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개선 축하 파티 하루 전, 나는 마지막으로 루퍼트를 찾아갔다.
‘오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착잡한 마음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하 감옥에 들어섰다.
철문을 열고 철창 안을 바라보는데, 누워 있던 루퍼트가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루퍼트?”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재빨리 철창 안으로 들어섰다.
“정신이 들어요?”
조금 멍해 보이긴 했지만, 루퍼트는 푸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긴…….”
그의 질문에 나는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놓았다. 어떻게 사실을 말해 줘야 할까, 당신의 사형이 오늘 결정되었다고.
“여긴…… 감옥이에요.”
잠시 말이 없던 루퍼트가 갈라진 목소리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군.”
“기억이 얼마나 나요?”
“모두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이미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고 있었다.
“여기 있다는 건…… 지금쯤 내 사형 선고가 내려졌겠군.”
나는 차마 입으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마왕이 되었을 때의 일도 다 기억해요?”
“그래, 의식 아래 가라앉아 있었지만 분명 똑같이 보고 느꼈어.”
루퍼트가 서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팔목과 발목에 달린 구속구가 움직임에 따라 잘그락거렸다.
“신녀가 되었더군. 당신이 날 깨운 거겠지.”
“그래요…… 하지만.”
안타까움에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루퍼트가 허망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표정 하지 마. 그래도 말을 전하고 갈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루퍼트.”
이름을 부르자 그가 올려다봤다. 조금 지쳐 보이긴 했지만 어느 때보다도 맑고 푸른 눈동자였다.
“여길 와서 어쩌려고 그래, 당신까지 괜히 휘말릴 수도 있어. 아니, 아니지. 그럴 리가 없나, 당신은…….”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일그러지다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곧 황태자비가 될 몸이니.”
한가하게 잡담을 나눌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의 말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루퍼트, 마왕이 된 건 당신의 의지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내가 황태자를 배신한 건 사실이야, 당신의 연인을 배신한 나를, 당신은 용서할 수 있나?”
“…….”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당사자가 아니었으니까.
에녹이 루퍼트를 구하고 싶어 하긴 했지만, 그를 용서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또한 나는 에녹의 심정까지 헤아려 본 적은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에녹도 친구였던 루퍼트의 배신에 아파했을까.
“전하를 뵐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그것까진.”
“그렇군. 하긴, 오지 않을 거야, 내가 이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루퍼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는 게 아니었어.”
“……무슨.”
루퍼트는 지금 분명 나를 보며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마지막에 보여 줬던 그 태도는 뭐란 말인가?
하지만 마지막을 제외한 그동안의 태도를 볼 때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 혼란스러움을 느꼈는지 루퍼트가 씁쓸하게 웃음 지었다.
“그땐 그냥 내 걸 뺏기는 기분이라 좀 다급했던 것 같아, 미안해. 나는 여전히…… 클로에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어. 그녀가 날 속였다는 건 유감이지만.”
그의 착잡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정을 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 진심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이제 그의 마음은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를 살리는 일이다. 한숨 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뭔가요, 그대로 죽겠다는 건가요?”
“그런 짓을 하고도 살길 바란다면 사람이 아니지.”
이미 끝을 생각하는 그를 보면서, 마음이 차게 가라앉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 열쇠는 에녹이 준 것으로 팔다리에 채워진 구속구를 풀 수 있었다.
“그래요, 하지만 난 당신이 살 수 있는 선택을 하길 바라요.”
손안의 열쇠를 본 루퍼트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확인하듯 나를 올려다봤다.
“어떻게 이걸…… 내가 밉지 않아?”
나는 잠시 뜸을 들이며 내가 그를 미워하는지 생각했다.
한때, 이 운명이 바뀌기 전, 또 다른 에린이 루퍼트를 사랑하고 그에게 지독하게 외면당했을 때엔 그랬던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심하긴 하지만 이제 와서 밉진 않아요. 미워하던 시절은 이제 지났죠.”
“그래, 그렇군…….”
어쩐지 그는 더 작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열쇠를 쥐지도 놓지도 못한 채였다.
“당신의 사형은 이틀 후랬어요. 내일부터는 개선 파티가 열려요.”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말해 주었다. 루퍼트는 멍한 눈으로 그런 나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나는 조금 더 단호하게 말했다.
“살아요.”
“…….”
“살아서 속죄하고, 후회하면서 또 살아요.”
“에린.”
나는 그에게서 발걸음을 돌려 나가다 흘긋 뒤를 돌아보았다. 루퍼트가 앉은 채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듯, 떠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모습을 눈에 새기듯 응시하다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가 살든, 죽든 오늘 보는 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마음속 어딘가가 텅 빈 느낌이었지만, 나는 애써 떨쳐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
그날 저녁, 황제는 귀족들을 다시 소집했다. 회의에서 나온 결정을 확실하게 공표하는 자리였다.
