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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 그냥 너 가지세요 (41)화 (41/129)

41화

“이것이…… 제가 발견한 부인의 목걸이입니다.”

클로에가 두 손으로 반짝이는 목걸이를 황제에게 보이도록 들어 바쳤다.

“이건…….”

황제는 그것을 들어 자세히 보며, 뭔가 알 듯 말 듯한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시종장이 먼 곳을 보다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폐하! 저기 황태자 전하가 오고 계십니다.”

“그래?”

황제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시선이 에녹과 에린 쪽으로 쏟아졌다. 긴장한 에린은 자신도 모르게 에녹의 손을 꽉 붙잡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게?”

마치 귀신을 본 것 같은 반응과 함께, 신기하다는 듯한 반응도 있었다.

그중 데이먼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와 입을 벌린 채 에린을 보다, 고개를 돌려 에녹을 조금 원망스러운 듯 바라봤다.

눈을 마주친 에녹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까딱거리자, 데이먼은 나중을 기약하며 일단 물러났다.

단상 위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던 루퍼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에린은 눈을 치켜뜨며 그와 당당히 눈을 마주쳤다.

루퍼트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배신감, 분노, 안도와 애증 같은 것들이 물밀듯이 밀려왔지만 차마 그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에린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에녹의 손을 잡고 사뿐사뿐 단상 위로 올라갔다.

에녹이 황제 앞에 묵례했고, 에린은 무릎을 굽히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황제 폐하께 인사 드립니다. 에린 스필렛이라고 합니다.”

황제는 그녀를 찬찬히 살펴보다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는 에녹에게 말했다.

“에녹, 어떻게 된 일인지 상세히 말하거라.”

황제는 얼핏 엄한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표정에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에녹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 폐하. 스필렛 백작은 애초에 죽지 않았습니다. 제가 마법석 동굴에서 구해 잠시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옆에 앉아 있던 에린을 흘긋 보며 목걸이를 그녀 앞에 보여 주었다.

“그럼 이건 자네 것인가?”

“예, 맞습니다.”

에린이 긍정하자 황제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에녹을 흘끗 보더니, 다시 클로에에게 질문했다.

“자네는 이것을 마법석 동굴에서 발견했다고 했지.”

“예, 그렇긴 하온데…….”

“에녹, 스필렛 백작을 구한 장소가 어디더냐.”

“마법석 동굴 내부였습니다. 그곳에서 마물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백작을 구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러자 갑자기 클로에가 에녹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황태자 앞을 가로막는 건 엄청난 무례였으나, 그녀는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한 것 같았다.

에녹이 정색을 하며 그녀를 봤고, 황제도 예법에 어긋나는 그녀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마 이성이 남아 있는 루퍼트가 클로에의 팔을 뒤로 잡아끌었다.

“진정해.”

“분명, 제가, 제가 먼저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마물이 죽어 있는 것도 제가 봤다고요.”

“하지만 목걸이를 주웠다는 건, 그 목걸이 주인이 먼저 들어갔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그건……!”

클로에가 말문이 막힌 사이, 에녹이 자신의 보좌관을 불러 무언가를 가져오게 했다.

그것은 작은 병이었는데, 안에는 시커멓고 진득한 것이 들어 있었다. 언뜻 보면 연체동물의 일부분 같아 보였다.

황태자의 보좌관이 황제의 보좌관에게 조심스럽게 그 병을 건네주었다. 황제는 그것을 보며 에녹을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마물의 일부분을 가져왔구나.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막 죽었을 때 일부 떼어 놓았습니다.”

“그것참, 머리를 썼구나.”

클로에는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상황이 뒤바뀐 것에 대해 분노하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가 무서워서 떠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법석 동굴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스필렛 백작이 되는 것이로군.”

황제가 에린을 바라보며 말하자, 에린은 시선을 내리깔고 무릎만 굽혀 그에 대답했다.

루퍼트는 마법석 동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여전히 여러 감정이 담긴 눈으로 에린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루퍼트를 클로에가 바라보다,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루……퍼트.”

하지만 루퍼트는 클로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그저 동상처럼 굳어 있었다.

“폐하, 제가 마물을 퇴치할 수 있었던 것도, 스필렛 백작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점수를 불러 주는 서기관이 나와 황제의 보좌관에게 뭐라 속닥거렸다. 그러자 황제의 보좌관이 황제에게 말을 전했다.

“폐하, 마물 또한 점수 집계에 포함됩니다. 팔찌에는 새겨지지 않았지만, 에녹 전하의 점수에 마물을 퇴치한 전적을 합하면 육천 점이 된다고 합니다.”

와아아아-!

에녹의 새로운 점수가 공개되자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터질 것 같은 함성을 질러 댔다. 그제야 내내 굳어 있던 루퍼트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는 작은 한숨과 함께 클로에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내려가자.”

“하지만, 루퍼트……! 난 당신에게 주려고…….”

