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9화 (213/262)

219화

[충견의 행방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의원이 두고 간 상자에 든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충견.

그 단어를 보니 자연스럽게 아나토메 친위대가 떠올랐다.

충견은 그들을 지칭하는 또 다른 표현이었으니까.

날 습격한 놈들이 아나토메 친위대였으니, 그들의 행방을 말하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거야.

만약 그렇다면, 이 쪽지를 보낸 사람이 대현자라는 건데.

그가 내게 이런 쪽지를 보낼 이유가 없을뿐더러, 혹여 보냈다고 하더라도 반말을 썼을 것이다.

그럼 누가 보낸 거지?

의원을 다시 불러서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문득 머릿속에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참으로 충직한 충견이야.”

“부디 앞으로도 주인을 무는 개가 아닌 충견으로 남아 있길 바라지.”

바로 루센 공작이 알도르 경에게 했던 말이었다.

설마 여기 적힌 충견이 알도르 경을 지칭하는 말인 건가?

그렇다는 건 이 쪽지를 보낸 사람이 루센 공작이라는 의미.

“확인해 봐야겠어.”

정말로 루센 공작이 이 쪽지를 보낸 게 맞는지.

맞다면 어째서 보냈는지, 여기 적힌 내용은 무슨 의미인지 등등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나는 곧바로 백작저의 집사를 불러, 외출복을 가져다달라고 말했다.

“말을 탈 거니까, 편한 옷으로 부탁해. 그리고 말을 준비해 주고, 날 진찰했던 의원의 주소도 알려 줘.”

만약 루센 공작이 범인이 아니라면, 의원에게 쪽지에 대해 물어봐야 하니 주소도 받아 둬야지.

“알겠습니다.”

잠시 후, 집사가 가져다준 옷으로 갈아입고, 의원의 주소가 적힌 쪽지와 정체불명의 쪽지를 주머니에 고이 넣고 방을 나섰다.

의원이 말한 것처럼 이제 마비가 거의 풀려 두 다리로 걷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반면 왼팔은 아직도 저릿했지만, 너무 속도만 내지 않는다면 말을 타는 데도 큰 무리가 없었다.

곧바로 말을 타고 떠나려는데, 방해꾼이 등장했다.

“몸도 안 좋으시면서 이 밤중에 어디 가시려는 겁니까, 공작 각하.”

방해꾼은 바로 마티나 백작이었다.

그새 주인에게 일렀나 보네.

사용인으로서 올바른 자세였지만, 내 입장에선 조금 성가셨다.

“볼일이 있으신 거라면, 내일 날이 밝은 뒤에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니. 지금 당장 가야 해.”

만약 그 쪽지를 보낸 사람이 루센 공작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야 하니까.

“그럼 마차를 타고 가시지요.”

“마차는 너무 눈에 띄어서 안 돼.”

“그럼 어디 가시려는 건지만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 거리의 의원을 만나러…….”

“단순히 의원을 만나러 가는 거라면, 각하께서 직접 가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으음, 들켰네.

하긴 누가 봐도 수상쩍은 행동인데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럼 어떡한다.

“루센 공작을 만나러 갈 거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 늦은 시간에 루센 공작 각하를요?”

“그래.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게.”

그래도 좀처럼 걱정을 놓지 못하는 마티나 백작을 뒤로한 채, 말에 올라타려는데 또 다른 방해꾼이 등장했다.

“무슨 일이지?”

이번 방해꾼은 페르데스였다.

그의 뒤로 대현자도 보였다.

지하 비밀 통로에서 헤어져 한동안 못 볼 줄 알았는데 언제 돌아온 거지.

마티나 백작은 대현자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치, 침입자다!”

아, 그러고 보니 마티나 백작은 대현자를 처음 보는구나.

“당장 경비를 불러 침입자를……!”

“이 분은 내 지인이니 걱정하지 말게, 백작.”

페르데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현자를 변호하자, 발을 동동 구르던 마티나 백작이 그대로 굳었다.

그는 눈동자만 굴려 페르데스를 쳐다봤다.

“황자 전하의…… 지인이요?”

“그래. 저택의 주인인 백작에게 지인이 찾아온다는 걸 알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군. 사과하지.”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전하.”

괜찮다는 말과 달리 대현자를 바라보는 백작의 시선에는 의문과 혼란이 뒤엉켜 있었다.

그러자 대현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페르데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난 잠깐 자리를 비키는 게 좋을 것 같네.”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귀신 같은 그의 행보에 마티나 백작의 눈이 또 한 번 커졌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그러자 페르데스가 더는 대현자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마티나 백작에게 다시 물었다.

“그것이 공작 각하께서…….”

“마티나 백작.”

나는 말하지 말라는 의미로 마티나 백작을 불렀다.

