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연극
며칠 뒤, 조이가 라우라의 전갈을 전해 주었다.
「키리에, 내 귀염둥이! 이야기 들었어? 어쩌면 네가 다시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일단 상황을 보고 있으니, 조금만 더 고생해 줘. 나쁜 생각은 하지 말고! 사랑을 담아, 라우라 포트듀케인.」
라우라 특유의 카랑카랑하고 명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키리에가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녀의 편지에는 작은 소포도 딸려 있었다. 작은 마석 여러 개였다.
「추신. 우리 가문에서 급하게 만든 시제품이야! 머리카락 색을 바꾸는 마석인데,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보내! 너도 집 안에만 있으면 심심하잖아?」
키리에는 2주 만에 바깥에 나갈 수 있었다. 연보라색이 아닌 평범한 갈색 머리카락에, 옷까지 조세피나의 옷을 빌려 입으니 감쪽같았다. 병사는 피해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페데리카의 손을 붙잡고, 어디에선가 호위 중일 조이와 함께 거리로 나서자 사람의 냄새가 풍겼다.
“엄마, 오늘 고기반찬이야?”
“마감 할인합니다!”
“으, 추워. 겨울은 언제 끝난담?”
“땔감 값이 너무 올랐는걸…….”
“상성구 저택에 도둑이 들었대.”
“에그머니나!”
“글쎄 괜찮은 포도주는 전부 궁으로 들어가 버렸지 뭐야.”
소란스러운 거리의 정경이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혹시 몰라 얼굴을 가린 채 걷는 키리에의 손을 페데리카는 신나서 잡아끌었다.
“언니! 저기 트레보네야! 그리고 코리 아줌마는 저쪽 과일 가게에서 일해! 하워드네는 더 뒤쪽이구……!”
가끔 페데리카를 알아본 사람이 말을 걸었지만, 페데리카가 활짝 웃으면 웃음으로 답해 주곤 사라졌다.
끈질기게 귓가에 맴돌던 아론의 목소리는 시장통의 소란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키리에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또 2주가 흘렀다.
성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무도회가 열렸고, 눈은 좀 많이 내리긴 했지만, 사람들은 활기찼다. 병사들을 피해 다니는 요령도 붙었다. 이제 키리에는 혼자 시장에서 물건을 사 올 수도 있게 되었다.
“오늘은 얼마치 드릴까?”
“한 근 주세요.”
“아가씨는 내 생각에 1인 1근 정도는 해야 한다니까.”
얼굴이 익은 정육점 집 안토니오가 농담을 걸어왔다. 키리에가 미소 지었다.
“예전보단 많이 먹고 있어요.”
“하긴, 살은 좀 쪘지? 그래야지!”
안토니오가 눈물점이 있는 눈가를 찡긋하며 포장된 고기를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좋은 저녁 보내요, 안토니오 씨.”
“아가씨도!”
물건을 사서 돌아가는 길은 항상 활기가 넘쳤다. 저녁의 노을은 근사했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관현악보다 아름다웠다.
“냉해가 너무 심한데.”
“마감 할인합니다!”
“포트듀케인의 배가 클라시코에 들어왔다는군.”
“이거 빙하기 아냐?”
“땔감 값이 너무 올랐는걸…….”
“하성구 저택에 도둑이 들었대.”
“도둑이야 늘 많지.”
“나도 궁에서 살면 좋겠네. 오늘도 귀리 죽이야.”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키르 누나! 오늘은 뭐 가르쳐 줄 거야?”
“난 북대륙 이야기 듣고 싶어! 거긴 엘프가 있다는데 진짜야?”
빵집에서 빵을 빚는 일을 하는 조세피나는 낮에 집을 비웠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빈민가인 유성구의 부모들 전부가 그러했다.
키리에는 그들 대신 낮에 페데리카와 몇몇 아이들을 맡아 돌보기 시작했다.
개구쟁이긴 해도 아이들은 말을 잘 들었다. 귀엽기도 했다. 키리에는 곧잘 음식을 먹게 되었고, 건강해졌다.
“아가씨. 마르셨을 땐 잘 몰랐는데, 정말…… 공주님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조세피나는 가끔 그런 말을 해서 키리에의 얼굴을 붉혔다.
악몽은 여전했지만, 옆에서 곤히 잠든 페데리카를 보면 그래도 새벽에는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그날 먹을 음식을 사기 위해 키리에가 장을 보러 나섰다. 거리의 상인들은 키리에에게 늘 상냥했다.
“키르, 오늘은 뭘 줄까요?”
가장 먼저 마주치는 헤스나가 자상하게 미소지었다.
“풋콩을 사려고요.”
“프리터 만들어요?”
“제가 만드는 건 아니지만요.”
키리에가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요리는 배운 적이 없다. 어설프게 청소를 돕고는 있지만, 자신이 봐도 손끝이 야무지지 못했다.
어디에서도 한 사람 몫을 못 해 본 적이 없던 키리에의 풀이 죽었다. 그걸 눈치챈 헤스나가 방긋 미소지으며 봉투를 건네주었다.
“요리 잘할 필요 있나요? 요리 잘하는 남자를 잡아요. 아니면 요리사를 고용한 남자를 잡든가.”
“헤스나. 현명하네요. 조언 고마워요.”
보통 풋콩을 사면, 바로 푸줏간으로 이동했다.
“안토니오. 닭고기를 사러 왔어요.”
“아. 왔나? 마침 막 잡은 게 있지!”
안토니오는 순식간에 닭을 해체해 담아 주었다.
“맛있는 거 많이 해 드쇼. 살 좀 찌고. 먹는 게 사는 거요.”
“고마워요.”
고기를 사면 장 보기는 대부분 끝이다. 그래도 키리에는 남은 시간 동안 거리를 돌며 주변을 구경했다.
사람이 좋았다. 가만히 있으면 들리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심장 소리밖에 없는 곳에서 살다 뛰쳐나오니, 모든 것이 싱그럽고 사랑스러웠다.
“딸기가 귀하지.”
