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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화 (199/262)

205화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놀라 커진 커졌던 황금색 눈동자가 이내 가늘게 접혔다.

이런 곳에서 레오를 만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터.

“네가 왜…….”

“이야, 반갑다!”

여기 있는 거지?

레오가 목청 높여 반갑게 인사한 탓에 페르데스는 하려던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반갑다니.

아무리 신분을 숨겼다고 해도, 말을 막 놓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페르데스의 미간 사이가 좁아졌다.

“이곳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그동안 잘 지냈어?”

불행인지 다행인지, 레오는 페르데스가 아닌 여관 쪽을 보고 있어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

“잘 지냈다고? 그래. 나도 잘 지냈어. 아아, 여긴 왜 왔냐면…….”

그 와중에 반말은 계속됐다.

게다가 혼자 묻고 답하기를 계속하며 여관 쪽을 계속 신경 쓰니, 페르데스 역시 그쪽을 보려던 그때.

“그래! 오랜만에 만났는데, 맥주 한잔하러 가자! 죄송하지만, 친구가 와서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레오는 우렁차게 소리치며 페르데스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십시오.”

엉겁결에 그를 따라가던 페르데스는 특이한 억양을 가진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리자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그 목소리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흥미롭다는 듯 페르데스와 레오, 그리고 여관 쪽을 번갈아 보고 있는 비블로스가 보였다.

페르데스와 눈이 마주친 비블로스는 씩, 웃으며 턱 끝으로 레오가 나왔던 여관을 가리켰다.

먼저 들어가 있겠다는 건가.

그게 좋을 것 같아 페르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가 페르데스를 데리고 간 곳은 여관에서 조금 떨어진 인기척이 드문 골목이었다.

페르데스를 골목길 안쪽에 밀어 넣고, 바깥쪽에 선 레오는 엿듣는 귀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페르데스를 향해 두 손 모아 정중히 사과했다.

“제멋대로 굴어서 송구합니다, 전하.”

“도련님이면 돼.”

“네. 도련님.”

냉큼 호칭을 바꾼 레오가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제가 여기 있는 걸…… 공작 각하께 알리실 겁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페르데스가 빤히 쳐다보자, 레오가 울상을 지으며 간곡히 부탁했다.

“그저 저들이 어디로 가는 건지 궁금해서 따라왔을 뿐, 제국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제발 아가씨에게 알리지 말아 주세요.”

흐음. 듣자 하니 아델이 이 남자에게도 제국에 돌아오지 말라고 했나 보군.

수족처럼 부리던 레오까지 오지 못하게 한 것을 보면, 아델은 무언가를 하려는 게 틀림없었다.

‘그게 뭘까.’

설마 황제를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그녀가 원하는 건 단순히 황제를 죽이는 게 아닌, 제국 자체를 대륙의 지도에서 없애는 거라고 했잖아.

문득 페르데스는 아까 들었던 특이한 억양을 떠올렸다.

그건 분명 제국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억양이었다.

그럼 외국인이라는 건데……. 설마?

문득 한 가지 가설을 떠올린 페르데스의 눈이 커졌다.

“정말로 여기서 헤어지려고…….”

“아까 자네의 말에 대답했던 남자, 외국인인가?”

페르데스가 레오의 말을 자르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자 레오가 약간 당황하며 그에게 되물었다.

“그들을 데리러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래, 라고 대답해야 하는 건가?

페르데스가 고민하는 찰나의 순간, 뛰어난 정보상답게 상황 파악을 끝낸 레오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니었군요.”

“…….”

맞다고 우겨 봤자 어차피 거짓말인 게 금방 들통날 테니, 페르데스는 그러지 않았다.

레오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미간을 짚었다.

“당연히 공작 각하께서 전하를 보내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니. 조금 당황스럽네요.”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왕 들킨 거, 대놓고 뻔뻔하게 물어봐야지.

“아델이 자네에게 어떤 임무를 내렸지? 아까 대답했던 남자는 외국인인가? 코스모스 상단의 이름을 썼다는 건, 호송할 물건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뭐지? 그리고…….”

“잠시만요.”

레오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쏟아지는 질문 세례를 막았다.

“죄송하지만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울상이었던 얼굴은 어느새 쫙 펴졌다.

레오는 턱을 약간 들고, 거들먹거리듯이 말했다.

“이건 공작 각하께서 저한테만 내린 ‘특별’ 임무니까요. 함부로 발설할 수는 없습니다.”

특별을 강하게 발음하는 모양새가 임무가 아닌 그가 특별하다는 걸 강조하는 것 같아 몹시 재수가 없었다.

