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정말로 찾으셨어요?”
내가 깜짝 놀라며 되묻자, 미니 드래곤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뭘 그렇게 놀라는 거지?]
그 모습은 귀여웠지만,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는 전혀 귀엽지 않았다.
[넌 내가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그가 정말로 드래곤의 하트를 찾았다면, 그 검에 박혀 있던 퓨라는 드래곤의 하트가 아니라는 의미가 되니 조금 놀란 것뿐이었다.
예전에 짐작 가는 게 있냐는 그의 질문에 없다고 대답했던 터라, 차마 이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왜 그러냐고 꼬치꼬치 물었으면 골치 아팠을 텐데, 다행히 대현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다.
[뭐, 확실하게 찾은 건 아니야. 그게 있을 만한 위치를 알아냈을 뿐이지.]
아, 뭐야. 확실한 게 아니었잖아.
안심되는 건, 역시 그에게 드래곤 하트를 주기 싫은 이기심 때문일까?
“그게 어딘가요?”
[서재처럼 보이는 방의 안쪽. 강력한 보안 마법이 걸려 있는 곳이다.]
대현자가 말하는 곳은 내가 그 검을 발견했던 방이 분명했다.
역시 그 검에 박힌 퓨라가 드래곤 하트가 맞는 걸까?
[어찌나 강력한 마법을 걸어 놨는지, 푸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야. 몇 시간째 붙들고 있는데 아직도 못 풀었어.]
미니 드래곤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단서를 찾아서, 그 애송이한테 알아봐 달라고 명령하려고 했는데 없더군.]
“애송이라면, 페르데스 님을 말하는 건가요?”
[그래. 너나 다른 놈들의 기척은 느껴지는데, 왜인지 그 애송이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건 설마……?
[죽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대현자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을 이었다.
[죽은 지 오래된 게 아니라면 기척은 느낄 수 있으니까. 혹시 그 애송이를 이틀 이상 못 보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건 아니에요.”
[그럼 절대 죽은 건 아니야.]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에 불안했는데, 확신에 찬 대답을 들으니 안심됐다.
“그럼 어째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
[내가 예상하기에 그 애송이는 현재 마나 차단 결계가 쳐진 장소에 있는 것 같아.]
“마나 차단 결계요?”
[그래. 기척도 마나의 일종이라 마나 차단 결계가 쳐진 곳에 들어가면 줄어들거든. 그런데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아주 강력한 결계 속에 있는 것 같아.]
이어진 설명에 나는 황궁을 떠올렸다.
황궁에는 황족들을 보호하고자 마법을 절대 쓸 수 없는, 금기의 공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짐작 가는 장소가 있나 보군]
“네. 지금 저랑 페르데스 님은 황궁에서 머물고 있거든요.”
[황궁? 아아, 그런 건가.]
대현자도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황궁이라면 그럴 만하지. 여기도 제법 쓸 만한 마법사들이 많으니까.]
“제가 황궁에 돌아가서 페르데스 님을 찾아볼게요.”
[그렇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그리고 만나면 황궁 밖으로 내보내 줘. 이 모습으론 황궁 안에 들어갈 수가 없거든.]
“네. 그럴게요.”
“공작 각하?”
머릿속으로 직접 소리를 듣다가 귀로 들으니 느낌이 이상했다.
원래 목소리는 귀로 듣는 건데도, 이게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자, 미니 드래곤은 날개를 펄럭거리며 공중에 떠올랐다.
저게 더 눈에 띌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게 무색할 정도로 아무도 미니 드래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 드래곤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레오폴드 공작 각하 맞으시죠?”
뒤를 돌아보자 해맑게 웃고 있는 니콜 테시스가 보였다.
이런 곳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뜻밖의 재회가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그가 내게 큰 도움을 줬던 터라, 나는 말에서 내려 그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니?”
“네, 뭐. 잘 지내긴 했는데…….”
말꼬리를 늘이는 걸 봐서, 무슨 일이 있나 보네.
“무슨 일이지?”
“아, 별 건 아니고 그저 사업적으로 문제가 조금 생겼을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위조 금화 때문에 제국의 금화 가치가 떨어져서, 운영이 조금 힘들게 됐어요.”
“저런.”
내가 뿌린 위조 금화가 페르데스가 운영하는 상단에도 큰 영향을 끼쳤구나.