“마감 할인합니다!”
“글쎄, 대륙 너머에는 집채만 한 호랑이가 산다지 뭔가?”
“마당의 눈 좀 치우세요, 아저씨…….”
“땔감 값이 너무 올랐는걸…….”
“거지들이 얼어 죽고 있다는군.”
“쯧쯧.”
“궁에는 모든 게 있을 텐데! 손끝으로 모든 걸 부릴 수 있겠지?”
얼굴이 익은 몇몇 상인들은 키리에에게 인사해 주었고, 키리에도 어색하게 거기에 화답했다.
‘죽어 버려요, 누나.’
그렇게 멀쩡히 지내다가도, 같이 죽어 주겠다 말한 소년을 떠올릴 때는 숨 쉬는 것마저 괴로웠다.
키리에가 거리에 주저앉으면, 친절한 사람들이 키리에를 조세피나의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언니는 왜 자주 쓰러져?”
“쉬. 페데리카. 언니가 마음이 아파서 그래. 언니랑 같이 있어 주렴. 알겠지?”
“응!”
침대에 누운 채 문틈 사이로 들리는 조세피나와 페데리카의 대화를 들으며, 자신의 한심함에 목이 졸려 잠드는 나날도 있었다.
조이는 내내 곁에 있었지만, 외부 경비는 약해지지 않는 듯했다.
“탈출로는 아직이야?”
“아직입니다. 죄송합니다.”
매일 셀 아렐라노를 탈출할 방법에 대해 묻던 키리에도, 어느 순간부터는 더는 묻지 않게 되었다.
결단코, 그녀가 아론의 유언을 지키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세피나의 집에서는 거의 모든 순간에 페데리카가 붙어 있었고, 외딴곳에서 자진하려 할 땐 꼭 주변에서 사고가 터졌다.
아이가 하수구에 빠진다든가, 부부 싸움이 격해져 남편이 아내를 죽이려 든다든가, 길을 잃은 아이가 울고 있다든가.
가까스로 건물 옥상에 오르거나 날붙이를 찾아 쥐면 조이가 나타나 키리에를 제지했다.
그게 반복되니, 사실은 자신이 죽고 싶지 않아 핑계를 댈 뿐인 것만 같았다.
‘아론. 미안해, 아론. 난 아직도 죽지 못했어.’
죄책감은 하루가 다르게 마음을 난도질했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시장의 거리와 페데리카의 웃음은 눈이 부셨다.
“언니! 계속 나랑 있어 줄 거지? 진짜 언니 하면 안 돼? 마리아 언니도 좋지만 마리아 언니는 나랑 안 놀아 주거든. 키르 언니가 더 좋아! 계속 같이 있어!”
페데리카의 천진한 말에 대답하는 키리에의 마음도 분명 녹아내리고 있었다.
정말로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
키리에가 평소처럼 주변의 소란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거의 여느 때와 같은 하루였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정육점을 나선 키리에가 향신료 소매상으로 몸을 돌린 직후였다.
“이야아아악! 죽어!”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의 악에 찬 울부짖음이 들렸다. 사람들의 비명도 같이 들려왔다.
“꺄악!”
“미쳤나 봐!”
“누가 좀 말려 봐요!”
“이러다 다 죽겠어!”
뒤쪽의 소란을 들은 키리에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거리 저편에서 칼을 들고 달려오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네년!”
그 수많은 사람 속에서, 남자는 정확히 키리에를 보고 있었다. 놀란 키리에의 몸이 굳자마자, 검은 등이 빠르게 앞을 가렸다.
“물러나십시오.”
“조이?”
“집으로 뛰십시오.”
귓전에서 이명이 쨍한 소리를 내며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힌 것처럼 어지럼증이 몰려들었다.
“거기 서! 이 개 같은……!”
“뛰십시오!”
“씨발! 멈춰! 네년이 뒤져야 이게 끝날 거 아니야!”
“뷰캐넌 님!”
뭐냐고 물을 새도 없었다. 키리에가 황급히 조세피나의 집으로 뛰었다.
“네가 뭐라고 이 도시가……!”
뒤에서 악에 받친 절규가 울렸지만, 컥 하는 단말마와 함께 이내 끊겼다. 끔찍한 소리였다. 귀에 남은 흔적을 뒤로하고 뛰는 내내 거리가 뱅글뱅글 도는 것 같았다.
키리에는 쉬지도 않고 4층 계단을 올랐다. 그녀가 거칠게 문을 열자, 거실에서 놀던 페데리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야? 왜 그래?”
“헉, 헉…….”
“언니!”
“페데리카…….”
“무서운 사람이 쫓아왔어?”
다리가 풀린 키리에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페데리카가 도도도 다가와, 그런 키리에의 어깨를 덥석 끌어안았다.
“에비! 무서운 사람 날아가라!”
페데리카가 까르르 웃으며 손을 휘저었지만, 키리에는 웃을 수 없었다.
그녀가 식은땀을 흘리며 바닥을 구르는 음식 재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서운 사람……?’
귓가에 남자의 절규가 맴돌았다. 그의 한 맺힌 시선도. 키리에의 손이 덜덜 떨렸다.
“언니야?”
키리에가 좀 더 강하게 페데리카를 껴안았다. 남자가 끝맺지 못한 마지막 문장이 더듬더듬 떠올랐다.
‘네가 뭐라고 이 도시가 이딴 촌극을……?’
***
“그냥 광인입니다.”
밤에 찾아온 조이가 말했다. 키리에가 파리한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그저 미쳤을 뿐인 사람이 그 많은 사람 사이에서 정확히 나를 노린다고?”
다소 초조한 목소리였다.
“우연히 시선이 맞았을 뿐입니다.”
“분명 나를 죽이고 싶어 했어.”
“아닙니다.”
“그 남자가 마지막에 ‘이딴 촌극’이라고 말했잖아.”
“미친 사람은 헛소리를 왕왕 합니다.”
조이의 반응은 건조했다. 키리에가 다시 낮의 남자를 떠올렸다. 그는 분명 키리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알고 죽이려 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왜?’
