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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을 꺾는 악마여-77화 (77/108)

77화.

“나의 창조주이시자 아버지, 난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싶습니다.”

「나를?」

눈마녀들을 조각한 그것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눈마녀 자매들은 자신들을 탄생시킨 그것을 존경하고 따랐다. 생명체라 부르기도 모호한 그것은 존재 자체가 욕망 덩어리로, 욕망을 미친 듯이 좇는 눈마녀들의 아비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네게 영원은 없어, 메데아. 얼음과 내 일부로 만들어진 너희의 수명은 기껏해야 몇백 년. 나약한 인간보다 조금 더 길 뿐이지. 게다가 네 자매들은 그 수명조차 채우지 못했잖아.」

“전 자매들처럼 어리석은 욕망을 좇는 데 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거예요. 제 모든 힘은 당신을 영원히 따르기 위해 사용될 거랍니다.”

처음 그것은 메데아를 비웃었다. 하지만 메데아는 죽기 즉전까지도 정말 온 힘을 다했다.

수명이 다하기 직전, 메데아는 마녀들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로디바 대마녀를 찔러 그 피를 모조리 마시고 그 스스로 로디바의 대마녀가 됐다. 그리고 세상에 남은 용 넷을 모조리 독살했다. 불사의 마력이 끓는 용의 심장, 메데아는 그것을 먹어 치우며 제 몸에 강대한 마법진을 새겼다.

그런 메데아의 모습에 그것조차 서서히 매료돼 갔다. 그리고 마침내 메데아는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 마법을 완성했다.

“……내 창조주시여, 당신을 위한 마법이 완성되었어요. 시간이 더 있었다면 더 완벽한 마법을 완성했을 텐데. 아쉽지만 이걸로 만족해야겠지요.”

「…….」

“내가 죽더라도 내 시체에서 일어난, 나와 같은 영혼을 가진 딸들이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섬길 거예요.”

그것은 얼음이 녹듯 흐물거리는 메데아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진심으로 말했다.

「대단하군.」

“당신에게 처음으로 듣는 칭찬이네요. 그렇다면 고생한 종을 위해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시겠어요?”

「……말해.」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좋아요. 언젠가 당신이 내킬 때…… 영원히 계속될 나를 사랑해 줘요. 그리고 당신이 내게 유일했던 것처럼 나도 당신에게 유일한 존재로 삼아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첫 번째 메데아는 녹아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바닥을 적신 물기가 채 마르기도 전 그 속에서 두 번째 메데아가 태어났다.

“내 어머니의 창조주시자 나의 창조주시여, 제가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요?”

두 번째 메데아는 첫 번째 메데아와 똑같았다. 외모도, 마력도, 영혼의 색도, 심지어 그것을 갈망하는 욕망도. 하지만 한 가지만은 달랐으니, 첫 번째 메데아의 마법으로 완성된 두 번째 메데아는 50년이 채 되기도 전에 녹아 버렸다.

“아…… 완벽하지 못한 대가가 이것이군요. 하지만 내 창조주시여, 걱정 마세요. 곧 다시 내가 태어날 겁니다.”

두 번째 메데아의 말대로였다. 두 번째 메데아가 녹기 무섭게 세 번째 메데아가 태어났다. 그리고 세 번째 메데아의 수명은 두 달, 또 그다음 네 번째 메데아의 수명은 100년이었다.

백 번째 메데아 이후 그것은 메데아에게 숫자 매기기를 그만뒀다. 그도 이제 인정했다. 전의 기억조차 온전히 가진 메데아들은 말 그대로 메데아일 뿐,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메데아에게는 다시 태어났다는 말보다 부활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내 어머니의 창조주시자 나의 창조주시여, 제가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요?”

그리고 얼마의 세월이 흘렀을까. 메데아가 다시 부활하고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일상 중 하나가 된 말을 메데아가 다시 뱉는 순간, 그것은 충동적으로 답했다.

“나도 너를 사랑하는 거 같아. 네게 내가 그러하듯 이제 내게도 네가 유일한 존재야, 메데아.”

말을 꺼낸 순간 그것은 처음으로 육체라는 것을 가졌다. 육체라는 한계가 생긴 순간 그것은 가지고 있던 많은 힘을 잃었다.

하지만 대신 그것은 쾌락을 얻었으니, 눈마녀와 다르게 사내의 형상으로 둔갑한 그것은 핏빛 머리카락과 황금색 눈을 번뜩이며 메데아의 입술을 삼키고 인간의 흉내를 내며 다리를 얽었다. 그리고 그 행위로 인해 열 달 후 아이라 부를 만한 존재가 태어났다.

“피도 나고…… 아무리 봐도 인간이야.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

그것의 인간 형상처럼 붉은 머리카락과 황금색 눈을 타고난 아기는 인간을 흉내 낸 행위에서 태어난 탓인지 인간에 가까웠다. 온기 있는 피부, 뛰는 심장……. 마력을 조금 물려받았다는 것 외에는 인간과 차이가 없었다.

“난 저것이 당신의 눈길을 한 번이라도 받는 게 싫어요. 당신의 유일한 존재는 나여야만 해.”

그것은 물론이고, 메데아 또한 제 아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결국 눈밭에 버려진 아이는 운 좋게 사냥꾼의 눈에 띄어 인간 사회에서 자라고 영웅이 되더니 어느새 세르펜스 공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보통의 인간은 가질 수 없는 마력과 강대한 육체. 인간들은 세르펜스 공작을 존경하고 따랐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를 선망하지는 않았으니……. 전쟁에서 그가 전리품으로 차지한 망국의 아름다운 공주는 어느 날 성 꼭대기에서 몸을 던졌다.