원래 재수 없는 놈이었지만.

“그래?”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방법이 있지.

페르데스는 입술 끝을 말아 올리며, 매번 손에 끼자니 거추장스러워 목걸이처럼 체인에 달아 목에 걸고 있던 마법 통신 반지를 꺼냈다.

“그럼 아델에게 직접 물어보지.”

“잠깐……!”

페르데스가 당장이라도 아델에게 연락을 할 것처럼 굴자, 레오는 화들짝 놀라며 그의 손을 잡았다.

거만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비굴해졌다.

“잠깐 진정하시고…….”

“난 충분히 진정했는데.”

“……그렇죠. 진정하지 못한 건 바로 저죠.”

레오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아는 걸 전부 다 말할 테니, 공작 각하께는 제가 따라왔다는 걸 비밀로 해 주세요.”

“그러지.”

상당히 대비되는 두 얼굴이 서로를 마주 봤다.

레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가 아는 것들을 털어놓았다.

“사실 저도 아는 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전 그저 공작 각하께 플랭키 로이드라는 사람에게 지금 바로 보내 달라는 말만 전해달라고 부탁받았거든요.”

“아델이 뭘 보내 달라는 건지는 알아내지 못했나?”

“네. 저도 그게 궁금해서 따라온 건데,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상단에서 운반하는 물건일 수도 있잖아?”

“그게……. 저들이 운반하는 건 노예입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노예라고?

“정말인가?”

페르데스가 깜짝 놀라며 묻자, 레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몸에 노예 낙인이 찍혀 있는, 확실한 노예입니다. 그것도 백 명이나 돼요.”

제국에서 노예를 부리는 건 합법일 뿐만 아니라, 레오폴드 공작령에서 퓨라를 캐는 광부 중 일부는 노예였다.

그러니 아델이 노예를 사려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황제에게 복수하기 위해 쓰겠다는 코스모스 상단을 이용해서 노예들을 데리고 오려는 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백 명이나.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아델?’

그들을 황제에게 검을 겨눌 사병으로 키울 생각인가?

하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뿐더러, 눈에 띌 텐데.

파헤칠수록 이해가 안 되는 아델의 행동에 페르데스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깊어졌다.

“제가 아는 건 이게 답니다.”

그 말에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페르데스가 레오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레오는 두 손을 어깨높이까지 들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더 이상 아는 게 없어요.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신을 믿어?”

“아니요. 저는 무신론자인데요.”

그런데 신의 이름은 왜 거는 건지.

페르데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하자, 레오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럼 약속 지켜 주실 거죠? 당장 떠날 테니, 공작 각하께 제가 저들을 따라왔다는 걸 비밀로 해주세요.”

“떠날 필요는 없어.”

“네?”

“대신 나도 그 행렬에 동참하겠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비밀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공범이 되는 거지.”

페르데스의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한 레오가 조심스럽게 묻자, 페르데스가 처음으로 레오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나도 그 행렬에 참여해서 그들과 함께 제국의 수도로 가겠다.”

* * *

나는 황제가 숨겨 둔 쥐새끼를 찾으려고 이것저것 슬쩍 흘려 봤지만, 존재가 들통났다는 걸 눈치챈 건지 쥐새끼는 발톱도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 눈치가 빠른 놈들이 싫다니까.

가끔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눈치가 빠른 자들은 귀찮았다.

어쩌면 황제가 그동안 조용히 있었던 것도, 내가 조용히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든 황제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대놓고 발버둥을 쳤던 이전 생과 달리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은밀하게 수족들을 부렸으니까.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고 우아하지만, 수면 아래에선 열심히 발장구를 치고 있는 백조처럼.

“그게 아니면 내가 공작저의 지하실에 자주 드나드는 걸 알았기 때문인지도 몰라.”

황제가 뭘 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레오폴드 공작저의 지하실에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러니 나를 잘 구슬려서 그걸 가져다 달라고 하려는 계획인지도 모른다.

“오늘 만나 보면 어느 쪽인지 알겠지.”

오후 1시. 황제와의 점심 만찬이 약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도의 공작저 사용인들이 전부 레오폴드 공작령으로 가는 날이기도 했다.

그들을 위험하게 하지 않기 위해 보내는 건데, 덕분에 첩자도 떼어 낼 수 있게 됐으니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나도 슬슬 황궁으로 가 봐야 하는데, 떠날 준비는 어디까지 됐으려나.

집사를 만나러 중앙 홀 쪽으로 가던 참에, 막 계단에서 올라오는 알도르 경과 정면에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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