“이제 아니잖아. 어서 내려가.”

그 말만 남기고 루퍼트는 황제에게 예를 갖춘 뒤, 클로에를 내버려 둔 채 아래로 터덜터덜 내려갔다.

아직 그대로 서 있는 클로에를 보며 황제가 말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군. 그래도 찾느라 수고했네. 이만 내려가 보게나.”

황제가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이 클로에도 무릎 인사를 한 후 내려왔다. 그녀는 브리먼의 눈빛에 입술을 깨물며 루퍼트의 곁으로 갔다.

이제 단상 위에는 황제와 그의 보좌관, 황태자와 에린만이 남아 있었다.

황제가 트로피를 높이 들어 군중들에게 보여 주었다.

“에녹, 말해 보거라. 점수를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황제의 질문에 에녹은 자신감 어린 미소를 지으며, 에린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 그녀를 손으로 가리켰다.

“마법석 동굴을 찾고, 마물을 잡는 데 일조한 여기 스필렛 백작께 제 점수를 양도하겠습니다.”

에린은 이 상황을 예상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얼떨떨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에녹의 손짓에 에린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황제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에린을 바라보며, 트로피를 건네주었다.

“사냥 대회 일등은 물론, 마법석 동굴의 첫 발견자로서의 권리를 황제의 이름으로 인정하노라.”

“와아, 축하드립니다!”

군중도 모두 동의하는 듯 크게 기뻐하며 박수 쳤다.

“마법석 동굴을 발견한 건 자네의 행운이기도 하지만, 제국에 있어서도 크나큰 이득이니 짐은 매우 기쁘구나. 혹 따로 원하는 것이 있는가?”

황제의 말에 에린은 잠시 고민했다. 없다고 하며 뒤로 물러나면 겸손하다 여기겠지만, 그래서는 아무런 이득도 없다.

에린은 더 낮은 자세를 취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의 양손에는 트로피가 소중하게 들려있었다.

“예, 폐하. 청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 보라.”

“채굴권과 운영권은 황실에 귀속되게 하겠습니다. 다만 책임자를 황태자 전하로 임명해 주시고, 제가 그 일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나라의 관리들이 하는 일인데. 굳이 번거롭게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자네는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광산에서 나오는 수익의 절반 이상을 취할 수 있는 것을.”

“일이 돌아가는 과정을 손수 챙기고 싶은 마음을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폐하.”

“하긴, 자네 이익도 달린 일이니 철저히 하겠지. 고려해 보마.”

“황공합니다, 폐하.”

에린이 일어나려 하자 에녹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 주었다. 황제는 에녹을 가느다란 눈초리로 보며 말했다.

“이 목걸이도 스필렛 백작에게 다시 주면 되겠느냐? 에녹.”

에린은 왜 그 질문을 에녹에게 하는지 몰라, 에녹을 빤히 보았다. 그러자 그의 귓바퀴가 붉게 물들며, 잘게 헛기침을 했다.

“예, 폐하.”

“아비와 아들이 똑 닮았구나, 굼뜨기는.”

황제는 혀를 쯧쯧 차면서도 에녹에게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네가 나중에 직접 채워 드려라.”

에녹의 손 위에 목걸이를 턱 얹어 놓고는, 황제는 그 길로 단상 위에서 내려갔다.

다시금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그를 배웅했다. 황제는 그길로 지체하지 않고 다시 수도로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 그는 이것 외에도 할 일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

나는 무슨 말인가 싶어 계속 에녹을 보고 있었다. 에녹은 그 목걸이를 대충 제복 주머니 속에 넣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일단 내려가시죠, 백작. 나중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며 나에게로 쏠려 있는 시선을 의식할 수 있었다. 대부분은 놀라운 표정이었지만, 몇몇은 아니었다.

“아우님, 큰 공을 세우셨군요. 어떻게 그렇게 백작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습니까?”

“백작이 몸이 좋지 않아 쉬게 해 드렸을 뿐입니다.”

단상에서 내려오자마자 나는 그의 손을 놓고, 아까부터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루퍼트에게 다가섰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루퍼트가 먼저 따지듯이 물어 왔다.

“사람 갖고 노니까 재밌어?”

“어렵게 살아 돌아온 사람에게 하는 첫 인사말치고는 좀 과격하네요.”

나는 씁쓸한 듯 읊조렸다. 그러자 루퍼트가 주춤하며 한 번 심호흡하더니,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왜 살아 있다고 알리지 않았지? 내가, 얼마나,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루퍼트는 내 어깨를 두 손으로 잡더니 그간의 괴로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를 보는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차게 얼어 있었다. 애초에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내가 아닌 클로에를 선택한 건 그였다.

나는 그의 손목을 쥐고 차례로 두 손을 잡아 내렸다.

“미안하지만, 조금 쉬고 싶네요.”

“……에린.”

나는 꽉 막힌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루퍼트를 지나쳐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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