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2화 (132/319)

23. 나쁜 시녀들

코코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궁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바깥에선 남부 함대가 해적을 물리치더니 드추바 섬에 주둔지를 짓기 시작했고, 마조람 후작은 갑작스러운 습격에 두문불출하며 가신들을 불러 모았다.

블라이스는 국왕을 찾아가 해방군을 이대로 둘 거냐며, 만약 저들이 하나의 흐름이 된다면 자신은 황제에게 이 일을 보고할 수밖에 없다고 구렁이 같은 협박을 일삼았다.

“최적의 시기인 것 같아.”

코코가 말했다.

“영웅에게 필요한 건 난세이고, 강한 왕에게 필요한 건 반역자들이지. 성녀는 재해 앞에서나 기적을 논하기 마련이고.”

율리아도 동의했다.

“맞아요.”

“왕궁을 장악할 때가 됐어.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시녀, 하녀, 하인과 시종들, 요리사와 정원사, 하다못해 심부름꾼과 마부까지. 왕궁 안엔 아주 많은 사람이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왕자궁을 왕궁의 중심으로 만들자. 친제국파니 반제국파니 이런 것들하고 싸우기 전에, 왕궁 안에 있는 사람들부터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해.”

“어떻게요?”

알렉사가 물었다. 그러자 코코가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느냐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금화를 풀어야지.”

코코는 돈이 많았다. 레위시아도 샤트린만큼은 아니지만 부유한 편이었다.

율리아도 후원자인 카루스가 보내 준 해적의 금화 덕분에 돈이 많았다. 심지어 그는 전임 사령관이 숨겨 두었던 어마어마한 양의 비자금을 율리아에게 마음껏 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을 도모할 때는 현찰이 필요한 법이죠.”

율리아가 그렇게 말하자, 코코가 손뼉을 짝 치며 웃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왕자궁의 시녀장을 뽑는 거야.”

코코의 목소리에 음률이 실렸다. 그녀는 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율리아와 알렉사를 차례대로 가리키며 말했다.

“율리아는 아직 시녀장이 될 수 없어. 왕궁 전체가 네 신분을 물고 늘어질 거야. 왕실 법도에 시녀장의 자격 조건이라는 권고 사항이 있기도 하거니와.”

알렉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뭡니까?”

“배우자가 있는 왕족의 경우엔 그 배우자의 가문에서 발탁, 미혼인 경우엔 부모 중 한 사람이 추천하고, 특히 미혼인 왕위 후계자의 경우에는 왕비가 지정하도록 권고하고 있지.”

“권고.”

알렉사가 ‘권고’라는 말을 강조했다. 코코가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아무튼 율리아가 시녀장이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알렉사 너도 마찬가지고.”

“저는 못합니다. 왕자궁 관리는 코코가 다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하겠다는 거야.”

코코는 이 일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율리아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레위시아 님이 직접 임명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해요. 궁내부는 반대할 거고, 왕비 전하는 화낼 거고, 원로들은 언짢아하겠죠.”

“레위시아 님이 직접 임명할 거야.”

“다른 건 다 물리칠 수 있다고 쳐요. 하지만 왕비 전하께서 가만히 있을지…….”

시녀장이란 직책은 왕족의 최측근인 동시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고, 왕궁 안에서만은 왕족의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는 막강한 자리였다.

그래서 왕족들은 시녀장을 뽑을 때, 아주 오랫동안 신뢰를 쌓은 자에게만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미혼인 왕족의 시녀장은 주로 유모나 가정 교사, 부모의 측근 시녀 중에 한 사람으로 뽑았다.

미혼인 레위시아가 시녀장을 뽑으려면 왕비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는 게 왕실 법도였다.

특히 레위시아의 친모가 왕의 애첩으로 평생토록 왕비의 눈엣가시였다는 점에서, 그는 왕비에게 잘 보이는 편이 좋았다.

그러나 코코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왕비 전하는 우리 편이 되지 않아.”

아마 하늘이 무너져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왕비는 레위시아의 어머니를 증오했고, 레위시아를 미워한 나머지, 그가 성장하는 내내 무관심 속에 버려지도록 유도했다.

