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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 (226/262)

232화

황제 전속 기사단, 아나토메 친위대.

인원은 몇 명인지, 누가 소속되어 있는지 등 제대로 알려진 게 없는 비밀 단체였다.

내가 어셔 안드리아가 아나토메 친위대인 걸 알아볼 수 있었던 건, 두 번째 생에서 그와 검을 맞댄 적이 있고, 그걸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면, 어셔 안드리아가 아나토메 친위대인 걸 알아보지 못했겠지.

같은 이유로 알도르 경도 그러지 못했어야 정상인데, 그는 바로 알아봤었다.

생각해 보면 이전에 체르노서와 함께 온 수상쩍은 호위 기사의 정체가 사실 아나토메 친위대라는 걸 내게 알려 준 사람도 알도르 경이었다.

그때는 레오에게 그 호위 기사의 뒷조사를 맡겼다지만, 어셔 안드리아의 경우는 아니었다.

뒷조사를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알아봤다는 건…… 알도르 경도 이전 생을 기억하는 게 분명했다.

어디까지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했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두 번째 생을 기억하는 건 확실했다.

‘하필 두 번째 생이라니.’

두 번째 생에서 나와 알도르 경은 형식적이지만 부부 사이였다.

그런데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니, 조금 부끄러웠다.

내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짚자, 지도를 보고 있던 마티나 백작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각하.”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휘휘 내저은 뒤, 제국 지도를 내려다봤다.

지금은 알도르 경이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보다,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는 게 더 중요했다.

“서부령 귀족들이 노단과 아만의 탈환을 맡는다고 했지?”

“네. 오웬의 탈환은 황실 기사단이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황실 기사단을 이끄는 사령관이 바로 페르데스지.

물론 페르데스는 이런 쪽에 경험이 전혀 없으니, 세세한 작전 계획은 원수부와 기사단장들이 짠다고 했다.

즉, 페르데스는 이름만 총사령관인 허수아비라는 의미.

전쟁에 직접 참여하거나, 의견을 내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황제가 페르데스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걸까?’

허수아비는 누가 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런 거라면 황제가 이러는 게 이해가 되긴 하니, 역시 그를 전쟁터로 보내는 건 내키지 않았다.

이 부분은 페르데스 님과 다시 이야기를 해 봐야겠군.

“저희가 담당할 영지는 딜롬과 프론드입니다.”

마티나 백작이 비교적 북부령에 가까운 두 영지에 깃발을 내려놓았다.

“두 영지를 동시에 탈환하려면, 군대를 둘로 나눠야 할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나누면 좋을까요?”

“둘이 아니라, 셋으로 나눠야 해.”

“네? 그 무슨 말씀이신지……?”

“이게 바로 내 계획이거든.”

나는 말을 탄 기수 모형을 북부령부터 시작해서 수도까지, 직선을 긋듯이 쭉 가져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바로 알아챘는지, 마티나 백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디, 딜롬이나 프론드가 아닌 수도로 진격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오나 그건…….”

마티나 백작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자, 친절히 대신 말했다.

“반역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

마티나 백작은 갓 잡아 올린 활어처럼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봤다.

“뭘 그리 둘러봐? 어차피 이곳에는 자네와 나밖에 없는데.”

원래는 페르데스도 있었지만, 마티나 백작이 그를 달가워하지 않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내보내야 했다.

“그, 그렇긴 하지만…….”

“괜찮아. 자네만 날 배신하지 않는다면,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은 없을 거야.”

그만큼 당신을 믿는다.

그런 의미를 담아 말하자, 마티나 백작은 굉장히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람처럼 어깨를 늘어뜨렸다.

고작 이 정도로 저런 반응이라니.

내가 연합국과 손을 잡았다는 걸 알면, 놀라서 까무러치겠네.

그것도 말할까 싶었지만, 아무리 같은 배를 탔다고 해도 너무 많은 걸 알려 주는 건 독이 될 것 같아 숨겼다.

굳이 알려 줄 필요가 없는 사실이기도 하고.

“이번 탈환전에서 황실 기사단이 맡은 오웬은 빼앗긴 영지 중 가장 큰 도시인데다가 성벽이 견고해서 탈환하려면 많은 전력이 필요하지.”

재미있는 건, 다섯 영지 중에서 오웬이 가장 빼앗기 쉬웠다는 거였다.

가진 게 많을수록 지키고 싶은 것도 많은 게 바로 사람의 심리였으니까.

오웬의 영주인 오웬 백작은 위조 금화 사건이 불거지자마자 닥치는 대로 노예나 마법 물품들을 사들였다. 

