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6화 (240/262)

246화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

“로스덤으로 갈 기차를 구했습니다, 공작 각하.”

웨일 백작이 몹시 뿌듯해하며 내게 보고했다.

내가 짜 둔 판에서 춤을 추는 줄도 모르고, 마냥 좋아하는 웨일 백작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수고했네, 백작.”

“아닙니다. 제국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걸요.”

제국이 아니라 네 안위를 위해서 한 거겠지.

마구간지기들의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지만, 그들이 웨일 백작의 가솔인 만큼 그 역시 완전히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만약 탈환전에서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더욱 엄중한 벌이 내려질 테니, 웨일 백작이 화장실이 급한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건 당연했다.

“부디 버릇없는 연합군들을 쫓아내고, 딜롬을 되찾아 주십시오, 각하.”

내게 간곡히 부탁하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물론이지. 그러니 백작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좋은 소식이 들리길 기다리면 되네.”

“네, 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각하.”

웨일 백작은 다소 비굴해 보일 정도로 굽신거리다가 나갔다.

그럼 출전 준비를 해 볼까.

물론 내 전쟁터는 딜롬이 아닌 황궁이었다.

제복을 챙겨 입고 허리춤에 검집을 찼다. 항상 들고 다니던 검을 꽂아 넣으려다,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던 마법 주머니를 꺼냈다.

이 안에는 비블로스가 그토록 찾던 드래곤의 심장으로 추정되는 큼지막한 퓨라가 박힌 검이 들어 있었다.

어쩌면 황제가 원하는 물건일 수도 있었고.

“이걸 써야겠어.”

황제가 그토록 갈망하던 물건으로 그의 목숨을 끊는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다음엔 비블로스에게 여기 박힌 퓨라를, 드래곤의 심장을 돌려줘야지.

모든 일이 끝나면 더는 주저하지 않고, 무조건 그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비블로스를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화장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미니 드래곤에게 향했다.

웨일에 도착한 뒤로 비블로스는 물론 페르데스에게서도 연락이 없었다.

아무 일도 없으니 연락하지 않는 거겠지만, 그래도 너무 조용하니 불안했다.

내가 먼저 연락해 볼까.

슬슬 레오폴드 영지로 가고 있을 테니, 무사히 가고 있는지 확인차 연락해 보면 될 것 같아 미니 드래곤을 안아 드는 그 순간.

똑똑-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공작 각하.”

프로페테스 4세가 날 찾아왔다.

아마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려고 온 거겠지.

페르데스에게는 나중에 연락해 봐야겠네.

“들어오도록.”

나는 미니 드래곤을 다시 내려놓고, 프로페테스 4세를 맞이했다.

* * *

다시 황궁으로 돌아온 페르데스는 곧장 중앙궁으로 가서 탈환전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살폈다.

알아본 결과, 탈환전은 계획대로 진행되는 중이라고 했다.

황태자가 이끄는 황궁 기사단이 오늘 아침에 오웬의 바로 옆 도시인 디안에 도착했다는 보고도 들어왔었다.

이쯤 되니 에런이 본 사람이 정말 황태자인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일단 황족인 건 확실해.’

에런의 말에 따르면 황태자와 알도르로 추정되는 남자들은 황족만 아는 비밀 통로를 이용해서 황궁으로 들어왔으니까.

둘 중 한 명이 황족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아내기 위해선, 직접 만나 봐야 했다.

‘문제는 이 넓은 황궁에서 그들을 어떻게 찾냐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넓은 황궁을 혼자서 뒤지고 다니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으니, 조금 답답해서 페르데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페르데스는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했다.

‘일단 그놈들은 어딘가에 숨었을 거야.’

에런이 그 작자를 황태자라고 확신한 건, 그가 황태자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가 황궁에 나타났다면, 그래서 누군가의 눈에 발각됐다면 분명 소문이 났을 터.

그런데 여태 잠잠한 걸 보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은 게 확실했다.

황궁은 넓지만, 그만큼 사람이 많아 그들의 눈을 피해 숨을 만한 장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페르데스는 그 장소들을 전부 알고 있었다.

과거, 그를 괴롭히는 이복형제들의 눈을 피하려고 노력했던 결과였다.

페르데스는 그 장소들을 전부 확인해 봤지만, 그 어디에도 황태자나 알도르로 추정되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황태자 궁도 살펴보았지만, 그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 숨은 것인가.

페르데스는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황궁 전경을 내려다봤다. 그의 뒤로 붉은 석양이 지고 있었다.

한참을 둘러보던 페르데스의 눈에 들어온 건 황제의 궁이었다.

황궁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하고 은밀한 곳.

