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106/319)

95화

산책하듯 느릿느릿 걷던 카루스와 레위시아가 시녀들이 기다리는 마차 앞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훨씬 편하게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율리아는 두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다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볍게 웃을 뿐, 그녀에게 대답해 주지 않았다.

식사는 밖에서 하게 되었다. 왕자궁이나 카루스의 관저에서 공개적으로 만나기엔 아직 이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은밀하고 고급스러운 식당을 찾아 들어간 그들은 커다랗고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어색했던 분위기도 식사가 시작되자 조금씩 누그러졌다.

코코는 카루스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두 사람 무슨 관계죠? 소문 자자한 무혈 제독이 우리 율리아한테 약점이라도 잡힌 건 아니겠죠?”

“무슨 관계냐면…….”

카루스가 율리아를 힐긋 쳐다보았다.

“사적인 관계.”

코코가 저게 뭔 소리냐고 율리아에게 물었다. 율리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럼 공적인 관계겠냐고 받아쳤다.

코코는 카루스를 끊임없이 시험했고, 알렉사는 카루스와 대련을 하고 싶어 했다. 레위시아는 그런 두 사람을 말리면서 식사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율리아는 이 모든 게 신기하고 이상했다.

아홉 번의 삶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먹고, 대화하는 건.

가슴이 솜으로 가득 차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가도 금세 텅 비어 공허해졌다.

코코가 웃을 때마다, 알렉사가 음식을 덜어 주거나 레위시아가 장난을 칠 때마다, 카루스가 그녀에게 지그시 시선을 맞출 때마다.

‘이번에도 다시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속 떠올리게 되었다. 이 사람들을 또 이렇게 만날 수 있을까. 똑같이 살 수 있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을까.

‘나도 다 잊었으면 좋았을걸.’

실수를 반복하고 똑같은 불행을 이어 가게 되더라도 다 잊어버리면 편했을 텐데. 그럼 이렇게 당신들을 보면서 제발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기도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율리아는 깨닫지 못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늘 죽음을 향해 걷던 그녀가 이날 처음으로 삶을 돌아보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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