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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220/262)

226화

나는 황궁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다시 조사해 봤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이미 3년이나 지난 데다가, 당시 그곳에 있었던 황태자의 호위 기사들이 전부 그만둔 탓이었다.

황족의 호위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굉장히 엄격하고 까탈스럽다 보니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전부 다 그만두는 건 이상했다.

그것도 몬스터 토벌 후 수도에 귀환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전부 그만뒀다고 하니 더욱 수상쩍었다.

“역시 뭔가 감추는 게 있구나.”

그러니 어제, 황태자도 날 만나러 쪼르르 달려온 거겠지.

“황태자를 추궁해 볼 걸 그랬나.”

황태자는 감정을 숨기는 데 비교적 능숙하지 못한 편이니, 조금만 추궁해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야. 그렇게 티를 내면 황제가 나설 수도 있으니, 그러지는 말자.

만약 아버지가 정말 살해당한 거라면, 그 배후에는 반드시 황제가 있을 테니까.

“…….”

황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황제가 아버지를 죽인 이유가 그 빌어먹을 검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화가 났다.

“진정하자, 아델.”

지금 화를 내 봤자, 나만 더 비참해질 뿐이었다.

모든 분노는 황제를 빈털터리로 만들어 내 앞에 무릎 꿇게 만드는 그 날을 위해 쌓아 둬야지.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울렁이는 감정을 다스린 뒤, 호위 기사들의 인적 사항을 쭉, 훑어봤다.

황족의 호위를 담당했던 만큼, 신원은 확실했다.

“찾는 건 어렵지 않겠네.”

문제는 어떻게 이 사람들을 만나냐는 건데.

황태자 혹은 황제에게 어떤 명령을 받았다면, 불러도 순순히 오진 않을 테니까.

설령 온다고 해도, 어떤 거짓말을 할지 철저하게 준비해서 오겠지.

그럼 어떡하지?

“아. 전쟁을 핑계로 부르면 되겠다.”

전쟁이 일어나면 기사 자격이 있는 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전부 전쟁에 참여하는 게 군법이었다.

그러니 이 사람들도 내가 부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순순히 오겠지.

“좋아. 이 방법을 쓰자.”

그 전에 그들이 호위 기사직을 그만두고 어디서 뭘 했는지 알아 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건 정보 길드에 의뢰해야겠다.”

레오에게 부탁하는 게 여러모로 편하긴 하지만, 그동안 너무 부려 먹기도 했고.

그가 이 이상 내 일에 깊게 관여하는 걸 원치 않았다.

“레오가 돌아오면 반지부터 돌려달라고 해야겠다.”

다른 물건이었다면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그냥 가지라고 했겠지만, 통신 반지는 워낙 구하기 힘든 물건인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두 개가 한 쌍인 반지를 한 개만 들고 있는 건 의미가 없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페르데스 님에게는 통신 반지를 돌려달라고 말을 안 했었네.”

수고비를 챙겨 주겠다던가, 이만 떠나 달라던가, 그런 말은 했으면서 정작 반지를 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다니.

그를 보내야겠다고 굳게 다짐한 순간에도, 보내기 싫다는 마음을 끝까지 놓지 못했던 모양이다.

바보 같게도.

똑똑-

문득 고막을 파고드는 소리에 혼자만의 상념에서 깨어난 나는 문을 쳐다봤다.

“누구지?”

“나야.”

이 목소리는 페르데스 님?

나는 보고 있던 서류들을 화장대 서랍에 집어넣은 뒤, 문을 열었다.

페르데스가 웃으며 살갑게 물었다.

“내가 방해하거나 한 건 아니지?”

“아니에요. 그런데 이 사람은…….”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페르데스의 옆에 있는 사람을 쳐다봤다.

얼굴이 보이지 않게 검은 로브를 깊게 눌러 쓰고 있는, 누가 봐도 수상쩍은 사람이었다.

“이분은……!”

페르데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는 나를 밀쳐 내고, 허락도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굉장히 무례한 행동에 나는 다소 황당해하며 그를 쳐다봤다.

“미안.”

그러자 페르데스가 대신 사과했다.

“대현자님의 성격이 조금 괴팍한 편이거든.”

……그분이구나.

설령 황족이라고 해도 방금 한 짓에 대해 따지려고 했는데, 대현자라면 따질 수가 없었다.

따진다고 해서 사과할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아니, 드래곤이라고 해야겠지.

“정말로 미안해.”

“아니에요. 그리고 페르데스 님이 사과할 일도 아니죠.”

“그건 그렇지만…….”

페르데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어느덧 소파에 늘어지게 기대앉아 있는 대현자에게 다가갔다.

“주인의 허락도 없이 막 들어오면 어떡합니까?”

“허락해 준 거 아니었나?”

“아니었습니다.”

“그래? 나는 문을 열어 주길래,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한 줄 알았는데.”

