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페르데스는 남자의 옷을 강탈하면서, 그가 일하는 곳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보안을 철저히 유지해야 한다, 어쩐다 해 놓고 남자는 쉽게 불었다.
“그, 그리고 건물 지하에는 암흑 상단이 불법으로 운영하는 카지노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불법인지라,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정식 회원 등록을 한 사람만 입장할 수 있지요.”
그럼 황태자는 정식 회원인가 보네.
장차 제국을 이끌어야 하는 황태자가 불법 카지노에 드나들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제국민들은 그를 매섭게 비판할 것이고, 귀족들은 황태자로서 자격이 없다며 황태자위를 박탈할 것을 황제에게 강력히 요청할 것이다.
그러면 황제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요청을 들어줘야겠지.
황태자도 그 사실을 알고, 호위 기사를 대동하지 않은 채 혼자 온 거겠지.
“회원 등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잔심부름만 하는 일개 말단 직원이거든요.”
남자가 말단 직원이라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래서 영양가 있는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황태자에 대한 정보는 아예 얻지 못했고.
그래도 이곳이 불법 카지노라는 것과 카지노 직원들이 전부 가면을 쓴다는 좋은 정보는 얻었다.
‘나머지는 직접 들어가서 알아보면 되겠지.’
더 이상 빼낼 정보가 없다고 판단한 페르데스는 남자의 뒷목을 내리쳐서 기절시켰다.
기절한 남자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데려다 놓은 뒤, 지하실로 내려갔다.
남자가 말하길 가면은 지하실 문 안쪽 벽, 비밀 공간에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유난히 색이 다른 벽돌을 건드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벽의 일부가 갈라졌다.
그 안에는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검은색 가면이 있었다.
옷만 바꿔 입는 건 조금 불안했는데, 가면을 쓴다니 정말 다행이네.
검은 가면을 쓴 페르데스는 남자에게 얻은 정보들을 되뇌이며 지하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외부인이 들어오는 걸 막는 목적으로 설계된 지하실의 길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그러나 페르데스는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 벽과 바닥에 있는 이끼의 유무, 발자국 등 여러 가지 정보들을 조합해서 카지노로 향하는 길을 찾아냈다.
어렵게 길을 찾아 도착한 카지노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남녀가 뒤엉켜 있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즐비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며 싸우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개자식이……!”
“뭐, 씨X……!”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더러워질 것 같은 심한 욕들도 난무했고.
불법 카지노는 불법 도박뿐만 아니라 마약, 성매매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나는 위험한 장소라고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 절대 발을 들이면 안 된다고 엄격하게 경고했었는데, 페르데스는 그 문구에 절실히 공감했다.
‘얼른 황태자를 찾고 나가야겠군.’
이런 곳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황태자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페르데스는 깜짝 놀랐으나, 아닌 척 태연하게 연기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의 어깨를 잡은 사람은 그와 똑같은 검은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였다.
“바빠 죽겠는데, 일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다행히 들킨 건 아니군.
페르데스는 남은 불안감을 털어 내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목소리도 그 남자와 최대한 비슷하게 변조했다.
“말만 죄송하다고 하지 말고, 가서 서빙해.”
남자는 페르데스에게 샴페인 잔이 있는 쟁반을 넘겨주고 홀연히 떠났다.
‘서빙하면서 황태자를 찾으면 되겠네.’
정말로 황태자가 이곳에 있는지, 있다면 불법 도박만 하고, 다른 건 하지 않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지.
‘그런데 그걸 확인해서 뭘 하려는 거지?’
어차피 제국이 무너지면 황태자 직위도 사라지니, 이런 번거로운 짓까지 하면서 구태여 황태자를 끌어내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페르데스는 뒤늦게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머리를 긁적였다.
모든 건 황태자가 수상쩍은 일을 하니 무조건 알아봐야 한다, 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거였다.
카지노에 들어오기 전에 깨달았다면 바로 돌아갔을 텐데, 그게 아닌지라 조금 아쉬웠다.
조금만 더 찾아보고, 없으면 그때 돌아가야지.
페르데스는 샴페인을 손님들에게 나눠 주는 척하며 황태자를 찾아다녔다.
* * *
마티나 백작은 먼저 돌려보내고 혼자 은행에 방문했다.
은행 직원에게 신분 패를 보여주고, 물건을 찾으러 왔다고 하니, 곧바로 금고까지 안내해 주었다.
은행의 금고에는 현존하는 최상위 보안이 걸려 있어서, 주인 말고는 절대로 열 수가 없었다.
