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 돌아갈 곳 (26/33)

26. 돌아갈 곳

세자르 뷰캐넌의 장례식은 단출하게 이루어졌다. 어느 선량한 사람이 하늘로 돌아가기 좋은 날이었다. 그게 세자르 뷰캐넌은 아니겠지만.

죽은 세자르의 입술 사이에서 벌레 하나가 기어 나오는 소동을 제외하면 조용한 장례식이었다.

작은 신전에서 진행한 추도식이 끝나고, 관을 운구하기 전이었다. 키리에는 천천히 일어나 사람들을 접대하고 있는 그레이에게 다가갔다.

“그레이.”

“으, 응. 키리에……! 뭐 맘에 안 드는 거라도 있어?”

그레이가 당당하면서 비굴하게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 사람들은 자리를 피해 주었고, 키리에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생각해 보니, 이제 볼 일이 없을 것 같더라고.”

“응.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아쉬워서 어떡하지?”

그레이는 호국경인 키리에를 이용할 수 없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반, 절대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후련한 마음이 반쯤 섞인 얼굴로 웃었다. 키리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좀 아쉬운 거 같아서.”

“응…… 응?”

“좀 아플 거야. 느베야, 물러나.”

“네.”

“뭐?”

영리한 하인 느베야가 빠르게 그레이의 의자를 놔두고 이탈했다.

“자, 잠깐……!”

키리에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술식 여섯 개가 허공에 그려졌다. 곧이어 강하게 압축된 공기가 그레이를 명치를 향해 튀어 나갔다.

“크헉!”

그레이는 여섯 대의 마법을 맞고, 세자르가 누워 있는 관까지 날아갔다.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알 바 아니지만.

그 위에 대고 키리에는 언젠가 레드로우트에서 그레이가 자신을 때린 뒤 한 말을 돌려주었다.

“진짜 다리 못 쓰게 됐구나. 예전 같았으면 바로 시끄럽게 굴었을 텐데. 미안하다고는 안 할게. 그냥 확인 좀 해 보느라 그랬어.”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누구 하나 키리에를 탓하진 않았다. 그저 그레이를 흘겨보며 쑥덕대기 바빴다.

“그레이 뷰캐넌 공작이 뭔가 잘못했나 봐요.”

“장례식이긴 하지만…… 이해할 만한 일이 있었겠죠? 차기 호국경이잖아요.”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터뜨릴 수도 있는데, 저 정도로 봐주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지.”

“그냥 모른척하죠. 행여나 나중에라도 이런 위험한 사태가 또 생기면 도움이라도 받아야…….”

우스워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나타니엘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손바닥 뒤집듯 달라진 태도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뻔히 보이는 욕망이 그저 우습고 재밌었다.

키리에는 더는 웃음을 참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곤, 소리 내어 웃으며 장례식장을 나왔다. 과거의 키리에 뷰캐넌을 그 아비의 관 속에 남겨 둔 채.

출구로 나 있는 숲을 걷던 키리에는 작은 그림자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안네마리?”

“네. 저예요, 아가씨.”

키리에가 자리에 우뚝 섰다.

안네마리는 평소의 메이드복 차림이 아니었다. 딱 한 벌 있는 외출복에 진한 녹색의 케이프, 손에는 가죽으로 된 트렁크 가방, 등에는 대륙 너머에서 빌려 왔다던 긴 창까지.

여행을 떠날 사람의 모습이었다.

안네마리가 방긋 웃었다.

“아가씨. 마지막으로 한 번만 저를 안아 주실래요?”

키리에는 조용히 다가가 안네마리를 안아 주었다. 안네마리는 트렁크를 쥔 손에 힘을 준 채, 남은 손으로 키리에의 등을 토닥거렸다.

“안느. 키가 큰 것 같은데?”

키리에가 얼마 뒤, 몸을 떼고서 미소를 머금었다.

“정말요? 저도 어른이 되려나 봐요!”

“그러게. 금방 나보다 더 커지겠는걸.”

안네마리가 씩 웃었다.

“하지만 아무리 커져도 이젠 아가씨를 지킨다고 말할 수가 없어졌네요!”

키리에는 조용히 물었다.

“서운하니?”

안네마리가 고개를 도리질 쳤다.

“아뇨! 이제 누구도 아가씨를 해칠 수 없어져서 안심이에요.”

“낯설진 않고?”

“아가씨는 아가씨인걸요.”

안네마리의 대답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키리에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흘려보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네마리. 그 날, 괜찮았던 거야?”

안네마리가 조용하게 숨을 들이켰다.

“저한테는 별일이 없었어요.”

잔뜩 들이마신 숨과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하지만, 아가씨한테 사과드릴 게 있어요.”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구나.”

안네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르 뷰캐넌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키리에도 간략히 전해 들었다. 하지만 안네마리에게 세자르의 호위를 맡긴 것도 아니었고, 그 날은 비슷한 일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굳이 따지자면 사람들의 악한 본성이 문제였을 뿐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안네마리.”

“제가 말렸어야 했어요. 주인님이 아가씨를 찾으러 위험한 곳에 가겠다고 했는데, 저도 아가씨가 걱정돼서 그걸 말리지 못했어요…….”

이상한 말을 들은 키리에가 멈칫했다.

“아버지가 나를 걱정했다고?”

“네.”

안네마리가 손을 당겨 키리에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말려도 듣지 않았어요. 저는 주인님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아가씨를 걱정했다는 건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키리에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가만히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자 안네마리가 고개를 숙였다.

“그랬는데 제가 한눈을 팔아서 나쁜 사람들이 주인님을……. 죄송해요, 아가씨…….”

자책하는 안네마리의 모습을 보며, 키리에는 어쩐지 몹시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생판 모르는 남의 부고를 듣는 듯했다.

“신경 쓰지 마.”

키리에는 그런 자신이 낯설어, 별다른 반응 없이 안네마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보다, 아버지가 혹시 유언 같은 건 남기지 않았니?”

안네마리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들었어요. 다른 사람한테 말할 게 아니라서 아무한테도 이야기는 안 했어요.”

“그래? 가문을 어떻게 하라든?”

키리에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하는 말에 안네마리의 표정이 약간 울 듯이 찡그려졌다.

“아뇨……. 그런 게 아니었어요.”

“재산 이야기였니?”

“아뇨.”

안네마리가 고개를 저었다.

“주인님은 마지막에 아가씨를 걱정하셨어요.”

키리에는 잠시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나를?”

“네.”

“아버지가?”

“네.”

안네마리가 흔들림 없는 눈으로 키리에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전해 달라 하셨어요.”

키리에는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렀다.

‘거짓말.’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 세자르 뷰캐넌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원래 안네마리는 거짓말을 할 때면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곤 했는데, 지금 한쪽만 남은 안네마리의 눈은 키리에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정말이에요.”

키리에의 의구심을 눈치챈 안네마리가 단호하고 무구하게 말했다. 검은 눈은 맑았다. 어딘지 간절하기 보이기도 했다.

그 눈을 보자 문득 이제 그게 거짓말이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리에가 천천히 팔을 뻗어 안네마리의 몸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 줘서 고마워.”

“…….”

“고생했어, 안느.”

엇갈린 고개 너머로 안네마리가 숨을 참는 것이 느껴졌다. 숨인지, 울음인지는 안네마리 본인만 알 것이다.

안네마리는 자리에 선 채로 머뭇거렸고, 키리에가 낮게 웃었다.

“날 안아 주지 않을 거니?”

그녀의 말에 안네마리가 들고 있던 트렁크 가방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작은 손으로 키리에의 등을 와락 껴안으며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가씨……! 안네마리는, 안네마리는……!”