대현자가 날 쳐다봤다.

“모르고 한 실수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게.”

“…….”

저건 사과가 아니라 싸우자는 것 같은데.

“하아.”

페르데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나는 문을 닫고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래서 두 분 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대현자가 같이 온 걸 보면, 그가 나한테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대현자님이 그대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내가 돌아보자 비블로스도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날 쳐다봤다.

불만이 많은, 싸움을 거는 듯한 시선이었다.

“대현자님은 제가 굉장히 못마땅한가 봐요.”

“맞아.”

“비블로스 님.”

“흥.”

페르데스가 그만하라는 듯 부르자, 대현자는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그렇게 못마땅한 저한테 뭘 물어보러 온 거죠?”

나는 대현자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그러자 대현자가 눈을 치켜뜨며, 날 노려봤다.

“난 아직 앉으라고 한 적 없는데.”

“제가 당신에게 허락을 받고 앉아야 할 입장이던가요?”

“그래야지.”

대현자가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들었다. 

“너는 한낱 인간이고 나는 위대한 드래곤이니까.”

“그런 말을 직접 하면 부끄럽지 않으세요?”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 부끄러워해야 하지?”

“…….”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어쩜 저리 뻔뻔할 수가 있는 거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이야기는 거기까지 하고, 여기 온 이유를 말씀해 주시죠.”

페르데스가 내 옆에 앉아 대현자에게 요구했다.

이에 못마땅하다는 듯 대현자는 입술을 실룩이며 페르데스를 흘겨봤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팔짱을 끼고 소파 등받이 깊숙이 몸을 묻으며 내게 물었다.

“듣자 하니, 네 저택에 드래곤이 만들어 준 아주 특별한 장소가 있다고 하던데, 맞나?”

특별한 장소라면, 지하실을 말하는 것일 터.

“네. 있습니다.”

“날 그곳에 데려가 줘.”

성격만큼이나 요구도 뻔뻔하게 하네

“데리고 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그곳에 대한 다른 소문을 듣지 못했나요?”

“레오폴드 공작가의 혈족이 아닌 자가 그 장소에 들어가면 두 번 다시 세상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거 말인가?”

“그런데도 가고 싶다는 건가요? 두 번 다시 세상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대현자의 입술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내가 어린놈이 만든 장난감 따위에 당할 것 같으냐.”

어린놈이라는 건 설마…….

“레드…… 드래곤을 말하는 건가요?”

“맞아.”

내가 아는 설화 속의 레드 드래곤은 세상 모든 일에 질려, 죽는 날만을 기다리는 노령의 드래곤이었다.

그런데 레드 드래곤을 어린놈이라고 지칭하다니.

“몇 살, 아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몰라. 500살까진 셌는데, 그 뒤로는 귀찮아서 안 셌어.”

최소 500살은 됐다는 건가.

하긴 레오폴드 공작가의 역사가 그쯤 됐으니, 당연히 500살은 넘었겠지.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날 그곳에 데려다주기만 하면 돼.”

대현자가 거만하게 말했다.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티끌만큼의 가능성 때문에 문제가 생겨 혹 내가 잘못되더라도 그건 다 내가 책임질 테니, 넌 신경 쓸 필요 없다.”

어쩜, 하는 말마다 저렇게 재수가 없을까.

표정과 태도가 거만해서 더욱 재수 없게 느껴졌다.

“제가 당신을 그곳에 데리고 가면, 당신은 제게 뭘 해 줄 건가요?”

“하! 감히 나한테 거래 신청을 하는 건가?”

“당연한 걸 물으시네요.” 

대현자가 인상을 팍, 쓰며 살벌하게 노려봤다.

그런다고 내가 물러설 줄 알고.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잡아먹을 것처럼 눈싸움하던 와중, 커다란 손이 끼어들었다.

“그만 하세요.”

페르데스였다.

그는 대현자에게 나무라듯이 물었다.

“아까부터 왜 자꾸 그녀에게 시비를 거는 겁니까?”

“내가 언제 그랬다는 거지?”

“못마땅하다는 둥,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말라는 둥, 계속 시비를 거셨잖아요.”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대현자가 그게 뭐가 잘못됐냐는 듯 눈을 크게 깜빡이자, 페르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에게 데리고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면 저 여자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을걸.”

“그게 무슨 소리죠?” 

혹시 디아볼로스에 대해 뭔가 알아낸 건가?

의미심장한 말에 황급히 되묻자, 대현자가 입꼬리를 씩, 끌어 올리며 웃었다.

“무슨 소리인지 알고 싶다면, 날 그곳으로 데리고 가도록.”

“…….” 

“모든 건 그곳에 다녀온 뒤에 말해 주지.”

감히 제게 거래를 신청하냐고 뭐라고 해 놓고, 거래에 응하는 건가.

재미있네.

“어때? 끌리지?”

“확실히 끌리긴 하네요.”

“그렇……”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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