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2화 (87/319)

14. 동류

블라이스 백작이 오르테가에 온 뒤부터 국왕은 카루스에게 자주 연락을 넣었다. 주로 가벼운 안부 인사를 전하는 정도에 그쳤으나, 때로는 그보다 은밀한 만남에 무게를 두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카루스는 의외로 여우 같은 구석이 있었다. 국왕의 심부름꾼이 관저에 올 때마다 배를 타고 나가 하루 동안 육지로 돌아오지 않거나, 블라이스 백작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들먹이며 연락을 피했다.

국왕은 점점 안달하게 되었다. 오르테가를 노리는 블라이스 백작이나 왕실을 넘보는 마조람 후작, 그 둘을 동시에 상대하려면 왕에겐 카루스 란케아가 절실했다.

“조만간 출정식을 해야 할 것 같아.”

카루스의 검은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그는 짙은 회색의 신사용 모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와 함께 기지 앞에 나와 있던 율리아는 펄럭이는 치맛자락을 두 손으로 잡고 나란히 떠 있는 군함들을 바라보았다.

“왕께서 보채나요?”

“돌려보낸 시종만 몇 명인지. 성대하게 출정식을 열어 황제 폐하의 마음을 달래고, 나를 내세워 블라이스 백작을 상대할 셈이겠지.”

“마조람 후작에게 하는 경고의 의미도 되겠죠. 1왕자의 연인이 실종되는 바람에 왕실 분위기가 좋지 않아요.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왕가의 먼 친척이나 원로들까지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후작이 그렇게 경솔한 사람이었나?”

그렇지는 않았다. 율리아는 그가 왕가와 싸워 이길 자신이 있기에 벌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르테가는 아주 오랫동안 마조람 후작의 영역이었어요. 국왕은 실상 왕궁 안에서만 왕이었죠. 욕 좀 먹는다고 후작이 누려왔던 권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아요.”

“샤트린 공주가 네게 귀족 작위를 제안했다며.”

카루스가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율리아도 그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건 누구한테 들었어요?”

“맥스웰이 잔뜩 흥분해서 말해 주던데. 율리아 시녀님이 귀족이 된다면 당장 집사로 지원하겠다고.”

“이름뿐인 몰락 남작 가문의 양녀로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시긴 했어요. 공주궁의 시녀들이 바쁘게 알아봤다고 하더라고요. 파벌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 과거는 깨끗하고, 제 출생을 문제 삼을 친척이 없는 가문이라나.”

“귀족이 되려고?”

“필요하다면요.”

율리아는 귀족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평민보다는 귀족이 좋았다. 고귀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적과 싸우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귀족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될 수 있었다.

“당장은 아니라는 소리인가. 그럼 공주의 제안은 거절하겠군.”

“남작 작위로는 어림없잖아요.”

율리아가 출렁이는 머리카락을 그러모았다. 머리카락 때문에 치마를 놓았더니 치맛자락이 더욱 세차게 펄럭거렸다.

카루스가 그녀에게 팔을 내밀며 말했다.

“들어가자. 바람이 지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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