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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을 꺾는 악마여-106화 (106/108)

106화.

“헤레이스! 헤레이스! 헤레이스…….”

이즈카엘은 헤레이스의 파리한 입술 위에 제 입술을 뭉개다 그녀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대고 오열했다. 몇 번을 확인해도 아내의 심장은 뛰지 않았다. 무릎을 꿇은 사내가 제 가슴을 움켜쥔 채 꺽꺽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아니야. 아니야. 헤레이스는…… 아니야.’

아내는 죽지 않았다. 그저…… 잠들었을 뿐이다. 이즈카엘은 스스로에게 수없이 속삭이며 눈을 감았다.

하나 진실을 거부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귀에 들려야 할 소리가, 손에 느껴져야 할 온기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눈만 감으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이즈카엘이 한참 동안 아내의 심장 부근에 귀를 대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캄캄한 호수가 그의 눈에 비쳤다. 이즈카엘의 눈이 검은 호수 물만큼이나 검게 변해 갔다. 그가 아내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다 자신으로 인해 흐트러진 그녀를 반듯하게 눕히고, 찢었던 가슴께 천 위로 제 젖은 옷가지를 올렸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워 있던 에르젠을 안아 아내의 옆에 똑바로 뉘었다.

‘헤레이스, 난 그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러니 당신은…… 날 떠날 수 없어.’

똑 닮은 아내와 아이가 나란히 눈감은 채 누워 있으니 언젠가 노어부를 비웃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자신은 무얼 자신해 그리 오만했을까. 결국 그자와 같은 결말을 맞이했는데.

이즈카엘은 어리석은 자신을 조소했다. 그리고 실없는 조소가 공허한 웃음이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즈카엘이 낄낄거리며 웃다가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아까 다 멎었다고 생각한 축축한 것이 얼굴을 적시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웃음이 울음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내와 아이의 시체를 앞에 둔 사내는 그렇게 한참 눈물 흘렸다.

이즈카엘은 눈물이 마를 때쯤에야 얼굴을 들었다. 흐릿한 그의 시야에 배 구석에 있던 허리끈이 들어왔다. 아내와 아이를 연결하고 있던 것. 자신의 목숨을 거두기에는 아까운 물건이었지만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즈카엘이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쥐었다. 아내의 허리끈은 아직도 축축했다. 이즈카엘은 그것에 입을 맞추고는 길이를 가늠했다.

다행히 아내의 허리끈은 제법 길었다. 이즈카엘이 허리끈을 동그랗게 말았다. 끈은 더 이상 허리에 매는 것이 아니었다. 올가미 형태를 한 끈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기 위해 존재했다.

이즈카엘이 배의 선미에 툭 튀어나온 이물 장식에 올가미를 고정했다. 그러고 보니 그자도 이리 죽었다 했던가. 어찌 행한 죄도, 끝도 이리 같은지…….

“머저리 같은 놈.”

헤레이스와 에르젠의 얼굴을 차례로 본 이즈카엘이 올가미에 목을 건 순간이었다. 이즈카엘이 서 있는 배 선미 반대쪽에 그와 똑같이 생긴 그것이 나타났다.

“겨우 보내 줬더니…….”

그것은 많이 지쳐 보였다. 허덕이는 숨과 눈가 가득한 그늘. 그것이 배 바닥에 반듯이 누워 있는 헤레이스를 보다 악귀의 얼굴을 한 채 이즈카엘을 노려봤다. 살기 어린 그것과 달리 이즈카엘의 눈은 일순 희망으로 번뜩였다. 그가 올가미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바닥에 엎드렸다.

“……살려 줘.”

“…….”

“헤레이스를 살려 줘.”

이즈카엘은 그것의 눈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때 거의 죽어 가던 그를 살린 것처럼 저것에게는 아내를 살릴 방법이 있었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목숨만 구제할 수 있다면, 헤레이스에게 다시 온기와 숨을 줄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 목숨을 앗아 가도 좋아. 그저…….”

“…….”

