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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화 (186/319)

164화

* * *

‘찾았다.’

맥스웰은 집요했다. 그는 바바슬로프와 함께 산맥을 넘은 뒤, 제국식 이름을 가진 상인과 그가 보낸 일꾼들이 지나간 곳을 이 잡듯이 뒤졌다.

바이칸의 국경 도시는 황제가 남부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계획도시였고, 다른 도시에 비해 병사의 비중이 높았다. 맥스웰은 그곳에서 잠도 거의 안 자고 며칠 동안 움직였다.

그렇게 고생한 끝에, 그는 마조람 후작 부인이 왕가의 후손을 숨겨 둔 장소를 마침내 찾아냈다.

“하.”

1왕자의 연인이었던 여자가 암염 광산 앞 건물 꼭대기 층에 감금된 채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곳은 소금을 가져가는 상인을 제외하면 외부인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어떡하지?”

감시하는 용병이 많았다. 후작 부인에게 고용된 자들일 것이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맥스웰에겐 바바슬로프와 그의 부하들이 있었다.

“작전이나 짜고 있을 시간은 없어. 그냥 치자.”

“나한테 맡겨.”

그들은 밤이 되자마자 움직였다.

맥스웰과 바바슬로프, 그의 부하들이 용병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광산 입구를 지키던 자들은 혼비백산해서 달아났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죽기 싫으면 꺼져!”

바바슬로프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는 카루스의 측근답게 난전에 강했다. 전쟁터 한복판에서도 사령관을 지키며 싸웠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큰소리쳤다.

갓 태어난 아기와 어미를 가둬놓고 인질 삼은 놈들 따위는 그에겐 쳐 죽여 마땅한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쁜 새끼들아! 정의의 철퇴를 맞아라!”

한 손엔 도끼, 한 손엔 철퇴를 든 그가 미친놈처럼 건물을 들쑤시는 동안 맥스웰이 여자와 아기를 찾았다.

“우리와 함께 가시죠.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시…… 싫어, 당신들이 누군지 알고 따라가라는 거예요?”

“여기 있으면 마조람 후작 부인에게 왕손만 빼앗기고 당신은 죽어요. 우리를 따라오면 왕족으로 살지는 못하겠지만 목숨은 보장해 드릴 겁니다.”

“당신이 누군데요?”

“율리아 아르테, 왕자궁의 수석 시녀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여자의 눈이 빠르게 흔들렸다.

왕자궁. 수석 시녀. 율리아 아르테. 욕심 많고 계산적인 여자인 만큼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기가 칭얼거리며 보채기 시작하자, 그 모든 망설임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후작 부인이 고용한 용병은 이들이 전부가 아니에요. 추적당할 거라고요.”

“산맥은 넘지 않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는데요?”

“배를 탈 거예요. 후작 부인이 절대 추적할 수 없도록.”

맥스웰이 손을 내밀었다. 여자가 입술을 꽉 깨물고 그의 품에 아기를 맡겼다. 그러곤 그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크리스틴 마조람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국왕과 샤트린 공주의 입장은 단호했다. 크리스틴이 왕자궁을 음해하기 위해 왕족을 대상으로 독살을 사주한 대역 죄인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참형에 처할 일이었다. 크리스틴이 마조람의 하나뿐인 후계자라고 해도 피할 수 없었다.

반면 마조람 후작은 왕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고 격렬하게 반발했다.

크리스틴은 가엾게도 이용당했을 뿐이라며, 고문에 굴복한 궁내부 관리의 진술을 제외하면 그들에게 무슨 증거가 있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궁내부 관리가 트루디에게 건넨 진짜 독약과 금화가 공개되었다.

국왕은 그의 사무실에 있던 해적의 금화가 바로 전임 상인연합 대표가 전임 남부 함대 사령관과 함께 암암리에 유통하던 검은돈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해적이 약탈로 번 돈을 귀족이 세탁해 주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 주범이 마조람 후작이라고 몰아붙였다.