이제 명백했다. 울음을 참는 목소리였다. 키리에는 몇 번이고 안네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옷의 앞섶이 젖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안네마리가 더 소리 높여 울었다.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키리에는 묻지 않았다.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안네마리는 한참 뒤에야, 발갛게 물든 한쪽 눈을 비비며 물러났다.

“……아가씨.”

“응.”

안네마리가 가슴을 들썩이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전 이제 떠날 거예요.”

안네마리의 말에 키리에는 지긋이 금발 고수머리의 작은 시녀를 내려다보았다. 의외로 큰 충격은 없었다. 마음속 깊이, 왠지 이렇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있었다.

“베일이랑 창을 돌려주러 가야 해요. 빌려주는 대신, 반납하면서 저도 그쪽으로 이주하기로 했거든요. 얼굴도 모르는 저한테 이런 귀한 걸 빌려준 것도 그거 때문이에요.”

“그럼 어떤 곳인지는 모르는 거니? 위험한 곳이면 어쩌려고.”

“괜찮아요! 잘해 줄 거 같아요! 왜냐하면, 인간이랑 엘프의 혼혈은 원래는 있을 수 없는 거래요. 아주아주 특이한 거라서, 동화 속 공주님처럼 대접해 주겠대요!”

안네마리가 헤헤 웃었다.

키리에는 물끄러미 안네마리를 바라보다 담담히 물었다.

“가지 않을 수는 없는 거지?”

안네마리의 미소가 조금 달라졌다. 몹시 어른스러운 미소였다. 그녀는 지금, 정말로 같은 해를 산 인간만큼이나 노숙해 보였다.

“네. 저는 이제 자랄 때가 됐어요. 아가씨의 다정함에 기대서 영영 어른이 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요.”

키리에는 말없이 과거를 떠올렸다.

세상천지에 홀로 남은, 투기장 노예였던 혼혈 여자아이. 그녀는 마음 둘 곳이 필요했고, 키리에 역시 안네마리를 돌보며 간접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위로했다.

하지만 이제 안네마리는 어른이 되었고, 키리에도 더는 과거의 자신에게 매여 있지 않았다.

“원래는 아가씨의 수명이 다하면 그때 넘어가기로 했어요. 아시다시피, 엘프는 인간보다 오래 사니까요…….”

안네마리가 길 저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때마침 느티나무가 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안네마리의 말 아래에 음악처럼 깔렸다.

“그렇지만…….”

안네마리가 키리에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가씨는 이제 괜찮으니까요.”

안네마리는 곧 트렁크 가방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타박타박, 오솔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더는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지 않는 여자아이의 등은 굳세고 또 강인했다. 정말로 괜찮아진 건 안네마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시 만날 수 있지?”

안네마리의 모습이 숲에 가려지기 직전, 키리에가 던지듯 말했다.

안네마리는 몸을 돌리고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한 웃음이었다.

“당연하죠!”

***

며칠 뒤, 사람들이 트레베레움의 중앙 광장에 모였다. 키리에를 호국경으로 임명하는 식이 있는 날이었다.

귀족들이 전부 참석했고, 수도의 모든 사람이 모였다. 키리에는 그들과 떨어진 단상 위에 홀로 앉았다.

“모두 이렇게 모여 주어서 고맙소.”

악대의 연주가 끝나자, 새 국왕 이든 오레윈브리지가 앞으로 나섰다.

“트레베레움의 영고성쇠 가운데, 지난 몇 달간 있던 일만큼 더 큰 불안함을 느낄 사건이 없었을 거요. 나 이든 오레윈브리지는 국왕으로서…….”

마법으로 키운 목소리가 조금 듣그럽게 주변에 퍼져 나갔다. 대부분은 시민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돌려 말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쁜 게 누구라고?”

“전설경이랑 국왕이지.”

“난 처음부터 전설경이 좀 섬뜩했어.”

“사실 나도……. 남들이 좋아하니까 말 못 했을 뿐이지.”

“그걸 버텨낸 키리에 뷰캐, 아니지, 호국경이 진짜 대단한 거야.”

이든이 헛기침했다.

“비록 불유쾌한 불상사가 있었으나…….”

새 화제가 나오자 사람들이 귀를 쫑긋거렸다.

“불상사라니, 무슨 말이야?”

“자네 모르나?”

사람들이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속닥거렸다.

“며칠 전, 누가 전 국왕을 몰래 죽였다는군. 목을 쳤다던데?”

“자넨 그걸 어떻게 알아?”

“그 미친놈이 개 꼬리에 자른 머리를 묶어 놓고 시장을 돌게끔 해 놨지 뭔가.”

“허…….”

“뭐, 나라 꼴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심지어 다들 그게 국왕의 머리란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지.”

“개는 어찌 됐는데?”

“어…… 그러게 말일세. 은빛 개였는데 분명…….”

이든이 사람들의 수런거림을 덮기 위해 더 강하게 말했다.

“이러한 시기와 원한이 왕가를 향한 반발심리를 충동질하는 결과가 된다면, 왕가는 이를 가만 보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오……!”

키리에는 물끄러미 그가 연설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든은 진저의 죽음에 대해서는 별 유감이 없는 듯했다. 그녀가 자식의 마력을 뽑아내기 위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하지만 일전의 경험 때문인지, 이든은 연신 불안한 눈으로 루비니아를 돌아보았다.

“앞을 봐야죠, 이든!”

루비니아는 상냥하고 사랑스럽게, 그러나 키리에 눈에는 아무리 봐도 귀찮아하는 듯한 기색으로 이든에게 웃어 주었다.

이든이 애써 태연한 척 연설을 이어 갈 때였다.

“신께서 그의 지상 대리인인 오레윈브리지를 굽어살피시어…….”

그때 관중 속 누군가가 외쳤다.

“뻔뻔하기도 하지!”

이든의 몸이 덜컥 굳었다. 병사들이 경계 태세를 취했지만, 하도 많은 병사가 그만둔 탓에 시민의 수보다 병사의 수가 월등히 적었다. 병사들 역시 별로 진심으로 대립하고 싶은 얼굴은 아니었다.

“그 개지랄을 떨어놓고, 뭐? 대리인? 오레윈브리지? 웃기지 말라 그래!”

누굴까? 용감하기도 해라. 키리에가 심드렁히 그런 생각을 했다.

아마 누군가 먼저 돌을 던져 주길 기다리고 있던 모양인지,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그래! 국왕이 욕심만 안 부렸어도 되는 건데!”

“그러면 호국경이 죽지도 않았을 거 아냐! 또 이런 위험한 일이 생기면 누가 우릴 지켜 주냐고!”

자연히 사람들이 키리에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키리에!”

“키리에!”

“키리에!”

사람들이 발을 굴렀다. 그 많은 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발을 구르자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그들은 키리에가 아주 작은 신호라도 보내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눈앞의 왕궁을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태도. 남에게 떠넘기기 급급한 책임.

그 사이에서, 키리에는 냉소했다.

이토록 의미 없고 공허한 지저귐을 신경 쓰고 살았다니, 시간이 다 아까울 지경이었다.

키리에가 천천히 일어나 단상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키리에! 키리에!”

“호국경이 우리 곁에 있다!”

키리에는 단상의 끝, 국왕 부처와 귀족들이 앉은 자리 가까이에서 멈췄다. 그리고 주변의 소란을 무시한 채 루비니아를 응시했다.

“루, 루, 루비……. 얘, 얘기가 다르잖아. 다, 당신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했잖아……!”

“가만있어요, 이든.”