나타니엘의 수하라면 그렇게 뻔한 짓을 할 리 없다. 근위병의 죽음으로 원한이 있는 자라면, 촌극 어쩌고 하는 말이 의미를 잃는다.
키리에가 이마를 짚었다.
‘뭔가가…… 뭔가 정보가 부족해. 퍼즐이 전부 모이지 않았어.’
그 모습을 본 조이가 헛기침했다.
“남자는 무사히 치안대에 인도했고, 뷰캐넌 님의 소재는 들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말이 안 돼.”
키리에가 창틀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 관계없는 사람이었다면 조이 네가 나서지 않았겠지.”
편두통이 몰려들었다. 그녀는 불안을 숨기지 못하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촌극……?”
“뷰캐넌 님.”
“근위병의 유가족? 아니야, 그러면 그가 한 말이 맞지 않아……. 왜 내게 원한을……? 아니,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엉클어졌다. 근위병, 촌극, 아론 피츠, 죽은 남자, 겨울…… 땔감…… 냉해가…… 눈이…… 궁에는……?
그때였다. 키리에가 있는 방문이 조금 열렸다. 조이가 쏜살같이 인기척을 숨기며 사라졌다.
“언니야……?”
“페데리카. 깼니?”
키리에가 급하게 표정을 정돈했지만, 얼굴에서 수심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페데리카가 베개를 쥔 채 눈을 비비며 나타나, 키리에의 다리를 꼭 껴안았다.
“언니야, 왜 안 자. 페데리카랑 자는 거 싫어……?”
“페데리카, 가서 자렴. 언니는 곧 갈게.”
“힝, 시러……. 페데리카랑 같이 자…….”
“페데리카.”
“언니, 나 두고 가 버릴 거잖아…….”
아이는 때때로 예리하다. 키리에의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보였니?”
“웅…….”
페데리카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키리에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한 뒤, 페데리카를 안아 올렸다.
“안 그럴 거야. 걱정하지 마. 같이 가서 잘까?”
“응!”
페데리카가 헤헤 웃으며 키리에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분명 페데리카의 그런 행동은 귀엽고 기뻤지만, 처음으로 키리에는 답답함을 느꼈다.
‘요즘은 페데리카를 돌보느라 뭔가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 같아.’
그 순간, 키리에가 벼락을 맞은 것처럼 걸음을 멈췄다.
“언니야?”
그녀는 페데리카의 부름에도 멈춰 서서 눈을 크게 홉뜬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무심결에 스쳐 지나간 생각 하나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럴 리가 없어.’
자의식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떤 가정 하나가 물밑에서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났다. 무의식의 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그것이 떠오를수록 키리에의 몸도 차가워졌다.
‘그럴 리가 없어.’
한참을 굳어서 움직이지 않던 키리에가, 이후 아무 말 없이 페데리카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천천히 페데리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페데리카.”
페데리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언니?”
맑고 순수한 눈이었다. 키리에가 ‘어떤 의심’을 하는 것조차 죄악감이 들 정도로.
키리에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다가, 낮게 속삭였다.
“……아냐. 아무것도.”
“언니 이상해.”
“그러네. 이상하네.”
“괜찮아?”
“…….”
키리에가 입술을 달싹이며 페데리카의 검은 눈을 응시했다.
“언니야?”
조금 불안한 듯한 페데리카의 부름에, 키리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가서 잘까, 페데리카?”
“……웅.”
페데리카가 애써 겁나지 않는 척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키리에가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아닐 거야.’
키리에의 눈이 질끈 감겼다.
‘아니어야만 해.’
아침이 밝았다. 조세피나가 식사를 차려 준 뒤 일을 나갔다. 키리에는 페데리카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왔다.
전날 남자가 칼을 휘둘렀던 장소에 다다르자, 페데리카가 키리에의 다리를 꼭 끌어안았다.
“언니야, 어제 이상한 사람 나왔대!”
키리에는 페데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포석을 살폈다. 깨끗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손가락으로 포석을 문지른 키리에가 몸을 일으켰다. 코앞에 과일 가판대가 보였다. 땅딸막한 키에 머리에 수건을 두른 테스가 과일을 닦다가 키리에를 보고 고개를 들었다.
“키르! 오늘은 아침부터 나왔네요? 아이구, 페데리카도 왔어?”
“좋은 아침이에요.”
“구경 왔어요!”
“옳지, 배 줄까?”
페데리카가 까르륵 웃으며 테스에게서 배 한 조각을 받아먹었다. 테스가 뒤늦게 키리에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있어요? 표정이 안 좋은데.”
“테스. 혹시 어제 있었던 일 기억해요?”
“어제요? 어휴, 당연히 기억하죠.”
테스가 과일을 닦던 헝겊을 내려놓고서 허리에 손을 얹었다.
“웬 미치광이 한 명이 난동 부린 거 말하는 거죠? 말도 마요. 전설경이 돌아오곤 치안이 좀 좋아졌나 싶었는데, 역시 유성구는 이렇대니깐.”
“남자는 어떻게 됐어요?”
“글쎄요? 미친 것 같았으니 보호소로 가지 않았을까요?”
“테스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런 미치광이랑 알고 지낸 적은 없어요! 호호.”
“그 사람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뭐였는지, 혹시 기억해요?”
질문하며 키리에가 주의 깊고 집요하게 테스와 눈을 마주쳤다. 테스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서 어깨를 으쓱했다.
“촌극 어쩌구 하던데, 조현병 같은 거 아니려나?”
“……그런가요.”
키리에가 눈을 내리깔았다. 테스가 괜찮으냐며 앉았다 갈 것을 권했지만, 키리에는 거절하고 다른 가게로 향했다.
“안토니오. 혹시 어제 난동을 부렸던 남자에 대해 아나요?”
“엥, 내가 그런 놈을 어떻게 아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또다시 다음 가게로 이동했다. 이후 열 번도 넘게 사람들에게 남자에 대해 물었지만, 정보라 할 만한 대답은 없었다.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몰라요. 미친 사람인 것 같았어요. 남자의 말이요? 광인의 광언이겠지요……. 모두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대답하고서, 상냥하게 웃으며 다른 화제를 꺼냈다.
