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외전 4화
마을의 아이들은 곱고 예쁜 두 소년이 다가오자 놀이를 멈췄다.
눈빛에는 경계심이 역력했다. 티르윈 역시 자연히 기세가 사나워졌다.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당연하지만 이미 생성된 무리에 끼어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겠다고 한 건, 키리에가 그걸 바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쟤네, 우리를 경계하고 있어요.”
[그래 보이는구나.]
“가까이 가도 소용없을걸요.”
[어째서?]
“…무리에 안 끼워 주려고 하니까요. 보통은.”
[제법 웃긴 농담이야. 나중에 키리에에게 들려주렴.]
나타니엘이 티르윈의 손목을 쥐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어쩔 생각이야? 티르윈은 나타니엘을 뿌리치려 했으나 힘이 장사였다. 코끼리한테 끌려가는 것 같았다.
나타니엘은 아이들,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가장 큰 소년 앞에 섰다.
그리고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저를 보는 아이들 앞에서 사르르 눈웃음쳤다.
[우리도 끼워 줄래?]
티르윈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게 저택에서 보던 그 오만한 독재자가 맞나 싶었다.
‘가증스러워.’
사근대는 미소와 상냥한 말씨에 모두가 홀리는 게 보였다. 거절하기엔 너무 다소곳하고 우아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키 큰 아이가 얼굴을 붉히고 외쳤다.
“…좋아! 원래 모르는 애는 안 끼워 주는데 너네는 특별히 끼워 줄게!”
[고마워.]
생긋 웃은 아름다운 소년이 티르윈에게 속삭였다.
[무리가 뭐 어쨌다고?]
“…….”
짜증 나…. 티르윈이 인상을 쓰고 몸을 돌렸다.
티르윈과 나타니엘을 포함한 아이들은 다시 놀이를 시작했다. 숨바꼭질, 땅따먹기, 술래잡기 같은 간단한 놀이였다.
나타니엘은 그중 단연 괄목할 만했다. 그는 옅은 미소를 띤 채 모든 놀이에서 아이들을 압도했다.
괜히 분했다. 거드름을 피울 생각도 못 하고 열을 냈지만 나타니엘을 이기진 못했다.
그래도 제법 결과는 괜찮아서, 아이들은 전력 강화에 신이 났다.
“다음엔 예쁜 애 우리 편 할래!”
“그럼 쟤는 우리 편!”
처음에는 약간의 오기가 전부였던 티르윈도 점차 즐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놀아 보는 건 처음이야.’
셀 아렐라노에서는 모두 티르윈을 때리기만 했다. 거리에서 잠들었고 모든 시간이 생존에 할애됐다. 당연히 노는 시간을 따로 가져본 적도 없다.
“쟤 반칙 썼어! 금 밟았어!”
“아니야, 안 밟았어!”
“그렇게 멀리 뛰는 거 금지야!”
꽤 즐거웠다. 몸이 조금 지쳤다고 느꼈을 땐 이미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지친 아이들은 나무 그늘 밑으로 모여들었다. 모두 티르윈과 나타니엘을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너네 진짜 잘한다!”
“…그런가?”
[고맙구나.]
나타니엘은 슬슬 말투며 목소리가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옅은 미소만은 그대로였다.
그때 대장 소년, 헥스가 물었다.
“근데 너넨 이름이 뭐야?”
“난 티르윈. 그리고 이쪽은 나….”
[■■■■.]
“응?”
“방금 뭐라고 한 거야?”
[■-■-■■.]
나타니엘이 재차 말했다.
“느아…? 사아?”
아이들은 나타니엘의 이름을 발음해 보려다가 이내 포기했다. 티르윈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듣는 이름이 아니었다.
티르윈이 남몰래 나타니엘에게 귀엣말했다.
“이름… 숨겨야 하는 거였어요?”
[발음하기 어려우면 말을 안 걸겠지. 키리에의 부탁이니 하고는 있지만 슬슬 귀찮구나.]
“…….”