“루, 루비……!”

도망치고 싶어서 안달하는 이든과 달리, 루비니아의 녹색 눈은 몹시도 강건했다. 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키리에의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는 자신이 대마법사인 것을 알면서도.

키리에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해 보면 루비니아는 항상 그랬다. 사교계의 얼굴 없는 적들과 달리, 항상 정면으로 키리에와 맞섰다.

정말 신경 써야 하는 건 입만 산 백만 명이 아니라, 이렇듯 눈을 마주 보는 단 한 명이다. 나타니엘은 그걸 알고 있었다.

키리에는 천천히 루비니아 앞에 서서, 상아색 로브를 뒤로 펼치며 허리를 굽혔다.

“바라건대, 선성이 상하로 자자한 트레베레움의 새 태양께서 내내 기체후 일향 만강하시길.”

자리에 있는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던 사람들이 술렁였다.

“호국경이 왕비한테 예의를 차리는데……?”

“뭐야, 왕가를 뒤집을 게 아니었어?”

“아, 알 거 같다. 나라가 더는 혼란스럽길 바라지 않는 거 아냐? 키리에 뷰캐넌은 원래 그랬잖아.”

“아!”

“그런데 왜 국왕이 아니라 왕비에게……?”

“왕비랑 뭐가 있나 봐.”

루비니아는 그 모든 수군거림이 들리지 않는 척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키리에의 눈에는 그녀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는 것이 보였다.

올드시우다드 공작과 포트듀케인 후작이 돕는다 해도 루비니아는 정계에 지지층이 없다. 기득권층을 설득하긴 어려우니, 그녀는 민심을 휘어잡아 맞서야 한다.

키리에는 거기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을 뿐이다. 거래에 가까웠다. 키리에가 넘긴 영토와, 그녀가 남기고 가는 사람들을 잘 책임져 달라는.

혹시 부담스러워할까?

키리에가 짓궂은 눈으로 루비니아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루비니아는 씩 웃더니, 낭랑하게 외쳤다.

“꺄아! 너무 좋아! 어떡하죠, 이든? 호국경이 제게 인사해 줬어요! 저보고 태양이래요! 루비가 그렇게 빛나요? 반짝반짝해요?”

양손으로 뺨을 감싼 채, 루비니아는 도전적인 눈으로 키리에의 시선을 받아쳤다.

그래. 그래야지. 키리에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루비니아 캐스너, 그녀야말로 폰에서 시작해 체스판의 끝에서 퀸이 된 여자. 그녀는 남을 책임지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다. 잘해 낼 것이다.

“고마워요, 키리에 경! 루비가 힘낼게요. 아! 물론 이든도.”

그때 루비니아와 키리에 사이에 이든이 끼어들었다.

“잠깐, 키리에 뷰캐넌 양. 지금 말 다 하셨소? 국왕인 나를 두고 왕비에게 태양이라니, 그건……!”

키리에가 순식간에 미소를 거뒀다.

“그건?”

“그러니까!”

“그러니까?”

“바, 방금…….”

이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시선이 주변으로 굴러갔다.

“뭐야. 또 쟤야?”

“전설경 때도 저러더니…….”

“또 보여 주나?”

“엄지만 한 게……. 마음 말이야, 마음.”

웃음기 없는 눈으로 킬킬대는 시민들, 별반 다를 거 없는 병사들, 할 줄 아는 건 모른 척이 전부인 귀족들.

“날이 덥군요.”

그 사이에서 마리아 올드시우다드 공작이 냉랭하고 우아하게 말했다.

“그러게요, 공작님? 제 눈엔 별문제 없어 보이는데 말이에요!”

라우라 포트듀케인 후작 역시 한마디 거들었다.

다른 가문의 가주들은 갑자기 헛기침하는 법을 새로 배운 사람들처럼 고개를 돌렸다.

“하, 하지만 왕국의 태양은 국왕을 이르는…….”

이든이 마지막으로 루비니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루비니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이든.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결국, 이든은 애써 근엄한 척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래……. 그대가 좋다면 됐어……. 그렇지만 나중에 왕궁의 예절을…….”

“어머, 안색이 좀 창백해요. 앉아 있을래요? 나머진 제가 다 할게요!”

“아니, 그럴 것까진…….”

“아니야, 이든은 아픈 게 분명해요!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맡겨요!”

루비니아는 방긋방긋 웃으며 이든을 끌고 가, 기어이 자리에 앉혔다.

“괘, 괜찮다니까?”

“괜찮긴요! 우리 이든, 내 말 잘 듣기로 했죠?”

“그건…….”

루비니아가 귀엽게 눈을 부릅떴다. 우스운 꼴이 된 왕세자를 성심성의껏 보살피고, 위기 상황에 가장 먼저 구하러 찾아온 여자의 말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이든이 지친 얼굴로 자리에 앉아 헛기침했다. 루비니아가 앞으로 나서서 윙크했다.

“자, 앞으로는 제가 진행할게요?”

키리에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짧게 묵례했다.

때마침 궁내관이 서임식에 쓰는 왕홀을 가져왔다. 루비니아가 냉큼 그것을 들어, 키리에의 어깨 위에 얹었다. 장난스럽던 루비니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이 나라가 신의 섭리 아래에서 자유로운 평화를 되찾은 것에 대하여 삼라만상을 지배하고 뭇 국가들의 명운을 주재하며 그 섭리에 의한 도움으로 인간의 모든 결함을 메우는 드높은 곳의 여신께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녀가 첫 문장을 말하자마자 키리에는 다시 웃을 뻔했다. 공부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잘할 것이다.

“신께서 트레베레움에게 평온의 상태를 즐거이 허락하셨기에, 나 루비니아 오레윈브리지는 이날로 트레베레움의 상서로운 새 시작을 기하려 한다.”

루비니아가 곧 왕홀로 키리에의 양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많은 의미가 담긴 녹색 눈이 씩 웃으며 키리에를 보았다.

“하여 나 여기 키리에 뷰캐넌의 고결한 희생을 기리며, 인간이 부여한 이름을 수급하고 그녀를 호국경에 봉헌하노라.”

연설이 끝나자마자 키리에가 약간의 마력을 사용했다. 선명한 금빛이 왕홀에서 터져 나갔다. 하늘에서 금빛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와……!”

마법으로 만든 연출인 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기뻐했다. 시민들은 곧 키리에와 루비니아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키리에의 역할은 거기가 끝이었다. 나머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할 여흥 무대였다. 키리에가 조용히 무대에서 내려가려는데, 재빨리 다가온 루비니아가 그녀의 팔뚝을 붙잡았다.

“뭔가요?”

키리에가 루비니아를 바라보았다. 루비니아는 계속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이내 작게 속삭였다.

“……고마워요.”

그 말에 키리에가 양팔을 벌렸다. 루비니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뭔데요?”

“이제 우린 평생 친구라고 말하면서 끌어안을 차례 아니었어요?”

“미쳤어요?”

“겪은 게 얼만데 좀 제정신 아니어도 어떤가요.”

“참나. 원래 이런 사람이에요?”

“네. 생각해 보니 원래 이랬던 것 같네요.”

키리에의 뻔뻔한 대답에 루비니아가 헛웃음 쳤다. 그리고 곧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두 사람이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

“내가 진작 알아봤지!”

“아무렴요. 고상한 척하느라 좀 힘들더라고요.”

키리에의 나긋한 대답에 루비니아가 키리에의 팔뚝을 놓았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나, 장난스럽게 웃었다. 잠깐이지만 그녀의 눈에 진지한 빛이 스쳤다.