눈치 빠른 백작이 바로 입을 다물자, 이번엔 페르데스가 그를 찔렀다.

“말해.”

“말하지 마.”

“말하라고 했다.”

쓸데없는 기 싸움이 벌어졌다.

재미있는 건, 페르데스는 나와 기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단 한 번도 내 쪽을 보지 않는다는 거였다.

명백한 무시.

무시당할 만한 짓을 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

졸지에 나와 페르데스 사이에 낀 마티나 백작은 자라처럼 목을 쑥 집어넣고,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마티나 백작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물러설 수도 없었다.

내가 뭘 하는지 페르데스가 몰랐으면 했으니까.

백작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확고하게 못을 박아 두고 이만 나가려고 했는데, 페르데스가 그에게 물었다.

“마티나 백작은 황자인 내가 레오폴드 공작과 동등한 신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나와 레오폴드 공작의 명령 중, 어떤 걸 따를지 고민하는 거지? 설마 나를 무시하는 건가?”

팽팽했던 기 싸움의 승기가 페르데스 쪽으로 확, 기울어지는 순간이었다.

페르데스가 저렇게 나오니, 마티나 백작은 내 눈치를 보면서도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공작 각하께서 갑자기 외출하시겠다고 하셔서 말리는 중이었습니다.”

“외출?”

“네. 루센 공작 각하를 만나러 가시겠다고…….”

아, 사실대로 말하지 말걸.

마티나 백작이 너무 걱정하는 것 같아, 안심시키려고 말했던 게 화근이었다.

“이 시간에 루센 공작을 만나러 간다고?”

그제야 황금색 눈동자에 내 모습이 담겼다.

페르데스가 날 무시했을 때는 조금 서운했는데, 막상 쳐다보니 긴장됐다.

하지만 담담한 척 연기하며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

“…….”

그러나 페르데스도, 나도 입을 열지 않은 탓에 그와 나 사이에는 무겁고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크, 크흠.”

이에 마티나 백작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 테니, 두 분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그게 아니라 도망치는 거였나.

다소 황당해하며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황급히 사라지는 마티나 백작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페르데스가 물었다.

“갑자기 그 남자는 왜 만나러 가는 거지?”

나는 고개를 돌려, 페르데스를 쳐다봤다.

어둡게 가라앉은 황금색 눈동자와 마주하는 순간, 입 안이 바짝 마르면서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누군가 목을 틀어막은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지만, 애써 목소리를 끌어내 대답했다.

“……페르데스 님이 신경 쓰실 부분이 아니에요.”

“왜?”

“그야…….”

“우리의 계약이 끝났기 때문인가?”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본 걸까.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페르데스가 헛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거 알아, 아델?”

성큼, 페르데스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의 그림자가 커다란 그물처럼 나를 덮쳤다.

“우리의 계약이 끝났을지는 몰라도, 약혼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도망치고 싶은데,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내겐 아직 그대의 일에 신경 쓸 권한이 남아 있어.”

“…….”

“그대가 야심한 시각에 혼자서 외간 남자를 만나러 간다면, 더더욱 신경을 써야지.”

그가 어깨 위로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을 한 줌, 집어 들더니 그 위에 입을 맞췄다.

“나는 그대의 약혼자고, 그대는 내 약혼녀니까.”

머리카락 위로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숨결이 뜨거웠다.

내게 고정된 시선은 그보다 더 뜨거웠고.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뭐라 반박하고 싶었으나, 구구절절 맞는 말인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말해.”

그렇다고 넘어가면 안 돼.

절대로 말하면 안 돼.

“무슨 일로 루센 공작을 만나러 가는 거지?”

“……쪽지가 왔어요.”

머리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루센 공작이 저한테 이상한 쪽지를 보낸 것 같아서……. 맞는지 확인하러 가는 거예요.”

“이상한 쪽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쪽지를 꺼내 그에게 보여 주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직접 보는 게 이해가 빠를 테니까.

페르데스는 쪽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이 쪽지를 보낸 사람이 루센 공작이라는 건 어떻게 안 거지? 심부름꾼이 알려 준 건가?”

“아니요. 충견, 그 단어 때문이에요.”

“충견?”

“네. 전에 루센 공작이 알도르 경을 충견이라고 부른 적이 있거든요. 앞으로도 주인을 무는 개가 아닌 충견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면서 말이죠.”

“뭐?”

한순간 페르데스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그 말은 그 남자가 너를 배신했다는 건가?”

“아니요. 그건 절대 아니에요.”

내가 단호하게 부정하는 게 못마땅한 듯, 페르데스가 입술을 일자로 그렸다.

“상당히 그 남자를 믿고 있군.”

“당연하죠. 알도르 경은 제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인걸요.”

“그럼 나는?”

응?

“나는 얼마나 믿고 있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