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완벽한 작전이었다. 황제가 밀명을 내렸다는 사실을 어렵게 알아냈고, 두 개의 덫을 놓았다. 블라이스는 그 대단한 무혈 제독도 이번만은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카루스 란케아가 그 완벽한 덫을 피해 버렸다. 그것도 아주 유유히, 샛길로 빠져나가 사라져 버렸다. 정보가 미리 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데네브라는 작전을 짠 블라이스가 기절할 때까지 채찍을 휘둘렀다. 흉터 위에 상처가 쌓였다. 그는 맞으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카루스는 어떻게 알았을까. 누가 밀고했을까. 조사해 봐야만 했다.
그래서 티타니아 산맥을 이 잡듯이 뒤졌다. 보부상이란 보부상은 다 잡아다가 캐물었다. 떠돌이 용병도, 약초꾼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율리아 아르테였어.”
작은 산골 마을, 약초꾼 두 명이 블라이스에게 다가와 반지를 하나 내밀었다. 팔고 싶은데 얼마나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아주 예쁘고, 비싸 보이는 반지였다.
블라이스는 그들에게 반지의 값을 다섯 배 쳐 주는 대가로 그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흔적을 없애기 위해 죽여 버리긴 했지만, 그들은 블라이스가 원했던 진실을 알려 주었다.
‘어떤 여자’가 카루스를 살렸다.
데네브라는 그를 죽이려고 했는데, 율리아가 살렸다.
“하하하하하!”
아랫배에서부터 웃음이 솟구쳤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산다는 건 참 재밌는 거야.”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래서 완벽한 작전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 운명의 장난. 이딴 것들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으니 불완전한 인간이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돌려줄까.
블라이스가 만지작거리던 반지를 다시 새끼손가락에 끼웠다.
“아니.”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심장이 바짝 조여 더운 피가 돌았다. 체온이 올라 등에 땀이 배어나올 지경이었다. 심장이 조이면서 숨이 가빠지고, 숨을 고르다 보니 자꾸 코로 웃게 되었다.
이 여자, 뭔지 모르겠다.
율리아 아르테는 완성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류투성이였다. 치밀한 것 같으면서도 충동적이었고, 차분한 것 같은데 격정적이었다.
그리고 블라이스는 불확실하고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것들을 사랑하는 남자였다.
이건 운명이 분명하다.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
율리아가 블라이스를 만나고 돌아온 다음 날, 특별 사면이 발표되었다. 바이칸 제국의 사절을 욕보인 오르테가의 해방군을 너그러이 용서한다는 내용이었다.
국왕은 블라이스 백작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오르테가의 백성들도 황제 폐하의 아량에 탄복할 거라는 말도 함께였다.
감옥에 갇혀 있던 해방군은 수척해진 몰골로 왕궁을 나섰다. 그들이 풀려난 시각은 자정을 지난 새벽이었다. 인적이 드물었다. 패배자가 되어 캄캄한 밤거리를 비틀거리며 걷는 그들에게 누군가의 시선이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