그러나 루비니아는 이내 늘 그래 왔듯이 사랑스럽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배짱 있으면 나중에 놀러 와요! 발판이 꺼지는 함정은 없을 거고, 찻잔에 독이 묻어 있지도 않을 거랍니다!”

키리에의 눈인사를 끝으로 루비니아는 다시 단상 위로 돌아갔다.

키리에가 몇 걸음 안 갔을 때, 다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영주님.”

프로노이아의 마법사들이었다. 그중 분홍색 풍선으로 된 하트 모양 모자를 쓰고 있는 노 마법사와, 흰 턱시도를 입은 포 박사, 여전히 자유로운 차림새의 호크송 박사가 앞으로 나섰다. 키리에의 얼굴이 밝아졌다.

“안 그래도 찾고 있었어. 모두 그동안 고마웠어.”

“아가씨……!”

훌쩍이는 포 박사의 포옹을 키리에는 웃으며 받았다.

“시워드 박사는 걱정하지 마. 뷰캐넌에서 돌봐줄 거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왕가, 올드시우다드, 포트듀케인. 셋 중 하나로 가서 말해.”

“감사해용……. 이 살라미시 포는, 절대 아가씨를 잊지 못할 거예요!”

호크송 박사는 그윽하고 다정한 눈인사와 함께 키리에와 악수했다.

그 뒤에는 프로노이아의 마법사들을 대표해 긴 수염을 기른 노 마법사가 나섰다.

“그러니까…… 이제 저희 영주님이 아니게 되시는 거군요.”

그가 조금 시무룩한 얼굴이기에 키리에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새 영주가 필요한가?”

“그건 아닙니다만…….”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마침 루비니아 양에게 프로노이아를 자유 도시로 지정해 달라고 말해 놨으니, 하던 대로 자유롭게 지내는 수밖에.”

마법사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키리에가 이어 말했다.

“그리고 왕실 서고에 있는 금서들을 풀 거야. 원본은 그대로 두어야겠지만, 필사본은 프로노이아 대도서관에 두는 것을 허락받았어.”

“꺄아! 왕실 서고라니!”

“이럴 수가…….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조 발라브리가의 연구실이 발견되어서 그 연구 내용도 곧 공표될 거야.”

마법사들이 뒤쪽에서 환호했다. 키리에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만하면 취소된 전(前) 호국경과의 면담을 만회할 정도가 됐으려나?”

노 마법사가 가는 손가락을 펼치며 살짝 허리를 굽혔다.

“물론이지요.”

키리에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그녀는 주머니를 뒤져, 주머니보다 큰 책을 꺼냈다.

“참. 이걸 받아.”

“이건……?”

“어느 역사가의 시조 시절 기록이야. 마지막은 오레윈브리지의 마법식이고.”

키리에는 그것을 가주 전용 서재에서 발견했다. 마법으로 꽁꽁 숨겨진 책은 마법사가 아니면 읽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비 마법사가 읽을 수 있는 건 마지막 문단뿐이었다.

「389년 12월 1일.

나는 드디어 뷰캐넌 백작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여 여기에 겨울의 왕을 죽음에서 돌이킨 마법의 술식을 기록한다. 누군가가 이것으로 그를 도울 수 있길 바라며.」

키리에는 세자르 뷰캐넌이 어째서 나타니엘에게 그렇게 뻔뻔하게 굴 수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왕가가 나타니엘을 죽이려 들면, 자신이 가진 술식이 크게 활약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고작 그거였다.

키리에는 자신의 두려움이 그저 하룻강아지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깨닫고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 사유 재산이니까, 프로노이아에 완전히 증여하는 것으로 하지.”

감격한 얼굴로 망설이던 노 마법사는 이내 작게 속삭였다.

“호국경께서는 이제 저희 영주님이 아니시지만…….”

반달 모양 안경 너머의 눈이 다정한 빛으로 빛났다.

“늙은이의 손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부르십시오……. 그때 가선 저희 평균 연령이 85세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노 마법사가 윙크한 뒤 몸을 돌렸다. 그 뒤를 이어 수십 명의 마법사가 차례로 윙크를 하고 떠나갔다. 키리에는 일일이 그들을 배웅했다.

그리고 이제 더는 배웅할 사람도, 그녀를 부를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키리에는 마침내 그 어떤 책임도 없이 혼자가 되었다.

키리에는 일부러 마차를 잡지 않고 걸어서 수도를 나왔다.

특별히 짐이 많지는 않았다. 필요하다면 세상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아서, 도리어 뭔가를 손에 움켜쥐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나타니엘이 그러했듯이. 있는 짐마저 작게 축소해 주머니에 넣고 나니 양손이 두 발만큼이나 가벼웠다.

“신분증을 부탁드립니다.”

유일하게 그녀를 잡아 세운, 성문을 담당하는 문지기는 머리에 쓴 로브를 살짝 벗어 보여 주자 바로 경례했다.

“실례했습니다.”

“수고해.”

셀 아렐라노를 완전히 나선 키리에는 펼쳐진 길을 바라보았다. 어디로도 갈 수 있었다.

“어디로 갈까…….”

키리에가 중얼거렸다.

아직 바다를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서쪽으로 꼬박 하루를 걸었다.

그러다 아주 근사한 아름드리나무를 마주쳤을 때, 키리에는 아무 계획 없이 그 밑에 앉았다.

며칠이고 그저 앉아 있을 뿐인 하루가 지나갔다.

키리에는 나무 그늘에 앉아 하늘에 해가 뜨고, 석양이 지고, 밤이 되어 별이 뜨고, 천체가 움직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사이 누구도 키리에를 부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키리에를 힐끗거리긴 했어도, 무시하고 지나쳤다.

키리에가 웃으며 나무기둥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는 이제 어디에도 빚진 것이 없었다. 나타니엘이 진실로 그녀의 모든 책임을 거둬간 것이다. 이제야 그것이 실감 났다.

키리에는 다시 일어나 강을 따라 걸었다. 피곤하면 멈춰 섰다. 배가 고프면 대충 아무거나 주워 먹었다. 반주 없이 노래했고, 춤추고 싶어서 춤을 추었다. 심심해서 강을 가르기도 했고, 괜히 나무 위로 걸어 보기도 했다. 키리에는 자신이 생각보다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라는 걸 새로 알게 되었다.

굳이 셀 필요도 없는 시간이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환희도 점차 가라앉고, 그 밑바닥에 있는 것이 드러났다.

턱없이 막막하고 아득한 외로움이었다.

전과 달리 손가락 하나로 모닥불을 피워낼 수 있게 된 키리에는, 길에서 동떨어진 숲에 앉아 하늘에 흐르는 은하수를 바라보았다. 조금 못마땅하게도 그것을 보자마자 시리도록 푸른 눈이 떠올랐지만, 그녀는 그것 또한 스쳐 지나가게 두었다.

레쇼의 마지막이 덩달아 떠올랐다.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키리에 뷰캐넌. 결정하십시오. 인간으로 남을지, 인간을 초월할지.〕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지금 조금 외롭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가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러니 어깨에 내리는 눈도 비도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역시 사람인지라, 키리에는 때때로 외로움에 겨워, 뒤돌아 자신의 그림자를 보곤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리 태어났다. 홀로 걷는 것에 지칠 때면, 공연히 남의 집 처마 밑에 기대앉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 밤에는, 공연히 달빛을 찾게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나타니엘도 아마 그래서…….’

