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무혈 제독
봄도 끝물이었다.
최근 율리아의 눈은 마조람 후작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쯤이면 바실리가 지하실에서 탈출했다는 사실이 가문 전체에 전해졌을 것이다.
크리스틴처럼 애지중지하지는 않았어도 바실리는 후작 부부의 하나뿐인 아들이며 후계자였다. 그런 그가 실종되었으니 후작가의 병력이 전력을 다해 그의 흔적을 수소문하고 있으리라.
심지어 바실리는 제 발로 걸어 나갔다. 일종의 가출이었다. 율리아는 그걸 확실히 하기 위해 맥스웰을 통해 경비병을 매수하기까지 했다.
“못 찾을 겁니다.”
맥스웰이 자신 있게 말했다.
율리아는 꽃꽂이를 하고 있었다. 봄꽃이 만발해 여기저기에서 향기를 뿜어대니, 왕궁 시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예쁜 꽃을 안고 다녔다.
무표정한 얼굴로 꽃을 노려보는 율리아의 곁에서 맥스웰이 수다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람을 붙여 뒀거든요. 율리아 시녀님은 그냥 내버려 둬도 된다고 했지만, 어쩐지 뒤가 개운치가 않아서. 그런데 그 부랑자들에게 끌려간 마조람의 도련님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어떻게 됐는데요?”
“배에 실려 갔어요.”
으히히. 맥스웰이 음침하게 웃었다. 그는 흰 테이블보의 한 귀퉁이를 잡고 안경을 닦으면서 말했다.
“부랑자들이 도련님을 배에 팔아 버렸다고요. 가진 거 다 빼앗은 뒤에, 해적의 배에 냅다 집어 던졌어요. 그 도련님은 십중팔구 노잡이 노예가 될 겁니다. 그 연약한 팔뚝으로 제대로 노를 잡을 수나 있을는지. 거기선 귀족이건 왕족이건 다 소용없어요. 구령에 맞춰서 노를 저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되니까.”
“그렇군요.”
한 사람에 대한 복수를 끝낸 것치고, 율리아의 목소리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미친 여자처럼 데굴데굴 구르면서 큰 소리로 웃는 걸 상상하진 않았어도 최소한 속 시원한 감상 정도는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건조한 그녀의 태도에 실망한 맥스웰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뭐가요?”
“잘됐다거나 꼴좋다거나…… 아니면 허탈하다든가.”
“맥스웰.”
율리아가 한 손에 가시가 잔뜩 난 꽃줄기를 들고 물었다.
“카루스 님이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예? 그 양반이 꽃같이 어여쁜 걸 좋아할 리가…….”
지금 보니 맥스웰이 떠드는 동안 율리아는 이미 꽃바구니 하나를 완성해 놓고 있었다.
꽃꽂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빨리 끝나는 거였나. 의아해진 맥스웰이 율리아가 만든 꽃바구니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곤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시녀님, 제가 이런 거에 조예가 깊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거 좀 흉측하지 않습니까?”
“네? 어디가 흉측해요?”
“보통은 그 삐죽삐죽한 가시나 죽은 잎사귀 같은 걸 어떻게든 정리하면서 꽂지 않아요? 그렇게 나뭇가지에 가시덩굴 같은 걸 냅다 감아 놓지는 않던데요.”
“왜요? 이것도 다 생명인데.”
“생명…… 그렇죠.”
그럼 꽃꽂이 말고 다른 걸 해 보는 건 어떠냐고, 맥스웰이 넌지시 물었다.
율리아는 그의 조언을 되새기면서 자신이 만든 꽃바구니를 감상하다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카루스 님한테 선물하면 좋아하실까요?”
“아니, 그 양반한테 꽃을 왜 줍니까! 아깝게. 꽃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줘야죠.”
“남부 함대의 새로운 제독으로 부임한 기념으로…….”
“시녀님, 저도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요. 그 꽃바구니를 선물 받은 사람은 가시에 맹독이 발라져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누가 날 죽이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여기면서 밤잠을 설칠지도 몰라요.”
“그 정도예요?”
율리아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마조람 후작가로 보내야겠네요.”
“예? 마조람 후작가요?”
“네.”
“진짜 보낼 건 아니죠?”
맥스웰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면 농담이겠거니 했을 텐데, 율리아가 말하니까 진심으로 들려서 무서웠다.
아니나 다를까. 율리아가 꽃바구니 빈자리에 시뻘건 꽃 한 송이를 푹 꽂아 넣으며 말했다.
“크리스틴한테 보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