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목을 꺾는 악마여-60화 (60/108)

60화.

“무슨 말이지?”

이즈카엘의 목소리가 급격히 낮아졌다. 그의 기세에 아이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보다 못한 노집사가 이즈카엘 대신 차분한 목소리로 에르젠에게 되물었다.

“도련님, 이 케이크는 도련님의 생일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겁니다. 그런데 드시면 안 된다니요.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했습니까?”

“이걸 먹으면…… 이, 이걸 먹으면 영영 엄마를 못 볼 거라 했어요.”

“예?”

“난 엄마를 보고 싶은데…… 흑. 엄마도 에르젠이 보고 싶을 텐데. 흐아아아앙!”

에르젠이 결국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서러운 아이의 울음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다. 헤레이스까지 언급되자 이즈카엘이 의자를 옆으로 돌려 에르젠과 눈을 마주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나?”

“엄마, 흐아아아앙!”

“울지 말고. 누가 네게 그런 말을 했지, 에르젠.”

형형히 빛나는 금안에 분노가 한가득하였다. 그러나 이즈카엘은 제 감정을 억누른 채 느릿한 손짓으로 에르젠의 눈물을 닦고 아이의 답을 기다렸다. 에르젠이 한참 만에 울음을 멈추고 히뜩거리며 답을 했다.

“형…… 미, 미겔 형이…….”

“…….”

“미겔 형이…… 흐윽…… 그랬어요. 흑.”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오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대다수는 당황스러워했지만, 이즈카엘의 얼굴에서는 살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적막만 흐르는 공간 속, 이즈카엘이 불현듯 어떤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 옛날 샤를의 생일 연회를 훔쳐봤던 그때의 그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창가에서 히죽이며 웃고 있었다. 새빨간 입술 사이로 긴 혀가 나왔다가 재빠르게 사라졌다.

이 가는 소리가 살벌하게 들린다 싶더니 이즈카엘이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가 우는 에르젠을 거칠게 안아 들고는 노집사를 향해 짓씹듯 명했다.

“……샅샅이 조사해.”

“무, 무슨…….”

“이 케이크에 무슨 문제가 없는지 이 자리에서 조사해. 당장!”

그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오자 에르젠이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즈카엘이 에르젠의 유모를 불러 아이를 넘겨주고는 연회장 구석에 있으라 명했다. 에르젠의 상태를 보면 방으로 올려 보내야 했지만 지금 당장은 아르젠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조차 불안했다.

주인의 살벌한 명에 몇몇 사용인들의 발이 바빠졌다. 에드가를 비롯해 자리에 있던 기사들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주변을 경계했다.

곧 불려 온 의원이 케이크를 이리저리 살피다 은으로 만들어진 기다란 쇠막대기를 케이크 여기저기에 꽂아 봤다. 난도질당한 케이크는 금세 망가졌다. 하지만 혹여나 했던 것과 달리 쇠막대기는 변색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안도와 허탈감 속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의원이 작은 상자를 꺼내 그 속에 로즈베리와 케이크 일부를 잘라 넣었다.

찍…… 찍찍.

분주한 발소리와 찍찍거리는 울음만으로 상자 속에 어떤 생물이 있는지는 모두가 짐작했다. 이즈카엘이 나무 상자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찍! 찍! 찍찍! 찍!

한참 별문제 없어 보이던 나무 상자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안에 있는 쥐가 어찌나 거칠게 난동을 부리는지 상자가 들썩일 정도였다. 심상치 않은 소리에 사람들의 낯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리고 곧…….

찍…….

짐승의 마지막 단말마와 함께 나무 상자가 조용해졌다.

“열어.”

이즈카엘이 짧게 명하자 의원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열었다. 안을 들여다본 사람들이 헉하고 숨을 들이쉬며 뒤로 물러났다. 상자 안에는 쥐가 새카만 피를 토해 낸 채 끔찍한 몰골로 죽어 있었다.