모포도 필요 없는 밤, 모닥불을 보며 키리에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이제는 모닥불의 붉음을 보고도 나타니엘을 떠올리게 되었으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키리에는 나타니엘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왔을지, 왜 그렇게 태어났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너무 강하고 악하기에, 신은 그에게 외로움을 알게 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공연히 다른 집의 처마 밑을, 달빛 드는 창가를 찾아들게끔.

그러나 그는 그것을 가지게끔 태어나지는 않았다. 아침이 되면 다시 홀로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와 비슷한 입장이 된 키리에에게도 같은 길이 펼쳐져 있었다. 무엇도 책임지지 않는 대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은 그걸 선택했지만, 나타니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

모닥불이 사그라들 때면, 어김없이 그의 등이 떠올랐다. 지팡이를 짚은 채, 눈 내린 숲을 바라보던 그 견고한 등이.

새벽이 올 때면 힘겹게 그 기억을 지워 냈지만, 그게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를 키리에는 알 수 없었다.

정처 없는 여행이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키리에는 어딘지 낯익은 산을 보았다.

번드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

단풍 사이로 작은 오두막집이 보였을 때, 키리에가 멈칫했다. 오두막집 옆, 양지바른 곳에 작은 자카란다 나무가 심겨 있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때마침 문을 열고 덩치 큰 털보가 나왔다. 그는 키리에를 보자마자 입을 크게 벌리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리에 님!”

키리에가 멈칫했다. 혼자 떠돌며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건지, 번드의 얼굴에 못 보던 주름이 생겨 있었다.

“음…… 안녕. 잠깐 들렀어. 폐는 아닌지 모르겠네.”

“폐라뇨, 하하! 이브! 이리 나와서 누가 왔는지 보렴!”

“우응?”

번드의 뒤에서 이브가 꼬물거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더니 키리에를 보며 배시시 웃고는 번드의 뒤에 숨어 버렸다.

“얘가 부끄럼을 타나 봅니다.”

키리에는 한 번 더 놀랐다.

“언제 저렇게 컸지?”

“시간이 꽤 흘렀으니까요. 들어오시지요!”

키리에는 자신에게 시간을 허황되게 보내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새로이 깨달았다.

“고마워. 실례할게.”

키리에가 번드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 번드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타니엘 님은 같이 안 오셨나요?”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까? 일단 들어오십시오.”

번드는 더는 묻지 않았다. 여전히 배려심이 넘쳤다.

키리에는 빙그레 웃고서 전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놀랍도록 변한 게 없는 공간이었다.

“돈을 꽤 준 것 같은데, 집을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안 그래도 이브의 공부 때문에 이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한 번 와 주시길 바랐는데, 다행인 일이죠. 하하.”

번드는 주방으로 들어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브는 자기 자리에 앉아 얌전히 책을 읽었다.

전과 같았다. 나타니엘만 없고, 계절만 가을일 뿐이었다.

“그런데, 혼자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산이 좀 험준해서 오시기에 괜찮았을지…….”

번드가 차를 내오며 말했다. 키리에가 웃으며 차를 받았다.

“그래도 한 번 와 봤다고 그리 힘들진 않았어.”

“다행이네요. 저, 그런데…….”

번드의 얼굴이 약간 흐려졌다. 키리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앞에 내어진 찻잔을 들었다.

“나타니엘 말하는 거지?”

“예. 무슨 일이라도…….”

잠시 고민한 키리에가 어색하게 속삭였다.

“사별했어.”

번드가 잔을 떨어뜨렸다. 그 소리에 놀란 이브가 고개를 들었다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사별? 별? 잘생긴 오빠?”

이브의 천진한 물음에 키리에가 오랜만에 지친 웃음을 지었다.

“응. 별이 됐어.”

이브가 웃었다.

“잘 어울려요…….”

“그러니.”

키리에가 이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브는 그녀의 손에 머리를 비비며 다시 웃었다.

“언니 보는 눈…… 반짝반짝. 별 같다고 생각했는데.”

키리에의 손이 멈칫했다. 내내 고요하던 그녀의 눈이 크게 요동쳤다.

그때 번드가 인자하고 초조한 미소를 지으며 이브에게 말했다.

“이브. 잠깐 들어가 있겠니? 언니가 오늘 이브의 침대를 쓰면 좋겠는데, 우리 이브가 요를 깔아 주면 아빠가 너무 고마울 것 같아.”

“응!”

이브는 싫은 소리도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락한 오두막집 안, 정적이 주위를 감쌌다. 번드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테이블 밑에 떨어진 나무 잔을 주워 만지작거렸다. 그의 표정은 처참했다.

“대체 어쩌다……. 홀로 찾아오셨을 때 그리 슬퍼 보였던 이유가 있군요…….”

“나타니엘이 찾아왔었어?”

키리에가 놀라 되물었다.

“예……. 아마 예감하셨던 모양입니다. 말하지 말라고는 하셨지만…….”

“……뭘 했는데?”

“차를 마시고 가셨습니다.”

“차?”

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리에 님이 닮았다고 하시더군요. 아주 조금. ……물론 리에 님을 제게 빗대다니 아주 과분한 일인 줄 알라고도 말씀하셨지만요.”

“……들어주느라 고생 많았어.”

“그리고 사별한 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키리에가 멈칫했다.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으면, 어찌하냐고 하셨습니다…….”

번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씨알 굵은 눈물이 흘렀다.

“그때는 그저 문제가 있나 보다 했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키리에는 조금 당황했다. 어쩐지 아까부터 귀가 먹먹했다. 귀뿐만 아니라, 가슴 속에 가라앉아 있던 뭔가가 불안하게 흩날리는 기분이었다.

“……번드. 괜찮아.”

“죄송합니다, 저보다 더 힘드실 텐데…….”

“아니야. 별로 그렇지도 않아. 그냥 바닷물이 밀려왔다 나간 기분이야.”

“리에 님……!”

번드가 더 통곡하기 시작했다.

키리에는 그의 울음을 달래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문득 자연스럽게 입이 열렸다.

“아내가 그렇게 되고…… 다른 사람을 만날 생각은 안 해 봤어?”

번드가 가슴을 들썩였다. 그는 아주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면서 울음을 참으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해 봤지요. 시도도 해 보고, 노력도 해 보고…….”

“그런데?”

아주 멍청하고 돼먹지 못한 질문인데도 번드는 키리에를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멍해지는 키리에의 얼굴을 보며, 더 크게 꺽꺽대며 울 뿐이었다.

“안 되더라고요. 그게 어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거랍니까.”

“안 될까?”

번드의 젖은 눈이 키리에를 담았다.

“될까요?”

키리에가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뇌가 아니라 다른 게 대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갈비뼈 안쪽에 있는 심장 같은 것.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면,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세상의 즐거움에 취하면…… 잊을 수 있을지도 몰라.”

번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벅찬 슬픔과 동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를 보며 키리에가 한 번 더 말했다.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렇지?”

“리에 님, 저는…… 원래는 여기서, 그럴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

“그런데, 알지만 저는…….”

“난 괜찮아. 자네 생각을 말해 봐.”

번드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양손으로 머리를 앞에서부터 쓸어 넘겼다. 힘겨워 보였다.

“……아니요. 불가능합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찾아보면 더 있을지도 몰라.”

“아니요. 없습니다. 제 사랑의 형태는 이미 제 아내에게 맞춰졌습니다.”

“변하지 않는 건 없어.”

키리에가 단호하게 말했다. 언젠가 나타니엘이 말하고, 키리에가 부정했던 말이었다.

번드가 고개를 저었다.

“산 것은 모두 변합니다. 오직 죽음만이 불변을 약속하죠……. 죽음은 우리네 마음 한구석까지 함께 가지고 갑니다. 우리는 그걸 돌려받을 수 없고, 제 마음은 전부 제 아내가 가져갔습니다.”

