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페르데스가 마법을 쓰다니!
아델은 물론 레오폴드 기사들도, 심지어 아나토메 친위대까지 놀라며 페르데스를 쳐다봤다.
반면 페르데스는 웃으며 아델을 바라봤다. 입 모양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괜찮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델은 대답 대신 난데없는 마법 공격에 놀라 멈칫한 아나토메 친위대원의 심장에 정확하게 검을 꽂아 넣었다.
날카로운 검이 꼬챙이처럼 친위대원의 몸을 완전히 꿰뚫었다.
“……!”
그는 외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동료의 죽음에 화가 난 건지 다른 친위대원이 아델을 향해 매섭게 돌진했지만, 허점투성이인 공격이 먹힐 리가 없었다.
아델은 가볍게 적의 공격을 흘려보낸 뒤, 그대로 베어 냈다.
긴 자상에서 솟구친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델의 얼굴은 물론 머리카락에도 잔뜩 튀었지만, 머리카락에 튄 피는 원래 있었던 것처럼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아나토메 친위대는 고작 두 명뿐.
그들은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서로 눈짓을 주고받다가 재빠르게 도망쳤다.
도망치는 자는 쫓아가지 않는다.
그 규칙은 아나토메 친위대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아델은 끝까지 그들을 쫓아가서 목을 베었다.
심장에 검을 꽂아 넣으며 확인 사살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소 잔인한 그녀의 행동에 지레 겁을 먹은 적들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런 적들을 바라보는 아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흡사 죽음을 관장하는 여신 같은 미소였다.
아나토메 친위대를 섬멸한 아델은 다시 적장으로 뛰어들었다.
승기가 다시 레오폴드 기사단 쪽으로 빠르게 기울었다.
* * *
나름 치열했던 전투가 끝난 건, 하늘 높이 떠 있던 해가 지고 그 자리를 달이 채운 늦은 밤이었다.
당연히 승자는 우리였다. 늦은 밤까지 적들과 싸우느라 많이 지쳤을 텐데, 레오폴드 기사들은 그런 기색 없이 환호하며 승리를 만끽했다.
승리했다고 해서 사상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많은 수의 기사들이 다치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부상자들은 즉시 의원에게 보내게. 아르티나 왕국군에 의원이 있으니, 그곳으로 보내면 돼.”
“네, 단장님.”
비교적 상태가 괜찮은 기사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한 뒤, 반쯤 부서진 기둥 아래에서 쉬고 있는 페르데스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페르데스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그런 것치고 힘이 없어 보이시는데요.”
“어설픈 실력이지만 나도 최선을 다해서 싸웠거든.”
“어설픈 실력이라뇨. 잘 싸우시던데요.”
“빈말이라도 고마워.”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페르데스의 검술 실력이 형편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를 피가 튀는 전장에 데리고 오는 게 굉장히 걱정됐었다.
그런데 웬걸, 페르데스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잘 싸웠다.
그뿐인가. 내가 위험할 때 마법을 써서 날 도와줬지.
“그러고 보니 어떻게 마법을 쓰신 거예요?”
내가 아는 페르데스는 마나가 없어서, 마법을 못 쓰는데?
“이것 덕분이지.”
페르데스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그의 성년식 때 내가 선물해 준 마법 펜이었다.
“그걸 여기까지 가지고 오신 거예요?”
“물론. 그대한테 선물 받은 뒤로 항상 들고 다녔는걸.”
페르데스가 마법 펜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고 다닌 건데,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네.”
“그러게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페르데스 님. 덕분에 아나토메 친위대를 물리칠 수 있었어요.”
“그들이 아나토메 친위대였다고?”
아, 그러고 보니 페르데스는 모르겠구나.
“네. 맞아요. 황제가 우리를 막으려고 보낸 거겠죠.”
“그런 것치고 수가 적던데.”
“아나토메 친위대는 원래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아요.”
최정예 황제 전속 기사단이었으니까.
“아마 남은 놈들은 황제를 전적으로 호위하고 있겠죠.”
“그럼 황제를 만나러 가면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거네.”
“아마도요.”
페르데스가 눈썹을 찡그렸다.
“그럼 제대로 준비해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나토메 친위대는 엄청 강하잖아.”
“걱정하지 마세요. 아나토메 친위대는 공격에 특화된 기사단으로, 방어는 제대로 할 줄 모르니까요. 황제만 노리면, 금방 뚫을 수 있어요.”
거기다 남은 아나토메 친위대보다 레오폴드 기사의 수가 훨씬 많을 테니, 수적으로도 우리가 우세했다.
“그러니 페르데스 님은 걱정하지 말고, 푹 쉬세요.”