설령 황제가 와서 문을 열라고 직원을 협박해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안심하고 이 검을 이곳에 맡긴 거지.
나는 마법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검을 꺼냈다.
검의 날은 막 벼린 것처럼 날카로웠다.
손잡이와 검의 이음새에 박힌 퓨라는 여전히 컸고.
비블로스의 이야기를 들어 봤을 때, 이게 드래곤의 심장일지도 모른다는 건데.
“아무리 봐도 평범한 퓨라처럼 보이는데.”
굳이 특이한 점을 찾자면, 흔히 볼 수 있는 퓨라보다 크다는 거였다.
그것 말고는 딱히 특별하거나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뭐, 이런 쪽에 아는 게 있어야지.”
내 전공은 검술로, 마법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마법을 쓸 줄 알기는커녕, 마나를 다룰 줄도 몰랐다.
그런 내가 마법 최강 종족이라고 불리는 드래곤의 후손이란 말이지.
“믿기지 않네.”
비블로스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는 건 알지만, 드래곤의 특징이 전혀 없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가장 믿기지 않는 건 내가 알고 있던 레오폴드 가문의 역사가 전부 초대 레오폴드 공작이 만들어 낸 거짓이라는 거였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물어봤을 텐데.”
새삼 아버지의 죽음이 아쉽게 느껴졌다.
동시에 의문과 분노가 차올랐지만, 그 자리에 슬픔은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주머니가 다른 감정들로 가득 차서, 슬픔을 담을 수 없는 거였다.
특히 아버지가 사고가 아닌 살해를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얼른 진실을 밝히고, 사실이라면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런다고 이 울분이 풀리지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화를 낼 타이밍이 아니니,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심호흡을 했다.
이윽고 마음이 안정되자, 검을 다시 마법 주머니에 넣었다.
이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검을 가지고 있다는 걸 들키지도 않고, 가지고 이동하기도 편리했다.
문제는 황궁에는 들고 갈 수 없다는 거지.
황궁은 황실에서 허락한 마법 물품 외에는 반입이 금지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황족은 예외이니, 페르데스에게 대신 이 주머니를 가지고 가 달라고 부탁하면 됐다.
“페르데스 님이 우체국에 가시는 줄 알았으면, 같이 올 걸.”
그럼 오늘 바로 부탁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아직 시간은 있으니 괜찮았다.
금고 보안 마법을 다시 작동시키고, 1층으로 올라오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다가왔다.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없네. 그럼 이만 가 보지.”
“살펴 가십시오.”
직원의 깍듯한 안내를 받으며 말에 올라탔다.
곧바로 황궁으로 돌아가려는데, 주먹만 한 물체가 내 쪽으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저게 뭐지? 새는 아닌 것 같은데.
“도마뱀?”
[도마뱀이 아니라 드래곤이다!]
귀가 아닌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이 목소리는 설마?
“대현자님?”
[그래.]
날개 달린 도마뱀, 아니 드래곤의 모습을 한 대현자가 내 어깨에 앉았다.
“이 모습은 뭐예요? 그것보다 지하실에 들어가신 거 아니었어요?”
[들어갔지. 지금도 그곳에 있고.]
“네?”
이게 무슨 소리지?
[허어, 명색의 드래곤 후손이면서 이런 것도 모르다니. 한심하군.]
대현자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이건 페어리라고 하는 마법 생명체다. 주로 멀리 떨어진 상대와 대화를 할 때 사용하지.]
“마법 통신 반지랑 비슷한 거군요.”
[어허, 그딴 골동품이랑 비교하지 마라!]
화가 난 듯 미니 드래곤이 날개를 펄럭거렸다.
[이건 통신 반지보다 훨씬 수준 높은 마법 생명체다! 오로지 내가 원하는 상대한테만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표정도 볼 수 있다고!]
“그렇군요.”
확실히 마법 통신 반지보다는 대단한 것 같았지만, 내 것이 아닐뿐더러 관심 분야도 아니다 보니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가장 궁금하고, 신기한 건…….
“살아 계시네요.”
레오폴드 공작저의 비밀 지하실에 들어간 대현자가 멀쩡히 살아서 내게 연락을 했다는 거였다.
지금까지 레오폴드 혈족 외에 그 지하실에 들어가서 살아남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당연하지. 전에 말했을 텐데? 그딴 애송이가 만든 마법 따위엔 당하지 않는다고.]
그건 그렇지.
“그래서 원하는 건 찾으셨어요?”
정말로 그 검에 박힌 퓨라가 드래곤의 하트라면, 대현자는 절대로 공작저의 지하실에서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니라고 대답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