1왕자가 죽었으니 이제 왕비의 권력은 샤트린과 4왕자에게 향할 것이다.

“왕궁엔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뿐이야.”

그걸 항상 명심해. 코코가 율리아와 알렉사에게 말했다.

“그리고 난 궁내부 놈들부터 조질 생각이고.”

맺힌 게 많거든. 코코가 율리아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날 오후, 2왕자 레위시아 오르테가가 그의 측근 시녀인 코델리아 힌치를 왕자궁의 시녀장으로 임명했다.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파격적인 인사였다. 코코는 시녀장이 되기엔 너무 젊었고, 미혼이었으며, 힌치 백작의 외동딸임과 동시에, 추천장 하나 없이 스스로 시녀장이 되겠다며 왕자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 * *

왕궁엔 비밀이 없다.

율리아는 코코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왕궁 안엔 벽이나 서랍, 계단 밑에도 듣는 귀가 있다고 했다.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라는 말은 ‘어서 빨리 왕궁 사람들에게 퍼뜨려 줘.’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코코가 왕자궁의 시녀장이 되었다는 소식은 단 하루 만에 왕궁 전체에 퍼졌다.

악마 시녀라 불리던 본인의 유명세에 상인연합 대표가 된 힌치 백작의 위명이 더해지면서, 코코를 주목하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최근 경연에서 레위시아 왕자가 샤트린 공주에게 승리를 거두었기에, 날이 갈수록 왕자궁을 감시하는 눈이 많아지고 있었다.

“우리 궁에 필요한 건 다정한 시녀장이 아니야.”

너그러운 시녀장도 아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시녀장도 아니다.

“권력에 미친 시녀장이지.”

악역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해 주겠다.

코코가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그녀는 앙칼진 고양이처럼 보였다. 붉은 머리카락이 동글동글 말려 귀밑에서 흔들리고, 살짝 올라간 눈꼬리엔 연한 분홍색 화장을 했다.

소매를 둥글게 부풀린 드레스는 귀엽고 발랄한 느낌이었다. 무릎 언저리에서 흔들리는 치맛단엔 자잘한 레이스가 장식되어 있었다.

“이대론 안 돼.”

코코가 자신의 거대한 드레스 룸을 열었다. 옷과 보석에 욕심이 많은 그녀인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드레스가 펼쳐졌다.

“찾아. 권력에 미친 코델리아 힌치가 왕자를 등에 업고 왕자궁을 장악하려 할 때 입을 것 같은 옷.”

코코의 전속 하녀들이 비장한 얼굴을 하고 드레스 룸 안으로 들어가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율리아가 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궁내부를 상대할 때는 보이는 게 절반이야. 그놈들은 일단 눈으로 봤을 때 만만해 보이지 않으면 잘 싸우려 들지 않거든. 가뜩이나 할 일이 산더미인데, 분란까지 만들고 싶지 않을 거야.”

율리아는 경연장에서 봤던 궁내부 대신의 아들을 떠올렸다. 아버지인 궁내부 대신을 닮아 제법 잘생긴 사내였다.

“궁내부에서 거절하진 않겠죠?”

“이론적으론 불가능해. 왕족이 자신의 궁을 관리할 시녀장을 직접 임명하겠다는데, 궁내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지.”

물론 딴지를 걸긴 할 것이다. 다른 왕족이나 원로들을 통해서.

“왕비 전하께 달려가겠네요.”

율리아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코코도 이 싸움의 마지막 상대가 결국 왕비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코코 아가씨, 이 옷이 좋겠어요!”

하녀들이 드레스 하나를 품에 안고 나왔다. 크림색 원단에 진한 주홍색 안감을 덧댄 드레스였다. 가만히 서 있으면 우아한 시녀인데, 움직일 때마다 강렬한 주홍색 안감이 튀어나와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기다 번쩍거리는 자수 장식이 어깨와 소매, 허리부터 밑단에 이르고 있었다. 지나치게 요란하지는 않되, 시녀가 입을 수 있는 최대한의 화려함을 드러낸 옷이었다.

코코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궁내부에 가야겠다.”

그 자식들이랑은 언젠가 꼭 한 번 제대로 붙어 보고 싶었다며, 코코가 입술을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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