마지막은 헤스나의 채소 가게였다.
“헤스나, 어제 칼부림을 냈던 남자에 대해 아는 거 있나요? 살던 곳이라든가…….”
“유성구는 워낙에 단칸방이 많고 길이 복잡해서, 나도 모르겠네요. 왜요?”
“어디서 봤다든가, 그런 것도요?”
“네에. 그렇답니다.”
헤스나가 짧은 곱슬머리를 찰랑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키르. 안색이 안 좋아요.”
“날이 추워서 그런가 봐요. 추위에 약하거든요.”
“하긴, 요즘 계속 눈이 오죠.”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송이가 속눈썹 위에 얹히는 것이 느껴졌다.
“키르. 혹시 그 남자랑 아는 사이에요?”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상인회에 좀 물어볼까요?”
헤스나가 가판대를 넘어 다가와 키리에의 손을 잡았다.
“손도 이렇게 차가워선…….”
그런 헤스나를 바라보는 제비꽃 색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키리에가 머뭇거리며 작은 신음을 흘리자, 헤스나는 더 어쩔 줄 몰라 했다.
“무슨 일 있는 거죠, 키르?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요. 혼자 집에 가긴 어려울 것 같은데…….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빵집에 데려다줄게요.”
헤스나가 그렇게 말한 뒤 앞치마를 벗기 시작했다. 정말로 조세피나에게 바래다줄 모양이었다. 그녀의 눈빛이 염려로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본 키리에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역시 아닐 거야. 그렇게까지 했을 리 없어. 내 기우겠지.’
키리에가 한 걸음 물러났다.
“아니에요, 헤스나. 괜찮아요. 잠깐 피곤해졌나 봐요. 혼자 갈 수 있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고마워요. 잠깐 이상한 생각에 빠졌을 뿐이에요.”
“정말요?”
키리에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스나가 머뭇거리며 다시 앞치마를 둘렀다. 그녀는 곧 뺨에 보조개를 띄우며 웃었다.
“알았어요. 갑자기 혈압 낮아지고 그러면 꼭 앉아서 쉬어요? 페데리카, 언니 잘 지켜 주고.”
“웅!”
“씩씩하기도 해라.”
키리에는 곧 페데리카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아름답고 정겨웠다.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하며 분주하게 오갔다. 키리에는 거리 한가운데 서서 그 모든 활기에 귀 기울였다.
“엄마, 나 저녁으로 치킨 소테 먹고 싶어!”
“마감 할인합니다!”
“포트듀케인이 북대륙에서 신기한 물건들을 들여왔다던데?”
“눈이 그치질 않네.”
“땔감 값이 너무 올랐는걸.”
“상성구에서 마차 사고가 났다는군.”
“궁은 따뜻하겠지?”
키리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맑게 갠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눈이 그친 게 언제였는지도.
그래, 이 눈. 도무지 그치지 않는 이 눈 때문에, 착각했을 것이다. 분명, 그저 겨울일 뿐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거리로 나선 키리에 앞에, 마차 한 대가 거칠게 달려와 멈춰 섰다.
키리에가 놀랄 틈도 없이 마차 문이 벌컥 열렸다. 안에 탄 사람을 본 키리에의 눈이 커졌다.
“당신…….”
“타렴. 시간 없단다.”
***
그 시각, 셀 어딘가. 장식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 듯한 벽난로 불꽃이 일렁이는 방이었다.
방 안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고, 그 중 문 앞에 서 있던 올드시우다드 공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접촉했습니다.”
창가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린 채,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오늘이네. 준비해.]
***
여자는 화려한 금발에 안경을 썼고, 입가에는 그린 듯 예쁜 점이 찍혀 있었다. 한 손에는 담뱃대, 한 손에는 겨울용 부채를 들었지만, 담비 털로 트리밍한 드레스는 겨울용이라고 하기엔 면적이 과히 모자랐다.
키리에와는 도무지 연이 없을 것 같은 여자였지만, 사실상 키리에와 가장 밀접하게 엮여 있는 여자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보는 어미한테 인사도 못해 주니?”
키리에의 어머니, 제냐 하트우드가 요염하게 웃었다. 키리에가 냉연하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수도에 계셨군요.”
“온 지 몇 주 안 됐단다. 그 전엔 올드렐름에 있었지. 내가 종말을 연구하는 건 알고 있지? 거기에 흔적이 제일 많거든.”
“용건은요?”
“어머? 매정해라. 세자르 그치랑 반응 똑같은 거 보게?”
“제가 여기 있는지는 어떻게 아셨죠?”
“으으응?”
제냐가 킥 웃었다.
“10점 주마, 키리에. 참고로 멍청이 지수란다.”
“저도 10점 드리죠. 참고로 몰상식 지수랍니다.”
“아하하! 농담도 참.”
제냐가 한껏 입을 벌리고 웃었다. 그녀의 미소에서는 으레 장성한 딸을 둔 어미들이 갖는 노숙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키리에는 자기 어미에게서 그런 걸 본 기억조차 없다.
제냐는 자기애의 화신 같은 여자였다. 그녀는 키리에가 열 살이 될 때까지만 ‘엄마’의 역할을 수행한 뒤 다시 ‘제냐 하트우드’로 되돌아갔다.
어릴 적엔 상처였지만 이젠 아니다. 키리에가 순식간에 우아와 냉소를 반씩 섞어 만든 차분함을 되찾았다. 그 모습을 본 제냐가 휘파람을 불었다.
“넌 정말 그 사람을 닮았다니까. 생긴 것부터 하는 행동까지.”
“용건을 말씀하세요.”
“하지만 배우자 보는 눈이 없는 것까지 닮을 필요는 없지 않았니?”
제냐가 중얼거렸다. 키리에가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대답했다.
“저는 배우자가 없습니다.”
“50점.”