“아니야.”

키리에의 부정에 번드는 상처받지도 않았다. 자신을 향해서 하는 말이 아니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키리에는 뭔가를 잃어버렸는데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처럼 그가 흘리는 눈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떨리는 눈을 가만히 응시하던 번드가, 손등 위로 굵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나타니엘 님이 그리우신 거군요.”

키리에가 멈췄다.

“난…….”

목소리가 떨렸다.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정신마저 크게 흔들린 듯했다.

“아니야, 난…….”

말꼬리가 끊겼다. 댐이 무너지듯 온갖 생각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대체 자신에게 나타니엘은 대체 무언가.

아름다운 외모, 손끝에서 솟아나는 찬란한 보석, 강대한 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적 유리알 같던 눈동자에 차츰 감정이 담겼고, 그녀의 말 한마디를 귀담아들었고, 농담을 걸면 농담으로 받아쳤으며, 잘해 주면 순수하게 기뻐했다.

자신 앞에서만 안절부절못하고, 아이처럼 심통을 부리기도 하고, 그리고 때때로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가진 게 너무 많기에, 그가 정말은 무슨 마음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보아온 키리에는 안다. 나타니엘은 키리에가 먹을 게 없다면 자기 팔다리라도 잘라서 내밀 사람이었다.

키리에가 칼을 내밀면 심장의 위치를 알려 줄 사람이었다.

설령 키리에가 아주 강하고 부자에, 그는 아주 약하고 가난하더라도, 그는 가진 모든 것을 그녀에게 바쳤을 것이다. 키리에에게 그런 게 필요 없다는 걸 알아도. 눈앞에서 그가 준 것을 내동댕이쳐도.

키리에가 떨리는 눈꺼풀을 감았다. 그녀의 고개가 무너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맞다. 그 무엇도 나타니엘을 대신할 수는 없다.

나타니엘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했지만,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런 건 없었다.

내내 갖고 싶던 것만이 있었다.

그저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배가 부를 만큼 사랑받고 싶었다.

꼭 많은 사람일 필요도 없었다. 생에 다시 없을 기회여도 좋다. 딱 한 번, 그거면 되었다.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너무 많이 먹었어요. 이제 배불러요. 괜찮아요.’하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부모에게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누가 그런 것을 줄 수 있나.

하여 천천히 길드는 것이다.

아. 저건 내가 바라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 나는 저걸 허락받고서 태어나질 않았구나.

그때, 눈앞에 나타니엘이 나타났다. 기적 같았다. 마치 그녀만을 위해 준비된 선물 상자 같았다.

하지만 나타니엘은 전설경이었고, 키리에는 뷰캐넌이었으며, 키리에는 나타니엘의 억제력으로 작용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사람들은 옆에서 그녀가 꼭 그 선물 상자를 풀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의 종용에 키리에는 더 알 수 없어졌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게 맞을까?’

나타니엘도 알고 있었던 거다. 그 상태로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걸.

키리에는 무릎 위에 떨리는 주먹을 얹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오랫동안 흐르지 않은 눈물이 뺨 위로 다시 흘렀다.

“이상하지 않아? 날 그런 식으로 대한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게…….”

무성한 수염에 눈물이 아롱진 번드가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사람 마음에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정말 심각해 보였다면, 저 역시 그때 두 분을 그냥 보내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나타니엘 님의 눈빛이…….”

“눈빛……?”

키리에의 표정을 본 번드가 지친 웃음을 터뜨렸다.

“항상 그런 눈빛이어서 익숙해지신 모양입니다. 제가 볼 땐, 눈에서 꿀이라도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요.”

“…….”

“실례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명확하지 않았던 것은 리에 님 쪽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으시면 돕겠다 말씀드린 겁니다.”

다정하지만 냉정한 번드 카프. 키리에는 얼굴을 찡그렸다가, 이내 힘없이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맞아……. 그랬어.”

그녀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그땐 선택할 수가 없었어…….”

사람들, 책임, 해야 할 일. 그런 걸 무시하고자 하면 무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타니엘이 원하는 것도, 키리에가 원하는 것도 그런 게 아니었다.

선택을 한다면 자신의 뜻이고 싶었다.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

‘그럼 지금은?’

내내 안개 낀 것 같던 마음속에 별이 하나 떴다. 눈앞이 보얗게 흐려졌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키리에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곧 너그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번드를 향해 물었다.

“번드.”

“네.”

“더는 못 볼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만나러 온다면…… 기쁠까?”

번드가 아직 젖어 있는 눈을 껌뻑였다. 키리에는 시선을 빗긴 채, 약간 초조한 마음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번드는 이내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 기뻐할 겁니다.”

***

‘그 일’이 있고 나서, 이제는 곶이 아니게 된 포베 만은 누구도 다가가지 않는 곳이 되었다.

왕비는 그곳에 망루 하나를 세웠다. 그리고 병사를 배치해 바다를 감시하게 했다. 당연하지만 평소에는 철썩이는 바다밖에 볼 게 없기에, 병사들은 별로 열심이지 않았다.

그날도 병사는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무 이유 없이 잠에서 깬 병사가 습관적으로 포베 만을 바라보았다.

“어라?”

그리고 그 끝에 여자 한 명이 연보라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자. 외딴곳. 햇빛을 받으면 은빛으로 보이기도 하는 연보랏빛 머리카락. 짐 하나 없이 가벼운 손에, 흩날리는 상아색 마법사 로브.

병사가 그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그녀가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위험할지도 모르니 멀리 가 있을래?”

거리가 아주 먼데도 여자의 목소리는 몹시 또렷이 들렸다. 병사가 뒤늦게 눈을 부릅떴다.

“호국……!”

그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이었다. 호국경은 꽃잎처럼 날아 바다로 들어갔다.

***

마법 덕에 숨을 잠시 멈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는 마법을 쓸 수도 있었지만, 별로 바닷물을 먹고 싶진 않았다.

키리에는 머리카락 사이의 공기 방울이 수면을 향해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춤추듯 발끝을 세우고서 천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해수면과 가까운 얕은 바다는 밝고 맑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연한 금빛의 햇살이 물결에 따라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상어 떼가 키리에의 주변을 맴돌다 금세 흥미를 잃고는 사라져 갔다.

키리에가 별 기대 없이 사방으로 마력을 펼쳤다. 되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넓게 펼쳐진 상아색의 모래를 몇 번 발로 밟으며, 키리에는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어둠은 순식간에 깊어졌다. 사방이 한없이 칠흑에 가까운 파랑이었다.

키리에가 손을 펼쳐 빛무리 수십여 개를 만들어 냈다. 마력을 펼쳐 봤지만, 자연물에 반사되는 게 전부였다.

그쯤 바닷속에 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키리에는 귀가 먹먹한 소리를 내는 향유고래 무리를 지나쳐,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수온은 0도. 지독한 수압이 키리에의 몸을 덮쳤다. 마법이 아니었다면 진작 짜부라졌을 것이다.

키리에가 다시 한번 마력장을 펼쳤다. 이번엔 좀 더 넓은 범위였다.

돌아오는 마력은 없었다.

주변엔 어떤 해초도 없었다. 불모지 위를 기괴한 생김새의 물고기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죽을 수 없기에, 영원한 잠을 택했습니다. 더는 누구도 그를 깨울 수 없는 곳에서.〕

키리에는 레쇼의 말을 떠올리며 심해의 넓고 고요한 평원에 사뿐 섰다. 눈앞에는 깊은 골짜기가 펼쳐져 있었다.

