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독을 삼키고 쓰러졌다던 샤트린이 집무실에 나타났을 때, 국왕은 궁내부 관리의 사무실 금고에서 찾았다는 해적의 금화를 손에 쥐고 있었다.
“샤트린?”
놀란 국왕이 서둘러 딸을 향해 달려왔다. 샤트린은 그런 아버지를 향해 다짜고짜 말했다.
“죄송해요, 아버지.”
“뭐가 말이냐?”
“제가 먹은 건 독을 강제로 몸에서 빼내는 해독제였어요. 증상이 비슷해서 모두 착각했던 거고.”
“뭐? 그럼 그 시녀의 말이 사실이었어? 도대체…….”
샤트린은 율리아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국왕에게 그대로 전했다.
“해적의 금화가 왕족을 해치는 일에 이용되고 있다는 걸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계책이었어요. 크리스틴 마조람이 저지른 일이지만, 첩자인 궁내부 관리가 실토하지 않는 이상 이번에도 심증만 남을 거예요.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해요.”
궁내부 관리가 실토한다 해도 시간이 걸린다. 그는 주인을 배신하지 않으려 애쓸 테고, 심문관을 고문관으로 교체해야 하리라.
“그렇다 해도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벌였단 말이냐!”
“마조람 후작을 끌어내리려고요.”
“샤트린…….”
“누군가 왕위 후계자를 독살하려 한 정황이 포착되었고, 그자가 해적의 금화를 공급받고 있었다고 발표하세요.”
샤트린을 꾸짖으려던 국왕이 멈칫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졌다.
“아버지.”
“하, 그래. 무슨 말인지 안다.”
해적의 금화를 유통하는 자. 그자가 범인이다. 그렇게 발표하고, 병사를 풀어 마조람 후작가를 압박한다.
하지만 국왕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불가능해. 오르테가의 병사를 모두 동원한다고 해도, 마조람 후작이 어디에 해적의 금화를 숨겨 두고 있는지 어떻게 찾아낸단 말이냐.”
“제가 알아요.”
“뭐?”
“제가…… 아니, 율리아 아르테가 알아요.”
율리아는 샤트린에게 마조람 후작이 해적의 금화를 어디에 보관하는지 이미 알려 준 상태였다.
“마조람 후작의 창고를 뒤집어 해적의 금화를 확보하고, 그가 달아날 수 없도록 손발을 묶어 버리는 거예요. 그런 뒤에 궁내부 관리를 고문하면…….”
“크리스틴 마조람이 독살을 사주했다는 것까지 밝힐 수 있겠지.”
국왕이 머리를 짚었다.
어지러웠다.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누가 누구에게 저지른 일인지 도무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국왕보다는 나았지만, 샤트린의 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모하게 일을 벌인 건 크리스틴 마조람이었다. 한데 그것마저 율리아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그동안 누구도 접근할 수 없었던 마조람의 연못에 미끼가 가득했다. 전부 율리아가 던져 놓은 것들이었다. 크리스틴은 그게 미끼인 줄도 모르고 덥석 물었을 것이다.
율리아 아르테. 왕자궁의 수석 시녀.
독을 잘 쓴다던 후작 부인은 알고 있을까. 크리스틴은 독사가 되지 못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마조람의 악취가 사라진 자리에 율리아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