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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화 (222/262)

228화

회수해야겠다, 가 아니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건가.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내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대현자의 눈이 약간 커졌다.

“안 된다고 거절하거나, 고민할 줄 알았는데 바로 받아들이다니. 조금 의외군.”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보였나요?”

“그렇다기보다 내가 하트를 회수하면 네가 상당히 곤란해지니까 그런 거지.”

“그렇긴 하죠. 드래곤 하트가 사라지면 더는 퓨라를 무한정 캐낼 수 없을 테니까요.”

레오폴드 가문의 주된 수입원이 퓨라인데, 그걸 더 이상 캐지 못하면 재정이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내 부탁을 순순히 받아들인 건가? 왜지?”

“그야 그러는 게 옳은 일이니까요.”

레드 드래곤이 스스로 심장을 바쳐, 레오폴드 영지를 풍요롭게 했다고 해도 꺼림칙했을 텐데.

초대 레오폴드 공작이 제 탐욕을 위해 강제로 취한 거라면 더더욱 돌려주는 게 맞았다.

그러자 대현자가 시선을 길게 내리깔며,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조금은 마음에 드는군.”

굉장히 작은 목소리였지만, 보통 인간보다 뛰어난 청각을 가진 내 귀에는 잘 들렸다.

이걸로 그의 마음을 조금 얻은 모양이네.

그럴 의도도, 마음도 없었지만……뭐, 미움받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래서, 대현자님은 그 특별한 장소에 드래곤의 하트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맞아. 중요한 물건일수록 아무도 손이 닿을 수 없는, 은밀한 장소에 숨기는 법이니까.”

그건 그렇지.

“게다가 후손들에게까지 그 사실을 숨긴 걸 보면, 드래곤 하트는 다른 형태로 위장해서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 가령 퓨라라던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검이 떠올랐다.

지하실의 가장 깊숙한 곳에 봉인되어 있던, 아버지가 평소 사용하시던 것과 똑같은 그 검이.

“표정을 보아하니 짐작 가는 게 있는 모양이군.”

네, 라고 대답하고 그 검을 보여 주는 게 맞았다.

“……아니요.”

그게 맞는데, 어째서 내 입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뒤늦게 그에게 드래곤의 하트를 돌려주는 게 아쉬워서?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하긴. 후손들이 함부로 건드렸다가 사달이 나면 큰일이니, 잘 보이는 곳에 뒀을 리가 없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현자는 크게 의심하지 않고 넘어갔다.

때문에 나 역시 사실을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아니, 이건 그냥 말하기 싫은 거야.

그 이유가 뭔지 나도 모르니, 조금 답답했다.

“그곳에는 들어가 본 적이 있나?”

“네. 책과 자료들로 가득한, 서재 같은 곳이었죠.”

“책과 자료? 참나, 기껏 비밀 장소를 만들어 놓고 서재로 쓰고 있었다니. 웃기는 놈들이군.”

대현자가 몹시 기가 찬다는 듯 혀를 쯧쯧, 내찼다.

책과 자료를 떠올리니, 잠시 잊고 있었던 것들이 떠올랐다.

저주라던가. 축복이라던가.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자료들과 아버지의 일기.

“혹시…….”

똑똑-

그 부분에 대해서 물어보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페르데스가 돌아온 건가?

“실례합니다, 공작 각하.”

낯선 목소리. 페르데스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현자가 여기 있는 걸 숨겨야 했다.

“잠깐 숨…… 어디 갔지?”

잠시 문을 쳐다본 사이, 대현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창문이 열린 흔적도 없고, 그렇다고 문이 열린 것도 아닌데 어디로 간 걸까.

똑똑-

“각하.”

“……들어와라.”

나는 대현자가 없다는 걸 재차 확인한 뒤, 대답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시종이 다급하게 보고했다.

“황제 폐하께서 각하를 비롯한 수도 내의 모든 귀족들을 대회의실로 부르셨습니다.”

모든 귀족들을 불렀다는 건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어젯밤, 연합국에서 침공했다고 합니다.”

역시 시작됐구나!

오랫동안 기다렸던 만큼 환희가 차올랐으나, 내색하면 안 되니 억지로 꾹꾹 눌렀다.

대신 몹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시종에게 되물었다.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어서 대회의실로 가시지요, 각하.”

“그래.”

그토록 고대하던 일이 시작됐는데, 당연히 가야지.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대현자가 특별한 장소에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한 건데.

어쩔 수 없이 나중에 가자고 해야겠네.

아니면 혼자 가라던가.

나는 대현자가 앉아 있던 자리를 흘겨본 뒤, 시종을 따라 대회의실로 향했다.

* * *

가는 길에 페르데스를 만나서 같이 대회의실로 갔으나, 회의실 입구에서 붙잡혔다.

“황자 전하께서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정확히는 페르데스가 붙잡힌 거였다.