마차가 느리게 빈민가를 돌기 시작했다. 유성구를 벗어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얼떨결에 따라 탄 페데리카는 벌벌 떨면서 키리에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다행이랄지, 제냐는 페데리카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여자였다. 가치 없는 일에 열과 성을 쏟지 않는, 괴짜이자 천재. 그래서 불안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이유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좋아, 용건 말이지. 내가 말이다…… 키리에.”
제냐가 느리게 본론을 꺼냈다.
“올드렐름에서 연구를 하던 도중, 수도에서 뭔진 몰라도 재밌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으로 들리질 않겠니?”
서두에서부터 밀어닥치는 불길함에 키리에의 호흡이 흐트러졌다. 제냐는 그런 키리에를 일견 무성의하게 응시했다.
“그걸 또 놓칠 수야 없지. 그래서 수도에 올라와 무도회에 참여했는데…….”
제냐가 말을 멈추고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생각보다 별거 없더라고. 그래서 역시 소문인가 했지. 그런데, 무도회 중에 잠깐 바람이 쐬고 싶어져서 정원으로 나갔더니, 거기 웬 무시무시한 게 있지 뭐니.”
제냐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그러더구나. ‘네가 키리에의 어미구나’.”
아마도 키리에의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페데리카를 끌어안은 키리에의 손에 땀이 찼다. 제냐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었지만, 그녀의 손끝 역시 떨리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말 그 말만 하고 사라졌지.”
제냐가 이마 위로 흩어진 금발을 쓸어 올렸다. 그녀는 트레이드 마크인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여유는 희미했다.
“처음엔 뭔가 했는데, 나중 가니 알겠더구나. 그게 ‘넌 키리에의 어미니까 봐주마’라는 뜻이라는 걸 말이야.”
키리에가 대답이 없자, 제냐가 이내 지능이 높은 사람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한번 어디까지 허용되나 보려고 왔단다. 간단하지?”
“간단하기도 하군요.”
키리에가 의욕 없이 빈정댔다. 제냐가 버릇처럼 키득거렸다.
“너무 그러지 말렴. 지금 아렐라노에서 네게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자르랑 나 정도밖에 없단다. 하지만 그 양반은 오히려 지금이 좋은 듯하더구나?”
“…….”
“키리에.”
제냐의 음색이 낮게 가라앉았다. 키리에는 어렵지 않게 그녀의 다음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너 지금 수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말 모르는 거니? 그런 거라면 멍청이 지수 990점이야.”
키리에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근 한 달을 지내며 익숙해진 거리였다.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빈민가답게 매일 사건이 터졌지만, 늘 수습 가능한 범위 안이었다…….
키리에의 몸이 곱아들어 갔다. 무릎까지 웅크린 상체를 양팔로 감싸도, 떨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차근차근 풀어지는 병사들의 감시. 반면 지지부진한 수도 탈출. 그녀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나타나는 사람들, 아이들. 그 천진한 미소에 녹아내리고 마는 자신. 그 위에 내리는 눈.
내리는…….
“……기다리고 있나요?”
키리에의 몸이 눈밭에서 벌거벗은 사람처럼 떨렸다.
제냐가 미약한 동정이 담긴 눈으로 키리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
담뱃대를 문 제냐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먼 곳에서 궁의 끄트머리가 짐승의 뿔처럼 돋아나 있는 것이 보였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꿈은 아무리 달콤해도 꿈이야. 탈출구는 언제나 현실에 있는 법이란다.’
제냐는 그 말만을 남기고 돌아갔다.
키리에는 밥을 먹었다. 페데리카에게도 저녁을 먹이고, 조세피나와 낮에 만났던 무례한 손님에 관해 이야기했다.
마차에서부터 내내 말이 없던 페데리카는 겁에 질린 얼굴로 조세피나와 자겠다고 했다.
키리에는 왕궁에서 나와 처음으로 혼자 침대에 누웠다. 사방이 고요했다. 오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조이.”
이름을 불러도 조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관에 누운 주검처럼 깍지 낀 손을 배에 얹은 채, 키리에가 연약한 숨을 내쉬었다.
〔나타니엘은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겁니다.〕
레쇼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가 말하던 내내 키리에에게 보였던 경고의 눈빛이 이제 와 뼈저리게 느껴졌다.
〔필요하다면 그는 죽음과 거래해서라도 당신을 되돌려받을 겁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나타니엘을 지워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워내기는커녕, 온갖 푸른 것을 볼 때마다 그가 떠올랐다. 때때로 여름의 바다처럼 맑고 아름답게 반짝이지만, 대체로는 겨울을 얼린 듯 차가운 그 홍채가 말이다.
그때, 바깥에서 작은 진동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키리에의 상념이 멈췄다. 아주 많은 사람이 이동하는 것 같은 땅 울림은 4층에 있는 키리에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녀는 침실 바깥의 나무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듣고도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키리에가 몸을 일으킨 것은 한참 뒤였다. 거실로 나간 키리에가 열없는 눈으로 주방을 살폈다. 늘 같은 자리에 걸려 있던 칼이 없었다.
“조이.”
키리에가 재차 이름을 불렀다. 조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키리에가 벌컥 다른 방문을 열었다. 잠들어 있어야 할 조세피나와 페데리카가 없었다. 삭막한 집 안에 빛이라고는, 식탁 위에서 키리에를 유혹하듯 흔들리는 호롱불뿐.
키리에는 그 거실에 멈춰 서서, 머릿속을 장악하는 생각들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시에 알고 있었다. 그 모든 생각의 저변에서, 아름답고 사악하며 우아하고 불길한 것이 자신을 이끌고 있음을.
이리 오라고. 제 발로, 자신에게 오라고.
[키리에.]하고 말하며.
‘꿈은 아무리 달콤해도 꿈이야.’
마침내 키리에가 호롱불을 집어 들었다.
***
키리에는 천천히 나무로 된 계단을 내려갔다.
층마다 문이 열려 있었지만, 안에 사람은 없었다. 키리에는 무표정으로 그 모든 광경을 지나쳤다.
