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 반지 내 거였어요
남부 함대 출정식 날짜가 정해졌다. 그동안 카루스와의 만남을 최대한 미뤄 왔던 블라이스도 더는 게으름을 부릴 수 없게 되었다.
“카루스 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오르테가의 국왕을 무릎 꿇리고도 여유롭기 짝이 없던 블라이스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감이 깃들었다. 천적, 혹은 감당할 수 없는 맹수를 만났을 때 들개가 보이는 긴장감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오랜만입니다.”
카루스는 블라이스가 건넨 인사에 대꾸하지 않았다. 커다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그를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남부 함대 관저에 있는 사령관 집무실엔 창문이 많았다. 남쪽과 동쪽에 거대한 창문과 테라스가 있어, 바다가 훤히 보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닷바람에 짠 내가 섞여 있고, 조용한 밤에는 파도 소리가 요란했다.
블라이스는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그 위에 서 있었다. 그가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카루스를 바라보자, 복도에 있던 바바슬로프가 입술로 욕을 했다. 아마도 ‘재수 없는 새끼’라고 한 것 같았다.
카루스가 고갯짓으로 집무실 안쪽을 가리켰다.
“앉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블라이스는 잘도 웃었다. 그의 얼굴에 가식적인 미소가 가득했다.
“황비의 번견이 남부 관저엔 무슨 일이지?”
“저는 번견이 아닙니다. 들개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사냥개죠.”
블라이스는 카루스가 그를 개라고 지칭해도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들개라고 부르며 그의 말에 일부 동조하기까지 했다.
“용건만 말하고 돌아가.”
카루스는 블라이스와 길게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언젠가 데네브라 황비와 적대하게 될 것이다.
그때도 블라이스가 데네브라의 충견 노릇을 하고 있다면 가장 먼저 그를 없애야만 한다.
카루스의 경고에도 블라이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황비께서 무척 그리워하십니다. 그분이 생각보다 여린 사람이라는 거, 카루스 님은 아실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