아직 살짝 경련하는 뒷발 하나와 긴 꼬리가 아니었다면 방금까지 쥐가 살아 있었음을 그 누구도 믿지 않았으리라. 의원이 떨리는 목소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도, 독입니다.”

* * *

“이거 놔! 놓으라고!”

건장한 체격의 하인들이 버둥거리는 샬럿을 밖으로 끌어냈다. 햇살 가득한 화창한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광경에 사람들의 이목이 모두 집중됐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 내가 미겔의 어미야! 너희가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샬럿은 긴 계단을 신도 없이 맨발로 끌려 내려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나 하인들은 그녀의 말에도 경직된 얼굴을 유지한 채 걸음을 빨리했다. 계단을 다 내려오자 화려한 마차 한 대와 기사 여럿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하인들은 곧장 주인의 앞으로 갔다. 고함치며 몸을 뒤틀던 샬럿이 이즈카엘을 보고는 몸을 굳혔다가, 곧 가여운 표정을 지었다. 이즈카엘이 하인들을 향해 손짓하자 하인들이 샬럿을 아무렇게나 놓았다.

“이, 이즈카엘! 공작님!”

샬럿은 풀려나기 무섭게 울먹이며 이즈카엘의 발치에 매달렸다. 덕분에 치맛자락이 바닥에 쓸리고 구겨졌지만 샬럿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이즈카엘을 올려다보며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내, 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

“믿어 줘요, 이즈카엘. 내가 그런 게…….”

샬럿은 아니라 했지만 심증과 물증 모두 그녀를 가리켰다.

조사 결과, 케이크를 장식하기 위해 로즈베리를 재워 둔 유리병에 누군가 독을 넣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유리병 근처에 샬럿의 하녀 릴리가 서성댄 것을 목격한 자가 나왔다.

이즈카엘은 곧장 샬럿의 방을 뒤지라 명했다. 주인의 명에 사용인들은 곧 화장대에 숨겨져 있던 작은 병과 샬럿의 반지 하나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속에는 에르젠을 해칠 뻔한 독과 같은 것이 있었다.

“할 말 있나?”

이즈카엘이 샬럿의 앞에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익숙한 병과 반지의 등장에 샬럿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에요!”

“…….”

“생각을 해 봐요, 이즈카엘. 만약 그 아이가 죽기라도 했다면 지금처럼 내가 범인으로 몰릴 텐데 내가 미쳤다고 그런 수를 쓰겠어요? 난 아니에요!”

“…….”

“누, 누군가 날 모함하는 게 분명해! 그래, 그 여자야. 그 여자가 돌, 돌아와서 내 자리를 차지하려고 제 자식을…….”

“그 입 닫아.”

헤레이스가 언급되자 이즈카엘이 살벌하게 읊조렸다. 그가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샬럿을 아무렇게나 떼어 냈다.

“악!”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네 망상을 더는 눈감아 주지 않겠다고.”

이즈카엘은 바닥에 주저앉은 샬럿을 내려다보다가 손에 쥐고 있던 병을 바닥에 내던졌다. 돌로 만들어진 타일에 부딪힌 병이 순식간에 깨지더니 그 안의 검은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치이이익.

검은 액체는 쏟아지자마자 투명한 색으로 변해 타일을 적셨다. 그리고 곧 연기가 피어올랐으며, 단단한 돌 타일이 움푹 팼다. 이즈카엘이 반지마저 바닥에 내던져 깨트린 후 서늘한 낯빛으로 말했다.

“이걸 구한 건 몇 년 전이라지. 그리고 너…….”

“아…….”

“……그 꼴로 별채로 향했다고?”

샬럿은 평소 즐기던 화려한 드레스 대신 하녀들의 복장을 따르고 있었다.

이즈카엘이 그녀의 차림새를 훑어보자 샬럿이 달달 떨며 손톱을 입으로 가져갔다. 옷차림에 관해서는 변명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즈카엘의 예상대로 샬럿은 헤레이스를 몰래 만나기 위해 하녀의 옷을 꿰입었다.