눈은 오지 않았다. 밤하늘은 맑았고, 쌓인 눈이 가로등 불빛에 반사돼 푸르게 빛났다. 아름답다고 느껴야 할 푸른 빛에 키리에는 역함을 느꼈다. 그녀는 헛구역질 한 번으로도 지쳐, 죽은 양 같은 눈으로 거리를 바라보았다. 쌓인 눈을 밟은 수많은 발자국이 거리를 수놓고 있었다.
키리에가 호롱불을 꼭 쥔 채 맨발로 눈을 밟으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절대 못 줘.]
‘죽어 버려요, 누나.’
‘살아 줘, 키리에.’
세 명의 목소리가 몸 전체를 장악해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걸음은 점점 비틀거렸다. 나아갈수록 마음속에선 두려움이 커졌고, 혼란도 커졌고, 토해내지 못한 무언가가 속에서 가득 차 터지기 직전이었다.
키리에가 느린 걸음으로 도착한 곳은 수도에서 가장 크고 넓은 백합 광장이었다. 광장에 도착한 키리에가 다시 한번 구토했다.
광장은 귀족들의 마차가 둘러싸고 있었고, 광장 안에 서 있는 수백 명의 사람은 다가오는 키리에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조이, 조세피나, 페데리카, 코리, 테스, 헤스나, 안토니오, 하워드, 트레보……. 전부 아는 얼굴이었다.
그저 눈에 익을 뿐인 사람들도 있었다.
‘엄마, 나 저녁으로 치킨 소테 먹고 싶어!’
늘 엄마를 보채던 여덟 살 남짓의 어린아이.
‘마감 할인합니다!’
늘 무를 든 채 가판대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청년 상인.
‘포트듀케인이 북대륙에서 신기한 물건들을 들여왔다던데?’
베레모를 쓴 채 카페테리아 바깥에 앉아 있던 중년.
‘망할! 여긴 맨날 빙판이야!’
거리 구석에서 투덜거리던 빼빼 마른 심부름꾼.
‘상성구에서 마차 사고가 났다는군.’
‘저런!’
가게 앞에 서서 마차가 오길 기다리며 다른 구의 소식을 말하던 노파들…….
키리에가 거리에서 만난, 마주친, 스쳐 지나갔던 모두였다. 그들이 왕의 행진에 경배하듯 길을 냈다.
키리에가 그 사이로 나아갔다.
이윽고 키리에가 광장 중앙의 백합 동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내내 그녀를 기다렸을 사람을 마주했다.
나타니엘이 더없이 애틋하고 아름답게 미소지었다.
[키리에.]
그 미소가 키리에의 마음을 찢어발겼다.
***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겨울나무처럼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수백 명의 사람 사이에서, 키리에는 줄이 끊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더는 키리에 뷰캐넌도 아니었고, 그냥 키리에도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그냥 나타니엘의 무언가일 뿐이었다. 도망쳤는데 도망치지 못했다. 도망치고 싶었는데 결국 돌아와 버렸다.
즐겼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하는 자신을 수백, 수천 명이 관음했을 것이다. 재밌었을까? 말을 듣지 않는 자가 있다면 가차 없이 죽였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을까? 이것마저, 이 상황마저 연극인 건 아닐까? 어디서부터 그의 손바닥 안이었던 걸까?
참았던 울분과 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녀는 체면도 잊은 채 갓난아이처럼 목놓아 울부짖었다.
나타니엘이 한 발 다가왔다.
[오랜만이야.]
그리 말하는 나타니엘의 얼굴이 온화하고 자비로운 미소로 빛났다. 그의 주변은 공기마저 느리게 흐르는 듯했고, 오색찬란한 후광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기품 있는 낯에 듬뿍 배어 있는 애정은 자애롭기 한량없었다.
평소 나타니엘에게서 느껴지던 광기마저 고요했다. 그것은 마치 절망을 먹고 자라는 아귀처럼, 키리에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키리에의 눈에서 고개 숙인 자세 그대로 방울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손톱이 바닥을 긁다 부러져 피가 비쳐도, 그녀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전부……?”
채 완성되지 못한 문장으로도 나타니엘은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 그가 한숨처럼 깊고 달뜬 숨을 내쉬었다.
[전부.]
키리에는 양손으로 몸을 지탱한 채 느리게 고개를 들어 나타니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망가지는 걸 보고 싶은 건가요……?”
그녀의 양 뺨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도, 나타니엘은 마치 이제야 처음으로 그녀에게 반한 사람처럼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매끄러운 대답이 흘러나왔다.
[물론 네가 망가지는 것도 좋지만, 특별히 그 모습만을 보고 싶은 건 아니야.]
“그럼, 그러면……?”
[굳이 말하자면 그저 네 모든 모습.]
그가 천천히 키리에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길고 예쁜 손이 여느 때처럼 느린 속도로 키리에를 향해 움직였다.
그 손가락 끝이 연보랏빛 머리카락에 닿았을 때, 나타니엘의 입에서 기묘한 숨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역시 눈앞에 두는 게 좋아.]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글쎄. 사람들은 내가 널 ‘좋아한다’고 말하더구나.]
나타니엘이 겉옷을 벗어 키리에에게 둘러주었다. 검은 예복이 어둠처럼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하지만 난 네가 망가지는 것도 좋아. 네가 나를 사랑해도 좋고, 네가 나를 증오하면 그것도 좋지. 넌 이게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난……!”
[맞아.]
겉옷의 앞섶을 꼼꼼히 여민 나타니엘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입술이 닿을 듯한 지근거리였다. 그는 정말로 키리에를 ‘먹고’ 싶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난 그냥 널 가지고 싶은 거란다.]
키리에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밀치려 했다. 나타니엘은 슬쩍 움직여 그것을 피했고, 그 바람에 키리에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흙발로 밟혀 더럽혀진 눈을 뒤집어쓴 채 힘겹게 꼼지락거리는 그 지극한 하찮음이. 연약함이. 영구 동토를 호령하는 이 강대한 짐승에게는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만족스러워 보이는 눈으로 넘어진 키리에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심해야지.]
