그저 감기인 줄 알았다. 다섯 살 꼬마에게 던퍼스 병이란 건 생소할 뿐만 아니라 어려웠다. 아프면 감기, 그게 전부였다.
로제는 그런 아이를 가만히 보다가 부목을 대지 않은 멀쩡한 팔을 뻗었다. 그새 살이 빠졌는지 몸집이 작아진 아이가 품 안에 쏙 들어왔다. 그게 너무 안쓰러웠다.
또한 아픈 것만으로도 서러울 텐데, 그런 저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감기’에 걸릴까 봐 눈치를 보는 아이가 애달팠다.
“저는 감기 안 걸려요, 공녀님.”
“그걸 어떻게, 콜록, 믿어?”
증세가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이는 가끔씩 기침을 했다. 로제가 플리타를 가만히 안고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
“음……. 대공 전하께서도 아시는걸요? 그래서 공녀님과 함께 별관에 들어갈 사람으로 저를 선택해 주셨고요.”
“진짜?”
플리타가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돌려 헤이번을 보았다. 헤이번이 한쪽 벽에 기대어 서 있다가 아이의 동그란 눈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로제는 감기에 안 걸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요?”
“응.”
“와아……. 다행이다.”
플리타는 제 아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러고는 한결 마음이 놓인 듯 조금 밝아진 얼굴로 로제를 냉큼 끌어안았다. 열이 내리기는 했지만 미열은 남은 터라 따끈따끈한 아이의 체온이 전달되었다.
“난, 으응, 내가 로제한테…… 감기 옮길까 봐. 그래서, 로제가 나 미워할까 봐 걱정했어.”
플리타가 그제야 안심하고는 제 불안했던 속내를 조금 꺼내 놓았다. 아이가 느꼈을 불안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온 것처럼 얇은 손수건이 파르르 떨렸다. 로제는 그런 아이를 토닥였다.
별관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에 아이는 많이 두려워했다. 몸이 아픈 것 자체보다도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겁을 먹은 듯했다.
게다가 이렇듯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 채 지내라고 하니, 그 생소한 모습도 아이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으리라.
“제가 왜 공녀님을 미워해요.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우신데.”
“……나 때문에 아프게 되면.”
“설령 그런 일이 생겨도 절대 미워하지 않아요.”
로제는 플리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플리타의 동그란 눈에 눈물이 맺혔다가 또르르 굴러떨어졌다. 아이는 손바닥으로 눈가를 눌러 닦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는 공녀님을 꼭 낫게 해 드릴 거예요.”
“나, 아픈 거 나을 수 있어? ……주치의가 고개 절레절레하는 거 봤는데.”
아이는 많은 걸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걸 눈치챘다. 저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플리타.”
헤이번이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똑바로 하고는 다시 아이에게 다가갔다. 플리타가 로제의 품에 안겨 있다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나을 거다.”
“…….”
“꼭 나아서, 다시 돌아올 거야. 로제랑 손잡고, 같이.”
헤이번의 말에 플리타가 눈만 깜빡이고 있다가 느릿느릿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뭔가를 생각하는지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아이 나름대로 다부진 각오를 하는 것을 지켜보던 헤이번이 로제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이만 가지.”
“예, 전하.”
로제가 그의 말에 대답하고는 일어나 플리타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헤이번이 먼저 아이를 안아 들었다.
“어! 아빠! 나 안으면…….”
“아빠도 감기 안 걸려.”
헤이번은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플리타가 머뭇거리다가 그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로제는 그들을 잠시 보다가 가방을 들었다. 헤이번이 방을 나서려다가 그녀를 돌아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내가 들까?”
“아, 아닙니다, 전하! 괜찮습니다.”
로제는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대공에게 제 가방을 들라 하는 하녀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헤이번은 한 팔로 플리타를 안은 채 미간을 좁히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팔이…….”
“이쪽 팔은 멀쩡한걸요.”
로제는 혹시 빼앗길까 싶어 경계하며 가방을 뒤로 감추었다. 그 모습에 헤이번이 피식 웃고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세 사람이 방을 나섰다.
헤이번이 플리타를 안았고, 로제가 가방을 든 채 그 뒤를 따랐다. 복도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그리고 1층 홀을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의 감염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그 적막에 아이가 다시 두려움을 느낀 건지 훌쩍이기 시작했다. 로제가 그런 아이를 향해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서운 거 아니에요, 공녀님. 그냥, 우리 둘이 잠시 소풍 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소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