‘어, 어디서부터 문제였지?’

케이크를 이용해 아이를 독살하고, 그 사실을 그 여자에게 알려 주며 괴로워하는 꼴을 구경하다 같은 독을 내민다. 아이를 끔찍이 아끼던 여자였으니 순순히 독을 마셨으리라. 고분고분하게 마시지 않아도 좋았다. 어떻게든 그 여자의 입 안에 이걸 털어 넣을 작정이었으니까.

‘분명히 완벽했는데 왜…….’

그녀가 쫓겨날 것이 확정되자 거리를 두던 하녀 릴리가 갑자기 무슨 일이든 돕겠다고 말해서일까? 실행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면 모든 게 허술했다.

‘이게 아닌데…… 일이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아니, 사실은 들킨다 하더라도 그 여자와 아이를 죽인 다음이면 이 사내도 어쩔 수 없이 눈감아 줄 거란 자신이 있었다. 후계자가 미겔밖에 남지 않으니까. 미겔과 그 어미인 자신을 어찌 못 한다는 자신감.

‘그래. 내게는 미겔이 있어, 똑똑하고 잘난. 그 여자의 아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난 아들이 있단 말이야. 그 아이가 날 공작 부인으로 만들어 줄 거야.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모든 것을 줄 거야. 그러니 조금만 견디면…….’

미겔을 떠올린 샬럿이 미래에 자신의 손에 들어올 것을 상상했다. 아들을 생각하자 언제나처럼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녀는 히죽거리다 무릎걸음으로 이즈카엘에게 다가갔다. 이 고비만 넘기면 가지게 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대로 범인으로 몰릴 수는 없었다.

“이즈카…….”

하지만 이즈카엘의 눈을 보는 순간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내는 그녀를 경멸 가득한 눈으로 벌레 보듯 보고 있었다. 샬럿이 가장 싫어하는 눈이었다. 무관심하면서도 세상 더러운 것을 보는 눈.

“더 물을 필요 없겠지.”

샬럿이 딱딱하게 굳어 버리자 이즈카엘이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우려하는 듯한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 도련님!”

“아버지!”

이즈카엘의 얼굴이 와락 구겨짐과 동시에 아이가 달려와 그에게 매달렸다. 이즈카엘이 자신과 같은 색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를 거칠게 밀쳤다. 그러자 미겔의 유모가 흙바닥에 주저앉으며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미겔이 벌떡 일어나 옷을 털고 이즈카엘에게 다시 다가갔다. 아이가 가여운 얼굴로 눈물을 뚝뚝 떨구며, 그러나 희열 가득한 목소리로 이즈카엘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죽여.”

“…….”

“감히 네 그녀를 해치려 들었잖아. 그러니 당장 죽여. 그게 옳은 선택이야.”

미겔을 내려다보는 이즈카엘의 눈에 샬럿을 볼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살기와 경멸이 흘렀다. 허리춤에 매달린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이즈카엘이 한참 만에 손을 떼고 말했다.

“아니. 죽이지 않아. 네 놈에게 더는 놀아날 수 없지.”

“……언젠가 후회할지도 몰라, 아버지.”

그렇게 속삭인 미겔이 몸을 돌려 샬럿에게 뛰어갔다. 샬럿이 제 품에 안긴 미겔을 꼭 안은 채 이즈카엘에게 소리쳤다.

“그래! 내가 이 아이의 어미야, 이즈카엘. 내가 저, 저 당신 후계자의 어미라고!”

“……약속을 지키지. 넌 황금을 가지고 이 성에서 나가게 될 거다. 뭣들 하나. 태워.”

이즈카엘의 명에 하인들이 샬럿과 미겔을 떼어 놨다. 모자는 헤어지지 않겠다는 듯 버둥거리며 서로를 붙잡았다가 이내 떨어졌다.

“이거 놔! 미겔! 미겔! 이 어미에게 와! 미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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