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7화 (241/262)

247화

기차의 기관실에는 기차 중앙 통신부와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게 마법 통신 구슬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건 웨일 백작이 구해 온 기차도 마찬가지였다.

마법 통신 반지와 달리 통신 구슬은 연락이 오면 종을 흔드는 듯한 소리가 났다.

기관사가 기차 운행에 집중하느라 연락이 온 걸 알아차리지 못할까 봐 소리가 나게 만들어 둔 것이다.

맑은 종소리는 처음에 들을 때는 아름다웠지만, 계속 들으니 소음이었다.

“어우, 시끄러워.”

결국 참지 못하고 마법 통신 구슬을 깨뜨리자, 곁에 있던 프로페테스 4세가 웃었다.

“이러면 중앙 통신부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 수도 있는데, 괜찮겠나?”

이곳에는 듣는 귀가 없으니 프로페테스 4세는 말을 놓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곧 크라드 역에 도착하니 상관없어요.”

크라드 역은 수도 이전 역으로, 그곳에서 수도까지 말을 타고 대략 한나절 정도 걸렸다.

“로고스 경은 이미 크라드에 있겠죠?”

“물론. 말과 마차도 전부 준비해 뒀다고 하더군.”

“좋아요. 그럼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출발하면 되겠네요.”

“난 그래도 상관없는데, 그대는 괜찮나?”

뭐가 괜찮다는 거지?

의아해서 쳐다보자, 프로페테스 4세가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레오폴드 기사단 말일세. 딜롬이 아닌 황궁으로 진격하는 걸 전혀 모르는 것 같던데. 바로 출발해도 괜찮은 건지 물어본 거야.”

“괜찮아요. 그들은 제국이 아닌 레오폴드 기사단이니까요.”

프로페테스 4세가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호오, 상당히 기사들을 믿고 있군.”

“당연하죠. 설마 국왕 전하께선 전하의 기사들을 믿지 않으세요?”

“그럴 리가. 전부 믿고 있지. 아주 믿음직스러운 기사들이야.”

“저도 마찬가지예요. 전부 믿고 있어요.”

“거짓말.”

프로페테스 4세의 눈매가 가늘게 접혔다.

“정말로 기사들을 믿는다면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 그리고 그들이 싸워야 할 진정한 상대가 누구인지 미리 말했을 텐데 공작은 그러지 않았지.”

정곡을 사정없이 찌르고 들어온 말에 나는 말없이 웃었다.

“예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그대의 성격은 참 이상한 것 같아.”

프로페테스 4세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주변 사람들을 아끼고 믿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벽을 쳐서 그들이 다가오는 걸 막잖아.”

그야 그들을 완전히 믿는 게 아니니까.

내가 가진 비밀들을 전부 공유할 수 없으니까.

“조심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철벽을 치는 것도 안 좋아.”

프로페테스 4세가 내 어깨를 다독였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이나 힘든 일은 나누면 배로 줄어든다는 말이 있듯이, 혼자 끌어안고 고민하려고 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해 보는 게 어때?”

“…….”

“내가 보기엔 공작의 주변에는 제법 괜찮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 순간 머릿속에 페르데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 건 왜일까.

그에게 맡겨 둔 일이 많아서?

모르겠다. 아니, 알 것 같은데 알면 안 될 것 같아 생각을 억지로 구겨 넣었다.

그리고 프로페테스 4세의 손을 떼어 내며, 되물었다.

“그 괜찮은 사람에 국왕 전하도 속하는 건가요?”

“물론.”

프로페테스 4세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턱에 가져다 댔다.

“나 정도면 괜찮지 않아?”

“제 입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괜찮은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요.”

“어라, 그 말은 내가 별로라는 거야?”

“말을 아끼겠습니다.”

사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정곡을 사정없이 찌르며 나를 심란하게 만든 죄로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런.”

그러자 프로페테스 4세가 깊은 탄식을 뱉으며 이마를 짚었다.

“좀 더 노력해야겠군. 그대가 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까지 말이지.”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요.”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그를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방금 이번 일이 끝나면 날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

“……독심술도 할 줄 아세요?”

“그럴 리가. 그대가 날 바라보는 눈빛이 딱 그런 의미 같았거든.”

그랬던가.

“그나저나 섭섭한데. 나는 이번 일이 끝나도 그대와 자주 볼 생각이었는데.”

