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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화 (194/262)

200화

“공작령의 저택……. 말씀이십니까?”

수도의 레오폴드 공작저를 총괄하는 집사가 약간 당황하며 되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 자네도 알다시피 레오폴드 공작령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일으킨 화산 폭발 때문에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야.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도와준 덕분에 따르게 안정을 찾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손이 많이 필요하니 자네들이 가서 도와줬으면 좋겠어.”

거짓말과 진실이 반반 섞인 제안에 집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모든 사용인이 공작령으로 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각하를 모셔야 할 자가 있어야 하니, 저를 포함한 몇몇은 이곳에 남겠습니다.”

“그 부분이라면 괜찮아. 당분간 황궁에서 지낼 거거든.”

아직 황궁에 머무는 걸 허락받은 건 아니지만, 허락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만약 허락해 주지 않는다면 그땐 고급 여관에서 머물면 되는 거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공작령으로 가도록.”

중요한 건 ‘그것’이 들이닥치기 전에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레오폴드 공작령으로 보내는 거니, 다소 얼떨떨해하는 집사와 사용인들, 그리고 공작저를 지키는 기사들까지 억지로 등을 떠밀었다.

이걸로 다른 사람들은 해결됐고.

이제 알도르 경과 에런 경을 돌려보내야 하는데……. 어떡한담.

에런 경이야 내 말을 잘 들으니 돌려보내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알도르 경이었다.

평소엔 내 말을 잘 듣다가도 내 안전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면 고집을 부리니, 그를 먼저 레오폴드 공작령으로 돌려보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알도르 경을 보낼 수 있을까.

공작저를 나와 황궁으로 가는 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와중, 문득 레오가 했던 개소리가 떠올랐다.

그를 평생 내 곁에 둘 생각은 없냐는 그 말.

평소였다면 장난으로 치부하고 넘겼을 텐데, 그날따라 그의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페르데스에게 비슷한 말을 들어서 더욱 진심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모른 척해야지.

페르데스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레오까지 신경 쓰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알도르 경은…….

쨍그랑-

불현듯 무언가 날아와 창문을 깨고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이건…… 돌이네.

그것도 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짱돌이었다.

홧김에 던진 게 아닌, 계획적으로 던진 게 분명했다.

돌을 주우려는데 마차 문이 벌컥 열리면서, 굉장히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알도르 경이 얼굴을 비췄다.

“괜찮으십니까, 각하.”

“네. 괜찮아요. 다행히 돌에 안 맞았거든요.”

내 말에 알도르 경은 인상을 팍 쓰더니, 바닥에 떨어진 돌을 주웠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허리를 깊이 숙이며 사과했다.

“제가 좀 더 경계를 철저하게 했어야 했는데……. 부주의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이런 경우는 보통 인파 속에 숨어 돌만 던지고 튀었을 가능성이 크니, 주변을 경계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범인은 잡았나요?”

“아직 잡지 못했습니다만……. 지금 에런 경이 주변 수색을 하고 있으니, 곧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위조 금화 때문에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더욱 살기 어려워진 제국민들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증가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불만은 여러 방면으로 표출됐는데, 그중 하나가 지금처럼 귀족의 저택이나 마차에 돌이나 오물 같은 걸 던지는 거였다.

아마 이번 사건도 그런 것일 터.

“됐어요. 그냥 가죠.”

그렇다면 잡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저렇게 만든 범인이 바로 나였으니까.

그들이 선을 너무 넘지만 않는다면, 어느 정도는 눈을 감아 줄 생각이었다.

“정말로 넘어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내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알도르 경이 다소 황당해하며 내게 물었다.

“잘못하면 회의에 늦겠네요. 얼른 출발하죠, 알도르 경.”

그 질문에 나는 다른 방식으로 돌려 대답했다.

“…….”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알도르 경은 말없이 날 쳐다보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러면 짜증이 났을 텐데, 알도르 경에겐 전혀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가 진심으로 날 걱정해서 이러는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도르 경.”

그래도 슬슬 출발해 줬으면 좋겠는데.

목소리를 약간 깔고 불렀더니, 그제야 내 말을 따를 마음이 들었는지 알도르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겠습니다.”

