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던 보석을 지그시 바라보는가 싶었는데, 금세 움직여 입가로 가져갔다.
“안 돼!”
율리아가 비명을 지르며 선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쓰러지듯 안으로 달려들어가 카루스가 보석을 입에 넣지 못하게 막았다.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매달렸다.
“안 돼요, 제발…….”
“율리아?”
율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카루스의 몸에서 진하게 느껴지는 약 냄새를 맡곤 더 굵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당신까지 저주에 걸리게 할 수 없어요. 붉은 산의 다이아몬드가 당신을 선택했다고 해도…… 우리가 서로를 대적자로 여기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괜찮아.”
“카루스 님, 당신은 매번 날 살리는 구원자란 말이에요. 내 은인이라고요.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당신이 날 그 추운 산에서 구해 줬기 때문인데…….”
“율리아.”
카루스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그가 웃고 있었다. 그의 미소가 너무 다정해서 율리아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나는 괜찮아.”
“카루스 님!”
“다음 삶으로 가서 우리가 죽음을 공유하게 된다고 해도 좋고, 내가 네 대적자가 되어 심장을 내어 준대도 좋아. 네가 날 잊어도 견딜 수 있어. 그렇게 해서 너를 그 고통에서 꺼내 줄 수만 있다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싫어요. 당신이 그런 고통을 겪게 할 수 없어요. 나로 충분해요. 아무도 이런 걸 겪어서는 안 돼요. 미안해요. 당신이 독에 중독되었다는 걸 아는데, 이대로 놔두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아는데……!”
원수를 앞에 두고도 얼음산 호수처럼 차갑고 잔잔하던 그녀의 영혼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말라 사라진 줄 알았던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눈이 아팠다.
율리아는 카루스가 죽는 걸 두고 볼 수 없었고, 저주에 빠지는 것도 두고 볼 수 없었다.
카루스가 오열하는 그녀를 안고 달래듯 말했다.
“율리아, 나는 어차피 죽어.”
“아니야. 방법이 있을 거예요. 분명 다른 방법이…….”
“잘 들어. 내가 이걸 삼키고 나면, 바로 내 심장을 찔러.”
율리아가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싫어요!”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야. 약속했잖아. 너를 지킬 거라고.”
“싫어요…….”
“율리아, 내가 맹세를 지킬 수 있게 해 줘.”
그가 불가능한 걸 자꾸 요구했다.
아홉 번의 삶을 거쳐 마침내 찾은 사랑. 첫 번째의 율리아가 사랑이라 착각했던 건 동경이었고, 그 후 몇 번이나 죽음을 반복한 뒤에야 그가 진짜 사랑임을 알았다.
세상의 많은 시인은 갖가지 언어로 사랑을 노래했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어떻게든 정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였고, 누구에게나 다른 형태로 찾아오는 숙명이었다.
율리아는 그에게서 이런 사랑을 처음 배웠다.
말이나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랑. 흔한 고백으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
매일 더 깊은 마음으로 상대에게 다가가고, 매일 더 진한 색으로 물들어 가는 그런 사랑.
당신이 죽으면 나도 죽어요.
율리아는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죽지도 말고, 그걸 삼키지도 말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카루스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하.”
반쯤 일어선 채 두 사람을 바라보던 크세노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카루스의 입에 보석이 닿았다.
피처럼 불길한 붉음. 붉은 산의 다이아몬드는 그가 입을 벌리자마자 물처럼 형태를 잃고 그에게 스며들었다.
붉음이 안개처럼 흩어져 그의 입으로, 가슴으로, 영혼으로 빨려 들어갔다.
타는 듯 뜨거운 열기와 짜릿한 쾌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카루스는 이 보석의 이름이 왜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인지 절절히 깨달았다.
한 쌍의 저주가 마침내 진짜 주인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