“공사로 바쁘지 않으세요? 전쟁이 끝나면 더욱 바빠지실 텐데요.”

“그래도 그대와 보낼 시간은 있어.”

뭐지. 이 연애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는.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닌지 기관사도 프로페테스 4세를 흘겨봤다.

반면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표정만 보면 장난인 것 같은데, 그 말을 한 순간의 느낌은 진심이었다.

“그런 말씀은 제가 아닌 왕비가 되실 분에게 하셔야지요.”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아보기 위해 말을 던지자, 프로페테스 4세가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왜 저렇게 웃는 거지?

끼이이익-

물어보려는데, 거친 굉음이 들렸다.

크라드 역에 도착한 것이다.

프로페테스 4세가 기관실 문을 열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만 갈까.”

평소였다면 저 손을 잡았겠지만, 지금은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그냥 기관실을 나왔다.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단장님.”

바로 코너 경이었다.

그 뒤로 다른 기사들도 보였다.

“무슨 일이지?”

나를 왜 찾아온 건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그러자 코너 경을 비롯한 기사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뭔가…….”

코너 경은 내 뒤를 따라 나오는 프로페테스 4세를 보고 하려던 말을 삼켰다.

기사들은 당장이라도 검을 빼 들 것 같은 자세를 취하며, 프로페테스 4세를 경계했다.

“이런. 단단히 미움을 받고 있나 보네.”

프로페테스 4세는 몹시 유감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내게 말했다.

“그럼 난 먼저 내릴 테니, 공작은 마무리하고 나오도록.”

조용히 떠나도 모자랄 판국에, 저런 말을 하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경계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프로페테스 4세의 뒷모습을 주시하는 기사들을 쳐다봤다.

“어째서 로스덤이 아닌 크라드에 온 건지 묻고 싶은 거겠지.”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옮겨졌다.

“그리고 저 사람과 내가 무슨 사이인지도 묻고 싶은 거고.”

코너 경을 비롯한 기사들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됐다.

“모든 건 기차에서 내리면 말하겠다.”

레오폴드 기사들이 전부 있는 자리에서 말이지.

“그러니 일단 내리도록.”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거절하려고 했는데, 코너 경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코너 경이 물었다.

“짐을 전부 가지고 내려야 합니까?”

많은 의미가 함축된 질문이었다.

짐을 전부 가지고 내린다는 건, 다시 기차에 탈 일이 없다는 거고.

그 말인즉 로스덤이나 딜롬으로 갈 일도 없다는 거니, 탈환전에 참전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설마 코너 경이 이렇게 영리한 질문을 할 줄이야.

평소 조금 그의 이미지를 생각해 봤을 때, 조금 의외였다.

한편으로 안심이 되는 건, 알도르 경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를 부단장으로 임명해서 기사단을 맡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건 알도르 경이 돌아오는 거지만…….

알도르 경을 생각하니 기분이 우울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들의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으니,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챙겨 내리도록.”

* * *

코너 경은 즉시 기사들에게 짐을 전부 챙겨 내리라고 명령했다.

이에 몇몇의 기사들은 어리둥절했고, 몇몇의 기사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듯 기함했으며, 또 몇몇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남아 모든 기사들이 내리는 걸 확인한 뒤, 기차에서 내렸다.

정거장에는 레오폴드 기사단 외 로브를 깊게 눌러 쓴 낯선 무리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로브를 벗으며 다가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작 각하.”

“오랜만이군, 로고스 경. 아니지, 모처럼 작위를 받았으니 백작이라고 불러 줄까?”

“하하, 괜찮습니다. 아직은 백작보다 경이라는 호칭이 더 편하거든요.”

“이런. 이번 일이 끝나면 더 높은 작위를 받게 될 텐데, 호칭에 익숙해져야지.”

로고스 경과 웃으며 간단하게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레오폴드 기사들을 비롯한 대부분은 훔쳐보듯이 곁눈질로 흘끗 바라봤는데, 로고스 경의 일행 중 한 명은 대놓고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자는 누구지?”

내가 그 녀석을 가리키며 묻자, 로고스 경이 어색하게 웃었다.

“왜 그래?”

“그것이……”

로고스 경이 뭐라 말하려는 그때, 날 뚫어져라 쳐다보던 자가 다가와 후드를 벗었다.

흩날리는 새카만 머리칼과 그 아래로 보이는 황금색 눈동자.

“페르데스 님?”

그가 왜 여기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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