성격 나쁜 어른을 두고 티르윈이 헥스에게 몸을 돌렸다.
“너희는 맨날 여기 있는 거야?”
물은 건 헥스인데 대답은 모두에게서 나왔다.
“어! 여기가 우리 앞마당이야! 원래 아무나 끼워 주진 않는데, 너희는 잘하니까 끼워 줄게.”
“내일 또 와! 우리 맨날 여기서 놀아.”
“맞아. 너네 저기 저택에서 온 거지?”
“나 거기 가 봤어. 되게 예쁜 언니 산다?”
[안목이 높은 아이가 있구나. 상을 주지.]
나타니엘은 난데없이 주머니에서 금화를 한 움큼 꺼내 여자아이의 손에 올려주었다.
“우와! 금화야!”
“멋지다!”
“나 이거 엄마 줘도 돼?”
[마음대로 하렴.]
그때 별안간 한 아이가 말했다.
“너넨 나중에 저런 거 잔뜩 가진 부자 되면 뭐할 거야?”
난데없이 던져진 질문에 아이들이 재빨리 대답을 궁리했다.
티르윈도 생각에 잠겼다. 부자가 되면? 이미 된 것 같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티르윈과 달리 아이들은 너도나도 외치기 시작했다.
“수도 가서 살 거야! 시골 싫어. 부동산이 돈 벌기엔 제일 좋댔어.”
“요트 사서 세계 일주 하고 싶어!”
“난 딸기 농장 살 거야…. 저번에 엄마가 이모들한테만 딸기 줬어. 짜증 나. 그래서 이모들 초대해서 딸기 냄새만 맡게 할 거야.”
[딸기.]
가만히 듣고 있던 나타니엘이 중얼거렸다. 그러고선 묘하게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난 집에 도자기로 만든 욕조를 놓고서 매일 뜨거운 물로 목욕할 거야.”
[물에서도 괜찮겠구나.]
“난 새 리본이랑 드레스? 잘 모르겠다!”
[리본은 좋지.]
“너도 리본 같은 거 관심 있어? 요즘은 레이스로만 이루어진 게 유행이래!”
[레이스로만….]
나타니엘이 잠시 뭔가를 떠올렸다.
[제법이야.]
아까부터 무슨 영감을 얻고 있는 거야. 약간 질겁한 티르윈과 달리 나타니엘은 생긋 웃었다.
[그래도 역시 생크림이 좋겠어.]
“생크림! 나도 먹어 보고 싶어!”
“나도! 너 생크림 좋아해? 먹어 봤어?”
[좋아하진 않아. 필요할 뿐이란다.]
“왜?”
나타니엘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침묵을 틈타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 알아! 높은 사람들은 생일날 생크림 케이크를 얼굴에 던진대!”
“왜?”
“재밌대!”
아이들의 대화를 듣던 나타니엘이 다시 중얼거렸다.
[생크림… 키리에 케이크.]
티르윈은 왜 그 중간에 자기 양어머니의 이름이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나타니엘이 갑자기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 티르윈에게 누군가 물었다.
“티르윈 넌? 부자 되면 뭐 하고 싶어?”
“난….”
티르윈이 머뭇거렸다. 잠깐 고민해 보았지만, 역시 왕비 앞에서 했던 생각과 같았다.
“…그냥 지금이 좋아.”
“에이….”
아이들은 김이 빠져 대화에 시들해졌다. 다시 놀 시간이었다.
“우리 이번엔 폐가 탐험하자! 티르윈, 느아…, 트…. 에이! 아무튼 너희도 올 거지?”
“아…. 그런데 아마 곧 마차가….”
그때 몸을 일으키던 티르윈의 눈에 문득 뭔가가 들어왔다.
공터 구석이었다. 티르윈 또래의 올리브색 머리카락의 소년이 나뭇가지로 땅을 파고 있었다. 어찌나 조용한지 티르윈은 그가 있는지도 몰랐다.
“쟤는 왜 따로 놀아?”
티르윈이 혼자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헥스의 얼굴에 희미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아-. 쟤 보지 마. 쟤 아빠 없는 애야.”