키리에는 짝 소리가 나도록 세차게 그 손을 쳐냈다. 이내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재밌어요? 이런 게……?”
나타니엘이 내쳐진 손을 가볍게 쥐었다.
[재밌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건 내가 널 선택하기 이전의 일이지. 난 이미 널 선택했고, 네가 뭘 하든 더는 그 선택에 영향을 끼치지 못해.]
“그럼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 없었잖아요……!”
키리에가 고혈을 짜내듯 외치며 몸을 비틀거렸다. 그녀는 다시 알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말에 나타니엘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키리에 뷰캐넌을 보고 있었다. 그가 명령한 대로.
[그 말도 맞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어.]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돌렸다. 그 소리에 겁먹은 키리에가 몸을 움찔했다.
그것을 본 나타니엘이 조심스럽게 키리에의 팔을 잡았다. 키리에가 버둥거렸으나 소용없었다. 그의 갈증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
그녀는 화살 맞은 사슴처럼 손쉽게 끌려가, 나타니엘의 품에 안겼다. 나타니엘은 물고기가 물을 찾듯 키리에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니까 사실, 난 그냥 네가 우는 소리를 듣고 싶었을 뿐이야.]
잠시 멈칫했던 키리에가 곧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나타니엘은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더 강하게 그녀를 끌어안고서, 아이를 어르듯 등을 도닥거리기 시작했다.
[키리에 뷰캐넌. 넌 모두가 두려워하는 내가 무슨 마음일지 따위를 궁금해하고, 심지어 외로우냐 물었지.]
일순 나타니엘의 미소가 아찔할 정도로 진해졌다.
[그 순진함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키리에가 실성한 사람처럼 절규했다. 그녀가 나타니엘의 어깨를 깨물고, 등을 할퀴어도 나타니엘은 키리에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그저 한 손으로는 키리에의 허리를, 한 손으로는 키리에의 목덜미를 쥔 채, 그녀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것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거야말로 그가 바라던 바였다. 그가 기다리던 것이었다. 기다린 만큼 감미로웠고, 기다린 만큼 사랑스러웠고, 기다린 만큼 모든 것이 더없이 좋았다.
[역시 넌 최고야.]
나타니엘이 키리에의 귓가에 속삭였다. 키리에는 새하얗게 터져 나가는 시야 속에서,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타니엘, 제발, 제발……! 이제 그만…… 제발……!”
[이제 그만해야지. 눈앞에 없으니 나도 좀 갈증이 나서 말이야.]
“싫어요, 싫어……! 싫어, 제발, 그만해 줘요…….”
[그만할까?]
“그만 해요…….”
키리에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타니엘은 이 상황에서도 아직 기대를 놓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에 소리 내어 웃었다. 어떻게 이렇게 작고 하찮은 존재가 다 있을까?
[안 돼.]
그가 장난치듯 속삭이자, 예상했던 대로 힘을 잃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흑, 으흑…… 흐……!”
[아직이야. 조금 더 울고, 조금 더 희망을 갖고, 조금 더 절망하렴.]
“싫어……!”
[그래야 마지막엔 진짜 희망을 눈앞에 두고서도, 손을 뻗을 생각조차 못 할 테니.]
“싫어요, 하지 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키리에. 나는 너를 전부 가질 거고, 절대 버리지 않을 테니. 가령 네가 울어도, 울부짖어도, 나를 죽이려 들어도.]
“싫어……! 싫어! 싫어! 제발, 아아악-!”
[네가 미쳐도, 불구가 되어도, 나병에 걸려 피부가 곤죽이 되어 썩어 문드러져도.]
“제발……! 싫어, 놔줘, 그만……! 그만, 아아아악!!”
나타니엘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지 눈조차 뜨지 못하는 키리에의 절규를 들으며, 그녀의 귓가에 얼굴을 묻었다.
[가령 네가 죽어도, 너는 영원히 내 소유야.]
‘죽어 버려요, 누나.’
미안해, 아론. 네 유언을 지키지 못했어.
‘살아 줘, 키리에.’
미안해, 얘들아. 난 도망치지도 못했어.
키리에가 공허하게 눈을 깜빡였다. 마음속 무언가가 작게 속삭였다.
도망쳐…….
‘어디로?’
도망쳐.
‘희망을 가져도 나타니엘이 전부 절망으로 바꿔 버릴 거야.’
그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그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그녀는 영원히 나타니엘의 소유였다. 도망쳐도 잡힐 테고, 무슨 짓을 하든 결국 끝에서는 나타니엘이 지팡이를 짚은 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어…….’
나타니엘이 모든 눈물을 전부 흘려 내고 목각 인형처럼 굳은 키리에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는 키리에의 머리카락을 넘겨주거나 하며 드물게 먼저 접촉해 왔다.
[커튼콜이 남았어.]
나타니엘이 손가락을 튕겼다. 사람들이 다시 몸을 돌려 키리에를 바라보았다.
“욱……!”
키리에가 헛구역질했다. 시선이 두려웠다. 과호흡의 기미가 보이자 나타니엘이 손바닥을 모아 키리에의 입을 막았다.
[공황 장애구나.]
“윽, 하아…….”
키리에가 벌벌 떨며 나타니엘이 씌워 준 예복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가 자세를 바로잡지 못하자, 나타니엘이 허공에서 길고 검은 망토를 만들어내 키리에에게 씌웠다. 키리에는 그제야 안심했는지 숨을 몰아쉬었다. 부지불식간에 나타니엘의 옷자락을 붙잡았다는 사실마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건 나타니엘만 알았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겨울 나뭇가지 같은 키리에의 손을 바라보았다.
[네 친구들의 도움이 컸단다. 물론 네 시녀도.]
나타니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파가 좌우로 갈라졌다.
“키리에!”
“키리에!”
사람들에게 끌려오던 라우라와 마리아가 동시에 외쳤다. 그걸 보면서도 키리에는 겁먹은 사람처럼 뒷걸음질 쳤다.