“내일 모레, 루퍼트 클리포드를 사형에 처한다.”
반역죄는 재판이 없었다.
황제를 포함한 귀족 회의의 찬반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 회의를 열지 말지 결정하는 것부터가 황제의 권한이니, 열렸다 하면 이미 반역이라 결정지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전에 이미 귀족들이 많은 상소를 올려 황제를 압박한 것도 원인이긴 했지만 말이다.
황제는 루퍼트 외에도 반역에 가담한 귀족들의 명단을 발표하며 그에 맞는 벌을 내렸다. 대부분 가담자 본인은 사형, 그의 가족들은 작위와 영지를 몰수당했다.
“옳으신 결정입니다!”
“이제야 이 땅에 완전한 평화가 찾아왔군요!”
“감히 이 제국의 유일무이한 황태자 전하께 반역을 하다니, 당연하고도 옳은 결정입니다.”
귀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황제의 결정을 환호하고, 공을 세운 황태자를 앞다퉈 칭찬했다.
차기 황제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한 아부였지만, 사실 나쁜 현상은 아니었다. 이들은 차후 에녹이 황제에 등극했을 때 단단히 결합하여 지지 세력이 되어 줄 것이다.
에녹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속이 뒤틀리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간신히 미소로 답하면서도 온통 머릿속에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첫날 죄수들을 가려내어 죄가 가벼운 자들은 석방할 것이다.”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하는 황제는 누구보다도 유능하고, 자애로우며, 또 냉엄했다. 황실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제국민들은 당연히 차기 황제에게도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며 기쁘게 기대하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결말이었다.
***
예정되었던 파티가 시작되었다.
“에린, 손을.”
나는 에녹의 손을 잡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로 가지각색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이미 황태자가 신녀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귀족들이 나를 보는 눈빛에는 존경과 호기심, 질투와 열등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살갗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황제, 황후 폐하 입장하십니다!”
곧이어 도착한 황제와 황후 덕분에 그 시선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황후는 지나가며 나와 눈인사를 했다.
황제의 짧은 축하 연설과, 개회를 알리는 선언과 함께 본격적으로 파티가 시작되었다.
데뷔탕트를 치르는 어린 신사 숙녀들이 제일 먼저 나와 춤추기 시작하면서, 그 외의 사람들은 가장자리에 자리 잡았다.
나와 에녹은 함께 입장했지만, 역시나 그와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황태자 전하, 이쪽에 델파르 왕국의 왕녀님께서 오셨습니다. 잠시 인사 나누시지요.”
“아, 예.”
에녹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과 인사를 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녀라니, 어쩜 이렇게 신기한 일이.”
“저는 스필렛 백작의 비범함을 일찍부터 알았다니까요!”
라파엘르 후작 부인이 부채를 팔랑거리며 다가와, 나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녀를 시작으로 여러 부인과 영애들도 한마디씩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에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나가는 시종의 쟁반 위에서 샴페인 잔을 집어 들었다. 초조함에 입 안이 바짝 말라왔다.
단지 그가 없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 에녹은 내게 오늘 있을 일에 대해 언질해 줬었다. 그래서 더욱 긴장이 됐다.
그 일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자니, 그녀들의 대화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반가워요, 이런 곳에서 뵙는 건 처음인 것 같네요. 밀라 버튼 영애.”
나는 최대한 태연한 척 잔을 꽉 쥐고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
루퍼트는 식어 버린 스프 그릇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루퍼트가 깨어난 걸 확인한 경비병은 마치 괴물을 본 듯한 표정으로 경악하면서, 저 그릇과 딱딱한 빵을 던지듯이 놓고 가 버렸다.
에린이 떠난 이후, 그는 미동도 없이 내내 그 자세로 앉아 그녀가 나간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꽤 한참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일이 오전의 일인지 오후의 일인지, 지하 감옥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었다.
루퍼트는 에린이 쥐어 준 열쇠를 여전히 꽉 쥐고 있었다. 그 손을 펴면 마치 온기가 날아가기라도 할까 겁이라도 내는 것처럼, 내내 펴지 않고 있었다.
‘살아요.’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모두 다 잃었다. 그런데도 살라고 하는 건 지독히도 자신을 미워하기 때문인 걸까?
“그럴 리가…… 없지.”
차라리 미움이라도 받았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모습은 자신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내내 담담하기만 했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또다시 숨이 막혀 왔다.
혹시나 남은 미련이 있을까 밀어내려고 굳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었지만, 그녀에게는 어쩌면 그럴 필요조차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살아요.’
“그것이 형벌이라면.”
루퍼트는 허탈하게 웃으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 앞으로 갔다. 구속구에 달린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릇에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손안에 쥐고 있던 열쇠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