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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화 (235/262)

241화

아델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도 탈환전을 위해 서부령으로 가니, 중앙궁에선 그들을 위한 출정식이 열렸다.

몸이 아픈 황제를 비롯한 모든 황족들이 참석하는 자리였지만, 페르데스는 참석할 수가 없었다.

황제가 백치병이 도졌으니, 방에서 요양하며 푹 쉬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요양이 아니라 감금이겠지.’

백치병에 걸린 반쪽짜리 황자를 귀빈들 앞에 내보이는 건, 황족의 수치일 테니까.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델을 배웅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래서 페르데스는 아쉬운 마음을 그녀의 치장을 도와준 걸로 푼 것이다.

……작은 욕심도 부렸고.

페르데스는 손끝으로 입술을 살짝 건드렸다.

아델이 떠난 지 두 시간이 훌쩍 지났건만, 그녀의 이마에 닿았을 때의 그 감촉이 아직도 생생했다.

이마에 키스하는 걸로 만족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닿고 나니 좀 더 욕심이 났다.

싱그러운 초록색 눈동자에.

오똑하고 예쁜 콧방울에.

그리고 그 무엇보다 달콤할 것 같은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이래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는구나.

페르데스는 쓰게 웃으며, 에런과 나눠 가진 마법 통신 반지를 쳐다봤다.

아직 아무것도 찾지 못한 건지, 에런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내가 먼저 연락해 볼까.’

페르데스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나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연락하는 건 너무 이른 감이 있는 데다가.

혹 어디 잠입해 있는 거라면, 괜히 연락했다가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참았다.

먼저 해결해야 할 게 있기도 했고.

페르데스는 출정식이 끝난 지 3시간쯤 지났을 무렵, 봄의 궁을 나와 중앙 궁으로 향했다.

그런 페르데스의 뒤를 호위 기사와 궁인들이 따랐다.

혹 페르데스에게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 그를 보좌하기 위해서였다.

‘귀찮네.’

거슬리기도 했고. 누가 따라다니는 건 딱 질색이었다.

페르데스는 그들을 떼어 놓고 싶었지만, 황제의 명령으로 붙은 사람들인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뭐, 그 남자가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루센 공작.

페르데스가 중앙 궁에 가는 이유도 루센 공작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어제 만나려고 했지만, 오늘 출정식 때문에 회의가 너무 길어져 만날 수가 없었다.

오늘은 좀 한가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원하는 정보도 얻을 수 있기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루센 공작이 있는 중앙 궁에 도착한 페르데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공작 각하께선 현재 황후 폐하와 담소 중이십니다.”

루센 공작과 황후가 담소 중이라니.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다가, 황후가 직접 중앙 궁까지 찾아온 것도 의아했다.

보통은 황후 궁으로 부르는 편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황후에게 어쩌면 체르노서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댔지.’

그리고 그 행방을 루센 공작이 알고 있다고 언급했고.

뒤늦게 아델이 말해 준 걸 떠올린 페르데스는 비로소 황후의 행동을 이해했다.

‘타이밍이 안 좋네.’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시하고 들어갔을 텐데, 황후라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신분이 자신보다 더 높은 건 둘째치고, 마주하기 껄끄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체르노서의 일로 찾아온 거라면 더더욱.

“황자 전하!”

그러니 나중에 다시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서는데, 누군가 그를 다급하게 불렀다.

황후의 시녀였다.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페르데스의 머릿속에 안 좋은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황후 폐하께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어째서 안 좋은 예감은 항상 빗나가지 않는 건지.

그나마 좋은 건 황후가 있다고 하니, 황제의 끄나풀들이 따라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응접실 안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황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고.

루센 공작은 별 감흥 없다는 듯 무덤덤하게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가 페르데스가 들어오자 반색하며 일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황자 전하.”

왜 이렇게 친한 척하는 거지.

수상하고 꺼림칙해서, 페르데스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루센 공작은 계속 싱글벙글이었다.

“기분이 상당히 좋은 모양이군.”

“당연히 좋지요. 오랜만에 황자 전하를 뵀는데, 어찌 기분이 안 좋겠습니까.”

이 새끼, 진짜 뭐지.

황당한 대답에 페르데스의 눈썹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황후만 없었다면, 그의 멱살을 잡고 무슨 속셈이냐고 물어봤을 텐데.

페르데스는 그녀가 있는 게 아쉬워, 황후 쪽을 흘겨봤다.

때마침 황후도 페르데스를 보고 있던 터라, 피할 틈도 없이 눈이 마주쳤다.

“……어서 오세요, 황자.”

황후가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로 그를 맞이했다.

