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랑놀이인지 소꿉놀이인지
율리아와 카루스가 헤어진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남부의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오후, 카루스와 그의 부하들은 어떤 배에 올라 있었다.
망망대해, 위용을 과시하듯 느리게 움직이는 군함 위에 백여 명에 이르는 병사들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누가 재채기만 해도 칼이 날아올 것 같은 긴장감이 갑판을 지배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제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위대한 바이칸의 해군이.”
뚜벅뚜벅. 묵직한 부츠가 갑판을 두드리듯 거칠게 밟았다. 가죽 갑옷 위에 검은 망토를 걸친 카루스가 빠르게 걸었다.
“해적 놈들의 심부름꾼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의 웃음기 없는 목소리에 병사들의 심장이 한없이 졸아들었다.
왜 하필이면 카루스 란케아인가. 왜 하필이면 무혈 제독이냔 말이다. 저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는 선상 반란이 일어났을 경우, 그에 가담한 자를 자비 없이 바닷물에 처넣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해군과 해적의 내통은 선상 반란에 필적하는 죄였다.
“배 위에선 모자 쓴 놈이 왕이 된다는 말이 있었지.”
배 위에선 법이나 제도보다 선장의 명령이 우선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바이칸의 해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너희 선장은 죽었다.”
카루스가 들고 있던 함장의 모자를 병사들 앞에 툭 떨어뜨렸다. 끈적끈적한 핏물로 축축해진 모자였다. 그걸 바라보던 병사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이제부터 내 부하들이 너희를 두 부류로 나눌 것이다. 지금 죽여야 할 놈과 나중에 죽여야 할 놈으로.”
카루스가 갑판 중앙에 놓인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의 곁에선 바바슬로프가 칼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그러니 증명해라. 쓸모가 있는 놈은 살릴 것이고, 그렇지 않은 놈은 모두 남부 해안의 물고기 밥이 되겠지.”
그렇게 말하던 카루스가 갑자기 미간을 모았다. 율리아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남부 해안의 물고기 밥이라니.
율리아가 했던 말을 자기도 모르게 따라 한 그는 쯧, 혀를 찬 뒤에 바바슬로프에게 말했다.
“샅샅이 뒤져라. 증거를 찾으면 내게 가져오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와.”
“없는데 어떻게 가져옵니까?”
“이놈들을 하나씩 바다에 던지다 보면 나오겠지.”
“아……. 율리아가 여기 있었어야 했는데.”
바바슬로프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카루스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쳐다보자,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고 투덜거렸다.
“그렇잖아요. 그 똘똘한 애가 여기 있었으면 우리한테 이것저것 알려 줬을 거고…….”
“그 정체 모를 여자가 하는 말을 다 믿고 따르겠다는 거냐?”
“아니, 우리 율리아가 언제 또 정체 모를 여자가 됐대…….”
“바바슬로프, 네놈의 상관은 도대체 누구냐.”
“그야 카루스 님입니다.”
“그 여자가 그렇게 그리우면 오르테가 왕궁으로 들어가. 거기서 굽신거리며 시종 노릇이나 하면서 살면 되겠군.”
아주 잘 어울릴 거라고, 카루스가 비웃었다. 투덜거리면서도 그의 눈치를 살피던 바바슬로프가 슬그머니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임무 마치고 나면 가는 길에 한번 들르실 거죠? 우리 생명의 은인인데, 왕궁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는지 확인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