“아니. 나도 갈래.”
페르데스가 일어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빌어먹을 황제가 네 발 앞에서 설설 기는 꼴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음, 그래요.”
남으라고 해도 끝까지 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것 같기도 하고.
페르데스를 데리고 가도 딱히 위험한 일은 없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황제는 이미 비밀 통로도 도망친 거 아니야? 충분히 그럴 시간이 되는데.”
“황궁의 모든 비밀 통로는 아르티나 왕국군이 지키고 있어요. 만약 황제가 통로를 이용했다면 연락이 왔을 거예요.”
내 말에 페르데스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그대는 황족이 아닌데, 어떻게 황족만 아는 비밀 통로를 알고 있는 거야?”
그야 첫 번째 생에서 체르노서가 황궁에는 이런 게 있다고 떠들어댔으니까.
그때는 뭐 이런 것까지 말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미리 조사했어요.”
“흐음, 그래?”
페르데스는 미심쩍어하면서도 깊게 묻지 않았다.
그때, 코너 경이 다가왔다.
“3황자와 루센 공작의 신병을 확보했습니다.”
3황자는 승기가 우리 쪽으로 완전히 기울자 도망쳤고, 루센 공작 역시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라졌다.
도망치는 사람은 붙잡지 않는다는 게 내 철칙이지만, 그들에게 물어볼 게 있어 나는 코너 경에게 황궁 내에 있을 그들을 붙잡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코너 경은 그 명령을 수행해 온 것.
“3황자는 반항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기절을 시켰고, 루센 공작은 순순히 항복한 터라 포박만 해 두었습니다.”
“그럼 루센 공작과 이야기를 나눠야겠군.”
내가 코너 경을 따라가자, 자연스럽게 페르데스가 따라붙었다.
보고 받은 대로 루센 공작은 밧줄에 꽁꽁 묶인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주변은 레오폴드 기사들이 엄격하게 감시하고 있었고.
“드디어 왔군요.”
루센 공작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당장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리 웃을 수 있다니.
정상이 아니라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을 만큼, 이상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내가 빤히 쳐다보자 루센 공작이 수줍게 볼을 붉혔다.
“그렇게 쳐다보면 조금 부끄럽습니다만.”
그냥 생각하지 말자.
저 남자는 애초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분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황제의 편이었죠?”
“이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전 황제 폐하의 편이 아닙니다.”
“그럼 어째서 남부령과 동부령의 기사들을 이끌고 저를 막은 거죠?”
“그 역시 오해입니다. 그 기사들을 이끈 건 제가 아닌 3황자 전하니까요.”
하긴 루센 공작은 초반에만 떠들고, 전쟁이 시작하자마자 사라졌었지.
그리고 황제가 한 짓도 순순히 자백했었다.
황제가 내 아버지를 죽인 일을…….
새삼 떠오른 생각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누르며 물었다.
“황제가 아버지를 죽인 걸 언제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그게 중요합니까?”
“뭐라고요?”
“지금 공작에게 중요한 건, 황제를 잡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퍽-
감히 내 아버지가 살해된 걸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치부하는 그의 태도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나는 루센 공작의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고개가 돌아가고, 입술이 터질 정도로 세게 때렸는데, 루센 공작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진짜 정신이 나간 사람이구나.
그와 더 이상 대화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코너 경. 그를 잘 감시해요.”
이만 황제를 만나러 가야 하니, 코너 경에게 루센 공작을 맡겼다.
“큭.”
그러자 루센 공작이 비웃음에 가까운 실소를 터뜨렸다.
누가 봐도 뭔가 있는 게 분명한 웃음이었다.
“왜 그렇게 웃는 거지?”
페르데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눈썹을 찡그리며 루센 공작에게 물었다.
그러자 터진 입술이 기괴한 모양으로 올라갔다.
“어째서 황제가 황궁 기사단과 귀족 기사단을 나눠서 내보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뭐?”
“처음부터 황제는 레오폴드 공작을 제압할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기사들을 방패 삼아 시간 끌기를 하려고 했던 것뿐이죠.”
시간 끌기. 그 말이 고막에 내리 꽂혔다.
설마 황제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가?
생각이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몸이 움직였다.
“단장님!”
“아델!”
뒤에서 코너 경과 페르데스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걸음에 황제의 궁으로 달려간 나는 수십 개나 되는 황제의 침실을 전부 확인했다.
없다. 침실은 물론 집무실에도, 서재에도 없었다.
어디 숨은 거지?
도대체 어디에 숨은 거냐, 황제!
숨이 턱에 닿도록 뛰고 또 뛰며 황제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왼팔을 낚아채듯이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