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아칸더스
“당신이 제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어요.”
“내게 한 말이 거짓이라면 그 대가로 너는 열 번째 삶으로 가게 되겠지.”
율리아를 처음 만났던 날의 꿈을 꿨다.
카루스는 꿈속에서조차 한껏 자신을 비웃었다. 미친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빠지게 될 거면서 털을 잔뜩 세운 고양이처럼 경계하는 모습이라니.
어쩌면 그때의 자신은 율리아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물러섰고, 경계했다. 물론 아무 소용없었지만.
“미친놈.”
잠에서 깨자마자 자신을 향해 신랄한 욕설을 퍼부은 카루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침대 위에 그가 발로 차 버린 이불이 엉망으로 구겨져 있었다.
여기가 어디더라.
처음 보는 침실이었다. 잠시 혼란에 빠졌던 그가 제 몸에서 나는 술 냄새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고 보니 레위시아와 밤새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났다. 처음엔 코델리아 시녀장과 율리아, 샤트린이 함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레위시아와 단둘이었다.
“왕자궁이군.”
이제는 왕이 되었으니 왕궁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레위시아는 아직도 거처를 옮기지 않고 있었다. 죽은 왕의 침실에는 여전히 그의 어미가 살았다.
레위시아와 함께 밤새 술을 마시고 손님용 귀빈실에서 잠들었던 카루스는 늦은 오전, 정오가 다 된 시각이 되어서야 침대를 벗어났다.
욕실에서 간단히 씻고 거울을 보니 눈이 퀭한 사내가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또 한 번 욕설을 중얼거리곤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욕실에서 나온 카루스가 큰 소리로 바바슬로프를 불렀다.
“바바슬로프!”
“아이고오, 일찍도 일어나셨습니다아.”
“데네브라는?”
“아이고오, 일찍도 물어보십니다아.”
바바슬로프가 꼬일 대로 꼬인 말투로 그를 나무랐다. 왕자궁의 하녀들이 복도를 오가고 있어 대놓고 비난하지는 못하고,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어 불만을 표현했다.
카루스가 빠르게 셔츠를 꿰어 입었다.
“뭐가 문제냐.”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술입니까, 예? 전쟁터에서 대승을 거두고도 사령관은 방심하면 안 되는 법이라면서 맨 정신으로 버티던 분이…….”
“잔소리하려거든 나가.”
“영지에 있는 기사단 선배님들이 이 꼴을 보면 참 대견하다고 하겠습니다. 란케아의 가신들은 또 어떻고요? 두 분 부모님이야 자식한테 원체 관심이 없으니 그렇다 쳐도, 그분들은 카루스 님을 친자식보다 더 정성스레 보살폈는데…….”
“마실 수밖에 없었어.”
“왜요.”
“레위시아가 율리아를 바이칸으로 데려가면 날 죽여 버린다고 했거든.”
“예?”
“율리아를 데리고 멀리 도망가도 죽여 버린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