그 덕분에 노예, 상인, 용병 등으로 위장한 연합군들이 쉽게 성 내부까지 잠입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오웬 백작가의 가솔들은 전부 인질로 잡혔을 뿐만 아니라 성문도 가장 빨리 열렸다.

하지만 오웬을 되돌려받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면서도 웃겼다.

“오웬을 탈환하려면 4개의 황실 기사단 중 최소 3개는 출전해야 하지. 그러면 황궁의 경비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약화될 거다.”

나는 붉은색 깃발을 수도에 꽂듯이 내려놓았다.

“그 틈을 타 황궁을 장악하고, 황제의 관을 부수는 게 내 목표다.”

동부령과 남부령에서 보낸 기사들이 황실 기사단을 대신해서 황실을 지킬 거라고 했지만, 내겐 그게 오히려 더 이득이었다.

모르는 기사들이 북적거릴수록 내 기사들을 잠입시키기 용이했으니까.

마티나 백작이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되물었다.

“황제의 관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부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누구도 두 번 다시 황제의 관을 쓰지 못하게, 완전히 부숴 버릴 거야.”

그것도 황제가 보는 앞에서, 아주 박살을 낼 생각이었다.

그러면 황제는 깊게 절망하겠지.

그 모습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즐거웠다.

황제의 관은 국새와 마찬가지로 황제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걸 쓰지 못하게 부수겠다는 건, 황좌를 없애겠다는 의미였고.

황좌를 없앤다는 건, 제국 자체를 없애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눈치 빠른 마티나 백작이라면 내 말뜻을 바로 알아챘을 터.

“…….”

역시 알아챘는지, 그의 표정이 약간 핼쑥해졌다.

그는 입을 가리고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제국에서 독립하겠다는 건…… 그런 의미셨군요.”

“그래서 두려워?”

마티나 백작이 날 쳐다봤다.

부질없이 흔들리는 눈동자가 복잡한 그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내 손을 잡은 게, 나와 같은 배를 탄 게 후회되는 건가?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어?”

담담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떨고 있었다.

마티나 백작이 도망치고 싶다고 한다면, 내 손으로 그를 처리해야 했으니까.

많은 걸 알고 있는 만큼, 절대로 그냥 그를 풀어 줄 수는 없었다.

그러니 부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마티나 백작의 시선을 마주했다.

방 안에는 고요하고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는지, 흔들리던 눈동자가 단호하게 굳었다.

마티나 백작은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리며 눈을 떴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 두렵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국에서 독립하는 걸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렇겠지.

나도 황제가 날 죽이고, 내 모든 걸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단순히 독립하는 게 아닌,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다고 하시니 몹시 당황스럽습니다만…… 그래도 해야겠지요.”

마티나 백작이 붉은색 깃발을 집어 들어, 내가 내려놓은 붉은 깃발 옆에 내려놓았다.

“이제 와서 못 한다고 도망칠 수도 없고, 도망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봐야지요.”

말투는 약간 장난스러웠지만, 날 바라보는 눈빛은 진지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고, 일부로 가볍게 말한 모양이다.

그 마음 씀씀이가, 그리고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선뜻 나와 함께하겠다고 말해 준 게 무척 고마웠다.

마음 같아선 그의 손을 꼭 붙잡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었지만, 북받쳐 오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그대로 쏟아 낼 것 같아 그럴 수가 없었다.

“……고마워.”

대신 중얼거리듯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고 싶어도,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 보니 이게 최선이었다.

“아닙니다.”

다행히 내 마음이 잘 전해졌는지, 마티나 백작이 말갛게 웃었다.

“그나저나 다른 귀족들이 각하의 계획을 듣고 어떻게 나올지 걱정되는군요.”

마티나 백작의 표정이 다시 심각해졌다.

“렌소르 자작을 비롯한 다른 북부령 귀족들은 공작 각하께서 이번 탈환전에서 큰 공을 세워 황제 폐하께 영지를 독립시켜 달라고 부탁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그들에게는 상세하게 설명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처음부터 내게 필요한 사람은 마티나 백작뿐이었다.

다른 북부령 귀족들은 없어도 딱히 상관없었다.

뭐, 있는 게 좀 더 편하긴 하지만.

“처음에 말했던 대로 부대는 총 세 개로 나눌 거야.”

나는 기수 모형을 세 개 집어 들어, 그중 두 개를 프론드와 딜롬에 내려놓았다. 

“렌소르 자작과 마티나 백작이 이끄는 부대.”

그리고 마지막 남은 기수 모형을 수도에 내려놓으며 웃었다.

“그리고 내가 이끄는 부대. 이렇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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