이건 좀 많이 미안한데.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도와줄 테니, 언제든지 말하렴.”
“아, 아닙니다.”
니콜 테시스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제가 어찌 감히 공작 각하의 도움을 바라겠습니까?”
“페르데스 님의 약혼녀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 사양하지 않아도 돼.”
그것보다는 양심이 찔리는 게 더 큰 이유였다.
니콜 테시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나중에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 하고, 얼른 그 애송이를 찾아줘.]
쓸데없이 재촉하기는.
머리 위에 날고 있는 대현자를 짜증스레 보고 있는데, 니콜 테시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혹시……. 페르데스 님과 싸우신 건 아니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영문을 알 수 없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되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지?”
“아, 아니요. 그냥, 저, 그러니까…….”
“숨기지 말고 똑바로 말해.”
니콜 테시스는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게,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페르데스 님을 뵀거든요.”
[오오, 저 인간이 애송이를 봤대.]
페르데스의 이름이 나오자 대현자가 즉각 반응을 보였다.
머리와 귀에서 동시에 목소리가 들리니 느낌이 상당히 이상했다.
나는 대현자에게 조용히 하라는 시선을 보낸 뒤, 니콜 테시스에게 물었다.
“어디서 페르데스 님을 봤지?”
“블랑드 8번지였어요.”
블랑드 8번지는 카지노와 사창가가 즐비한 도박과 유흥의 거리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페르데스를 봤다고?
“정말인가?”
믿기지 않아 되묻자, 니콜 테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지노 운영 상단에서 의뢰가 들어와서 만나러 갔다가, 페르데스님을 봤어요. 처음에는 사업 때문에 오신 건가 싶었는데, 의뢰가 들어온 상단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시더라고요. 그것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이죠.”
페르데스가 그런 곳에 있었다는 것도 이상한데, 조심스럽게라는 부분도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대현자가 말하길 페르데스는 현재 기척조차 느낄 수 없는 강력한 마나 차단 결계가 있는 곳에 있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은 설마……?
“아, 물론 페르데스 님은 혼자 계셨어요!”
갑자기 고막을 파고드는 목소리에 그를 쳐다봤다.
니콜 테시스가 주먹을 불끈 쥐고, 다급하게 말했다.
“나쁜 짓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셨어요! 그러니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페르데스 님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에요!”
이상한 오해는 내가 아니라 네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금 황당했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니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비로소 안심한 듯 니콜 테시스가 웃었다.
니콜 테시스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눈치였지만, 언제까지 그와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난 이만 가 보지.”
페르데스를 찾으러 가야 했으니까.
내가 말에 올라타자, 대현자가 내 어깨에 앉으며 물었다.
[그 애송이가 어디 있는지 알았나 보군.]
“정확하게 안 건 아니고, 짐작되는 곳이 있긴 해요.”
기척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나 차단 결계가 있는 곳.
그리고 카지노가 즐비한 블랑드 8번지.
이 두 개의 조건을 조합해 보면 한 가지 장소가 나왔다.
바로 암흑 상단에서 운영하는 불법 카지노였다.
* * *
페르데스는 카지노를 한 바퀴 돌며 살펴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황태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황태자가 있을 만한 곳은 발견했다.
바로 말단 직원은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인 VIP실이었다.
이 카지노에 오래 다니고, 많은 돈을 쓴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장소.
‘저곳에 있는 것 같은데.’
확인해 보고 싶었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포기하자.’
괜히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돌아서는데.
“……!”
운명의 장난처럼 그리 멀지 않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황태자가 보였다.
아까는 분명 없었는데, 어디서 나타난 걸까.
의아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토록 찾던 황태자를 찾았으니까.
황태자를 찾아도 아는 척할 생각은 없었는데, 막상 찾으니 생각이 바뀌었다.
가서 확실하게 얼굴도장을 찍으며 황태자를 놀라게 한 뒤, 이 일을 두고두고 우려먹어야지.
그가 황태자 자리에서 쫓겨나는 그 날까지.
곤란해하는 그의 표정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 즐거웠다.
속으로 웃음을 한가득 머금고 황태자에게 다가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그의 팔을 잡았다.
데자뷔 같은 일.
또 샴페인 서빙 같은 걸 시키려는 걸까.
“가시면 안 됩니다.”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던 페르데스는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에런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