‘난 당신이 두려워요. 날 제발 놓아 달란 말이에요. 제발!’

‘헬레나, 난 당신을 사랑해. 당신만이 내 유일한 존재야.’

‘지겨워! 내게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거야!’

공주의 죽음 이후 초대 세르펜스 공작은 성에 두문불출하더니 어느 날 공주와 마찬가지로 성 꼭대기에서 몸을 던졌다. 다행히도 공주를 제외한 다른 부인에게서 난 후계 몇이 있었기에 세르펜스 공작가는 평온히 유지됐다.

초대 이후로도 세르펜스 공작가에는 제 반려나 연인에게 지독하리만치 집착하는 후대들이 붉은 머리카락과 황금색 눈만큼이나 간간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보통의 인간보다 강인한 육체나 마력 등을 타고나 가문의 이름을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므로 작은 결점 정도야 가문의 기록서에만 남겨질 뿐이었다.

아나이스를 떠받드는 네 기둥 중 하나. 아나이스를 지키는 가장 단단 요새. 철과 얼음의 기사들.

그렇게 세르펜스 공작가는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가문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그것과 메데아는 그들의 아이가, 그 후손이 인간 사회에서 뭐가 되든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줄 수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메데아에게 문제가 생겼으므로.

“이상해! 내 머릿속이 이상해! 아아아악!”

“메데아?”

아주 조금이지만 아이에게 마력 일부가 넘어가서일까. 메데아의 영원을 이루던 마법이 틀어지고 균형이 무너졌다. 그녀의 영혼에 최초로 금이 갔다. 그리고 한번 생긴 금은 금세 커져 갔고, 메데아라는 눈마녀의 존재는 어느새 위태로워졌다.

“……다시는 그런 이물질을 만들지 않겠어.”

그것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인간 사내의 형상을 본뜬 몸에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것은 제 힘을 한계까지 부어 간신히 메데아의 영혼을 지키고 마법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것의 노력에도 메데아는 전과 같을 수 없었다.

“안아 주세요. 네? 당신과 연결되고 싶어요. 하나가 되는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요.”

어느 순간 메데아는 그것과의 육체적 결합을 갈구했다. 이미 교훈을 얻은 그것은 관계를 거부했지만 메데아는 부활할 때마다 육체적 관계에 집착하더니 결국 미쳐 버렸다.

이성을 잃은 메데아가 몇 번이고 부활했고, 두 존재의 공간은 어느새 광기 어린 메데아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날 사랑한다며! 그런데 왜 거부해!”

“메데아, 그런 것이 아니다. 난 널 사랑해 그런 거야.”

그래도 그것은 괜찮았다. 그것은 그런 메데아조차 사랑했으니. 그러나 그것에게 상상도 못 한 시련이 닥쳤다.

“내가 사랑하는 마녀야, 일어나라. 눈을 뜰 시간이야.”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메데아는 이성을 되찾은 채 부활했다. 하나 냉랭한 메데아의 얼굴에는 이성 대신 다른 것이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왜 당신을 사랑해?”

메데아는 더는 그것을 욕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에게 무관심할뿐더러 약간의 증오도 비쳤다. 그것에게 당혹감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 메데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넌 약조를 어기고 있어, 메데아.”

“그래서?”

“넌 날 사랑해야 해. 날 유일한 존재로 여겨야 해.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다, 넌.”

“싫어! 싫다니까! 내가 왜 널 사랑해!”

메데아는 그것을 피해 달아났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함께한 두 존재는 이미 하나와 마찬가지였기에 영영 멀어질 수는 없었다. 그것은 제게서 도망치는 메데아를 쫓아 그녀의 옆에 머물렀다.

“언젠가는 네게서 벗어날 거야.”

그것은 저를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메데아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어차피 이번 메데아도 어느 순간 수명을 다할 테고 부활할 터였다. 여러 번 부활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자신을 욕망하겠지. 그것의 속내는 그러했다.

“난 당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그것의 기대와 달리 그 후로도 상황은 같았다. 메데아는 부활을 거듭할수록 그것에 대해 더욱 진저리를 쳤다. 자신에게 무관심한 메데아. 자신을 미워하는 메데아. 그것의 심장은 점점 까맣게 변해 갔다. 그래도 그것은 인내심을 유지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메데아는 그것의 기다림마저 앗아 버렸다. 그것을 닮은, 붉은 머리카락에 황금색 눈을 가진 인간 사내. 메데아는 설산 늑대에게 물려 죽어 가는 사내를 발견하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리고 상기된 얼굴로 속삭였다.

“……당신과 닮았어. 하지만 달라.”

그것은 숨이 끊어져 가는 사내를 알아봤다. 언젠가 몇 번째인지 모를 메데아와 그것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사내는 그 아이의 한참 아래 자손이었다.

“쓸모없는 인간이야. 죽게 내버려 둬.”

그것은 당시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메데아의 얼굴을 본 순간 이미 살이 터져 피가 흐르는 사내의 옆구리를 한 번 더 짓뭉개 버리고 싶었다.

“싫어.”

“…….”

“난 이 사람이 마음에 들어.”

메데아는 사내를 오래전에 버려진 사냥꾼의 오두막으로 옮겼다. 그리고 구멍이 뚫린 사내의 옆구리에 약초와 마력을 섞어 짓이겨 넣고, 녹지 않는 만년설 바늘로 정성스레 옆구리를 꿰맸다. 그녀의 정성 때문일까. 사내는 금세 일어났다. 그리고 메데아는…….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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