“헤, 헤레이스만…… 아…….”

고개를 조아린 이즈카엘이 헤레이스를 보다가 바로 옆에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 서러운 낯을 일그러뜨렸다.

한 번도 제대로 안아 준 적 없는 아들이었다. 아내를 보느라 항시 늦게 눈치챘던 가여운 아이가 눈에 밟혀 어른거렸다. 할 수만 있다면 아내와 함께 이 아이도 살리고 싶었다. 이즈카엘이 그러잖아도 터무니없는 요구에 무게를 더했다.

“……헤레이스가 에르젠과 행복하게 살게만 해 줘. 어떤 대가든…… 이 나라 모든 인간의 목을 베 네게 바치라면 그리하겠다. 누구도 가져오지 못했던 물건도 좋아. 어떻게든 구해 오겠어. 네가 원하는 바는 내가 어떻게든 이루겠어.”

“…….”

“물론 내 목숨도…… 이 몸도 가져도 좋아. 제발 두 사람을 살려만 줘. 제발…… 제발…….”

이즈카엘은 진정 뭐든 할 생각이었다. 헤레이스와 에르젠만 살려 준다면 그는 이 나라를 멸망시켜 저 바닥에 처박는 일도 기꺼이 하리라. 하지만 목숨의 무게는 그렇게 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나라 모든 인간의 목숨은 네 것이 아닌데 그것으로 어떻게 대가를 치르겠어.”

그것이 이즈카엘을 비웃었다. 그러나 조소를 흘리면서도 그것은 저울에 올릴 수 있는 것들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원체 한쪽으로 쏠린 터라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그것은 계산을 마치고 이즈카엘에게 최선의 결과를 내놓았다.

“하나는 살릴 수 있어. 하지만 두 사람 모두를 살릴 수는 없어. 그러니 선택해. 누굴 살릴지.”

이즈카엘은 입을 다물었지만 그것은 이즈카엘의 금안에서 이미 답을 읽었다. 예상한 대로였다. 그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누워 있는 헤레이스와 에르젠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아이를 택했다면 네 아내가 널 용서했을 텐데……. 헤레이스가 지금 네 선택을 알게 되면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테지.”

그리 말했지만 애초 그것의 물음은 의미가 없었다. 이즈카엘이 에르젠을 택했다면 그것은 이대로 사라질 생각이었으니.

누군가를 살리는, 여신을 거스르는 일에는 그것의 희생도 필요했다. 그것은 헤레이스를 살리는 값은 치를 생각이 있었지만, 에르젠을 살리는 대가로 자신의 존재를 다시 그때처럼 티끌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것에게 에르젠은 저 밖의 많은 인간들과도 같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아내가 죽어 날 용서하는 건 의미가 없어. 그럴 바에야 난 살아 있는 아내가 날 영영 증오하길 바라.”

이즈카엘이 그 말을 하며 에르젠의 위로 고개를 숙였다. 그가 용서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에르젠의 뺨을 쓸다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만약에 아이를 다음 생에 만나게 된다면…… 자신은 이 아이 손에 수백 번 죽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아우뉴 호수에 잠겨 있는 헤레이스가 그것과 이즈카엘의 대화를 듣는다면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할 게 분명했다. 아이를 살리라며 발을 굴렀겠지. 그러나 그녀는 무엇도 듣지 못한 채 아우뉴 호수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하여 이즈카엘과 그것은 자신들이 가장 원하는 결과를 위해 그녀 몰래 작당을 했다.

“네 놈의 반과 그 끔찍한 돌덩이, 그리고 왼쪽 눈. 그것들을 내놔.”

죽음을 통해 간신히 평온을 되찾은 헤레이스의 얼굴 위로 그것이 손을 뻗으며 요구했다. 이즈카엘이 망설임 없이 그것에게 손을 내줬다. 평온한 얼굴의 헤레이스는 제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거의 똑같이 생긴 두 사내가 손을 잡기 무섭게 검은 안개가 배를 뒤덮었다. 그리고 곧 배 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저 멀리 지평선 위로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호수 위에 낀 안개는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마저 잿빛에 가깝게 만들었다.

