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성장기엔 부모님께 순종하며 자랐고, 청년기엔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우느라 바빴다. 그런데 어른이라고 할 만한 나이가 되자마자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황제의 말도 듣지 않고, 부모의 말도 듣지 않았다.
“황제는 내가 금방 죽을 줄 알았을 거야. 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거고.”
“그때가 첫 시도였나 보네요.”
율리아가 가라앉은 눈을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크세노 황제는 카루스를 죽이려고 지금까지 수십 차례 갖은 수를 써 왔다. 어쩌면 기사였던 그를 바다로 내보낸 것 자체가 첫 시도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배를 타고 나가던 날에는 이런 다짐을 했어. 바다에서 자유자재로 수영할 수 있을 때까지 돌아오지 말아야겠다.”
“세상에.”
“두 번째 출항하던 날에는 이렇게 생각했지. 조타수의 기술을 배워야겠다. 세 번째는 항해사, 네 번째는 노예장, 다섯 번째는 …….”
그러다 마침내 어설프게나마 선장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카루스는 처음으로 선상 반란을 겪었다.
“멍청한 애송이가 함장이랍시고 나대는 게 어지간히 꼴 보기 싫었던 모양이지. 군인에게 선상 반란은 즉결 처형감이란 걸 알면서도 놈들은 집요하게 나를 노렸어.”
“그래도 살아남았잖아요.”
“다 죽였으니까.”
“혼자서요?”
“내 부하들이.”
지나치게 말이 없어 누구의 편인지 알 수 없었던 부하들이 그들을 모두 죽였다.
카루스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그만큼 경험이 많고, 그보다 충성스러운 사람들.
그들은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하나하나 색출해 모두 목을 자르고 바다에 던졌다. 배 위에선 모자 쓴 놈이 왕이라던 우스갯소리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카루스는 부하들에 의해 구해진 함장이었다.
난간에서 몸을 떼어 낸 그가 장작을 집어 들고 불 속에 던져 넣었다. 하나, 둘, 세 개. 순간적으로 잦아들었던 불이 다시 천천히 몸을 키웠다.
“나는 그들을 존경해.”
“리바이어던.”
“함대가 커지고 기사단의 수가 늘어감에 따라 황제의 견제가 심해졌어. 내 부모님은 무슨 생각인지 영지에 틀어박혀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고. 황제가 동북부 사막 경계에 그분들을 보냈어도…… 말없이 수긍하면서.”
“카루스 님.”
우습게도, 율리아는 황제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황제는 카루스가 언젠가는 자신을 등지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그가 멍청하고 충성스러운 기사였으면 좋았을 텐데, 겉으로만 고분고분한 척하는 반항아라는 걸 알았으니까.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적이 있다. 내 편이 될 가능성은 없는데 나보다 더 뛰어나 존재만으로도 위협이 될 때.
크세노 황제는 카루스를 죽이려 무던히 애썼다. 데네브라를 이용하기까지 했다.
“난 죽을 수 없었어. 그들에게 맹세했거든.”
카루스는 그를 살렸던 부하들에게 한 가지 맹세를 했다고 했다.
“바다 위에서는 절대 패배하지 않겠다고.”
그래야 그들에게 떳떳한 상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과분한 충성에 보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그에게 내보인 신뢰는 그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카루스의 시선이 바다로 향했다.
출렁이는 파도와 변덕스러운 바람이 부는 곳. 신화와 전설이 탄생하는 태곳적 요람.
“그래서 괴물이 되기로 했지.”
무혈 제독은 그렇게 탄생했다.
르세라에 병력이 추가됨에 따라 황제를 따르는 자들의 숫자도 늘어갔다. 크세노는 자리를 옮겨 첫 전투에서 패배한 영주의 성을 차지하고 그 안에서 명령을 내렸다.
황제군에 가담하는 자들은 대부분 그와 정복 전쟁을 함께했던 자들이거나, 혹은 얼마 후면 도착할 정복군의 실력을 믿는 자들이었다.
수도에서 출발한 정복군이 빠른 속도로 르세라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정복 황제 크세노의 상징이자,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전쟁 경험이 곧 삶의 궤적인 자들.
심지어 그들은 바이칸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군대였다.
정복군이 도착하는 날, 르세라는 흔적조차 남지 않고 짓밟힐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프랑크 후작과 데네브라의 친정 가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정복군이 도착하기 전에 황제를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