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5-2화 (281/319)

51. 리바이어던

두 번째 전투를 앞두고 르세라 전체가 긴장감에 물들었다.

도시를 지키는 병사들은 비장하게 마음을 다지고, 시민들은 덧문 위에 잠금쇠를 하나씩 더 달거나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짐을 꾸렸다.

제이비온의 가문에서 보낸 지원 병력이 르세라에 들어오던 날, 공교롭게도 위레우스의 후견인이 어마어마한 물량의 보급품을 보내 왔다.

크세노 황제는 두 번째 전투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르세라를 함락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쪽에도 그를 따르는 자들이 속속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프랑크 후작이 며칠 새 해쓱해진 얼굴로 말했다.

“차라리 우리가 먼저 칩시다.”

회의실에 모여 있던 귀족들이 아연실색해 그를 바라보았다.

데네브라와 후계자의 편에 서긴 했어도, 황제를 먼저 공격한다는 건 보통 배짱 있는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프랑크 후작이 그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황제의 정복군을 이길 수 있습니까? 그들을 상대해 본 적이 있습니까? 뒤에서 보호받는 게 아니라, 앞에서 무기를 맞대 본 적이 있냐는 말입니다.”

“있을 리가 있겠소?”

“나도 그렇습니다.”

후작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들은 지난 이십여 년간 셀 수 없이 많은 전장을 거쳐 왔습니다. 바이칸 최고의 전쟁 전문가는 모두 정복군에 있지요. 우리가 이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게 뭡니까.”

“그들과 싸우지 않는 것이지요.”

정복군에 대해 말하는 그에게서 깊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후작, 정복군은 이미 출발했을 겁니다. 아마 전속력으로 황제에게 오고 있겠지요.”

“그러니까 지금,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황제를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황비와 후계자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드는 건 반역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소. 하지만 황제를 죽이려고 무기를 드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지. 후작, 우리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제 와 물러서겠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가문과 병사들에게까지 전부 목숨을 걸라는 것은…….”

“하면 무슨 뾰족한 수가 있다고!”

회의는 밤새 이어졌지만 이렇다 할 계책은 없었다.

첫 번째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었으면 진작 와해 되었을 무리라고, 프랑크 후작이 한탄을 내뱉었다.

그 시각 크세노 황제는 르세라 인근 내륙 지도를 보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서 있던 그가 커다란 지도 주위를 천천히 거닐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그를 따르는 귀족들은 말 한마디 꺼내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수도에서 르세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을 눈으로 훑은 크세노가 한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곤 한 귀족의 어깨너머에서 한쪽 팔을 쑥 내밀어 지도의 어느 한 점을 가리켰다.

“여기.”

황제가 제 어깨너머에서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귀족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가 좋겠다.”

크세노가 가리킨 곳은 첫 번째 전투에서 그들이 크게 패배한 해안가 고지대였다.

“폐하, 그곳은…….”

“알아. 하지만 봐라. 여기보다 지형적으로 유리한 곳은 없단 말이다. 첫 번째 전투에서 너희가 진 건 데네브라의 지원군이 도착할 걸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잖아.”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크세노와 더불어 몇 번의 정복 전쟁을 치렀던 한 귀족이 그의 말에 동조하며 나섰다.

“우리에게 유리한 장소가 버젓이 있는데 한 번 패배했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요. 그때처럼 허를 찔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지원군이 또 있다면 정찰대를 조직해 미리 알아보면 된다.

“그들은 반역자입니다. 인근 영지에 금족령을 내리시고, 어기는 자는 모두 단두대로 보낸다고 엄포를 놓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크세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한쪽 손을 대충 휘젓자,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황제의 사자가 금족령에 대한 명령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크세노가 다시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회의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사자처럼 어슬렁거리는 그에게 귀족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놈들은 선공을 택할 거야.”

“예?”

“정복군이 오기 전에 나를 죽이려고 하겠지.”

크세노의 목소리에 약간의 웃음기가 섞였다. 귀족들은 황제 폐하께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으나, 머리로는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방어라면 이쪽이 유리합니다. 르세라엔 변변찮은 성벽조차 없지만, 이곳엔 성벽과 망루는 물론이요, 수성 병기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방어전은 안 돼.”

“예?”

“반역을 저지른 건 저들이다. 우리는 응징을 해야 해. 성에 갇혀 방어에 전전하는 모양새를 보였다가는 적군의 사기만 높아질 뿐이야. 저쪽에 가담하는 반역자만 늘어나겠지.”

“하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적이 선공을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먼저 쳐야지.”

크세노는 율리아를 생각했다.

내가 너라면 어떻게 할까. 율리아 아르테, 내가 너라면.

판을 통제하는 힘은 선수 치는 자에게 있다. 선공은 언제나 많은 이득을 가져다준다. 준비된 자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내가 공격할 테니, 네가 막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냐고 물었지.

“오늘 밤 기습하겠다.”

율리아, 나는 네가 궁금해 미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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