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사랑은 미친 새
만약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어떻게 할까. 오르테가로 돌아온 율리아는 자신의 아버지 주벤을 떠올렸다.
“다정하고 낭만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리 대단한 해적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넉살은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여러 번 배를 옮겨 다니면서도 딸을 키울 수 있었겠죠.”
율리아는 자신의 저택 응접실에 있었다. 날씨가 좋아 활짝 열어 놓은 창문에서 흰 커튼이 우아하게 휘날렸다.
코코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물었다.
“네 아버지가 아직도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뇨.”
율리아는 단호했다.
“저는 제 대적자가 누군지 몰라요. 아직은 그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 그런데…… 해적왕의 유서가 이런 식으로나마 우리 쪽에 흘러들어 왔다는 건, 그쪽이 꽤 근접한 곳까지 접근했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아버지 이름을 댄 거구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사람을 언급해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면서,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남겨 놓아 역으로 추적할 수 있게끔.
율리아는 오르테가로 돌아오자마자 편지를 썼다. 바이칸으로 떠난 알렉사와 맥스웰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 안엔 주벤 아르테를 찾는 자를 찾으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코코.”
“왜.”
“만약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저는 무엇이든 할 거예요.”
“그래야지.”
“그 대가가 죽음이라고 해도 기꺼이 치를 거고요.”
당연하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코코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화를 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참는 표정이 역력했다.
율리아가 그런 코코를 보면서 웃었다.
“카루스 님하고 똑같은 얼굴이네.”
“야!”
“그렇다고 덜컥 죽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제 마음의 각오가 그 정도라는 뜻이지.”
“죽는다는 소리 좀 하지 마. 너 때문에 진짜 내 수명이 줄겠어! 요즘 레위시아 님이 날이 갈수록 비련의 주인공처럼 청초해져서 가뜩이나 신경 쓰여 죽겠는데, 너까지 이럴 거야?”
“레위시아 님은 원래 비련의 주인공처럼 청초한 얼굴이었는데…….”
“이제 아예 연기까지 한다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무시무시한 왕궁에서 혼자 커야 했던 가엾은 어린 왕자 역할에 흠뻑 빠져서는, 귀족들 앞에서 틈만 나면 눈물을 글썽이는데……. 내가 진짜 속이 뒤집혀서! 토할 것 같았단 말이야.”
“잘하고 계시네요.”
율리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비련의 주인공처럼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역할이 어디 있느냐며, 가짜 눈물로라도 귀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건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코코가 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너흰 정말 못된 것만 닮았구나.”
“다 코코한테 배운 거예요.”
“지난 삶의 나는 얼마나 개새끼였던 거야.”
율리아는 지난 삶의 코코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이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보면서 내내 참았던 한마디를 했다.
“나 때문에 죽었어요.”
“…….”
“다음 삶의 나를 위해서 위험한 선택을 했거든요.”
“잘했네.”
“뭐라고요?”
“잘했다고. 가장 효율적이고 성공 가능성 많은 쪽에 전 재산을 걸었다는 거 아냐. 상인의 딸답네.”
코코가 당황하는 율리아를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너는 내가 너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서 죄책감에 빠져 있었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때의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걸 거야. 패배한 채 모두를 잃고 혼자 살아남아 봤자 아무 의미 없는 삶인데, 당연히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는 쪽에 걸어야지.”
“혼자 살아남아 봤자 아무 의미 없는 삶이라고요?”
“나한텐 내 사람들이 전부야. 재산이나 권력도 그 사람들을 위해 모으는 거고. 넌 내가 대단히 야망이 큰 사람인 줄 알았겠지만, 틀렸어. 나는 내가 안고 있는 사람들만 행복하면 족해. 하필이면 그 사람들이 왕족이거나 그만큼 대단한 사람들이라 더 큰 권력과 재산이 필요했을 뿐이야.”
지극히 이기적이지. 코코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아홉 번째라고 했지? 백 살까지 살라는 말은 안 해. 머리카락이 하얘지고 꼬부랑 할머니가 되도록 같이 살자는 말도 안 할 거야. 대신 이거 하나만 약속해.”
“뭔데요.”
“나보다 먼저 죽지 마.”
“코코!”
“그 꼴은 죽어도 못 볼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