황태자를 제외한 황자들은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규칙이 연합국이 침공한 급박한 상황에서도 적용됐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쓸데없이 고리타분하다니까.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페르데스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팍 썼다.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할 건데도 안 되는 건가?”

“안 됩니다.”

기사가 단호하게 나오니, 페르데스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진정하세요, 페르데스 님.”

화를 낸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나중에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부 말씀드릴게요.”

“……아까도 같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하하, 그러네요.”

나는 페르데스의 기분을 풀어 주고 싶어, 일부러 소리 내서 웃었다.

다행히 효과가 있는지, 페르데스의 굳은 입술이 풀렸다.

“기다리고 있지.”

“네. 아, 그리고.”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안 되니, 나는 페르데스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대현자님에게 의도치 않게 부탁받은 걸 바로 들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 좀 전해 주세요.”

“……부탁?”

“네. 괜찮다면 혼자 가셔도 된다고, 물론 뒷일은 책임지지 않는다고도 전해 주면 돼요.”

페르데스가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릴게요.”

나는 페르데스에게 재차 당부하고,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황제는 아직 오지 않은 건지, 상석은 비어 있었다.

그건 귀족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귀족들을 소집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지금 온 귀족들도 대부분 중앙궁에서 일하는 관리들이었다.

“어서 오세요, 공작.”

그런데 어째서 루센 공작은 벌써 온 거지.

나는 맞은편에 앉은 루센 공작을 쳐다봤다.

그러자 루센 공작이 볼을 약간 붉히며, 입을 가렸다.

“그렇게 열렬한 시선으로 쳐다보면, 부끄럽습니다만.”

뭐래. 미친놈이.

“우와. 바로 인상 쓰는 거 봐. 그러면 저 상처 받습니다.”

“그냥 상처 받고 제게 말을 걸지 마세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루센 공작이 책상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괴며 웃었다.

“충견이 어디서 뭘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요?”

충견이라면 알도르 경을 말하는 것일 터.

“역시 공작이 그 쪽지를 보냈군요.”

“알고 있었습니까?”

“그럴 거라고 짐작은 했습니다.”

루센 공작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지 않은 겁니까?”

“찾아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사실은 찾아가려고 했지만, 페르데스가 말려서 가지 않은 거였다.

페르데스가 직접 레오폴드 영지까지 가서 알도르 경이 그곳에 있다는 걸 확인해 준 덕분이기도 했고.

“그 말은 그 남자의 행방이 궁금하지 않다는 겁니까?”

“네. 이미 알고 있으니 궁금해 할 필요가 없지요.”

“이미 알고 있다?”

루센 공작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럴 리가 없는데……. 공작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죠?”

루센 공작이 뭐라 말하려는 그때, 문이 열리면서 귀족들이 밀려들어 왔다.

루센 공작은 입을 다물고, 등받이에 느긋하게 몸을 기댔다.

그러면서 내게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시선을 날렸다.

“…….”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가 마지막에 한 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알도르 경이 레오폴드 영지에 있는 건 확실하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소식 들었습니까? 연합국에서 침공을 했답니다!”

“들었습니다. 평화 조약을 맺은지 백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침공이라니. 약속을 아주 우습게 보는군요.”

“위조 금화 때문에 제국의 경제가 흔들리니,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거겠죠.”

“역시 위조 금화를 뿌린 범인은 연합국이…….”

회의실은 빈자리가 채워진 만큼, 소란스러워졌다.

주제는 당연히 연합국의 침공이었다.

귀족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귀담아들으며 반응을 살피고 있는데, 가장 안쪽 문이 열리면서 황태자가 들어왔다.

황제는 보이지 않았다.

늦게 오는 건가 싶어 기다려 봤으나,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황태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가장 상석에 앉았고.

황태자가 저곳에 앉는다는 건, 황제는 오지 않는다는 의미.

다른 일도 아니고 타국의 침공 대책 회의를 하는 자리에 황제가 오지 않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

다른 귀족들도 당황하며 웅성거렸다.

“황제 폐하께서는 오지 않으시는 겁니까?”

루센 공작이 대놓고 묻자, 황태자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요즘 편찮으셨는데, 연합국의 침공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아 쓰러지신 탓에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오게 됐습니다.”

“그런……!”

“역시 편찮으셔서 그동안 황태자 전하께 일임을…….”

예상했던 부분이라 그런지, 몇몇만 놀라고 대부분은 무덤덤했다.

“폐하께선 괜찮으십니까?”

“네. 황궁의 말로는 기력만 되찾으면 금방 쾌차하실 거라고 하더군요.”

초승달처럼 접히는 눈매와 씩 올라가는 입꼬리.

번뜩이는 황금색 눈동자.

“그러니 부황 폐하께서 기력을 되찾으실 수 있게, 여기 계신 모두가 힘써 주셨으면 합니다.”

황태자가 웃는 모습에서 순간 황제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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