티르윈이 멈칫했다.
“뭐?”
“쟨 아빠가 도망갔어. 엄마랑 둘이서만 살아. 집도 가난하고 냄새나니까 같이 놀면 안 돼.”
“…누가 안 된대?”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어.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애랑은 놀면 안 된다고.”
헥스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서 몸을 돌렸다.
티르윈의 온몸이 신기할 정도로 서서히 차가워졌다. 옆에서 나타니엘이 물끄러미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눈앞의 돼지 새끼가 한 말이 중요했다.
“안 돼.”
“뭐?”
“쟤도 끼워.”
티르윈이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아, 쟤 보지 말라고!”
“야! 이리 와.”
큰 목소리에 올리브색 머리카락의 아이가 흠칫 놀랐다. 그리고 목소리가 향한 곳에 자신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는, 머뭇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 헥스가 티르윈의 어깨를 밀쳤다.
“너 뭐 하냐. 쟤를 왜 불러?”
“내 맘이야.”
“너 미쳤냐? 이게 진짜.”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헥스의 위협에도 티르윈은 비죽 웃음을 흘렸다. 파란 눈에 경멸과 분노가 어렸다.
“니네 아빠 머리에 똥만 차 있다며?”
“…너 지금 뭐라 그랬냐?”
티르윈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니네 엄마, 아빠 머릿속엔 똥만 들어서 머리통이 아니라 똥통이라고 불린다고 그랬다, 왜!”
“이 새끼가!”
한바탕 싸움이 시작되었다.
몇몇 아이들은 참새처럼 도망갔고, 몇몇은 발만 동동 굴렀고, 몇몇은 티르윈을 때리는 데에 가담했다.
나타니엘은 아마 가까운 곳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말리지 않는 건 고맙네!’
티르윈은 거하게 얻어맞으면서도 계속 반격했다. 어깨가 차이면 다리를 물고, 주먹으로 맞으면 손가락을 꺾었다. 입도 쉬지 않았다.
“니네 아빠 불알 염소 불알!”
“개새끼가! 우리 아빠 불알 염소 불알 아니거든!”
“그럼 돼지 불알!”
옆에서 나타니엘이 묘한 신음을 흘렸지만 살필 시간은 없었다.
배로 발차기가 날아왔을 때 티르윈은 몸을 굴러 그것을 피했다.
무리 사이를 빠져나온 티르윈은 잠시 성난 아이들과 대치했다.
‘싸움으로는 못 이겨.’
티르윈이 허리춤에 끼워놓았던 스틱을 꺼냈다.
‘마법이라면…!’
그러나 그 순간.
[뷰캐넌.]
여태껏 방관하던 나타니엘이 어느샌가 다가와 스틱을 내리눌렀다.
[키리에가 그러라고 네게 마법을 가르쳐 준 건 아니야.]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소년의 얼굴에 어른의 냉정함이 겹쳐 보였다. 따분하다고 한숨을 쉬는 동안에도 떠올라 있던 미소도 자취를 감췄다.
미소가 사라지자 접시 위의 머리카락, 무덤 앞의 갓난쟁이 같은 이질적인 분위기가 서슴없이 드러났다.
티르윈은 약간 두려워졌다.
하지만 이내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알 바 아니잖아요!”
티르윈은 그 말을 무시하고 스틱을 뽑아 들었다. 곧 바닥에 술식이 그려졌다.
그런데, 잘 안 됐다.
“…!? 왜?”
매개는 완벽하다. 키리에의 눈을 닮은 자수정이 박힌 스틱이었다.
그려지다 말고 사라진 술식에도 문제는 없었다.
저 멍청이들을 혼내 주고 싶다는 의지 역시 뚜렷했다.
티르윈이 마력의 흐름에 집중했다. 주변의 마력이 모조리 나타니엘을 향해 소용돌이 모양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숨 쉬는 것보다 손쉽게 거대한 마력장을 만들어낸 소년이 재차 말했다.
[마법은 안 돼.]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