그는 나타니엘이고, 도무지 중간을 모르는 남자다. 그러니 잠든다면 더 깊은 곳이다.

키리에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마력이 내뿜는 빛을 제외하면 주변은 칠흑이었다. 언젠가 나타니엘이 보여 준 그림자 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려갈수록, 키리에는 확신했다.

그가 있다면 여기다.

인간은 닿을 수 없는 곳. 귀가 먹먹하도록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들리는 곳.

마침내 마력이 반응했다.

발밑에 있는 흰 것을 본 키리에의 심장이 찌르르 울렸다.

빛은커녕 온기도 없는 바다의 밑바닥에, 거대하고 투명한 얼음이 골짜기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아주 섬세하게 세공한 보석 같은 얼음은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한기를 흘렸다.

그 안에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남자가 잠들어 있었다.

지나치게 완벽한 조형의 이목구비가 누구라도 그의 정체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모자람도 없고, 넘침도 없다.

천사라고 하기엔 색정적이고, 악마라고 하기엔 고결하다.

비인간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키리에마저 팔에 소름이 돋았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빨려 들어간다.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나타니엘.’

키리에가 저도 모르게 얼음 위에 손을 댄 순간이었다.

파사삭.

냉기가 키리에의 손가락을 얼리고 팔꿈치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

급하게 마법을 써도 소용없었다. 당연했다. 키리에가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나타니엘의 힘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마법이 먹히지 않자 당황한 키리에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이런!’

뒤늦게 후회했지만 늦었다. 공기 방울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입 안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었다.

‘숨이……!’

그 순간이었다.

파란 것이 눈앞에 반짝였다.

곧 강한 힘이 키리에의 양어깨를 붙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누군가가 키리에에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나타니엘의 입술을 타고 숨이 넘어왔다.

몸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읍……!”

그녀가 반사적으로 나타니엘의 팔을 짚자, 긴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고 키리에의 뒷목을 당겼다.

그도 잠깐이었다.

나타니엘은 곧 약간의 미련이 느껴지는 동작으로 키리에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바다 깊은 곳에 얼음으로 된 공간이 만들어졌다.

“콜록, 콜록……!”

키리에가 바닥에 주저앉아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습을 나타니엘이 수천 개의 생각이 담긴 눈으로 지켜보았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인 키리에와 달리, 그는 젖은 적도 없어 보였다.

[……난 또 내가 난생처음 환상이라도 보나 했다.]

나타니엘이 나직하게 한숨 쉰 뒤, 축 늘어져 기침하는 키리에의 등 위에 손수 검은 망토를 둘러주었다.

“콜록, 하아…….”

때마침 고개를 든 키리에와 그의 시선이 지척에서 마주쳤다.

[…….]

키리에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고 느꼈다. 유리알처럼 맑고 선명한 파란 눈도 잠깐이지만 불안하게 흔들렸다.

[……레쇼의 짓이군.]

나타니엘이 시선을 피하며 손을 놓았다.

키리에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이 냉랭해졌다.

“할 말이 그거뿐이에요?”

나타니엘이 굳었다. 키리에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증오도 달갑다던 사람이, 이제는 날 선 눈빛 하나에 심장이 멎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타니엘은 몇 번이고 입술을 들썩이다 지독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최선이 네게 부족했나 보구나.]

키리에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나타니엘이 얼음벽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네가 조금이라도 기뻐하길 바랐을 뿐이야.]

“당신을 죽여 놓고, 마냥 기뻐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있으면 너는 네 의지와 관계없이 날 감당하려 들었겠지.]

“그랬겠죠.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길 바랐어.]

“내가 뭘 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나타니엘이 조금 시선을 들어 키리에를 보았다. 그는 어떤 단어 하나를 몹시 내뱉기 싫은 눈치였다.

그러나 키리에가 미동도 않자, 마지못해 속삭였다.

[글쎄……. 중정에 수국과 포플러를 심고, 함께 엘서스의 여름 별장에 들르고, 가을엔 같이 꿩 사냥을 가고, 겨울엔 벽난로 근처에 둘러앉아 시를 읽어 줄 누군가를 찾을 수도 있겠지.]

그리 말하는 나타니엘의 얼굴에 몹시 배타적인 감정이 매우 절제된 형태로 드러났다.

잠시 말을 멈췄던 나타니엘이 이내 나직하게 탄식했다. 마지못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

[그걸 보여 주고 싶니?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니?]

“…….”

[그런 거라면 분명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지옥은 넘어섰구나.]

“……정말 그런 거라면 어떻게 되는데요?”

키리에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나타니엘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 툭 던지듯 속삭였다.

[그것만은 못 참았겠지.]

그리 말하는 입매가 놀랍도록 단정했기 때문에 키리에는 알 수 있었다. 그 뒤에 있는 감정이 너무 커서, 도리어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걸.

키리에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몸에 힘이 풀렸다.

오기 전까지는 약간 반신반의했다. 혼자만의 감정을 밀어붙이게 되는 건 아닐까.

기우였다.

[키리에?]

당장 나타니엘이 초조한 듯이 이름을 불러왔다.

[아프니?]

오랜만에 듣는, 그러나 공백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조심스러운 걱정에 키리에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입을 열었다.

“나타니엘…….”

[응.]

“그거 알아요? 나, 당신을 만나고서 너무 힘들었어요.”

나타니엘이 멈칫했다. 그가 조금 느리게 답했다.

[알아.]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코앞에 나타니엘의 얼굴이 있었다. 상심한 게 분명한데도, 시선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키리에는 가까이서 그의 푸른 눈이 강물처럼 바다처럼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역시, 이게 갖고 싶었다. 무얼 봐도 이보다 아름다운 게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

오직 그녀만을 위해 준비된, 세상의 모든 파랑.

키리에가 옅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고마워요.”

나타니엘이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보며 키리에는 다시 미소 지었다.

그날, 자카란다 꽃을 받았던 그때처럼.

“고마워요. 내가 버린 나를 소중하게 여겨 줘서.”

나타니엘은 잠시간 키리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키리에는 이 깊은 바닷속까지 찾아와, 심장에 칼을 꽂아도 모자랄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꽃보라가 몰아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리 없는데도.

나타니엘이 가까스로 목소리를 냈다.

[나를…….]

“욕하려고 왔는데,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지 않잖아요?”

[…….]

“당신이 잠들고 나서, 대부분은 혼자 지냈어요. 당신이 지내온 세월에 비하면 아주 잠깐이겠지만, 조금은 당신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고요.”

키리에의 입가에 쓴 미소가 떠올랐다. 떨리는 눈이 나타니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알 것 같아요.”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였다.

“당신은 외롭고요.”

그녀가 천천히 나타니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나타니엘의 이마에 살짝 닿았다. 나타니엘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굳었다. 키리에가 이런 식으로 그를 만지는 건 처음이었다.

“나를 엄청 좋아해요.”

장난스러운 속삭임과 함께,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의 앞머리와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닿은 곳이 뜨거웠다.

속눈썹을 스치는 앞머리에 나타니엘이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짧은 시간이 불안했다.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환상이라도 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키리에는 여전히 그의 눈앞에서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이건 내 자기 투영인 것 같네요.”

심장이 멈추는 듯한 말이었다.

[키리에. 그 말은…….]

나타니엘이 키리에의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잡히기 직전, 키리에가 손을 물렸다. 그녀는 맑게 웃으며 상체를 뒤로 물렸다.

“수국 심을 줄 알아요?”

[배우면 되지.]

“여름은 좋아하나요?”

