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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화 (207/262)

213화

마티나 백작저에 머무는 척 황제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는 사이, 북부령 귀족들과 담판을 짓는다.

이것이 바로 아델의 계획이었다.

북부령 귀족들이 바로 협조해 줄지 모를뿐더러, 마티나 백작저에 두고 온 호위 기사들이 자신이 없어진 걸 눈치채기 전에 돌아가야 하니 아델은 바삐 말을 몰았다.

“…….”

그렇게 말갈기가 휘날리도록 빠르게 달리던 그녀가 돌연 멈춰 선 건, 강어귀에 도착했을 때였다.

초록색 눈동자가 예리하게 번뜩였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어두컴컴해진 주변을 쭉 훑어본 아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따라붙었네.”

나를 귀찮게 하는 감시자가.

황제가 붙인 건지, 아니면 루센 공작이나 다른 사람이 붙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불청객들을 떼어 놓아야 한다는 거였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계획이 전부 들통날 테니까.

‘다른 루트로 가야겠네.’

이럴 경우를 생각해서 다른 루트도 생각해 두었지만, 문제는 그곳으로 가면 약속 시각에 늦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고민하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이랴.”

다시 말고삐를 움켜쥔 아델은 본래의 목적지에서 조금 떨어진, 부랑자들이 모여 사는 거리인 ‘트램가’로 향했다.

트램가 부근에 도착한 아델은 타고 온 말을 근처 대여소에 맡기고, 트램가 안으로 들어갔다.

해가 저물어도 수도의 중심부는 마법 가로등과 상점에서 새어 나온 불빛 덕분에 대낮처럼 밝았지만, 트램가는 아니었다.

거리에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다 쓰러져 가는 건물들과 천막들이 중구난방으로 지어져 있는 데다가, 인기척도 거의 느껴지지 않아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도 풍겼다.

아델이 감시자들을 따돌릴 장소로 트램가를 선택한 이유였다.

길과 건물의 상태가 좋지 않고, 거리가 너무 고요해서 말을 탈 수 없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그것만 빼면 불청객들을 따돌리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아델은 후드를 고쳐 쓰며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트램가에 사는 자들의 대부분은 부랑자이면서 범죄자였다.

부랑자가 범죄자가 된다기보다, 범죄자가 경비들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었다가 결국엔 부랑자가 되는 거였다.

그래서 트램가 사람들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경비들을 피하기 위해 지하 비밀 통로를 만들어 두었다.

공작가의 영애로 태어나 평생 이런 곳과 인연이 없었을 것 같아 보이는 아델이 트램가의 지하 비밀 통로에 대해 알게 된 건, 전부 체르노서 때문이었다.

첫 번째 생에서 체르노서는 아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트램가에 그녀를 버리고 갔었다.

그때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그래도 덕분에 재미있는 걸 알아냈지.’

이런 순간에 유용하게 쓰이기도 했고.

비밀 통로는 건물의 지하에 있었다.

비교적 멀쩡한 나무 계단을 내려가던 아델은 밑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멈춰 섰다.

그리고 허벅지에 숨겨 두었던 단검을 꺼내,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천천히 내려갔다.

한 발, 한 발.

마지막 발이 마지막 계단을 딛는 순간, 안쪽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사, 살려 주세요!”

“쉿, 조용히 해.”

아델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것 같은 소년과 기껏해야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아이들을 보니 맥이 탁 풀렸다.

아델은 아이들 외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칼날을 아래로 내렸다.

“미안.”

평소였다면 아이들이 괜찮은지 살피고, 적절한 보상을 했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불청객들이 언제 따라붙을지 모르는 데다가 약속 시각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간단한 사과만 하고 지하 비밀 통로와 이어지는 문을 여는 그 순간.

타악-

어느새 단검을 움켜쥔 소년이 느닷없이 아델을 향해 달려들었다.

“……!”

아델은 깜짝 놀라며 몸을 틀었지만, 지하실이 워낙 좁은 탓에 완벽하게 피하지 못하고 왼쪽 팔을 내줘야만 했다.

단검에 찔린 팔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아델은 눈썹을 찡그리며 재차 덤벼드는 소년의 팔을 낚아채듯이 잡은 뒤, 바닥에 쓰러뜨렸다.

쿵-

아델은 제 손아귀를 벗어나려는 듯 발버둥을 치는 소년의 얼굴 바로 옆에 그가 휘둘렀던 단검을 내리꽂았다.

화들짝 놀란 소년의 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일면식도 없는 소년이 제 의지로 이런 짓을 했을 리는 없을 터.

“누가 시켰지?”

아델은 분명 배후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며 물었다.

