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목을 꺾는 악마여-62화 (62/108)

62화.

“날 여기 둬서 뭐 하게. 사생아 아들 학대한다는 소문 만들게?”

이즈카엘과 미겔은 어두컴컴한, 창문 하나 없는 방에 있었다. 방 안에는 침대 하나 그리고 얼핏 잡동사니로 보이는 여러 물건이 그 주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미겔이 몸을 굽혀 제법 묵직한 촛대 하나를 집어 들고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나한테 이런 건 소용없다니까. 인간들이 모시는 여신의 힘따위…….”

미겔이 백합 모양이 양각돼 있는 촛대의 허리 부근을 세게 쥐었다. 퍽 소리와 함께 금이 간다 싶더니 아랫부분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겔은 나머지 부분도 던져 버리고 웃는 얼굴로 이즈카엘을 쳐다봤다. 하지만 아이의 미소에는 묘한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

“그보다 네 아내가 너랑 규칙을 어기고 나온 거 같은데? 안 가 봐도 되겠어? 그녀가 또 아이만 데리고 도망가면 어떻게 하려고?”

헤레이스를 언급하며 빈정거리는 목소리에도 이즈카엘은 눈썹만 꿈틀댈 뿐이었다. 아내가 규칙을 어기고 나올지도 모른다고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하지만 아내가 규칙을 어긴 것보다 지금 당장은 눈앞의 이것을 어떻게든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미겔 형이…… 흐윽…… 그랬어요. 흑.’

이것과의 접촉을 그리 막았건만 에르젠은 그새 이것을 형이라 친밀히 부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미 헤레이스에게도 다가갔으리라. 이즈카엘은 더는 이것이 제 울타리 안으로 침범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이즈카엘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미겔이 그에게 한 발 다가왔다.

“왜? 그때처럼 목을 베고 아우뉴 호수에 던져 버리게? 아니면 불에 태우려나? 그것도 아니면 왜 그 재수 없는 검이랑 비슷한 걸 주웠어? 날 또 조각내려고? 소용없어. 조금 찌릿찌릿하기는 했지만 그때처럼 부러뜨리면 그만이야.”

헤레이스의 도망 이후 이즈카엘은 몇 번이나 미겔을 죽이려 들었다. 하나 인간을 죽이는 방법은 이것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나마 성물과 같은 물건이 이것에게 통한다는 사실도 성검으로 불리는 물건으로 이것을 우연찮게 베며 알았다.

하지만 모든 성물이 통하지는 않았다. 이즈카엘은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성물 중에서도 서늘하게 느껴지며 제 피에 반응하는 특정한 것만이 이것에게 유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력을 느낄 수 있는 사제들은 특유의 서늘함이 성질에 불과할 뿐, 여신의 축복을 받은 똑같은 성물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나 이즈카엘은 성물과 자신이 찾는 물건이 다름을 확신했다. 눈앞의 괴물에게 통하는 물건은 분명 따로 있었다.

“아들이 징글징글한 건 이해하지만…… 내가 이 껍데기를 얻고 곁에 머무는 걸 돕겠다 한 건 아버지 너야. 난 원하는 만큼 아버지 당신한테 붙어 있을 테니 힘 빼지 마.”

방 안에 기이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창문도 없는 방에 바람이 불더니 벽에 비친 그것이 입을 쩍 벌리고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침을 질질 흘리는 형상마저 선명해 마귀나 악마 따위를 믿지 않는 이도 단숨에 신전으로 달려갈 법했다. 그러나 이즈카엘은 여전히 무감한 눈으로 그것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 보이는 것은 미겔이었다. 이 공간에서 무언가가 그를 시시각각 조여 오고 있었다. 미겔이 바닥에 나뒹구는 성물을 눈동자만 굴려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내 어미에게 붙어 있던 게 너인가? 언제부터였지?”