“아…….”
그 모습을 본 라우라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키리에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개자식아! 가만 안 둬! 전설경이고 뭐고!”
“키리에, 키리에? 정신 차려!”
두 사람의 절규가 키리에의 정신을 더 헤집었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키리에가 다시 헐떡거리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타니엘은 부드럽게 팔을 올려 키리에의 눈을 가렸다.
[궁에 갇힌 채로도 탈출 계획을 짜는 모습은 가상했어. 하지만 너희는 후계자일 뿐이며, 가주가 아니지.]
“당신……!”
“뭐라는 거야, 그럼 우리 아빠가 너한테 협조했다고?!”
[딸을 살리고 싶었을 테니, 물론.]
모든 걸 다 이뤄 낸 나타니엘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반면 라우라와 마리아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개자식아! 비겁한 자식아! 어쩐지 아빠 태도가 이상하더라니!”
“그럼 우리가 지시를 내린 정보원도 전부…….”
[내 명령대로 움직였지.]
그는 때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키리에의 옷자락을 더듬어 브로치를 떼어냈다. 올드시우다드의 월계수 문양이 그려진 것이었다.
[이깟 게 뭐라고 그리 쉽게 믿었을까.]
흰 손가락이 가볍게 그것을 부쉈다.
“대체 그 애한테 왜 그러는 거야!”
[그건 네 알 바가 아니지.]
미소 짓던 나타니엘이 일순 서늘함을 내비쳤다.
그의 차가운 시선은 곧 물 흐르듯이 광장 끝에 멈춰 있는 마차로 향했다. 제냐 하트우드의 마차였다.
애초에 변수는 다섯 개였다. 죽이기엔 애매한 다섯 명.
세자르 뷰캐넌은 부와 권력으로 복종시켰다. 엘프는 한번 정한 것을 번복하지 않으니, 안네마리는 ‘네 주인을 죽이지 않는다’는 말로 꼬드겼다. 마리아 올드시우다드와 라우라 포트듀케인은 그들의 아비를 이용했다.
그중 제대로 변수라 할 만한 것은 제냐 하트우드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훌륭하게 키리에 뷰캐넌이 꿈에서 깨는 것을 도왔을 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
마음이 부서져 제 옆에서 도망치지도 않고 있는 키리에를 내려다보며, 나타니엘이 미소지었다. 장난으로 망토와 겉옷을 벗겨 내자, 키리에는 다시 사람들의 시선에 헛구역질하며 몸을 웅크렸다.
라우라가 노성을 내질렀다.
“키리에! 정신 차려! 그 미친놈 수작에 넘어가면 안 돼!”
“키리에, 제발……! 정신 차려, 키리에, 이럴 순 없어……!”
[너흰 좋아해야지. 키리에 뷰캐넌만 내 옆에 있으면 너희는 대대손손 영화를 누릴 테니까.]
나타니엘이 킥킥 웃으며 다시 키리에의 머리 위에 망토를 씌워 주었다. 그는 그것을 아주 재미있는 놀이처럼 여기는 듯했다.
[나라가 부강해야 키리에에게 더 좋은 물건이 들어올 테니, 침략 전쟁을 한다면 협조해 주지.]
“키리에가 무슨 제물인 줄 알아?!”
[정말 아니었다면 이들이 내 말을 그렇게 철저히 수행했을까?]
“……그건!”
라우라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부를 탐한 것이든 단지 살고 싶었을 뿐이든, 수도의 인간들이 키리에 뷰캐넌을 내게 넘기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라우라의 떨리는 녹색 눈이 주변을 살폈다. 궁 안에 갇혀 있느라 바깥의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이 정도의 사기극을 벌일 정도면 어느 정도의 자발성이 없고서는 불가능했다.
그는 정말로 모든 것을 지배했다. 라우라가 젖어 드는 눈을 사납게 치떴다.
“좋아한다면 아껴 줘야 할 거 아냐! 괴롭히지 마! 네가 뭔데!”
그녀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며 몸을 비틀었다. 기세 탓인지 궁인 한 명이 손을 놓쳤고, 라우라의 손목을 옥죄던 구속이 풀렸다.
“키리에를 놓아줘!”
라우라가 키리에와 나타니엘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손에는 손바닥만 한 단검이 들려 있었다.
“키리에! 도망쳐!”
칼이 허공을 그었다. 서툰 몸짓이었지만 나타니엘은 예의상 한 걸음 물러나 주었다. 그 바람에 키리에와 나타니엘이 떨어졌고, 라우라가 다시 외쳤다.
“도망쳐! 살아! 꼭 살아, 키리에!”
그녀의 눈이 혜성처럼 이글거렸다. 키리에가 고장 난 오르골처럼 삐걱댔다.
“하지만…… 죽으면, 죽으면 안 돼…….”
“안 죽을 거야! 도망쳐, 귀염둥아! 나 믿지? 제발 도망쳐!”
“너희까지 죽으면…….”
“가!”
키리에가 뒷걸음질 쳤다. 그녀가 혼란에 먹힌 사람처럼 비틀거리면서도 인파를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나타니엘은 그것을 잡지 않았다. 그저 검은 망토를 날개처럼 펼친 채 달리는 키리에를 바라보며 미소지을 뿐.
[아직도 발버둥을 칠 줄 아는구나. 제법이야.]
“도망쳐! 살아! 살아남아!”
라우라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녀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마리아 역시,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살아 줘, 키리에!”
[갸륵하기도 하지.]
나타니엘이 손을 뻗어 가볍게 라우라의 손목을 부러뜨렸다.
“아윽!”
라우라가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여전히 불길이 일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오히려 멀쩡한 손으로 나타니엘의 팔을 붙잡기까지 했다.
그건 분명 기묘한 일이었다.
나타니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꼭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린 것 같지 않은가.
그를 본 라우라가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씩 웃었다.
“그거 알아? 우리 같은 폰도 체스판 끝에서는 퀸이 될 수 있다고!”
[둄2 절갠 교환재공타싸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