페르데스도 적당히 예를 갖춰 인사했고, 곧이어 앉으라는 명령에 페르데스와 루센 공작은 황후를 마주보고 나란히 앉았다.

황후는 울적한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페르데스에게 물었다.

“듣자하니 루센 공작을 만나러 왔다던데,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 더는 묻지 말아 달라는 의미로 말한 건데, 황후는 눈치없이 계속 말했다.

“저런. 루센 공작과 다툰 모양이군요. 뭐 때문에 다퉜는지 말해준다면, 내가 중재해 보도록 할게요.”

당신이 왜.

절대 할 수 없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조금 성가시더라도 단호하게 거절하려는데, 루센 공작이 말했다.

“아무래도 4황자 전하께선 2황자 전하의 행방이 궁금해서 찾아오신 듯 합니다.”

뭐래는 거야, 이 미친 놈이.

페르데스는 눈을 부릅뜨며, 루센 공작을 쳐다봤다.

반면 황후는 반색하며 그에게 되물었다.

“정말인가요?”

“아닙니다.”

빈말이라도 그렇다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인지라, 페르데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황후의 얼굴이 실망과 섭섭함으로 얼룩졌다.

루센 공작은 몰랐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어째서 절 만나고 싶어 하신 겁니까?”

“…….”

다 알면서 일부러 이러는 것 같은데.

어쩌면 그딴 이야기를 한 것도 자신이 진실을 말하게 하려고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누가 네 놈의 술수에 넘어갈 줄 알고.’

어림도 없지.

페르데스는 속으로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야 자네가 내 약혼녀에게 한밤중에 은밀한 쪽지를 보내지 않았나.”

“……!”

“어머.”

루센 공작은 물론 황후도 깜짝 놀라며 탄성을 뱉었다.

묘하게 반짝이는 젖은 눈동자가 루센 공작에게 향했다.

“루센 공작. 정말로 레오폴드 공작에게 은밀한 쪽지를……?”

뜨거운 오해로 얼룩진 젖은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던 루센 공작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쪽지를 보낸 건 맞습니만 황후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이상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뭔가요?”

“레오폴드 공작의 호위 기사에 관한 내용이었죠.”

뭐지.

“레오폴드 공작의 호위 기사가 그녀를 배신하고, 황제 폐하쪽에 붙었거든요.”

이걸 이렇게 다 말해도 되는 건가?

당연히 숨길 거라고 생각했던 일을 너무 거침없이 말하자, 페르데스는 황당해하며 그를 쳐다봤다.

루센 공작의 행보도 놀라웠지만, 더욱 당황스러운 건 황후의 반응이었다.

“아, 그래서 그이가 레오폴드 공작의 행보를 전부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거군요.”

황제가 아델에게 나쁜 짓을 하는 걸 전부 알고 있다는 듯한 반응.

그렇다면 혹시……?

“2황자를 사지로 밀어 넣은 사람이 황제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는데, 황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잠깐 반짝거렸던 눈동자가 다시 울분으로 얼룩졌다.

“레오폴드 공작에게 그 일에 대해서 전부 말해 줬는데 아무것도 듣지 못했나 보군요, 황자.”

그걸 아델한테도 말했단 말이지.

여러모로 충격의 연속이었다.

“생각보다 레오폴드 공작이 황자를 믿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이딴식으로 비아냥거리는 건 짜증이 났고.

페르데스는 딱딱하게 경직된 얼굴로 말했다.

“말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저는 2황자가 죽든 말든 아무 신경을 안 쓰니까요.”

“그 무슨 망언을……! 체르노서는 황자의 형님입니다!”

“허구한 날, 저를 반푼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건 물론 발로 걷어차는 형님 따위는 둔 적 없습니다만.”

그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는지, 황후가 입을 다물었다.

페르데스는 황후를 일별한 뒤, 루센 공작에게 말했다.

“더는 자네와 길게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으니, 알도르 경에 대해 알고 있는 걸 전부 다 말해라.”

“제가 말한다면, 황자 전하께선 제게 뭘 해 주시겠습니까?”

돌아온 질문에 페르데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지금 나랑 거래하자는 건가?”

“그게 아니라 보상을 받고 싶은 겁니다. 제가 쪽지를 보낸 그 날, 저를 찾아왔다면 전부 다 말씀드렸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요. 기다린 만큼 보상을 받고 싶습니다.”

누가 미친개 아니랄까 봐, 개소리를 너무 잘했다.

‘뭐, 이렇게 될 건 알고 있었지만.’

루센 공작이 가진 패를 쉽게 보여 줄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다른 걸 묻지.”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다 생각해 두었다.

페르데스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루센 공작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네는 어째서 암흑 상단이 운영하는 불법 상단에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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