[좋아질 것 같은데.]

“꿩 사냥은 할 줄 아나요?”

[그건 내 전문이고.]

“시는…… 물어볼 필요가 없네요.”

[물론.]

나타니엘이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대답했다.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그를 보는 키리에의 보라색 눈은 곧고 맑았다. 이윽고 그녀가 눈매를 곡선으로 휘며 청량하게 웃었다.

“그럼 이제 에메랄드 배와 황금의 강만 남았네요.”

일순 나타니엘의 머리가 진공 상태가 되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신이 자신을 갖고 장난을 치는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어떻게…….

그 생각밖에는 할 수 없었다. 거의 그의 심장을 터뜨리고 싶어서 태어난 존재 같았다. 아니면.

[드디어 나도 미쳐보는군.]

나타니엘의 손에 흰 검이 나타나자마자 키리에는 정색했다.

“미안한데 꿈 아니고요, 환상 아니고, 환각 아니고, 마법도 아니에요. 뭘 할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서우니까 집어넣어 줄래요?”

그리 말하며 선하고 맑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키리에를 마주한 순간, 나타니엘은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미처 하지 못한 말이 미끄러지듯 흘러나왔다.

[……미안해.]

키리에의 미소 한 귀퉁이가 허물어졌다. 나타니엘은 얼굴을 조금 숙인 채, 키리에의 손을 잡았다.

[전부 미안.]

떨리는 손은 몇 번이고 그녀의 손을 놓쳤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이고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키리에의 입꼬리가 떨렸다.

“참나…… 뭐예요……?”

[미안.]

“낯설게 대체…….”

[미안해.]

나타니엘의 말이 이어질수록, 키리에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덜컹거렸다.

[미안해.]

“사과받으려고 한 게 아니에요.”

[알아. 그래도 미안해.]

그녀의 얼굴이 점차 흐려졌다. 대답이 없는 키리에를 올려다보며, 나타니엘이 재차 낮게 속삭였다.

[미안.]

용서해 주든, 용서해 주지 않든,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나타니엘은 키리에의 손바닥에 입 맞추며 끊임없이 사과했다.

전해지길 바랐다. 그가 아는 인간의 언어는 몹시도 하찮아 그가 가진 감정의 편린도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의 마음은 늘 하나였다.

네가 좋아.

그래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

키리에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아…….”

키리에는 제 눈물을 보고 놀라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나타니엘과 눈물이 떨어진 자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타니엘이 손을 뻗어, 그런 키리에의 뺨을 끌어당겼다.

[네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입술이 키리에의 뺨 위에 머물렀다. 갈라진 틈 사이로 눈물이 스며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소중히 여겨본 적이 없어서…… 실수했어.]

복숭앗빛으로 상기되어 있던 키리에의 뺨은 순식간에 눈물로 흠뻑 젖었다.

나타니엘은 소리 없이 우는 키리에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눈꺼풀, 콧잔등, 양 뺨, 이마에 속죄하듯 입을 맞췄다.

[그냥 네가 웃기를 바랐을 뿐이야. 네가 웃는 게…… 꽃이 피는 것 같아서.]

키리에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새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그런 키리에의 등을 나타니엘이 조심스레 감싸 안았다.

키리에는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나뭇가지처럼 여린 팔이 머뭇거리다 자신의 등을 감쌌을 때, 나타니엘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신에게 감사했다.

“다신…….”

키리에가 잔뜩 쉰 목소리로 헐떡였다. 그마저 사랑스러우니, 반칙이었다.

[그러지 않을게.]

“다신 그러지 말아요…….”

[그래.]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감쪽같이……. 내가, 얼마나……!”

[미안.]

“눈앞에서 사람이나, 죽이고…….”

[미안해.]

“사람들이 내 얘기나 하게 만들고……!”

[미안.]

키리에는 아이처럼 투정 부리며 엉엉 울었다. 분한 마음에 그녀의 주먹이 수차례 나타니엘의 등을 두드렸지만, 그는 그마저 좋았다.

“내가, 당신, 정말, 미워서…….”

[그러진 말고.]

“…….”

[농담이야.]

키리에는 한참을 앞도 뒤도, 맥락도 논리도 없이 그간의 상처를 내뱉었다. 개중에는 아예 그의 잘못이 아닌 일도 있었고, 책임을 묻기에는 지나치게 오래된 일도 있었다.

그래도 나타니엘은 그 모든 말에 미안하다고 답했다. 키리에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마침내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었을 때, 나타니엘이 조금 몸을 떼어 냈다.

키리에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짐짓 사납게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의 키리에는,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야 마는 키리에는 결국엔 하얗게 부서지는 미소를 보여 주었다.

“두 번은 안 봐줄 거예요…….”

속눈썹 끝에 작은 별 같은 눈물방울이 잔뜩 매달린, 수줍고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천천히 나타니엘의 고개가 기울었고, 키리에의 눈이 감겼다.

[나도 이젠 못 놔.]

두 사람의 입술이 부딪혔다. 더는 대화가 필요 없었다.

***

바다를 나온 키리에는 나타니엘과 함께 남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리 전해 들은 주소로 찾아간 키리에는 벼랑에 세워진 저택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220억…….”

가격이 의심 가지 않는 대저택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저택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정원이 자세히 드러났다.

키리에는 약간 멍해졌다.

중앙에는 수령이 짐작도 가지 않는 거대한 포플러 나무가 있었다. 그 주변으로 꽃이 지고 황금빛 열매가 맺힌 자카란다가 울창했고, 수국은 잎이 무성했다.

[수국 심는 법은 다음 봄에 배워 보기로 하지.]

나타니엘이 옆에서 나긋하게 속삭였다. 키리에가 헛웃음을 흘렸다.

“……조경에 누구 입김이 들어갔는지 확실하네요.”

[아무렴. 누가 지낼 집인데. 꽤 신경을 썼는데 그동안 온 적이 없다니 좀 속상하구나.]

두 사람은 간단히 정원을 둘러본 뒤, 저택으로 향했다.

키리에가 먼저 가벼운 걸음걸이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문지방 안쪽에서 미소를 지으며 물끄러미 나타니엘을 바라보았다.

나타니엘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우리 키리에 양께서는 장난기가 좀 있으시군.]

“초대해 줄까요?”

나타니엘이 살짝 눈썹을 들썩였다.

[누구에게 시를 좀 읽어드려야 하는 몸이라, 부디.]

능청스러운 대답에 키리에가 키득거렸다.

“아뇨. 안 할 거예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서, 한 걸음 더 안쪽으로 물러났다. 그러곤 배시시 웃었다.

“초대가 필요할까요? 난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 말에는 나타니엘도 한동안 반응하지 못했다. 그녀는 때때로, 아니, 꽤 자주 그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곤 한다.

나타니엘이 키리에를 한 번, 바닥의 문지방을 한 번 보았다. 그리고 다시 키리에를 보았다. 그녀는 사붓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시다면야.]

망설임은 없었다. 나타니엘이 성큼 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몸이 연기가 되어 흩어지는 일은 없었다. 의식도 멀쩡했다. 나타니엘은 온전한 상태로, 문설주에서 한 걸음 안쪽에 서 있었다.

그리고 아직 눈가가 빨간 키리에가 그를 향해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나타니엘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조금 돌리고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키리에가 장난스럽게 고개를 기울였다.

“감상은요?”

이윽고 나타니엘이 손을 내리며 눈부시게 웃었다.

[역시 넌 최고야.]

키리에도 마주 웃었다.

“나도 알아요.”

[내게 복종하세요(完)]

[둄2 절갠 교환재공타싸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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