그 꼴을 보고 있던 이즈카엘이 한참 만에 묻자 아이가 일부러 올리고 있던 입꼬리를 끌어 내렸다. 번쩍이는 금안에 장난기와 여유 대신 어둑한 감정이 내려앉았다.

“…….”

그리고 그것이 처음으로 침묵했다.

“답할 생각이 없군. 좋아. 나도 더는 물을 생각 없어. 어차피 네놈을 여기로 끌고 온 건…….”

이즈카엘이 제 목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얇은 가죽끈이 옷 사이에서 드러난다 싶더니 그 끝에 작은 물체 하나가 반짝였다. 하얗고 얇은 은, 또는 어떠한 광석으로 만들어졌다 추측되는 자그마한 눈송이였다.

‘……이즈카엘, 이걸 꼭 걸고 있으렴.’

그것을 꾹 쥐자 손바닥 피부 아래로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느껴졌다. 어미가 죽은 이후 구석에 넣어 둔 채 방치한 것이 그리 찾던 물건이라니. 실소가 났다.

눈송이를 본 미겔의 눈이 커진다 싶더니 이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즈카엘이 한발 빨랐다. 그가 목걸이를 풀고는 아이를 향해 망설임 없이 던졌다.

“으아아악! 아아아악!”

쇳조각이 자석에 붙는 것처럼 목걸이가 미겔의 몸에 들러붙었다. 눈송이가 몸에 닿자마자 작은 몸이 뒤로 쿵 넘어가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커…… 커억! 케엑! 크아아아악!”

“……이렇게라도 조지기 위해서니까.”

이즈카엘이 삿된 말을 내뱉었다. 그것은 고정된 채 팔다리를 뒤틀어 댔다.

눈송이가 붙은 가슴 부근에는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으며,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에는 검고 징그러운 비늘이 군데군데 돋아났다. 황금색 눈이 하나에서 두 개로 늘어난 것을 본 이즈카엘이 발에 힘을 꾹 줬다.

“내 어미가 널 보통 미워한 게 아닌 모양이야. 이런 것도 만들어 두고. 하기야 종종 말했지. 끔찍이 징그러운 것이 제게 붙어 있다고.”

“아아악! 너! 네놈! 아으…… 아아악!”

이즈카엘의 말에 그것의 눈동자가 커지더니 비명 또한 높아졌다. 그것이 이를 갈고 손톱을 세워 바닥을 벅벅 긁었다. 손톱은 그새 검고 긴, 조류 것으로 변해 있었지만 생긴 것과 달리 힘을 쓰지 못한 채 부러지고 뭉개졌다. 손톱이 부러진 손끝에서 검은 피가 튀었다.

하나 그것의 고통은 거기까지였다. 손끝이 으깨지고 괴로움에 몸부림칠지언정 그것은 천천히 회복하고 있었다. 검은 피가 거머리처럼 느릿한 속도로 꾸물거리면서도 그것을 향하는 모습에 이즈카엘은 인상을 팍 구겼다.

“기왕이면 완전히 죽어 없어졌으면 했는데 그렇게까지는 못 하는 건가.”

“아으으! 메데아! 메데아아아! 아악!”

입술을 문 이즈카엘이 몸을 돌렸다. 그것은 이제 눈을 까뒤집으면서 여인으로 추측되는 누군가의 이름을 외고 있었다. 온갖 것이 뒤섞인 감정이 비명 속에서도 생생히 전해졌다.

“아아아아악! 이즈카엘! 이즈카엘! 으아악!”

문 앞에 선 이즈카엘이 문고리에 손을 올리자 그것이 몸을 뒤집어 기어 오려 했다. 그러나 다시금 찾아오는 고통에 한 발도 떼지 못했다.

“……내가 네놈 목을 칠 방법을 찾을 때까지 그렇게 버러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으면 좋겠군.”

이즈카엘은 끔찍한 비명에도 차분히 문을 열고 나왔다. 두꺼운 문이 쿵 하고 닫히자 안의 비명은 본래 없었던 것처럼 사그라들었다.

