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7화 (271/319)

237화

“드릴 말씀이 있어요.”

“율리아.”

“어떤 국가는 동맹국에 한해선 이중 국적이 허용되는 사례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이중 작위도 가능하단 얘기겠네요?”

그녀는 이미 결심을 마친 뒤였다.

“전하, 저를 바이칸으로 보내 주세요.”

크세노를 무너뜨리고 데네브라가 섭정이 되면 오르테가는 바이칸의 보호 동맹국이 아니라 진짜 동맹국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율리아가 이중 국적을 갖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 * *

첫눈을 기념하려 즉흥적으로 모인 자리였는데, 율리아의 제국행에 대해 다투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바바슬로프는 자신이 율리아의 호위 기사가 되겠다며 자처했고, 샤트린은 자기도 율리아를 따라 바이칸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코코와 카루스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레위시아의 지원 요청에도 시종일관 묵묵부답이었다.

식사를 마친 율리아가 창가에 서서 눈 오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데네브라는 고립되었어요.”

계획했던 대로였다. 율리아는 데네브라가 오르테가에 발을 내렸던 그 순간 이 모든 걸 구상했다. 황비를 고립시키겠다는 말은 단순히 그녀를 왕비궁에 억류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고립. 바이칸과의 연결점을 전부 없애 버린 뒤에 율리아에게 의지하게 하는 것.

율리아의 시선이 멀리 왕비궁이 있는 방향을 향했다. 어두운 가운데 눈까지 내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데네브라가 자신처럼 눈 오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장담하기 어려웠어요. 운이 따랐다고 하는 편이 좋겠죠. 황비가 샤트린 전하를 죽이려 할 줄도 몰랐고, 블라이스가 그런 식으로 죽을 줄도 몰랐고, 크세노 황제가 나타날 줄도 몰랐으니까.”

샤트린이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난 그것도 다 네가 꾸민 일인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있나요. 어떤 일을 일어나게 만드는 것보다는 이미 일어난 일을 이용하는 편이 쉬우니까요.”

이번에는 레위시아가 물었다.

“그래서 바이칸에 가겠다고? 데네브라가 네게 의지하니까?”

“황비는 지금 꿈에 기대 있어요. 불안한 현실에서 도피하려면 성공한 미래를 반복해서 상상해야 하거든요.”

지금쯤 데네브라의 머릿속엔 섭정이 되어 바이칸을 호령하는 자신의 모습이 문신처럼 각인되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권력욕이 많았던 황비였다. 크세노가 데네브라를 선택한 것도 그래서였다고 들었다. 누구보다 권력자의 자리에 어울리는 여자여서.

카루스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말했다.

“크세노는 데네브라를 볼 때마다 멍청해서 사랑스럽다고 말하곤 했지.”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괜찮다. 그게 꿈인 줄 모를 때는 특히 더 괜찮다. 꿈에서 깨기 싫으면 계속 잠을 자면 된다. 선잠이 이어지더라도, 눈만 뜨지 않으면 된다.

데네브라는 지금까지 이 먼 적국에 저 혼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 왔다.

오직 율리아뿐이었다. 데네브라를 염려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율리아가 말했다.

“그 꿈에서 깨지 않게 해 줘야죠.”

그러려면 그녀가 바이칸에 가야 한다.

넓은 만찬 테이블 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더는 반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레위시아가 입술을 깨물자, 샤트린이 그를 흘깃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며 샤트린이 코코를 보채려는 찰나, 지금까지 별다른 말 없이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율리아를 보내야 해요.”

“코코!”

“호위 기사도 함께 보내고요.”

호위 기사 하나만으론 부족하다. 기사단을 보내도 모자랐다. 바바슬로프는 목숨을 걸고 율리아를 지키겠다고 말했으나, 카루스가 그를 제지했다.

그러곤 코코와 레위시아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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