“마조람 후작, 입이 있으면 해명해 보란 말이다!”

국왕의 고함이 본궁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반역을 저지르려거든 최소한 더 나은 세상을 위했어야지! 그대는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덩치를 키운 짐승에 불과하잖은가!”

“전하!”

“샤트린을 죽여서 뭘 얻으려고 했는지 바른대로 고하지 않으면 그대의 딸을 왕족 시해죄로 참형에 처하겠다!”

“그 궁내부 관리가 꾸며 낸 말일뿐입니다! 모함을 당하고 있는 건 오히려 이쪽이란 말입니다!”

“닥쳐라!”

“전하야말로 왜 이러십니까! 왕가의 수호자였던 마조람을 배신하고 무너뜨리려는 이유가 무엇이냔 말입니다!”

“네놈이 반역을 저지르려 하니까!”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설전이 이어졌다.

회의장을 가득 메운 중앙 귀족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숙덕거렸다. 왕가의 원로들도 마찬가지였다.

“저희가 백성의 고혈을 빨아 배를 불렸다면, 전하께서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가 검은돈을 유통하며 범죄자들과 내통했다면, 그 또한 왕가의 묵인 아래 저지른 짓이었겠지요!”

“후작, 지금 감히 왕을 위협하는 것이냐?”

“보십시오! 제 딸은 전하와 저를 이간질하려는 간특한 자들에 의해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쓴 것입니다! 현실을 좀 보세요! 놀아나지 말란 말입니다!”

“닥쳐라, 네 이놈!”

국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후작을 노려보았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귀족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샤트린은 침통한 심정으로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마조람 후작의 말이 옳았다. 그는 범죄자였으나, 그 모든 죄는 국왕의 조력과 묵인 아래 행해졌다.

왕은 절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더욱 크게 화를 내고, 더욱 거칠게 반응하리라.

후작은 말하고 있었다.

마조람을 배신하면 공범인 국왕도 함께 나락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마조람 후작이 회의장에서 국왕을 상대로 생존을 건 싸움을 하고 있을 때, 후작 부인은 왕가의 원로들이 머무는 별궁을 찾았다.

그곳엔 병이 깊어 남 앞에 나설 수 없게 된 왕비가 4왕자와 함께 칩거하고 있었다. 왕비의 병세는 의사들의 노력과 시녀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순조롭게 회복 중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마조람 후작 부인께서…….”

후작가에 원한이 깊었던 왕비는 당연히 후작 부인을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후작 부인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별궁엔 없었다.

“왕비 전하.”

후작 부인이 왕비를 향해 우아하게 절했다.

“긴한 부탁이 있어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왕비는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후작 부인이 어떤 말로 자신을 회유해도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후작 부인은 왕비를 회유하거나 뭔가를 부탁하기 위해 별궁을 찾은 게 아니었다.

“크리스틴을 석방해 주십시오.”

협박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왕비께서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해 4왕자를 낳은 뒤 모두를 속인 채 왕족으로 키우고 있음을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입니다.”

왕비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후작 부인을 노려보았다.

“증거가 불충분하여 크리스틴 마조람이 저지른 짓임을 단정 지을 수 없다고, 그렇게 발표해 주세요. 궁내부 관리는 저희 쪽에서 처리할 것입니다.”

미친 척도 한계였다. 왕비도 후작 부인도 알고 있었다. 더는 물러설 데가 없다는 것을.

“그 대신 이렇게 하지요.”

후작 부인의 두 눈에서 번쩍거리는 안광이 흘러나왔다.

“마조람은 4왕자를 다음 대의 왕좌에 앉혀 드릴 것입니다.”

혈통에 상관없이, 4왕자를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

이건 독이 든 성배였다. 왕비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후작 부인의 말대로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왕비가 떨리는 손을 움켜쥐고 말했다.

“그럼 율리아 아르테를 죽여 주세요.”

후작 부인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왕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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