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후회하지 않아요
바닷물은 아직 미지근했다. 가을이긴 한데, 오르테가의 바닷물은 차가운 가을바람에 비해 미지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율리아는 저택 앞 백사장을 걷다가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돌아갈 때마다 그녀의 두 발이 모래 속을 파고들었다. 발바닥 밑에서 느껴지는 까슬까슬한 모래의 감촉이 간지러웠다.
“감기 걸려.”
카루스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드추바 앞바다에서 일어난 해전을 모두 승리를 이끈 그는 수백 명에 달하는 포로를 모두 레위시아에게 넘기고 오는 길이었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무슨.”
율리아는 바다에서 발을 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치마 아래 드러난 맨발에 카루스의 시선이 닿았다.
“바이칸에서 포로 협상을 위한 사절단을 보내겠다고 하더군.”
“의외네요. 어떻게든 전쟁으로 이어 갈 줄 알았는데.”
“북부에서 뼈아픈 패배를 했으니까.”
“알렉사가 그러는데, 무스빌리보다도 더 먼 서북부에 리바이어던 함대의 기지가 있대요.”
카루스는 대답하지 않고 율리아에게 다가왔다. 그가 파도의 경계까지 다가와 율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감기 걸린다니까.”
“안 추운데.”
“요즘 잠을 못 잔다면서.”
“누가 그래요?”
“트루디.”
율리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당돌한 하녀는 이제 카루스에게 고용주의 불면증까지 고자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냥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에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마음이 조급하니까, 잠이라도 조금 덜 자려고.”
“레위시아…… 국왕도 요즘 불면증이 있다고 하던데. 같이 의사한테 가서 진찰이라도 받아.”
“전하가요?”
“황제가 혼인 외교를 제안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
율리아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헛소문이라고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난처했다.
“누가 퍼뜨린 소문인지는 몰라도 그럴싸하네요. 만약 크세노 황제에게 성년이 된 딸이 있다면 여기 데려와서 왕비로 삼자고 했을지도 몰라요.”
“왕비?”
“말하자면, 인질이죠.”
“황제에겐 딸이 없어. 여동생도 없지. 아들은 몇 있지만 모두 아내가 아닌 여자들에게서 본 자식이라 별 볼 일 없는 사생아 취급을 받고 있고.”
그러니 정식 황자도, 황녀도 없다. 후계자도 없었다. 그런데도 크세노는 자식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데네브라 이외에 아내를 더 들이지도 않았다.
“딸도 없고 여동생도 없는 황제가 무슨 수로 혼인 외교를 제안하죠?”
“샤트린 공주를 황비로 맞아들인다거나.”
“공주 전하께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
“데네브라를 폐위하고 오르테가에 넘길 수도 있어.”
그건 좀 놀랄 일이었다. 깜짝 놀란 율리아가 정말이냐고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