“주인님…….”

밖에 있던 노집사가 굳은 얼굴로 이즈카엘을 바라봤다. 잠깐 열려 있던 문틈 사이로 비명을 똑똑히 들은 노인의 얼굴은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잠가 놔. 그리고 저 안의 것에 대해서는 자네만 알고 있었으면 해.”

노집사는 흠칫 몸을 떨었지만 곧 차분한 모습을 되찾았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 이즈카엘에게 물었다.

“저것이 돌아가신 선대 공작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입니까?”

물음의 형태였지만 그 속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즈카엘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답했다.

“아니. 아버지는 스스로를 죽이신 거지.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어.”

* * *

오랜만에 온 방은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몇 가지 물건이 추가된 것 외에는 침대도, 화장대도 그대로였고 그녀가 사용하던 단향목 빗마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지만 변화 없는 방의 모습보다 그녀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머무는 이가 에르젠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즈카엘이 에르젠에게 이곳을 내줬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몇 년 만에 앉았음에도 침대는 익숙했고 또 편안했다. 헤레이스는 침대에 앉아 잠이 든 에르젠을 연신 토닥였다. 그녀의 아들은 갓 태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침대 왼편에 자리를 잡고 눈을 감고 있었다.

“엄마…….”

“응, 에르젠. 엄마 여기 있어.”

아이는 꿈에서도 그녀를 찾는 모양이었다. 헤레이스는 에르젠이 잠결에 그녀를 찾을 때마다 여기 있다며 일일이 답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완전한 밤이 내렸고, 에르젠은 칭얼거림을 멈추고 숨소리만 냈다. 그러자 헤레이스는 고개를 돌려 창밖 하늘을 바라봤다.

새까만 밤하늘에는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반대로 달은 너무도 크고 밝아 눈마저 아린 기분이었다. 헤레이스는 휘황찬란한 달 앞에 구름이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밝은 달빛에 사내의 그림자가 길게 생겼다. 헤레이스는 문가에서 침대까지 닿는 그림자를 보다 에르젠에게 이불을 여며 주고는 일어섰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이즈카엘을 마주 보며 말했다.

“나가요.”

그녀의 말을 축객령으로 알아들은 이즈카엘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입술을 달싹였다. 하나 헤레이스는 그가 말을 하기 전에 빠르게 걸어 그를 지나쳤다.

달칵.

그녀가 방 밖으로 나오자 곧이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헤레이스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복도를 걸었다.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사내가 뒤따르는 것이 느껴졌다.

방에서 제법 떨어졌다 생각되자 헤레이스가 걸음을 멈췄다. 복도에 있던 사용인들이 그녀와 이즈카엘을 보고 숨죽이며 달아났다. 사용인들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복도에 적막만이 감돌자, 헤레이스가 몸을 홱 돌렸다.

이즈카엘은 그녀에게 딱 한 발 떨어져 있었다. 숨소리마저 들릴 가까운 거리에 헤레이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입술을 꾹 내리 물다 고개를 들어 사내를 노려봤다.

짝!

제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이즈카엘의 뺨이 붉어졌다. 헤레이스가 아린 손목을 붙잡고 거칠게 숨을 내쉬며 또박또박 말했다.

“에르젠이 울었어요. 많이.”

벤에게 에르젠이 독살당할 뻔했다는 걸 들은 후 헤레이스는 아들을 찾아 정신없이 성내를 돌아다녔다. 뒤에서 하녀와 폴이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땀에 젖어 헐떡일 때까지 에르젠의 이름을 외치며 뛰었다.

그렇게 만난 에르젠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헤레이스만을 연신 부르고 있었다. 기어가는 목소리가 아이의 두려움을 짐작케 했다. 에르젠은 헤레이스를 보자마자 엉엉 소리를 내며 내리 한 시간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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