그러나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쉽게 말하지는 않겠다는 건가.

부랑가의 소년이 충정심 때문에 그럴 리는 없고, 약점이 잡힌 게 분명했다.

‘귀찮게 됐네.’

이대로 소년을 두고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데리고 가자니, 그건 짐덩이만 늘리는 꼴인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소년에게 추적 마법 같은 게 걸려 있을 수도 있고.

이 소년을 어떻게 처분할지 잠시 고민하던 아델은 계단 위쪽에서 누군가 오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다가오는 걸 봐서 평범한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감시자인가.’

아마 그렇겠지.

그새 날 쫓아온 거야.

소년과 쓸데없이 실랑이를 한 게 화근이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치고자 돌아서는데, 소년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당장 놔!”

“여기예요, 여기!”

소년은 지하실이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여기 있어요!”

“하……!”

그 바람에 제 위치가 전부 들통난 아델은 짧게 욕설을 읊조리며 소년을 강제로 떼어 낸 뒤, 재빠르게 비밀 통로로 들어갔다.

‘도망치는 건 자신 있어.’

레드 드래곤의 축복을 받은 덕분에 신체적인 능력이 보통 인간보다 뛰어났으니까.

아델은 지금까지 그녀보다 달리기가 빠른 사람은 부친 외에 본 적이 없었다.

팔을 다치긴 했지만, 두 다리가 멀쩡하니 이대로 전력 질주해서 감시자들을 따돌리고 니콜 테시스의 창고까지 가자.

너무 늦지 않게 북부령 귀족들을 만나러 가는 거야.

아델은 그렇게 계획을 세웠지만, 비밀 통로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윽!”

아니, 쓰러졌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아델은 파들파들 떨리는 왼쪽 다리를 내려다봤다.

다친 왼쪽 팔에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비 독인가.”

소년이 휘두른 검에 발려 있었던 모양이다.

마비 독까지 준비하다니.

배후가 누군지 몰라도 상당히 치밀한 놈이었다.

그래서 배후가 황제일 거라는 확신이 들기도 하지만.

“큰일이네.”

이대로는 약속 장소에 갈 수 없는 건 물론 그녀를 쫓아오는 감시역을 따돌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최악의 경우엔 그들에게 당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 두 번째 생처럼 말이지.

“…….”

끔찍했던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작은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순간 눈앞이 새카맣게 변했지만, 아델은 입술을 꽉 깨물며 흐려진 정신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비교적 멀쩡한 오른손으로 단검을 꽉 움켜쥐었다.

콰직-

“!”

그 단검은 막 그녀의 뒤에 선 인영의 허벅지에 깊게 박혔다.

아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단검을 횡으로 그었다.

단검이 지나간 자리에서 솟구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악!”

고통을 이기지 못한 인영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뒤따라오던 동료들이 주춤하며 멈춰 섰다.

반면 아델은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무심한 표정으로 쓰러진 인영을 보며 중얼거렸다.

“장검이었으면 완전히 다리를 잘라 냈을 텐데, 아쉽네.”

저게 정녕 고이 자란 귀족 가문의 영애 입에서 나올 말이란 말인가.

감시자들은 당황한 듯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벽을 짚고 일어선 아델은 얼굴에 튄 피를 닦아 내며 고개를 까딱였다.

“덤벼.”

두 번 당하지 않겠어.

이번 생에선 내가 반드시 이기리라!

* * *

카캉-

날카로운 쇠붙이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가까스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고 뒤로 물러선 아델은 어느덧 오른팔에도 감각이 희미해지자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이길 거라고 다짐했지만, 그녀에게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왼쪽 팔을 다친 데다가 마비 독 때문에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상대는 무려 넷이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정식으로 훈련을 받은 실력자들.

여기까지 버틴 것도 그녀라서 가능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작 당했을 것이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통로도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야.’

오른팔까지 마비가 된다면 무기를 쥘 수 없게 되니까.

어떻게든 그 전에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초조한 마음은 실수와 허점을 만들었고, 상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검을 찔러 넣는 그때.

콰쾅-

난데없이 천장이 부서지면서 아델과 적의 위로 돌무더기가 떨어졌다.

적은 재빨리 몸을 뒤로 빼며 피했지만, 아델은 몸이 마비된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웅크리며 피해를 최소화하려는데, 머리 위로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림자의 주인은 아델이 돌을 막지 않게 전부 막아 주었다.

이게 무슨?

아델은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어둠을 녹여 놓은 것 같은 새카만 머리칼이었다.

뒤이어 걱정스레 저를 바라보는 황금색 눈동자가 보였다.

“괜찮아?”

“페르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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