‘설마 저기인가?’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황태자는 황제의 충실한 개였으니까.

그런 그가 황궁으로 돌아왔다면 분명 황제의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골치 아프게 됐네.”

황제의 궁은 황태자의 궁이나 다른 궁처럼 몰래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페르데스는 한달음에 황후의 궁으로 달려갔다.

“제가 황제의 궁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황후 폐하.”

갑작스러운 요구에 황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물었다.

“느닷없이 황제의 궁에 들어가려는 이유가 뭡니까?”

“찾아야 할 게 있거든요.”

“무엇을요?”

“지금 당장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황후가 헛웃음을 지었다.

“뭘 찾는 건지도 모르는데, 내가 뭘 믿고…….”

“2황자 전하의 행방과도 관련된 일입니다.”

페르데스는 거침없이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아델을 위한 일인데, 이 정도 거짓말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황당함으로 가득했던 표정이 단숨에 진지해졌다.

황후가 진실을 가늠하려는 듯 저를 쳐다보자, 페르데스는 담담하게 마주하며 물었다.

“해 주실 겁니까?”

“…….”

황후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이내 일어섰다.

“지금 당장 황제의 궁으로 가겠다.”

* * *

황후라고 해서 황제의 궁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황제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러나 황제는 탈환전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그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고 공표해 두었다.

시종장이 그 사실을 말하며 지금은 황제를 만날 수 없다고 말하자, 황후가 짜증스레 말했다.

“폐하께서 최근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시니, 내 친정에 부탁하여 몸에 좋은 것들을 챙겨 왔다. 이것만 전해 드리고 갈 테니, 문을 열어라.”

“제가 대신 전해 드리겠습니다.”

“방금 내가 한 말 듣지 못했는가, 시종장. 문을 열라고 했을 텐데?”

“하오나 황후 폐하……!”

“당장 문을 열라고 했다!”

황후의 불호령에 시종장과 궁정인들은 쩔쩔매면서도, 문 앞에서 비켜서지 않았다.

이에 황후가 노발대발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안 됩니다, 황후 폐하!”

“진정하시옵소서!”

“지금 누구 몸에 손을 대는 것이냐! 당장 놓거라!”

거친 몸싸움까지 일어나자 황제의 궁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던 페르데스는 사람들이 황후를 말리는 데 집중하는 틈을 타서 재빨리 황제의 궁으로 들어갔다.

황후가 미끼가 되어 준 덕분에 황제의 궁에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궁정인의 눈에 띄는 즉시 쫓겨날 테니, 페르데스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황제의 궁 역시 터무니없이 넓은 터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궁정인들의 눈을 피해 몰래 찾아야 해서 힘들기도 했다.

‘일단 비밀 통로 입구부터 찾아보자.’

황태자가 이곳에 왔다면 비밀 통로를 쓴 흔적이 있을 테니까.

비밀 통로는 보통 침실이나 서재, 그리고 집무실에 만들어 두었다.

황제 역시 그럴 테니, 우선 황제의 집무실 쪽으로 가려는데.

툭, 데구르르-

무언가 그의 앞까지 굴러왔다.

“이건 돌멩이?”

이게 왜 굴러온 거지?

페르데스는 의아해하며 조약돌만 한 돌멩이를 주웠다.

돌멩이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지하실.]

‘누군가 나한테 메시지를 보낸 건가.’

도대체 누가?

……설마 알도르 경인가?

마침표를 찍는 생각에 페르데스는 깜짝 놀라며 돌멩이가 날아온 쪽을 바라봤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페르데스는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리며 다시 돌멩이를 내려다봤다.

이걸 적은 사람이 알도르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였다.

설령 위험하더라도.

페르데스는 돌멩이를 주머니에 넣고, 지하실 쪽으로 향했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길은 잠겨 있는 것이 보통인데, 어째서인지 활짝 열려 있었다.

마치 그에게 얼른 내려오라는 듯이.

만약 알도르가 한 짓이라면, 저 안에 제게 도움이 될만한 걸 준비해 뒀겠지.

정확히는 아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말이다.

페르데스는 어두컴컴한 지하실 통로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걸음을 옮겼다.

타박, 타박, 그의 발소리가 좁은 통로에 넓게 울려 퍼졌다.

‘도대체 이 안에 뭐가 있는 거지?’

디아볼로스에 대한 자료? 아니면 황태자가 숨어 있으려나?

그도 아니면 알도르가 있는 걸까?

페르데스는 온갖 상상을 했지만, 전부 쓸모없는 짓이었다.

“……이게 뭐야.”

지하실에 있는 건, 그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아주 끔찍한 것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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