“오늘은 배 띄우기 힘들겠는데. 새벽이라 해도 이런 안개라니…… 잘못하다간 호수에 잡아먹히겠어.”

“돌아가자고. 오늘은 신께서 감추고 싶은 게 있는 날인가 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호숫가 정경에 새벽같이 고깃배를 움직이려던 어부들이 발걸음을 돌렸다. 이렇게 심한 안개가 낀 날은 여신이 노한 날이라 하여 배를 움직일 수 없었다.

물안개가 자욱이 낀 불쾌한 새벽의 조용한 호수, 결국 빈 배만 남아 끼익거리며 홀로 소리를 냈다.

* * *

이즈카엘과 그것은 성 지하, 얼음이 줄지어진 장소에 있었다. 갈 때와 달리 망자는 이제 두 명. 하지만 그중 하나는 곧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리 내.”

그것이 이를 갈다 이즈카엘의 손에 들린 하얀 돌덩이를 빼앗아 가듯 낚아챘다. 하나 그것의 손에 닿자마자 하얀 돌덩이가 빛을 내며 그것을 태우기 시작했다.

“크흑…… 아아악!”

그것이 듣고 있기 힘든 비명을 내지름과 함께 허리를 숙이고 몸을 뒤틀었다. 보기만 해도 괴로워 보였다. 바닥과 얼음 위로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괴로움에 허덕이면서도 헤레이스의 가슴 위로 제 손과 돌덩이를 함께 올렸다.

그것의 몸은 빛에 점점 타들어 갔으나, 무서운 속도로 그것을 태우는 빛은 헤레이스에게는 어떤 해도 입히지 못했다. 오히려 서서히 사라지는 그것의 일부와 빛무리는 얼음이 녹듯 흐르더니 헤레이스의 몸에 스며들었다.

헤레이스의 창백한 피부 위로 핏줄이 선명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무언가 흐르듯 돋아났다. 이즈카엘은 아내의 몸에 온기가 돌아옴을 인지하고 눈을 크게 떴다.

“……네, 네놈한테만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지.”

헤레이스의 가슴 위 그것의 팔은 이미 반쯤 사라진 상태였다. 그것이 이를 악물다 손짓으로 이즈카엘에게 가까이 오라 명했다. 이즈카엘이 순순히 다가가자 그것이 무릎을 꿇으라고 눈짓했다.

이즈카엘이 무릎을 꿇자 그의 왼쪽 눈에 그것의 손가락이 갈고리 모양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의 손가락이 눈 안쪽 깊숙이 닿을 때도 이즈카엘은 비명은커녕, 신음 한번 내지르지 않았다. 그것이 어느새 피눈물을 흘리는 이즈카엘의 보다가 짓씹듯 뭉개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즈…… 이즈카엘, 넌 지금 내가 느끼는…… 흐으, 이 고통을 영영 느낄 거야. 아내를 볼 때면 눈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아내의 말을 들을 때면 귀가, 말할 때면 혀가 잘리는 고통을 매 순간 느끼겠지. 그녀를 만지면 네 손이 녹아내리듯 할 거고, 그녀가 널 만지면 그 부위만 얼어붙은 듯 괴로울 거야. 그리고 난 네가 느끼는 고통을 영영 네 곁에서…….”

그것이 손을 거둬들이자 눈과 함께 무언가가 몸에서 훅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즈카엘이 휘청이며 아내를 뉜 얼음을 왼손으로 쥐었다. 온기가 있는 오른손과 달리 그의 왼손은 얼음보다 차가웠다.

“……지켜볼 거고.”

그것의 손에 들린 눈알은 피 대신 기이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즈카엘은 또렷하지 못한 시야로 그것이 자신의 눈을 삼키는 광경을 봤다. 그것의 목울대가 한 번 출렁이자 기이하게도 왼쪽 눈에 선명했던 고통이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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