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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101/319)

91화

“행사장에서 발견했던 석궁은 전부 오르테가산으로, 정교하게 개조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친한 기사님한테 부탁해서 저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어땠어요?”

율리아가 물었다. 알렉사는 코코가 보고 있던 책에서 석궁과 화살을 그려 놓은 페이지를 찾아 손가락으로 덧그리며 설명했다.

“화살은 무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조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석궁은 아주 정교했어요. 가난한 용병들은 빼앗길까 무서워서 들고 다니지도 못할 만큼.”

“전문가가 개조했다는 말이네요.”

“전쟁터에서 많이 봤습니다.”

“바이칸의 전쟁터요?”

“기습이나 암살, 그림자 부대가 주로 씁니다. 누구 짓인지 알 수 없도록 국가와 소속을 지운 자들이 그런 걸 써요. 오르테가의 해방군이 그 무기를 손에 넣은 거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 둬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말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새초롬한 얼굴로 율리아와 알렉사의 대화를 듣던 코코가 책에 그려진 석궁을 손톱으로 콱 찍었다. 그러곤 율리아에게 말했다.

“네 잘난 후원자님한테 가서 물어보지 그러니. 이게 바이칸의 전쟁터에서 자주 쓰이던 무기라면 카루스 란케아보다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안 그래?”

“카루스 님께 물어보라고요?”

“그 남자는 바이칸의 전쟁 영웅이야. 황제의 두 번째 기사라는 말이 어떤 뜻인 줄 알아? 전시에 황제가 없을 때, 군사적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두 번째 기사라는 뜻이야. 첫 번째 기사는 황제의 곁을 떠나지 않으니, 실제로 전쟁터에서 황제를 대신해 왔던 건 그 남자라고.”

어쩐지 평소보다 더 뾰족하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무혈 제독이라는 말도 기분 나빠. 너무 강해서 피 흘린 적이 없다는 거야, 아니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거야? 인간이 좀 인간다운 면도 있고 그래야지. 마조람을 공격한 건 잘한 일이지만, 그 남자는 우리 편이 아니야. 황제의 수족이지.”

코코가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처음엔 카루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을 가지고 비판하더니, 나중엔 말도 안 되는 것들로 트집을 잡았다.

“의도가 수상해. 생긴 것도 수상해. 목소리는 안 들어 봐서 모르겠지만, 분명 수상하겠지. 몸에서 수상한 냄새가 날 수도 있어. 넌 도대체 그 남자의 뭘 믿고…… 어휴!”

율리아는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알렉사가 코코에게 대놓고 물었다.

“코코, 질투합니까?”

“뭐야? 질투? 너 미쳤어?”

“아무리 봐도 질투하는 것 같은데요.”

“내가 왜 그 남자를 질투해? 난 담백하고 건조한 사람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담백하고 건조하다니…… 코코, 자기객관화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야!”

“율리아가 우리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질투 난다고 솔직하게 말하세요.”

“싫어!”

코코가 꽥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렉사는 코코가 아무리 큰 소리로 윽박질러도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코코가 왜 이렇게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지, 그걸 의아해했다.

아옹다옹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슬그머니 눈치를 보던 율리아가 코코에게 속삭였다.

“질투했어요?”

“이게 진짜. 너까지…….”

“코코가 반대한다면 평생 혼자 살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말은 율리아가 했는데 알렉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코코는 자신이 화를 내건 소리를 지르건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는 두 사람을 보며, 이게 바로 나이를 먹는 기분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알렉사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레위시아 님은 좀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국왕께서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져 몸져누우셨잖아요. 왕자님은 샤트린 전하와 함께 조문 온 귀족들을 상대하고 계시죠.”

“귀족들 말입니까?”

“네, 지금 오르테가에서 제일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들일걸요.”

1왕자를 잃은 건 슬픈 일이지만 어쨌거나 산 사람은 자신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왕궁 안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일은 해방군에 대한 게 아니라, 마조람 후작이 이제는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였다.

“코코, 어떻게 생각해요?”

“뭘.”

“마조람 후작이요.”

“후작은 샤트린 공주를 지지하지 않을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율리아가 코코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님의 세력은 너무 오랫동안 후작의 손을 타지 않았어요. 이제는 그가 세뇌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죠.”

“왕궁에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왕자가 하나 더 있잖아. 그 쉬운 선택지를 놔두고 샤트린처럼 다루기 어려운 왕족을 택할 리가 없지.”

마조람은 4왕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 순간 세 명의 시녀는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제는 레위시아 왕자도 샤트린 공주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다른 왕족의 그늘에 숨어 안전을 도모하는 게 아니라, 무대 위로 올라가 그 역시 훌륭한 왕위 후계자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카루스 란케아의 도움이 절실했다.

마조람과 사이가 틀어진 지금, 국왕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카루스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짜증 나.”

코코가 중얼거렸다. 알렉사는 그게 바로 질투하는 거라고 중얼거렸다가 찰싹 등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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