* * *

오늘 회의는 황제파 귀족들만 참석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본디 레오폴드 공작가는 황제파 귀족이었지만, 그건 아버지가 공작이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나는 공작위를 승계받기 위해 알레테이아에서 황제파 귀족들과 한바탕 싸웠었다.

그러니 이 자리에 초대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초대장이 날아왔다.

설마 아직도 내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고.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나는 그들의 의중이 궁금하고, 어떤 말을 떠들어 댈지 알고 싶어서 참석했다.

“정말이지, 그 자식들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나가지 않아도 될 돈이 나가게 생겼습니다.”

“그러니까요. 자기들도 발등 찍는 짓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왜 그딴 소리를 한 건지…….”

“보이지도 않는 신을 모신다고 설칠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반황제파 귀족들을 욕하는 걸로 회의가 시작됐다.

“황태자 전하도 너무하시지, 저희가 얼마나 열심히 도와드렸는데 그놈들의 편을 들어 주시다니…….”

“누가 아니랍니까. 저는 이번 일로 황태자 전하께 크게 실망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반황제파 귀족의 편을 든 황태자도 욕했다.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참석했는데,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놓으니 지루했다.

괜히 참석했네. 이럴 줄 알았다면 서류나 보고 있을 걸.

“황제 폐하께선 아직도 답이 없으십니까?”

지금이라도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슬슬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려고 했다.

나는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고이 접어 구석에 밀어 넣은 뒤,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네. 아직도 대외적인 활동은 전부 황태자 전하께 일임하시고, 귀족들이 찾아가도 만나 주시지 않습니다.”

“어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디 몸이라도 안 좋으신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하기엔 황궁의도 아무 말이 없고, 가족 만찬 같은 황실 대소사에는 전부 참석하셨습니다.”

“그 말은 정치적인 일에만 손을 놓고 계신다는 건데……. 설마 이대로 황태자 전하께 선위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누군가 툭 던진 말에 귀족들은 크게 동요하며 웅성거렸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반복된 지난 생에서 황제는 단 한 번도 황태자에게 선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황태자가 이 시기에 사냥 대회에 참석했다가 허무하게 죽어서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 꼭 선위를 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최근 황제의 행보는 선위를 준비한다고 봐도 무방했고.

“만약 선위를 하신다고 한다면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아직 황태자 전하께선 황좌에 앉으실 준비가 안 됐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황제 폐하를 찾아뵈어서……!”

탕탕-

흥분한 귀족들이 당장이라도 황제를 찾아갈 것처럼 굴자 맥밀 후작이 가볍게 탁자를 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자, 다들 황제 폐하를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알겠으니, 일단 진정하게. 흥분한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오히려 상황만 악화 시킬 뿐이지.”

“크흠.”

그제야 진정한 귀족들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때, 한 귀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후작 각하께선 지금 상황이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왜 걱정이 안 되겠나. 나 역시 무척 걱정이 된다만, 아직 황제 폐하께서 어떤 언질도 주지 않으셨으니 너무 섣불리 나서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 가만히 있는 게지.”

“그러니 황제 폐하를 뵙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들어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러고 싶지만, 폐하께서 만나 주질 않으시니…….”

몹시 곤란하다는 듯 턱을 쓰다듬던 맥밀 후작이 문득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날 쳐다봤다.

뱀처럼 찢어진 눈과 마주하는 순간, 불안한 예감이 치고 올라왔다.

설마…… 나한테 떠넘기려는 건 아니겠지?

“공작 각하께서 직접 황제 폐하를 뵙고, 그분의 의중을 물어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귀족들이 손뼉을 치며, 맥밀 후작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공작 각하께선 장차 황실 일원이 되실 분이니, 폐하께서도 만나 주실 겁니다.”

“게다가 폐하께선 각하를 예뻐하시니…….”

황제가 날 예뻐한다니.

지나가던 개도 코웃음칠 만한 개소리였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회의에 날 부르나 싶었는데, 이게 목적이었구나.

“그렇게 하죠.”

그들의 쿰쿰한 속내가 거슬렸지만, 나 역시 황제가 무슨 생각인지 궁금했기에 거절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저들이 부탁했다고 떠넘기면 되는 거였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고…….”

내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맥밀 후작은 기다렸다는 듯이 회의를 끝냈다.

하여간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라니까.

나는 잘 부탁한다는 그들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곧바로 황제의 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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